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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일주 여행/우크라이나(Ukraine)

D+224, 우크라이나 리비우 8: 한 명을 보내니 한 명이 다시 오고(20190626)

경계넘기 2019. 8. 4. 21:33

 

한 명을 보내니 한 명이 다시 오고

 

 

한 한국인 여행객이 인사를 하면서 같이 아침을 하자고 한다.

 

오전에 난 호스텔 공용 공간에서 글을 쓰고 있었고, 이 친구는 부엌에서 삼겹살을 굽고 있었다. 여행하면서는 웬만하면 사양을 하지 않기 때문에 같이 식사를 한다. 사실 이 친구는 같은 방 그것도 내 옆 침대에 있는 친구다. 같이 체크인 했던 한국인 여행객을 보내고 그 다음날인가 온 친구다. 이 친구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혼자 있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해 보이는 지라 그냥 말을 걸지 않았을 뿐이다. 나도 혼자만의 휴식이 필요할 때였고.

 

오늘 아침 갑자기 먼저 말을 걸면서 식사를 하자고 한다.

 

반찬은 소금을 살짝 뿌린 삼겹살에 전자레인지로 한 설익은 밥이지만 내 것까지 해준 친구의 마음이 고맙다. 더욱이 삽겹살과 밥은 지난 헝가리 이후 처음이다.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 친구도 나와 비슷한 시기에 한국을 나와서 지금까지 여행을 하고 있단다. 세계여행을 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이집트 다합으로 간다고 한다. 거기에서 동부 아프리카를 종단할 생각이라고. 나와 계획이 같은 친구다. 내가 결정만 빨리했다면 같이 다합 들어갔다가 같이 아프리카 들어갈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이 친구가 한국인줄 알게 된 것도 다합 정보를 얻으려고 다합 카톡방에 들어가면서다. 이 친구도 그곳에 가입했는데 그곳 카톡방에서 여기 리비우에서 한국 식자재를 어디서 구할 수 있냐고 묻는 것이었다. 카톡 프로필 사진을 보니 내 방 친구였다.

 

지난번 한국인 여행객처럼 약간 내성적인 친구지만 진솔한 사람 같았다. 같이 이집트 다합과 아프리카를 여행했다면 좋은 길동무가 되었을 터인데...... 나의 우유부단으로 인해서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좋은 길동무 하나만 있다면 아프리카도 그리 힘들지 않기 때문이다.

 

아침을 해준 답례로 맥주를 산다.

 

자주 가던 그 펍(Pub)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 친구도 대단하다. 작년 11월 초에 한국을 나와서 동남아에서부터 여행을 시작했다고 한다. 인도, 네팔도 한 2달 정도 있었고. 이 친구 말에 의하면 2월에 한 달 정도 네팔에 있었다고 하는데 내내 날씨가 좋지 않아서 모든 히말라야 트레킹 루트가 금지되었었다고 한다. 나도 2월에 인도에서 네팔 들어가려 했으니 트레킹 한 번 못하고 나올 뻔 했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에서 인도, 네팔로 가지 못한 것이 천만다행이다. 가지 말라고 카드가 그렇게 먹통이었나 보다.

 

그 친구는 인도에서 두바이 거쳐 스페인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그곳에서 17kg의 배낭을 메고 산티아고 길을 한 달 동안 걸었다고 한다. 한 번은 40km 이상 걸은 적도 있었다고. 죽는 줄 알았다고 하는데 대단하다. 나도 걷는 것을 좋아해서 산티아고 길을 걸어볼까 생각 중인데 짐 때문에 고민을 하고 있었다. 지금은 짐도 짐이지만 한여름에 산티아고 길을 걸을 수 없기 때문에 불가능. 한여름 유럽은 이래저래 힘들다.

 

지난번 친구와 달리 이 친구는 술도 꽤 했다. 아침에 삼겹살에 맥주를 했는데도 펍에서 500cc 두 잔을 각각 마셨다. 아침부터 계속 술이다. 숙소에 다시 들어가서는 이 친구가 내일 다합으로 들어간다며 남은 식자재로 부침개를 해서 먹는다. 어설프긴 해도 맛은 좋다. 양이 좀 적긴 했지만.

 

 

 

저녁을 일찍 먹고 이 친구와 오페라를 보러 간다.

 

원래 3층 자리였는데 1층에 자리가 많이 남아서 채우려고 그러는지 1층으로 안내를 받아 그곳에 앉았다. 좋은 자리를 배정 받았으니 나쁘지 않다.

 

오늘은 이탈리아 작곡가 도니체티(Donizetti)사랑의 묘약(L'elisir d'amore; The Elixir of Love)’이다.

 

22시간 30분의 오페라였다. 강렬하지는 않지만 부드럽고 감미로운 음악과 노래가 흐르는 오페라였다. 도니체티가 이 오페라를 단 2주 만에 만들었다고 하니, 우리 같은 범인은 상상할 수 없는 대단한 사람이다. 하긴 시간이 많다고 좋은 작품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집중이니까. 한국인 친구와 노느라 오페라 줄거리를 확인하지 못했다. 확실히 줄거리만이라도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은 흥미와 집중력에 큰 차이를 보였다.

 

그나마 오늘은 오페라하우스에 에어컨이 가동되었다. 아주 시원하지는 않았지만 부채질까지는 필요 없었다. 지난번 공연들에서는 에어컨을 안 틀었었다. 아니면 고장 나서 못 틀었던가.

 

 

 

오늘은 하루 종일 이 친구와 함께 했다. 한 친구를 보내니 한 친구가 왔다.

 

아쉬운 것은 내일 다합으로 떠난다는 것. 일찍 인사를 할 걸 그랬다. 그러면 내 선택도 달라져서 이 친구와 함께 다합에 갔을지도 모른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