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민의 꿈, 보헤미안의 삶

세상의 모든 경계를 넘어 보다 자유로운 미래를 그린다

미얀마의 민주화와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기원하며...

세계 일주 여행/터키(Turky, 튀르키예)

D+169, 터키 이스탄불 2: 이스탄불의 구시가지 걷기, 아야 소피아와 블루 모스크(20190502)

경계넘기 2020. 9. 5. 11:01

 

 

이스탄불(Istanbul)의 구시가지 걷기, 아야 소피아(Aya Sofya)와 블루 모스크(Blue Mosque)

 

 

아침부터 조금 서두른다.

 

이스탄불(Istanbul) 여행기를 보니 이곳 구시가지에 있는 아야 소피아(Aya Sofya)나 블루 모스크(Blue Mosque) 등을 보려면 빨리 가라고 한다. 줄이 엄청 길다고. 9시에 문을 연다고 하니 그때에 맞춰 숙소를 나선다. 더 일찍 가고도 싶지만 도미토리 숙소에서는 조금 어렵다. 도미토리 방 안에 화장실과 샤워실이 있는 곳은 더욱. 다들 깊이 잠들어 있는 이른 아침부터 소란스럽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방 안에 화장실과 샤워실이 있는 곳은 절대적으로 피하려고 하는데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숙소에서 15분 정도 걸어가면 트램역이 나오는데 거기서 트램을 타면 바로 아야 소피아가 있는 술탄 아흐메트 광장에 떨어진다. 트램과 메트로 모두 같은 패스를 이용한다. 어제 사서 한 번 남은 패스를 사용하는데 잘못 인식될 줄 알고 안 들어갔다가 돈만 날린다. 기계에서 표를 사니 이번에는 1회권도 있다. 1회권은 5리라다. 3회권이 11리라니 3회권을 사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오늘 이 교통카드 때문에 쭉 무진 고생을 한다.

돈도 엄청 날리고.

 

 

아야 소피아
Aya Sofya

 

 

트램에서 내려 바로 아야 소피아로 간다.

 

시간을 보니 9. 막 문을 열 시간이다. 아까 트램을 타고 오는데 긴 줄이 보였다. 설마 아야소피아일까 싶었는데 맞다. 이미 아야 소피아 건물 밖으로 40~50미터는 길게 줄이 있다. 단체여행객들도 많이 와 있었다. 단체여행객들 제대로 코스를 돌리려면 구시가지 관광에서는 일찍부터 서두를 것이다. 여행사나 가이드들이 더 잘 알 터이니.

 

기다리면서 생각해 본다. 내가 이렇게 한참을 기다렸다가 들어간 적이 언제였는지를. 아무리 생각해도 최근 10년 사이에는 기억에 없다. 어렸을 때 테마파크나 롯데월드 같은 곳에 가서 놀이기구 탈 때, 대학생 때 친구들과 한국시리즈 야구 보러 갔을 때, 그리고 세계박람회 등에 갔을 때 외에는 기억에 없다.

 

그만큼 줄 서서 어디 들어가는 것을 무지하게 싫어한다. 맛집 같은 곳도 절대 안 간다. 정 가고 싶으면 식사 시간을 피해 가거나 예약이 되는 곳은 예약을 해서 간다. 그나마도 남이 가자고 하니까 가는 것이지 내가 스스로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실 지금 별 관심도 없는 성당 보려고 이렇게 줄을 서고 있다. 이스탄불에 가면 반드시 봐야 한다고 해서 줄을 서 있기는 하지만 굳이 이렇게까지 봐야 하나 싶다. 괜히 남들이 봐야 한다니까 보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자꾸 내 자신만 힐책하고 있다.

 

그나마 일찍 와서 줄이 잘 빠진다. 그래도 30분 이상 걸린 것 같다.

 

 

 

입장료도 비싸다.

 

60리라. 셀축(Selcuk)에서 에페스(Efes) 유적지를 60리라에 들어갔는데 이스탄불이라고 성당 하나 들어가는데 60리라를 받는다. 이스탄불에 이런 곳이 여러 군데니까 입장료로만 2~3백 리라가 깨진다.

