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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69, 터키 이스탄불 2-2: 이스탄불의 구시가지 걷기, 지하 궁전, 톱카프 궁전(20190502)

경계넘기 2020. 9. 5. 11:29

 

 

이스탄불의 구시가지 걷기, 지하 궁전(Yerebatan Sarayı), 톱카프 궁전(Topkapı Palace)

 

 

지하궁전
Yerebatan Sarayı

 

 

블루 모스크(Blue Mosque)를 나와서 지하궁전(Yerebatan Sarayı)으로 간다.

 

지하궁전은 로마 시대의 유적인 예레바탄 사라이를 말한다.  이름이 지하 궁전인 것이지 실제는 지하 저수지다. 지하 저수지는 수도교와 함께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건축물 중에서 대표적인 생활 건축물이다. 두 건축물 다 로마 시대에 도시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만든 것들로 지하 저수지는 이름 그대로 지하에 만든 저수지를 말하는 것이고, 수도교는 상수도를 다리처럼 만들어 논 것이다. 수도교의 경우 긴 것은 수 km에 이르는 것도 있다고 한다.

 

 

 

로마인 이야기에 의하면 로마의 영토마다 만들어 놓았다는 지하 저수지와 수도교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책만으로는 규모가 쉽게 상상이 가질 않아서 실제로 꼭 보고 싶은 건축물 중에 하나였다. 마침 이스탄불에 지하저수지가 있다고 해서 간다. 지하 궁전에도 역시 줄이다. 엉뚱한 줄에 섰다가 다시 줄을 서서 겨우 들어간다. 들어가자마자 일단 그 규모에 놀란다. 글로 읽을 때와는 느낌과 감흥이 확연히 다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한 번에 확 다가온다. 수많은 거대 기둥들이 줄을 이어 서 있는 지하 저수지는 이것이 정녕 15백 년 전에 만들어진 건물인가 싶을 정도다. 현대의 건축 기술로도 이런 규모의 지하 저수지를 건설하려면 얼마나 오랜 시간과 돈이 들지 궁금하다.

 

이 지하 저수지는 532년에 만들어졌고, 336개의 기둥이 있다고 하는데 기둥의 수도 수지만 그 거대함에 놀란다. 그 시대에 어떻게 이런 건축물을 만들 수 있었을까? 이곳에서 19km 떨어진 수원지에서 수도교를 통해서 온 물이 이곳에 저장되었다고 한다. 수도교 역시 보고 싶어진다. 실제로 보니 정말 로마인의 건축술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더 놀라운 사실은 여기에 있는 기둥들은 이곳을 위해 만든 것들이 아니라 다른 곳의 기둥들을 모아서 세운 것이라고 한다. 사진의 기둥들을 잘 보면 모양이나 두께 등이 모두 다르다.  

 

 

메두사 머리

 

 

톱카프 궁전
Topkapı Palace

 

 

지하 저수지를 나오려고 하니 비가 내리고 있다.

 

길을 보니 이미 한 번 억수같이 퍼부었나 보다. 실내에서 그 예봉을 피할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루트를 좀 바꾸기로 한다. 원래는 이곳에서 바자르(Bazaar)로 가려 했는데 언제 비가 더 내릴지 모르니 이번에도 실내로 들어가기로 한다.

 

근처에 톱카프 궁전(Topkapı Palace)이 있다.

 

1467년에 지어진 톱카프 궁전은 신시가지에 있는 돌마바흐체 궁전(Dolmabahce Palace)19세기에 지어질 때까지 술탄들이 기거했던 궁전이다. 궁전이 있는 위치가 역사적으로 유명한 골든혼(Golden Horn)에 있다. 이곳은 보스포루스(Bosporus) 해협과 마르마라해(Sea of Marmara)가 만나는 곳으로 비잔티움 시절부터 군사적, 지리적 요충지였다. 터키어인 톱카프(Topkapı)’라는 말도 대포의 문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이곳에 보스포루스 해협을 향해 대포들이 늘어서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다르다넬스 해협에 있던 차나칼레(Canakkale)와 겔리볼루(Gelibolu)의 해안 대포들과 마찬가지로 이곳에도 보스포루스 해협을 지키고 통제하기 위해 무수한 해안 포대들이 있었을 것이다.

 

 

 

톱카프 궁전은 넓지만 수수하다.

 

화려하지 않고 다분히 실용적이다. 그래서 크게 볼거리는 없지만 난 그게 좋다. 궁전과 같이 소수의 권력자를 위한 건물들은 작고 수수할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도 그런 시절의 나라들은 번성하고 발전했다. 반면에 궁전과 같은 소수의 권력자들만을 위한 건물들이 크고 화려해질수록 나라는 약화되고 쇠퇴해졌다. 관광 수입으로 후손들만 덕을 본다.

 

 

 

천천히 자세히 보고 싶지만 사람도 많고 아침부터 계속 걷기만 했더니 이미 다리도 많이 아프다. 많은 것들을 봤더니 머리도 지친다. 톱카프 궁전에서 개인적으로 좋았던 곳은 보스포루스 해협이 바라보이는 곳의 풍경과 무기 전시관. 특히 진열된 갑옷이 무척이나 화려했다.

