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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일주 여행/헝가리(Hungary)

D+189, 헝가리 부다페스트 2: 빗속의 도나우(Donau)강과 부다페스트(Budapest)(20190522)

경계넘기 2020. 10. 24. 11:32

 

 

 빗속의 도나우(Donau)강과 부다페스트(Budapest)

 

 

어제는 맑더니만 오늘은 아침부터 잔득 찌푸린 날씨다.

 

곧 비가 내려도 이상하지 않을 하늘. 부다페스트(Budapest)의 여행 정보를 정리하고 조금 느지막이 숙소를 나선다. 숙소 바로 뒤가 부다페스트 중앙 시장(Great Market Hall)이다.

 

중앙시장 건물로 들어간다.

 

불가리아 소피아(Sofia)에서 봤던 중앙 시장(Sofia's Central Market)과 모습은 비슷하나 규모는 이곳이 훨씬 크다. 1890년에 시작한 오래된 시장이지만 현재의 건물은 1994년에 다시 지어진 것으로 깔끔한 2층 건물의 시장이다. 한 한국인 여행객은 이게 성당 건물인줄 알았다고 한다. 중앙 시장 가자고 해서 안내해 드렸는데 건물 바로 옆에서도 시장이 어디에 있냐고 묻는다. 시장이 문을 닫은 저녁에 이 건물을 보면 시장이라고 생각하기 쉽지 않다. 시장이 있을 법한 주변 환경도 아니고. 그렇다고 하더라도 대낮에도 성당 건물로 생각하는 것은 좀 심하긴 하지만 그만큼 외관도 훌륭한 건물이다.

 

1층은 야채, 고기 등의 식료품들, 2층은 기념품, 잡화 등의 가게들이 있다. 지하에는 대형 마트가 있다. 규모가 있어서 1, 2층 찬찬히 구경하려면 제법 시간이 든다. 시장 구경을 하면서 먹을거리도 좀 찾았는데 빵집 이외는 찾지 못했다. 이정도 규모에 먹을거리 파는 곳이 너무 없다 싶었는데, 나중에 안 일이지만 2층 구석 코너에 햄버거, 피자. 샌드위치와 맥주 등을 파는 저렴한 푸드 코트가 있다.

 

 

 

중앙 시장의 정문으로 나오면 바로 왼쪽에 자유의 다리(Liberty Bridge)가 나온다.

 

중앙 시장이 도나우(Donau)강 바로 옆에 있다. 거기서 자유의 다리를 건너면 부다 왕궁(Buda Castle), 어부의 요새(Fisherman’s Bastion) 등이 있는 부다(Buda) 지구다

 

 

 

부다페스트는 도나우강을 중심으로 서편의 부다 지구와 동편의 페스트(Pest)  지구로 나뉜다.

 

내가 지금 발을 딛고 서 있는 곳, 즉 중앙 시장은 도나우강의 동편인 페스트 지구에 있다. 오늘의 원래 일정은 이곳에서 자유의 다리를 건너 부다 지구의 역사 유적지를 둘러보고, 저녁에 보트투어로 부다페스트의 야경을 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일정을 바꾸어야할 처지에 빠졌다.

 

중앙 시장을 둘러보고 나오는데 비가 쏟아지고 있다. 이른 아침부터 잔뜩 찌푸렸던 하늘을 생각하면 쉽게 멈출 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지하의 마트를 둘러보면서 비가 멈추길 기다렸다. 하지만 역시나 부질없는 짓이다.

 

중앙 시장 정문에서 부다페스트를 촉촉이 적시고 있는 비를 한 동안 바라보고 있다. 옛 석조 건물이 즐비한 유럽의 한 올드시티에서 비를 보고 있으니 뭔가 영화적 감흥이 일어난다. 레인코트를 입고 상념에 젖어 빗속을 걸어야 할 것도 같고, 아니면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 (Singing in the Rain)’에서처럼 우산을 지팡이 삼아 빗속 거리에서 춤을 추어야 할 것도 같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거리가 잘 보이는 운치 있는 카페에서 따뜻한 에스프레소 한 잔이 간절하다.

 

숙소에 돌아갈까도 생각했지만 역시 비 오는 부다페스트를 제대로 즐겨보기로 한다. 비 오는 날의 커피는 기회가 자주 있으니 접어 두고, 지금 바로 도나우강 보트 투어를 하기로 한다. 빗속의 도나우강과 부다페스트를 제대로 즐기러.

