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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ica 이야기 9: 무릇 일터와 집은 ‘불가근불가원’이어야 하거늘... (20230410)

경계넘기 2024. 3. 29. 21:01

 

 

무릇 일터와 집은 불가근불가원이어야 하거늘........

 

 

일터와 집, 집과 일터에 있어 나만의 법칙이 있다.

 

한국이든 외국이든 유목민 생활을 주로 하는 내게는 일터와 관련해서 집을 구하는 나만의 법칙이 있다. 주관적인 내용이라 나만의 법칙이라고 칭하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익히 들어오고 인정하는 바이기도 하다.

 

 

집과 일터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어야 한다.

 

 

집이 일터에서 멀어도 안 되지만, 가까워도 안 된다는 의미다. 일터에서 집이 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야 당연한 말인데, 가까워도 안 된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직관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책상과 침대가 가까워서는 안 된다는 말과 같은 의미다. 다들 공부들을 열심히 해본 경험이 많을 터이니 바로 이해가 될 것이라 믿는다.

 

 

 

 

첫째, 집과 직장이 가까우면 출퇴근의 근태가 불성실해지기 싶다.

 

흔히들 직장이든, 학교든, 약속 장소든 그곳에서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지각을 잘한다고 하는데 그건 엄연한 사실이다. 집과 약속 장소가 멀면 중간에 생길 변수들이 많아서 미리미리 서두르지만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그걸 염두에 두지 않기 때문에 작은 변수에도 지각하기 십상이다. 퇴근도 마찬가지 퇴근하면 바로 집이라는 생각에 괜히 미적거리는 경우가 많다.

 

둘째, 집과 일터가 가까우면 일과 휴식의 구분이 안 된다.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집이 가깝다보니 자꾸 회사의 일을 집으로 가져와서 하게 된다. 회사에서 남아서 하느니 집에서 좀 쉬었다 편하게 하자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아울러 수시로 회사에 불려나갈 수도 있다. 직장에 급한 일이 생기게 되면 상사든 동료든 가까이 살고 있는 사람을 우선 부르게 된다. 이게 반복되면 나중에는 시도 때도 없이 부른다. 이러다 보면 일과 휴식이 제대로 분리되지 않아서 나중에는 일의 효율도 안 생기면서 스트레스만 받는다.

 

셋째, 개인 시간이 수시로 침해받을 수 있다.

 

두 번째와 연결되는 것이기도 하다. 일과 직장이 가까우면 직장 동료들이 수시로 집에 드나들 수 있다. 물론 인간관계 나쁘지 않은 사람의 경우다. 가끔 들리는 것이야 좋을 수 있지만 이게 빈번해지면 나름의 스트레스가 된다. 아울러 휴일에도 밥이나 술자리에 수시로 불려나가기 십상이다. 부르는 사람이야 어쩌다 한 번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불려나가는 사람 입장은 무척 피곤하다. 그러다 한 번 거절하면 거절당한 상대방은 기분 나쁠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들이 부르면 잘도 나오는 것 같은데 자기가 부르니까 피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는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도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24시간 동료들과 붙여 있으면 24시간 계속 일하는 기분이 든다. 퇴근하면 회사나 일 이야기 좀 그렇게 하지 말라고 이야기해도 꼭들 하니 더욱 그렇다. 코이카에서 단원들끼리 한 집에서 생활하는 것을 막는 데에는 이런 이유도 있을 것이다.

 

고로 일터와 직장은 적당한 거리에 있어야 한다.

그게 건강에도 일의 능률에도 좋다.

불가근불가원!!

 

 

 

 

이 원칙이 지금 베트남 타이응우옌에서 무너질 것 같다.

 

 

갑자기 숙소 문제가 전혀 예상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간다.

허를 찔린 기분이다.

 

지난주 월요일 한국어과 선생님과 함께 집들을 둘러본 후에 이상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기관 즉, 대학 측에서 우리 단원들이 학교 기숙사에서 묵기를 희망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기숙사라고 하지만 학교를 방문하는 외부 손님들이 묵는 교내 게스트하우스의 개념으로 지어진 것이다. 하지만 시설이 열악해서 그냥 기숙사라고 부른다. 설마 했는데 지난주 대학과의 미팅에서 보니 설마가 아니라 사실이었다.

 

 

타이응우옌 대학의 기숙사 건물들

 

 

단원들과 대학 측과의 회의에서 대학 측이 가장 적극적으로 나온 부분이 숙소 문제였다.