 

터키 환율이 박살이 났다고 하는데 터키의 유명 관광지나 호텔, 레스토랑 등 외국 여행객들이 주로 가는 곳은 기준 가격을 자국 화폐가 아니라 달러나 유로로 정해 놓고 오히려 리라를 그때그때 환율에 맞추어 받고 있다. 무슨 말인고 하면 예를 들어 터키 리라화가 정상이었을 때 1유로에 1리라라고 가정을 해보자. 그때 한 호텔이 터키화로 10리라였다면 유로로도 10유로를 받았을 것이다. 지금 리라화가 반으로 폭락해서 1유로에 2리라가 되었다고 하자. 그러면 10리라였던 호텔은 유로로 5유로를 받아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터키 이 친구들은 예전에 리라화가 정상일 때 받았던 10유로를 기준 가격으로 제시하고 터키 리라로 낸다고 하면 지금 환율에 맞추어 20리라를 받는다.

 

그러니 터키 환율 폭락이 떨어질수록 이들은 더 수입이 짭짤하다. 왜냐고 직원들 월급, 임대료, 재료 등등 지출은 자국 돈 리라로 지출할 터이니 말이다. 환율이 떨어질수록 수입은 늘고, 지출은 감소한다. 다만 입장료 같은 것은 이렇게 할 수 없으니까 가격을 대폭 올렸다. 최근 1~2년 사이에 거의 2~3배 가격을 올려서 폭락하기 이전과 비교해서 가격 차이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사실 외국인 여행객들이야 한 번 가고 말면 그만이지만 문제는 터키 현지인들이다.

 

이런 방식으로 물가를 올리니 인플레이션이 극심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예전 중국이나 지금 인도처럼 외국인과 내국인을 구분해서 가격을 다르게 책정하는 이중 가격제를 채택한다면 문제가 없지만 터키는 자국인들에게도 같이 적용하고 있다. 이래저래 터키인들은 힘든 생활을 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일반 생활물가, 즉 시장물가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터키인들에게는 조금 미안한 말이지만 외국인으로서 마트에 가면 환율 폭락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다. 술 빼고 웬만한 것 하나 잡아도 우리 돈 1,000원 넘기가 쉽지 않다. 아야소피아 이야기하다가 엉뚱한 곳으로 빠졌다.

 

아야 소피아가 훌륭하다고 하더니만 들어가 보니 볼 만은 하다. 그 규모의 웅장함뿐만 아니라 그 웅장함을 만든 건축 기술 역시 빼어나다. 거의 1,500년 전에 사각형의 건물에 거대한 둥근 돔을 기둥도 없이 어떻게 지금까지도 붕괴되지 않게 올려났는지 경이롭기까지 하다.

 

 

 

아야 소피아를 만든 건축 기술에 관한 내용은 알고 있다.

 

비잔틴 건축 기술의 정수로 사각형의 건물에 원형 돔을 세우는 기법을 펜덴티브 돔(Pendentive dome)이라고 한다. 아야 소피아가 이 기법으로 만든 대표적인 건물이라 한다. 글로 볼 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막상 와서 보니 이게 정말 돼!’란 말이 그냥 나온다. 천정의 돔을 계속 올려다보느라 목에 담 걸리는 줄 알았다.

 

 

 

동서양의 문화가 공존하는 곳이다.

 

이스탄불을 흔히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공존하는 곳이라고 하는데, 이스탄불에서도 동서양의 문화 공존을 한 방에 볼 수 있는 곳을 고르라 한다면 난 서슴없이 아야 소피아를 들겠다. 그냥 성당 안으로 들어와 한 가운데 서서 고개를 들어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면 된다. 그러면 저절로 ! 이래서 이스탄불에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공존한다고 하는 구나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이스탄불의 동양 문화는 이슬람 문화로 축약할 수 있다.

 

이스탄불은 1453년부터 1922년까지 이슬람 국가인 오스만 제국의 수도였다. 마찬가지로 이곳의 서양 문화도 기독교 문화임은 설명의 여지가 없다. 330년부터 1453년까지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의 이름으로 기독교 국가인 로마와 동로마 제국의 수도였다.

