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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 천박하다!....... 서울만?

경계넘기 2020. 7. 28. 12:38

요즘 이해찬 민주당 대표의 막말 파문으로 시끄럽다.

세종시의 한 토론회에서 부동산과 행정수도 관련 이야기를 하다가,

"강변에 아파트만 있는 서울 같은 천박한 도시를 또 만들어선 안 된다"라고 했단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쭉 살아온 사람으로서,

서울이 천박하다!

......

그런데 서울만?

 

베트남 여행 중에 한 미국인 여행자를 만났다. 대학 2학년을 마치고 세계 여행 중인 여대생이었다. 12일 동안 하롱 베이(Halong Bay) 보트 투어를 같이 했는데, 선상에서 틈틈이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두툼한 저서 , , 를 읽던, 곱슬머리 짧은 단발머리가 이지적인 풍모와 무척이나 잘 어울리던 친구다.

 

 

 

해가 막 짧아지던 하롱 베이의 선상 위에서 맥주 한 잔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지금까지 어디어디 여행했어요?”

일본에서부터 여행을 시작했어요. 이제 겨우 일본, 한국, 중국 그리고 여기 베트남

한국도 여행했어요!”

, 일본에서 부산으로 상륙해서 대구, 대전 거쳐서 서울까지요

 

한국 여행하면서 뭐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아파트(apartments)!

 

lots of, so many 하다못해 too many 따위의 그 흔한 수식어 하나 붙이지 않았다.

잠시의 고민도, 추호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이었다.

 

나 역시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물어 뭐할까!

 

여행을 좋아해서 한국도 참 많이 돌아다녀 봤지만, 정말이지 한국 도시에는 특색이 없다.

도시마다 천편일률적인 아파트의 숲. ‘아파트 공화국

찾으면 특색이 있긴 한데 여행자에게 첫인상이 주는 강렬함이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한국과 많이 닮은, 아름답지만 가슴 아픈 땅이 있다. 코카서스 3.

그 중의 하나인 아르메니아(Armenia)의 수도 예레반(Yerevan)에 있을 때다.

 

같은 숙소에 머물던 슬로바키아(Slovakia) 친구가 한 명 있었다. 호스텔의 도미토리 방에 묵고 있지만 여행으로 온 것이 아니라 예레반의 대중교통 앱을 만들기 위해서 온 친구였다. 원래 전공은 산업디자인이라고 하는데 IT쪽에도 관심이 많아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일을 하는, 말 그대로 노트북 하나 들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일을 하는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

 

 

 

예레반에 있는 2주 동안 거의 매일 이야기를 나눴는데 한국 이야기도 곧잘 물었다. 건축에도 관심이 많은 이 친구가 어느 날은 한국의 주거 형태에 관해 물었다.

 

한국의 전통적인 주거 형태는 주변 자연과의 조화를 강조하는,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흙으로 벽을 바르는 한옥이라는 주택이었지만 산업화 이후로는 아파트가 대세 중에 대세라고 말을 해주었다.

 

아파트가 한국에서 유행한다는 사실은 자기도 알고 있었다면서 나에게 한국 아파트의 구조를 물었다. 내가 건축을 잘 아는 것이 아니어서 인터넷에서 한국 아파트의 대표적인 구조를 담은 평면도를 몇 가지 찾았다. 그걸 보여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런데 한국의 아파트는 한, 두 채씩 짓는 여타 나라들과는 좀 달라. 도미노처럼 모양과 구조가 똑같은 여러 채의 아파트를 줄지어 짓는, 대규모 단지의 형태가 대부분이야. 적으면 3~4 채에서 많으면 수십 채까지. 마치 벽돌 블록 찍어 내듯이. 그런 똑같은 모양의 아파트 단지들이 전국에 깔려 있어.

 

그래, 근데 서유럽은 모르겠지만 그런 형태는 러시아나 동유럽 국가들에서는 흔해. 우리나라 슬로바니아에도 많고

 

어 정말, 난 한국이나 중국 등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에이 뭔 소리야, 사회주의 소련의 집단 주택 공급 방식인데.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기본적으로 주택도 국가가 공급해주어야 하거든. 그래서 짧은 시간에 대량의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 만든 주택 방식이야. 우리나라(슬로베니아)와 같이 구 소련 연방 국가였던 동유럽 국가들에도 많은 이유고.”

