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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71, 터키 이스탄불 4: 이스탄불의 잡동사니(20190504)

경계넘기 2020. 9. 8. 12:30

 

 

이스탄불(Istanbul)의 잡동사니

 

 

이스탄불을 떠나는 날이다.

 

사람에 너무 많이 치여서 그런지 이 볼거리 많은 도시를 34일만에 떠나는 데 전혀 아쉬움이 없다. 저녁 1040분 기차인지라 거의 하루 종일 시간이 있다. 이 시간 동안 뭔가 새로운 것을 찾아다닐 수도 있겠으나 전혀 그러고 싶지가 않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오늘은 카페들이나 돌면서 글이나 쓸 생각이다. 기차역을 향해 쉬엄쉬엄 가면서. 숙소에서 체크아웃하고 나오면서 아예 배낭을 메고 나온다. 숙소에 두었다가 다시 가지러 오는 것이 더 귀찮다.

 

숙소를 걸어 나오면 바로 탁심 광장(Taksim Square)이다.

 

매일 스쳐 지나가기만 했는데 오늘은 마지막이니 배낭을 내려놓고 벤치에 잠시 앉아 광장을 둘러본다. 탁심 광장은 신시가지 중심에 있어서 신시가지 관광의 중심이다. 남쪽으로는 서울의 명동과 같은 쇼핑 거리인 이스티클랄(Istiklal) 거리가 이어지고, 북쪽으로는 서울의 테헤란로와 같은 비즈니스 거리인 줌후리예트(cumhuriyet) 대로가 뻗어있어서 유명 호텔, 레스토랑, 카페 등이 주변에 즐비하다.

 

탁심 광장은 뭐니 뭐니 해도 터키 민주주의의 상징적인 장소이다. 서울의 광화문 광장이나 예전 여의도 광장처럼 이곳은 정치적 집회의 중심이다. 숱한 시민들의 피가 어린 곳이기도 하고, 2010년에는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했던 곳이기도 하다. 특히 1977 5 1일 노동절에는 탁심 광장 학살(Taksim Square massacre)로 불리는 유혈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시위하던 50만의 시민들을 향한 경찰의 무력 진압으로 이곳에서 34명에서 42명이 사망하고, 126명에서 220명이 부상당했다고 한다.

 

이스탄불에 온 첫날 배낭을 메고 줌후리예트 대로를 4km 정도 걸어서 이곳에 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날이 하필 5 1일 노동절인지라 노동절 시위를 막기 위해서 경찰이 탁심 광장과 함께 줌후리예트 대로를 사전에 통제했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상징적인 곳이라 광장 이름인 탁심(Taksim)도 뭔가 터키의 상징적인 인물이나 사건을 따서 붙였으리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터키어로 Taksim은 분배, 분리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예전에 이곳은 이스탄불 북부의 주요 수로가 모였다가 도시 곳곳으로 분기되었던 곳으로 저수지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굳이 갖다 붙이자면 평등과 분배의 의미를 갖긴 한다.

 

 

 

탁심 광장에서 이어지는 이스티클랄(Istiklal)은 쇼핑과 식도락으로 활기찬 거리다.

 

주도로에는 양편으로 상점들이 이어지고, 사이사이 골목길에는 식당, 카페, 바들이 즐비하다. 언제나 젊은이들과 여행객들로 붐비는 거리로 옛 전차도 가끔 달린다. 이스티클랄은 탁심 광장에서 갈라타(Galata) 탑과 그 아래 갈라타(Galata) 다리로 이어지는 거리라 이스탄불에 있으면서 거의 매일 오갔다.

 

 

 

탁심 광장에서 일어나 해협 쪽으로 내려간다.

 

바로 기차역으로 갈 수 있는 트램역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역 근처에 스타벅스가 있다는 것을 봐두었기 때문이다.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 하고 트램을 타면 바로 역으로 갈 수 있다.

 

 

 

이른 오전이라 카페에는 사람이 거의 없다.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쓴다. 시간이 조금 지나 점차 사람들이 온다 싶었는데 어느덧 야외 테이블에도 빈자리가 없다. 그런데 점점 숨쉬기가 힘들어진다. 주변 테이블에 있는 터키인들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죽창 담배를 피워대고 있기 때문이다.