 

바로 이곳 아야 소피아에 이슬람 문화와 기독교 문화가 같은 천장 아래 공존하고 있다. 천장에 예수나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모자이크 상이 있는가 하면 그 주변을 이슬람 문양들이 둘러싸고 있다. 천장과 벽면 곳곳에서 이런 모습이 많이 보인다. 성당이었지만 건물 주변에는 이슬람 모스크의 특징인 첨탑, 즉 미나레트(minaret)라 부리는 탑도 4개가 있다.

 

 

 

정확히 말하면 이것이 공존인지 갈등인지는 모르겠다.

 

그것이 만들어진 과정은 분명 갈등이다. 현재의 아야 소피아는 537년 로마 시기에 가톨릭 성당으로 만들어졌다. 이후 1453년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면서 이곳은 이슬람 성당으로 사용되었다. 1923년 오스만 제국이 무너지고 터키 공화국이 성립하면서 지금까지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전쟁과 정복에 의해 성당이 모스크로 사용된 과정은 결코 평화로운 공존의 모습은 아니다. 성당 안의 많은 기독교 모자이크 등이 훼손되거나 회칠을 당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역사의 뒤안길에 서서, 아울러 두 대립하는 종교에서 거리를 두고 보고 있노라면 모스크 안의 이슬람적 모습들과 기독교적 모습들이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다. 굳이 구분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문화적 공존이자 융합 그리고 거기에서 파생된 새로운 문화의 탄생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어차피 기독교나 이슬람이나 같은 종교적 뿌리에서 나온 형제자매들이 아닌가! 아울러 이슬람 성당인 모스크의 전형적인 형태도 바로 이 아야소피아의 모습을 본 떠서 만들었다고 하니 모스크도 기본적으로 성당을 원형으로 한 셈이다.

 

역사 속에서 그렇게 서로 융합하고 모방해서 나온 것들이니 잘 어울린다는 말도 틀린 말도 아니다. 굳이 구분해서 보려 하니 갈등으로 보일 뿐이지 구분을 떠나서 보면 그냥 원래 그렇게 만든 것처럼 보인다.

 

 

 

그러고 보니 지금은 성당도 모스크도 아닌 박물관이다.

 

터키 공화국을 세운, 우리에게는 케말 파샤로 더 잘 알려진,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Mustafa Kemal Atatürk)가 성당으로 다시 복원해 달라는 유럽인들과 모스크로 그대로 있어야 한다는 터키 국민들의 요구 사이에서 종교시설이 아닌 박물관으로 사용하도록 했다고 한다. 아야소피아의 중립적 위치를 살린 탁월한 선택이다. 이후 지금까지 아야 소피아에서는 그 어떤 특정 종교 행사도 일체 허락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아야소피아는 아마 기독교와 이슬람 대립의 상징적 존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아야 소피아의 정식 명칭은 하기아 소피아 박물관(Hagia Sophia Museum)으로 모스크나 성당이 붙지 않는다. 아야 소피아를 성당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기독교권 사람이거나 서양의 시각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겠고, 모스크라 부르는 사람은 이슬람권 사람이거나 이슬람의 시각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일 것이다. 호칭 하나에도 많은 의미가 담긴다. 난 그냥 귀찮으니 아야소피아로.

 

아야 소피아는 그렇게 이슬람과 기독교의 역사와 문화 박물관으로 남으면 된다.

 

 

술탄 아흐메트의 영묘
Tomb of Sultan Ahmed

 

 

밖으로 나가려고 하니 밖에 비가 온 것 같다. 다행히 지금은 내리지 않는다. 아야 소피아를 나오니 시원하다. 점점 사람이 많아져서 나올 무렵에는 거의 사람에 치여서 제대로 구경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거리에서 파는 빵 하나 입에 물고 공원을 걷다가 바로 보이는 술탄 아흐메트의 영묘(Tomb of Sultan Ahmed)에 들어간다. 술탄 아흐메트, 즉 아흐메트 1세는 1603년부터 1617년까지 오스만 제국의 14대 술탄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스크 중의 하나라 일컫는 블루 모스크(Blue Mosque)를 건설토록 한 사람이다.

