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민의 꿈, 보헤미안의 삶

세상의 모든 경계를 넘어 보다 자유로운 미래를 그린다

미얀마의 민주화와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기원하며...

청주 10

노가다 이야기 23: 마지막 출근(20221209)

마지막 출근 “오늘은 작업 안할 겁니다!” 아침 TBM(아침 조회)을 마치고 작업지휘자가 한 말이다. 어제 하다 만 작업이 있어서 오전에 그 작업을 마무리 지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하지 않겠단다. 그렇다면 남은 자재와 물품들을 정리해서 창고로 보내면 모든 일이 끝난다. 마지막 날까지 바쁘리라 생각했는데 다행이다. 오늘이 마지막 출근 날이다. 우리 팀 전체가 오늘을 마지막으로 청주 하이닉스에서 철수한다. 이 날이 올까 싶었는데 시간이 가긴 간다. 오전에 쉬엄쉬엄 샵장에서 자재와 물품을 화물 엘리베이터 앞으로 모아 놨다. 화물 엘리베이터 사용은 시간이 정해져 있는 관계로 오후에나 사용이 가능하단다. 그럼 그때까지 무얼 할까! 뭐하긴 짱 박혀서 그때까지 시간을 보내는 거다. 5월 말부터 시작했던 노가다 일이 끝..

노가다 이야기 22: 내일이면 M15도 마지막이다(20221208)

내일이면 M15도 마지막이다 어둠이 깔린 퇴근 길 M15에서 보는 달이 휘황찬란하다. 달력을 보니 보름이다. 보름달. 어두운 저녁 하늘, 구름마저 모두 사라졌는지 눈이 부실 정도로 달이 크고 밝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반달이었는데 어느새 커다랗고 덩그런 보름달이 되었다. M15의 하루하루는 길었던 것 같은데 지나고 보면 너무 빠르고 짧다. 내일이면 M15의 노가다 생활도 끝난다. 원래는 10월 말까지였는데 11월 말로 연장되더니, 2일이 연장되어 12월 2일까지였다가 아예 일주일이 더 연장되어 내일까지가 되었다. 다음주부터는 다른 일정이 있으니 다시 연장을 한다하더라도 나는 할 수가 없다. 그러니 오늘이 M15 마침의 전야제다. 휘황찬란한 달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싱숭생숭하다. 마냥 좋을 거라 생각했는데..

노가다 이야기 20: 자가용 출근의 역설!(20221123)

자가용 출근의 역설! “주차위반 과태료 청구서가 5장이나 날라 왔어!!” 같이 일하는 유도원 친구가 입이 댓 발 나와서 하는 말이다. “주차위반 딱지가 5장이라니 무슨 말이야?” “2, 3주 전인가, 하이닉스 현장 주변에 불법주차 단속 강화한다는 공지 있었잖아요” “그랬지, 뭐 가끔 잊을 만 하면 나오는 정례행사잖아요” “근데 이번에는 주구장창 했나 보네요. 자그마치 5장이 날라 왔네요” 한 장도 아니고 5장이라니. 이번에는 작심하고 단속을 했나 보다. 10월 말에 있었던 이태원 참사 이후 공사 현장에 공지가 내려왔었다. 청주경찰서와 청주시가 합동으로 하이닉스 현장 주변의 불법주차 단속을 강화한다는 내용이었다. 아마도 이태원 참사에 불법주차도 일말의 책임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가끔 나오는 공지라 ..

노가다 이야기 10: 작업복에도 패션이 있다 (20220527)

작업복에도 패션이 있다! 노가다라고 하면 막노동을 연상했다. 더러운 작업복을 입고 무식하게 힘만 쓰는 그런 일들. 그런 사람들. 그런데 웬걸! 사람들이 멋있다. 그들이 입는 작업복도. 작업복에도 패션이 있다. 기본적으로 착용하는 안전 용구들이 있다. 마치 군대에서 군복에 헬멧, 방탄조끼, 탄띠, 고무링, 전투화를 착용하듯이 건설일도 안전모, 조끼, 안전벨트, 각반, 안전화를 착용한다. 여기에 각각의 공정에 맞는 작업 도구들을 안전벨트에 착용한다. 마치 군인들이 소총, 수류탄 등의 개인화기를 착용하는 것처럼. 이게 멋있다. 이런 안정 장비들과 작업 도구들을 지급하고 착용한다는 사실에서 예전 드라마에서 보는 막노동꾼의 이미지는 사라지고 뭔가 전문가다운 냄새가 풍긴다. 막 자대에 배치 받은 어설픈 이등병이 전..

노가다 이야기 9: 유도원은 편할 줄 알았는데...... (20220524-2)

유도원은 편할 줄 알았는데...... 하루 종일 서 있으려니 다리가 너무 아프다. 유도원은 개꿀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우리 팀은 7시 10분쯤 아침 조회격인 TBM을 체조와 함께 시작한다. 이때부터 점심시간인 오전 11시까지 한시도 앉지 못하고 계속 서 있어야 한다. 가끔 TL(Table Lift)이라는 장비를 유도할 때 조금 걷는 것 빼고는 작업 현장에서 지나 다니는 사람들을 통제하면서 계속 서 있는 게 일이다. 점심시간이 시작한다고 해서 좋은 일은 아니다. 더 힘들다. 그렇지 않아도 서 있느라 힘든 다리를 이끌고 식당까지 왕복 50분을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바글거리는 사람들 속에서 식사는 대충 15분 정도에 마치지만 식당을 나온 사람들에게 앉아 쉴 만한 곳은 없다. 식당 건물 주변의 그늘진 ..