 

학교 측은 우리 단원들이 자신들의 기숙사에서 묵었으면 했다. 다른 기관에서 일하는 단원들까지는 어렵다하더라도 적어도 대학에서 일을 하는 단원들은 이곳에서 묵기를 바랬다. 대학에서 내놓은 논리의 핵심은 안전이였다. 단원들이 이곳에서 활동함에 있어서 대학이 단원들의 안전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외부에서 생활하는 경우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교내의 경우 경비원들이 있어서 1차적으로 안전을 담보할 수 있을 뿐더러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학교에는 자신들이 항상 있기 때문에 바로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PMC도 나쁘지 않은 모양이다.

 

그렇지 않아도 숙소 문제가 걱정이었을 터인데 가장 인원이 많은 대학팀의 숙소 문제가 한방에 해결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PMC든 코이카든 가장 걱정하는 부분이 단원들의 안전 문제일 수밖에 없는데 대학 교내에서 생활한다면 안전 걱정도 상당 부분 덜 수 있다. 다만 기숙사 시설이 열악해서 자신들도 기숙사를 고려 대상에 넣지는 않았지만 기관에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온다면 부족한 시설 부분은 협상을 통해 어느 정도 보완을 약속 받을 수 있다는 계산도 선다.

 

 

 

 

그런데 다른 단원들도 기숙사가 좋단다.

여자 단원 쌤들마저도.

 

대학이나 PMC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대학의 경우 게스트하우스라고 지어는 났는데 그냥 폐허처럼 놀리고 있으니 건물의 활용이나 대학의 수입 측면에서 결코 놓치고 싶지는 않을 터다. 단원들의 안전 문제도 그냥 핑계로 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이곳 대학 입장에서도 자신들을 도우러 온 외국인 봉사단원들의 안전 문제는 가장 중요하고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문제일 터다. 특히 담당자들 입장에서는 더욱.

 

하지만 시설이 열악해서 다른 단원 쌤들, 특히 여자 단원 쌤들이 결코 찬성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더욱이 벌레에 민감한 여자 쌤들 입장에서는 지난주 기숙사 방들에서 나온 바퀴벌레와 화상벌레 때문이라도 쉽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는 나의 절대적인 오판이었다. 다른 남자 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여자 쌤들마저 좋다고 나오면서 방향은 순식간에 기숙사로 쏠려버렸다. 지난 월요일에 둘러 봤던 외부 숙소들의 충격이 컸나 보다.

 

 

가운데 건물이 단원들이 묵는 기숙사(게스트하우스?)

 

 

이런 걸 두고 진퇴양난이라고 하나!

 

대학팀은 나를 포함해서 모두 4. 어찌되었든 대학 입장에서는 4명을 위해서 안 쓰던 건물 한 동을 가동해야하고, 건물 매니저도 한 명 두어야 한다. 대학에는 나름의 비용이 든다. 이 비용은 당연히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작아진다. 아울러 우리 측에게 4명은 대학팀 전체라는 의미가 있다. 기관의 요청에 호응해서 대학팀 전원이 기숙사에 남는다는 명분이 생긴다. 이 명분은 비록 숫자가 적다하더라도 우리가 대학과의 숙소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도록 해준다.

 

여기서 협상이란 월세도 월세지만 기숙사의 여건 개선에 관한 것이다. 장기거주를 위해서는 방에 냉장고, 책상, 테이블 등도 필요하고, 건물 내에 공동 부엌 및 세탁기도 필요하다. 이게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으면 제대로 생활할 수가 없다. 명분이 있으니 우리가 기숙사 여건 개선을 강하게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4명 중에 한 명이라도 빠진다면 대학 측의 비용도 비용이지만 대학에 대한 우리의 협상력도 그만큼 약해진다. 사실 지금 PMC도 대학팀 전체 4명이라는 전제 하에 대학 측과 숙소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아예 지난 월요일에 봤던 방들 중에서 하나를 정해버리거나 개인적으로 다른 숙소를 알아봤다면 기숙사로 향하는 이 기류에서 벗어날 내 개인적 명분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자 쌤들의 결정을 기다린다는 것이 그 명분과 기회를 잃어버리게 만들었다. 혼자 나간다고 하면 남은 단원 쌤들의 협상력이 그만큼 낮아질 터이고, 그대로 기숙사에 살자니 앞서 서두에서 언급했던 문제들이 걱정이다. 아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건 법칙이다. 거의 예외가 없다. 더욱이 외국에서는.

 

 

이 건물 3층에만 사람이 산다!!

 

 

아무래도 대세에 휩쓸릴 것 같다.

정말 두고두고 후회할 터인데.

여기 시골이라 할 것도 없고.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