 

영묘는 블루 모스크 근처에 있다. 영묘에는 아흐메트 1세와 황후 코셈(Kosem), 그리고 아들 등 그의 일가족의 묘가 있다. 일반적인 묘지와 좀 다른 것이 묘지는 하나의 건물이고, 건물 안에 시체를 안치한 것으로 보이는 관들이 무덤처럼 안치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이슬람 건축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이 벽면에 타일을 발라서 만드는 특유의 문양이다. 이곳도 화사한 문양의 타일이 묘지임을 잠시 잊게 한다.

 

 

 

 

블루 모스크
Blue Mosque

 

 

영묘를 나와서 바로 무덤의 주인인 술탄 아흐메트가 만든 블루 모스크에 들어간다.

 

 

 

모스크 경내로 들어가서 이곳에서 모스크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줄이 길다.

 

경내 한 귀퉁이 돌 위에 앉아서 블루 모스크의 외관을 감상한다. 그런데 왜 이리 공사 중인 곳이 많은지. 아야소피아도 공사 중이라 건물 안 한쪽 벽면을 가림막으로 가리고 있었는데 이곳은 모스크 외 건물 전체를 가림막으로 가려 놨다.

 

 

 

블루 모스크의 미나레트를 물끄러미 올려다 보다 잠시 고개를 돌려 보니 갑자기 줄이 확 줄어있다.

 

줄이 짧을 때 얼른 들어가야 한다.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라 단체여행객들이 점심 먹으로 갔나 싶었는데 나중에 나오면서 보니까 이곳은 관람 시간이 하루에 3번으로 나뉘어 있다. 관람 시간 사이에는 1시간 정도 관람객들의 입장을 막는데 오전 타임이 거의 끝나가고 있어서 사람들이 없었던 것이다.

 

블루 모스크는 맞은편의 아야소피아를 모방해서 지었다고 하더니만 실내에 들어가 보니 딱 알겠다. 천장은 가운데 한 개의 대형 돔이 있고, 주위에 4개의 대형 반형 돔, 그리고 조그마한 4개의 돔이 그것을 또 감싸고 있는 구조다. 대형 돔은 공사 중이라 가림막으로 전체가 덮여서 조금도 볼 수가 없다.

 

 

 

블루 모스크의 원래 이름은 술탄 아흐메트 1세 사원이란다.

 

실내의 벽면과 천정을 감싸고 있는 블루색 타일로 인해서 블루 모스크라는 별칭을 얻었는데 이 별칭이 이름보다 더 많이 알려진 것이다. 블루 모스크 안에 들어가면 천정에는 블루 타일과 함께 붉은빛이 도는 타일도 많다. 다만, 벽면을 감싸는 타일은 블루색이 압도적이다. 오늘은 날씨가 흐려서 블루색이 덜 드러나는 것 같은데, 맑은 날이었다면 건물 창문으로 들어온 빛이 반사되어 영롱하게 빛났을 것이다.

 

 

 

아르메니아(Armenia)의 예레반(Yerevan)에 있었을 때 그곳에 모스크가 하나 있었다.

 

외관의 지붕과 벽면이 블루색의 타일로 덮여 있었는데 어느 날 오전에 그곳을 지나가는데 아침 햇살이 타일에 반사되어 블루색이 그렇게 영롱하게 보일 수가 없었다. 시원하기도 하고 신비롭기도 했는데, 지금 빛이 제대로 들어온다면 아마 그런 분위기가 나지 않을까 싶다.

 

실내 바닥에 앉아서 천장에 그려진 문양들을 구경한다.

 

이슬람 접시들에 그려진 화려한 문양들과 비슷하다. 이것이 이슬람 문양인가 보다. 아예 퍼질러 앉아서 카메라의 줌을 이용해서 문양을 찬찬히 들여다봤다. 대충 볼 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자리를 잡고 하나하나 찬찬히 들여다보니 예쁘다. 아름답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뭔지 모를 의미도 있는 것 같고.

 

 

 

멍 때리며 보고 있는데 관리인의 나가라는 말에 정신이 든다.

 

오전 관람 시간이 끝난 모양이다. 비록 넉넉한 시간을 가지고 보지는 못했어도 끝물에 들어간 덕분에 사람들에 덜 치이고 구경을 잘 할 수 있었다.

 

 

 

, 영묘나 블루 모스크는 종교물이라고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아야소피아는 박물관이니 입장료를 받는 것이고.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