노가다 이야기 8: SK하이닉스 M15 건설 현장으로 (20220524-1)

SK하이닉스 M15 건설 현장으로 새벽 5시 45분에 집을 나선다. 6시 30분까지 업체 사무실 앞에서 내가 일을 할 팀의 팀장을 만나기로 했다. 그 시간에 맞추려 넉넉히 길을 나선다. 여름의 초입 5월 말의 해는 길어서 이 시간에도 날은 훤하다. 하지만 길은 한산하다. 3일째 자전거로 가는 길이지만 힘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경사진 고개가 익숙해지지 않는다. 유도원으로 첫 출근이라 안전모에 조끼, 메가폰, 신호봉까지 들고 가자니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아예 안전모에 조끼, 안전벨트까지 매고 출근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빨간색 안전모 그리고 등짝에 유도원이라는 큼지막한 팻말이 붙은 빨간색 조끼는 여간 우스워 보이는 게 아니라 집에서부터 입고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차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도 차에서..

노가다 이야기 7: 노가다(건설 노동)의 분야, 공종(工種) (20220523-3)

노가다(건설 노동)의 분야, 공종(工種) 노가다(건설 노동)에도 당연히 여러 분야가 있다. 이를 공종(工種)이라고 한다. 건설 노동(노가다)에서 자주 쓰이는 단어들 중 국어사전에 나오지 않는 단어들이 많다. 노가다처럼 일본어에서 나온 용어들도 있지만 그렇게 보이지 않는 용어들 중에서도 사전에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공종도 그렇고 지난 번 글을 쓴 공수제라는 용어도 그렇다. 이들 용어도 일본어에서 나왔을 수도 있다. 노가다 일을 잡기 전에 노가다 일의 종류, 즉 공종을 알아봤다. 해보지 않은 일이라 비교적 안전하고 덜 힘든 일을 찾으려는 노력에서였다. 힘든 일을 기피해서라기보다 내 체력에 맞는 일부터 점진적으로 해나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괜히 돈 많이 준다고 덥석 시작했다가 골병들거나 중간에 그만둘 수..

노가다 이야기 6: 노가다(건설 노동)의 꽃, 공수제 (20220523-2)

노가다(건설 노동)의 꽃, 공수제 오전에 신규자 안전교육을 받으면 근로계약서를 쓴다. 이제야 진짜 일을 하게 되는 거다. 근로계약서에 나오는 포괄 임금제는 익숙하지가 않다. 건설 일용직은 주로 포괄 임금제를 사용한다. 기본급, 주휴수당, 연장근로수당, 연차수당이 모두 포함된 임금이라는데 대충 일당에 모든 게 다 포함되어 있다는 의미다. 월 단위 계약인 일용직 건설 노동은 퇴직금도 없다. 중요한 것은 일당의 금액. 내가 받을 일당은 14만 원. 근로계약서에서 확인한 것은 이 금액이다. 다른 조건은 뭐 제대로 읽지도 않았다. 나만 쓰는 근로계약서도 아니고. 주간 8시간 근무에 14만 원이니 시급으로 따지면 1.75만 원이다. 꽤 좋다. 2002년 올해 최저임금이 9,160원이니 최저 임금의 거의 두 배에 이..

노가다 이야기 5: 노가다(건설 노동) 첫날, 교육만 받았는데 일당을 준다! (20220523-1)

노가다(건설 노동) 첫날, 교육만 받았는데 일당을 준다! 노가다 첫날이지만 사실 교육 받는 날이다. 하이닉스에서 일을 하려면 신규자 안전교육을 받아야 한다. 안전교육을 받지 않으면 하이닉스에서 일을 할 수 없다. 이건 하이닉스뿐만 아니라 다른 건설 현장도 마찬가지다. 교육과 함께 신체검사도 받는다. 특별한 것은 아니고 그저 혈압을 잰다. 혈압이 높으면 일을 할 수 없다. 병원에서 확인서를 떼 오거나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새벽 6시까지 하이닉스 근처 업체 사무실로 오란다. 새벽에 일어나 자전거를 타고 간다. 어제 답사했던 길이지만 역시 고개가 있어서 힘이 든다. 길도 지랄 같고. 노가다는 교육도 이른 아침에 하나보다. 하이닉스 근처 컨테이너 사무실에 가서 간단한 서류를 써서 제출한다. 일종의 입사 서류다..

노가다 이야기 4: SK하이닉스 출근길 답사 & 하이닉스 이야기 (20220522)

SK하이닉스 출근길 답사 & 하이닉스 이야기 청주에서의 온전한 첫날. 일요일이다. 중고 자전거를 사러 간다. 당장 내일 월요일부터 하이닉스에 가야하니 자전거가 필요하다. 이른 아침이라 택시 외에는 마땅한 대중교통 편이 없다. 그저께 방을 구하러 청주에 왔다가 들렸던 삼천리 자전거포에 간다. 사장님이 대번 나를 알아보신다. 덕분에 방을 잘 구했다고 인사를 드린다. 사장님이 깨끗하게 손을 본 중고 자전거를 13만원에 산다. 자전거를 묶을 체인과 앞, 뒤 자전거 라이트를 서비스로 주신다. 이제는 내일 갈 SK하이닉스를 자전거로 답사해본다. 내가 일할 곳은 SK하이닉스 M15 공장이다. 지금 한창 건설 중이다. SK하이닉스는 이천에 이어 청주에 반도체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있다. M15 옆에는 이미 M11, M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