 

코카서스(Caucasus) 3국에서부터 터키에 이르기까지 담배의 천국이었다. 담배 문화는 거의 한국의 7, 80년대 수준이어서 대충 아무 곳에서나 필 수 있었다. 말 그대로 흡연자의 천국. 그 중에서도 터키 사람들이 가장 많이 피는 것 같다. 특히 터키는 젊은 층의 흡연자도 많은데 일단 앉으면 줄담배다. 걸으면서 담배 피는 사람도 무척 많다. 걸으면서도 담배 연기를 피해 다녀야 한다. 한때 담배를 피었던 내가 이 모양이니 담배를 피우지 않은 사람들은 무척 힘들 것 같다.

 

날씨는 화창하고 맑아서 글을 쓰다가 가끔 하늘을 보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카페를 나와서는 트램을 타고 시르케지(Sirkeci) 기차역으로 간다. 시간도 많고, 날도 좋아서 걸어 가볼까도 생각했지만 금세 접는다. 배낭 메고 가기에는 좀 멀다 싶다. 시르케지 기차역 맞은편 레스토랑에서 식사와 커피를 시켜 먹으며 시간을 보낸다. 2층으로 된 레스토랑은 2층 창가에서 바다와 역이 모두 보인다.

 

 

 

터키에서 한 달 가까이를 보냈다.

 

이스탄불만 34일이지 터키는 이번 여행에서 중국 다음으로 가장 오래 머문 국가다. 아마도 이스탄불을 먼저 왔다면 꽤 오래 이스탄불에서 머물렀을 것이다. 터키인들의 생활과 문화를 느끼기 위해서 관광지 아닌 곳도 많이 돌아다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스탄불이 터키의 마지막 여정인지라 복잡한 이스탄불에서는 의무 방어전만 하고 빠진다. 이스탄불이 싫어서도 볼거리가 없어서도 아니다. 다음에 이스탄불에 온다면 난 여행책에 나오지 않는 곳을 주로 걷고 있을 것이다. 현지인들이 살아가고 있는 곳. 테마파크 같은 곳이 아니라 진짜 이스탄불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무언가를 남겨두어야 다시 오게 된다.

 

저녁에 타고 가는 기차는 그 유명한 오리엔트 특급열차(Orient Express).

 

셜록 홈즈와 쌍벽을 이루는 명탐정 에르퀼 푸아로(Hercules Poirot)를 탄생시킨 애거사 크리스티(Agatha Christie)의 추리소설 오리엔트 특급살인(Murder on the Orient Express)’으로도 유명해졌다. 오리엔트 특급열차는 1883년에 달리기 시작했다. 프랑스 파리에서 출발하여 독일 뮌헨, 오스트리아 빈, 헝가리 부다페스트, 루마니아 부쿠레슈티를 거쳐 이스탄불을 종착역으로 하는 유럽 횡단열차이자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기차다. 2,740여 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리를 4일 만에 달렸다고 한다.

 

물론 오리엔트 특급열차는 이미 퇴역해서 역사가 되었다. 운행한다 하더라도 가난한 배낭여행자에게는 언감생심이다. 무척 비쌌기 때문이다. 개인 침실과 욕실, 호화로운 장식과 고급 식당 등을 갖춘 럭셔리한 기차로 단순 교통수단이라기보다는 왕족, 귀족, 부유한 사업가들이 여행과 사교를 즐기기 위한 열차계의 호화 유람선이라 할 수 있다.

 

이스탄불에서 불가리아 소피아(Sofia)로 간다. 다만 시르케지 역에서 바로 기차를 타는 것은 아니고 셔틀 버스를 타고 외곽의 다른 기차역으로 간다. 시내로 들어오는 구간이 공사 중이라 그렇다고 하는데 확실한 것은 아니다.

 

 

 

역 대합실에서 두어 시간 책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다 9시 반에 셔틀을 타고 출발한다. 30분 정도 달린 버스는 이스탄불 서쪽에 있는 기차역에 우릴 내려 준다. 그곳에서 기차를 탄다.

 

 

 

2인실이라 해서 1인용 침대가 나란히 있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웬걸 2층 침대다. 세면대와 작은 냉장고가 있다는 것 빼고는 4인실과 별반 차이가 없다. 혼자 가는 것이라면 그나마 감사하겠는데 아쉽게도 한 친구가 먼저 와 있다. 미국인이란다.

 

셔틀버스 탈 무렵부터 이스탄불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번 여행에서는 떠나는 곳에서는 날씨가 흐리고, 도착하는 곳에서는 맑은 경우가 많았다. 불가리아 소피아에서는 날이 맑기를 기대한다.

 

간만에 버스가 아닌 기차 침대칸에서 누워서 가니 정말 편하다. 잠이 새록 새록 든다. 창밖으로 비치는 마지막 터키의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너무 졸려서 볼 수가 없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