 

똑같은 모양의 아파트를 벽돌 찍듯 찍어서 공급하는 대규모 아파트 방식이 사회주의 국가들이 주로 쓰던 방식인 줄 몰랐다. 중국의 대단위 아파트 단지들을 볼 때에도 개혁개방 이후 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해 중국이 한국 방식을 채용했다고만 생각했다. 무지의 소치다.

 

반공을 국시로 하시는 대한민국이 사회주의 국가들의 집단주택 공급 방식을 채택했을 줄이야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물론 사회주의 국가의 방식이라고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좋은 건 받아들여야지. 다만, 급하게 대량으로 공급하기 위한 방식이니 확실히 멋대가리 없고 환경 친화적이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다. 

 

서울이 멋대가리 없고, 환경 친화적이지 않은 이유였다. 

 

사회주의 소련 이야기가 나오니 생각나는 게 한 가지 더 있다.

 

같은 코카서스 3국 중 하나인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Baku)에 있을 때다. 그때도 같은 숙소에 무척이나 조용하고 내성적인 러시아 친구가 한 명 있었다. 같은 도미토리 방에 있었으면서도 며칠 동안 서로 인사 정도만 나눴던 친구다.

 

어느 날 이 친구가 한국인이냐며 먼저 말을 걸었다. 그렀다고 했더니 무척 반가워하면서 2018년 동계올림픽을 보러 평창에 갔었다고 한다. 겸사겸사 한 달 정도 한국도 여행했다고. 자기 침대에서 노트북을 가져와서는 나에게 보여주었다. 한글 자판이 있는 애플 노트북. 한국에서 샀단다. 러시아어 자판은 외우고 있어서 상관없단다.

 

이 친구가 한국에서의 여행 이야기를 하면서 물었던 질문이 생각난다.

 

한국 도시들은 좀 특색이 없어보여? 너무 미국식으로 지어서 그런가?”

어떤 점이 미국식이라는 건데?”

한국 도시에는 미국의 도시들에서 흔히 보이는 그런 현대적 건물들과 빌딩들만 보여서. 한국도 역사가 오래된 나라인데, 뭐랄까 도시에서 한국적인 특색이 보이질 않더라구.”

 

나름 둘러대기는 했다. 한국의 건축은 기본적으로 목재 건물이 많아서 세월의 무게와 전쟁의 화마를 지탱하지 못했다고. 그나마도 한국 전쟁으로 대부분 잿더미가 되었는데, 이후에 급하게 재건을 하느라 값싸고 짓기 쉬운 시멘트와 콘크리트 건물을 많이 지었고, 주로 미국의 지원을 받은 관계로 건축 방식도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이라고. 내 설명에 이해는 하는 것 같은데 탐탁해 하지는 않아 보였다. 

 

돌아서 생각해보니 우리네 도시들은 중심가는 미국식 빌딩촌이요, 주변은 소련식 아파트촌이다.

여행 중에 만난 친구들이 깨닫게 해준 한국 도시의 특색이다.

멋대가리 없는 도시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이런 경향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는 데에 있다.

 

 

난 서울에서 살면서

강남구의 아파트에서도 살았고, 독립해서는 노원구의 아파트에서도 살았다.

 

강남구에 있을 때 동네 대모산에 자주 올라갔다. 대모산 정상에서 서울 쪽을 보면, 저 멀리 한강 아래로 온통 하얀색 또는 잿빛 아파트들만 보인다. 보고 있노라면 서울이 참 멋대가리 없는 도시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대모산에서 바라 본 서울 풍경                            출처: 씨케이의 도시 사진 블로그  

 

노원구에 살 때는 근처 불암산을 올라갔다. 불암산에서 보면 강북의 노원구, 도봉구, 강북구, 광진구 일부가 내려다보이는데 정말 온통 허연 아파트들뿐이다. 그것도 거의 똑같은 모양의 아파트들. 8, 90년대의 전형적인 주공아파트 단지들의 모습이다.