 

 

 

 

시르케지 기차역
Sirkeci Terminal

 

 

마지막으로 그곳에서 시르케지 기차역(Sirkeci Terminal)으로 걸어간다.

 

그 유명한 오리엔트 특급열차의 종착역이다. 유물인 역도 구경하고, 다음 예정지인 불가리아(Bulgaria) 소피아(Sofia) 가는 기차 편도 알아볼 심산이다.

 

생각보다 역은 크지 않다. 보존은 잘 되어 있는데 기차역으로는 더 이상 활용되지 않고 있는 모양이다. 표는 팔지만 오리엔트 특급열차도 타는 곳은 외곽의 다른 역이다. 다만 이곳으로 오면 출발역으로 태워주는 셔틀을 제공한단다.

 

 

 

역에서 확인하니 소피아 가는 기차는 매일 저녁 1045분에 있고, 2인실의 가격이 227리라다. 역 근처에서 저녁을 먹으며 잠시 고민을 한다. 인터넷으로 확인해 보니 여기에서 소피아 가는 메트로 버스가 164리라. 버스보다 60리라가 비싸다.

 

두 가지 의미에서 기차를 타기로 한다.

 

하나는 애거서 크리스트(Agatha Christie)의 추리소설에도 나오는 역사적인 오리엔트 특급열차를 타 본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무래도 침대에 누워서 가는 것이 버스보다는 편할 것이다. 전자에 보다 더 의미를 두고 가난한 배낭 여행자에겐 큰돈이긴 하지만 기차표를 산다.

 

아제르바이젠(Azerbaijan) 바쿠(Baku)에서 조지아(Georgia) 트빌리시(Tbilisi)에 오면서 4인실을 처음 타 봤는데 이번에는 처음으로 2인실을 타 본다. 역무원에게 침대칸 가격을 물었을 때 227리라고 해서 당연히 4인실인 줄 알았다. 표를 사서 보니 2인실이고 4인실은 그것보다 한 30리라 쌌다. 표를 바꾸는 것도 귀찮고, 지금 아니면 언제 2인실 타보나 싶기도 해서 그냥 나온다.

 

이스탄불은 에누리 없이 34일만에 떠난다.

 

이 볼거리 많은 도시를 말이다. 아쉽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이스탄불은 나중에 한가할 때 다시 오길 기약해 본다. 지금은 사람들로 정신이 없어서 일찍 떠나고 싶다.

 

 

 

 


 

 

시르케지에서 숙소에 올 때 메트로의 무인 시스템 때문에 또 고생을 한다.

 

갈아타는 역에서 문제가 생겼다. 이곳은 일단 패스를 찍고 나가서 타려는 메트로 노선으로 다시 찍고 들어가야 하는 구조다. 대충 서울의 9호선과 다른 노선이 만나는 역과 비슷한 시스템으로 보인다.

 

나와서 다시 들어가는 데 패스가 먹히지 않는다. 아직 요금은 남아 있는데 말이다. 역에 사람이 없으니 패스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패스를 다시 사려고 해도 무인 판매 기계는 1회용을 파는 기계와 3회용 파는 기계가 따로 있는데 영어 설명이 없으니 도통 알 수가 없다. 일일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겨우 산다. 갈아타는 데에만 거의 30분 가까이 걸린다.

 

이게 사람 완전히 바보 만드는 것인데 외국인인 나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지방에서 올라온 터키인들도 당황하기는 매 한가지다. 돈도 돈이지만 사람 황당하고 미치게 만든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서 지하철은 숱하게 타보고, 외국에서도 메트로를 숱하게 타본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헤매니 이스탄불에 처음 와본 사람 중 대체 어떤 사람이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무인화 좋긴 좋은데 사람이 완전히 사라진 무인화는 결코 환영하고 싶지 않다. 기계나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영어 설명이 없으니 나 같은 외국인에게는 유리벽과 같은 거대한 장벽으로 다가 온다.

 

이도 저도 안 되면서 사람을 완전히 없애는 터키 같은 방식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터키보다 디지털 기술이 월등히 앞서는 한국에서도 유인 창구는 있다. 뿐만 아니라 무인화에 대한 설비가 훨씬 잘 갖춰진 아랍 에미리트 등과 같은 곳에서도 유인 창구는 있어서 무인 기계에 익숙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여타 이용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었다.

 

허탈한 것은 역무원 없는 메트로 역에 검문검색을 하는 경찰이나 보안요원은 엄청 많다. 이스탄불에도 가끔 테러가 발생해서 그러는 것인지는 알겠는데 역무원이 한 명도 보이는 않는 역에 경찰과 보안요원만 득실거리니 참 우습다. 지난번 이스탄불 버스 터미널 역에서도 패스를 살 수가 없어서 겨우 보안요원에게 부탁해서 샀었다.

 

기술이 유용하다 하더라도 인간을 소외시키는, 특히 노인이나 장애인 등 특정 소수의 사람들을 소외시키는 기술에는 절대 반대한다. 기술의 목적과 의미가 인간의 노동을 보다 편하게 해주는 데에 있어야지 인간 자체를 불필요하고 무의미하게 만드는 데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첫날부터 이스탄불은 엉뚱한 곳에서 사람 참 어이없게 만든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