 

그 지역은 동서 양편으로 산들이 어깨를 감싸듯 병풍을 치고, 그 사이를 중랑천이 흐르는 곳이다. 노원구의 노원은 한자로 蘆原이다. 갈대 노()에 들 원() , 갈대밭을 뜻한다. 중랑천 주변으로 온통 갈대밭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노원이다.

 

몇 십 년 전만해도 동편으로는 웅장한 북한산과 도봉산이, 서편으로는 수려한 불암산과 수락산이 서로 마주 보며 팔 벌려 얼싸 안고, 그 사이를 중랑천이 흐르면서 넓은 갈대밭을 이루고 있었던 곳이다. 물론 곳곳에 논밭이 있고, 마을도 있었겠지. 상상이 되는가?

 

바로 그곳에 구 소련 방식으로 갈대밭과 숲을 싹 밀어내고 똑같은 모양의 잿빛 시멘트 아파트들만 줄줄이 만들어 논 셈이니 정말 멋대가리 없다!

 

 

불암산에서 바로본 서울 풍경
불암산에 바라본 서울 풍경

 

요즘은 삭막한 사회주의 방식에 퇴폐 자본주의 방식을 접목했다.

 

한강변의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를 달리다 보면 때때로 답답한 느낌이 든다. 특히 한강 남단을 달리는 올림픽대로가 그렇다. 마치 높은 콘크리트 담장으로 둘러쳐진 운하 속을 달리는 기분이다.

 

이런 느낌은 잠실 쪽 강변을 달리다 보면 절정에 달한다. 그나마 예전에는 한강 북단의 강변북로에서는 남단의 잠실 아파트 단지 너머로 산들이나마 잘 보였다. 그런데 이제는 그나마도 잘 보이지 않는다. 돈에 혈안이 되서 재건축할 때 수십 층 고층에다 사이사이 틈도 없이 건물을 박아놨기 때문이다. 잿빛 감옥이 따로 없다.

 

외국인에게 서울 구경을 시켜주려는 친구들에게 한강 유람선은 되도록 저녁에 타라고 권한다. 낮에 보면 보이는 거라곤 잿빛 아파트뿐이기 때문이다.

 

산도 가려지고 강도 가려지고.

공공재인 산과 강은 어느덧 사유재의 고층 아파트에 갇혀서 그들만의 사유재가 되었다.

 

삭막한 사회주의 아파트 단지에 천박한 자본주의의 층을 올렸다.

멋대가리 없음에 더해 천박해졌다!

 

 

                                                       한강 분단에서 바로본 잠실 아파트 풍경                                  출처: 네이버 블로그

 

어디 서울만의 일인가?

 

잠시 마산에 살고 있다.

마산 앞 바다에서 마산을 바라보면 시가지가 잘 보이지 않는다.

해안가를 병풍 치듯이 둘러싸고 있는 고층 아파트들 때문이다.

 

지금도 몇몇 아파트 단지들이 해안가를 따라 지어지고 있다.

시내에서는 바다가 안 보이고, 바다에서는 시가지가 잘 보이지 않는다.

마산 앞바다마저도 돈 가진 소수의 전유물이 되었다.

 

고래 등 같은 집을 지어도,

뒷산을 가리지 않게 산의 능선과 지붕의 처마 선을 따라 맞추었던,

조상들의 겸손과 여백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남미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Patagonia)의 작은 도시 엘 칼라파테(El Calafate)에서 페리토 모레노 빙하(Perito Moreno Glacier)를 보러 가는 길이었다. 여행을 좋아해서 틈틈히 전세계를 여행하고 있다는 나이 지극한 중년의 캐나다 아주머니와 함께였다. 

 

중국과 일본은 가봤는데 아직 한국은 가보질 못해서 미안하다던 이 캐나다 아주머니가 대뜸 한국은 어떤 특색이 있냐고 물었다.

 

순간 아무 말도 못했다.

아파트만 내 머리에서 맴 돌았기 때문이다.

 

망할!

멋대가리 없는 것은 그마나 참겠는데 더 이상 천박해지고 싶지는 않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