 

보트 투어는 오늘 아침에 생각지도 않게 표를 얻었기 때문이다. 아침에 숙소 공용공간에서 커피나 한 잔 할까하고 둘러보고 있는데 마침 그곳에서 계시던 한 한국인 여성여행객 분이 계셨다. 서로 인사를 나누었는데 그 분이 도나우강 보트 투어 표가 한 장 남는다며 주신 것이다. 다른 종류의 표들도 있겠지만 이 표는 이틀 동안 횟수에 상관없이 탈 수 있는 표였다. 어제 같이 여행했던 한 일행이 오늘 떠나면서 주고 갔단다. 티켓 가격이 2,500포린트(HUF). 우리 돈으로 만 원 돈.

 

표를 주신 분과 숙소의 다른 한국 여성여행객과 야간 보트 투어를 할 계획이었는데 비가 오는 덕분에 낮에도 타고, 밤에도 배를 타기로 한다. 빗속에 걸어서 배를 타는 선착장까지 가는 길도 만만치는 않다.

 

 

 

마침 곧 출발하는 배를 탄다.

 

비를 피해서 1층 선실 안으로 들어갔는데 창문에 물방울과 습기가 차서 제대로 보이지가 않는다. 지붕만 있는 2층으로 올라간다. 비가 들이치긴 하지만 조타실 벽 쪽에 붙어 있으니 그럭저럭 비를 피할 수 있다. 배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다. 그리고 배 안 매점에서 맥주 한 병을 사서 마신다. 음악과 맥주, 거칠게 흐르는 도나우 강 그리고 빗속의 부다페스트. 중앙 시장 문에서 생각했던 것들보다 훨씬 좋다. 거센 바람에 갑자기 들이닥치는 비가 가끔씩 감흥을 깨긴 하지만 몇 번 반복되니 이 또한 재밌다.

 

1층 선실은 만실이지만 비가 오는 관계로 2층은 젊은 여자분 한 명 외에 나뿐이다. 배를 전세 낸 기분까지. 춤만 잘 춘다면 빗속의 도나우강 배 위에서 춤을 쳐도 좋을 것 같다.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의 다른 버전이다.

 

 

 

배는 북쪽으로 도나우 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배 왼쪽 언덕으로는 부다 왕궁과 어부의 요새가 위엄을 부리며 앉아 있고, 오른쪽으로는 이름 모를 크고 작은 고풍스런 건물들이 늘어서다 급기야 헝가리 국회의사당(Hungarian Parliament Building)이 그 위용을 드러낸다.

 

 

 

빗물을 받은 도나우강은 거세게 흐른다.

 

도나우강은 이번 여행에서 두 번째 만난다. 처음은 살짝 스쳤다. 불가리아에서 루마니아로 넘어올 때 국경을 가르던 도나우강을 건넜었다. 그쪽만 해도 하류라 강폭이 무척 넓고 유유히 흘렀는데, 이곳은 상류라 강폭은 좁지만 물살은 거칠고 강물은 탁했다. 오늘뿐만 아니라 전부터 꽤 비가 내린 모양새다.

 

보트 투어는 터키 이스탄불의 보스포러스(Bosporus) 해협 이후 두 번째다. 그때도 그렇지만 보투 투어 한 번 하니 부다페스트를 다 봤다는 생각이 든다. 저녁에 배 타고 야경까지 보면 더욱 그러리라. 그러고 보니 보스포러스 보트 투어도 두 번 탔었다.

 

 

 

배에서 내려서 바로 숙소로 돌아온다.

비가 계속 내려서 돌아다니기가 어렵다.

 

저녁은 호스텔에서 삼겹살을 구워먹는다.

 

표를 주신 여성여행객 분이 밥과 삼겹살을 해주신다. 가지고 오신 고추장까지 꺼내서. 언제 먹어본 삼겹살 쌈인가! 식사 중에 신라면 컵라면을 들고 가는 여자 분이 보여서 불렀다. 역시 한국 분. 함께 삼겹살 만찬을 즐긴다.

 

 

 

저녁 8시가 넘어서 함께 저녁을 즐긴 한국인 여성여행객 3명과 함께 야경 보트 투어를 하러 간다.

 

낮에 보는 부다페스트와 저녁에 보는 부다페스트는 확연히 다르다. 확실히 부다페스트는 야경이 훌륭한 것 같다. 역시나 맥주 한 병을 마시며 밤의 부다페스트를 즐긴다.

 

조명을 받은 부다페스트는 화려하다. 부다 지역의 왕궁이나 어부의 요새, 그리고 국회의사당은 조명을 받아 더욱 웅장하고 멋있다. 컴컴한 도나우 강물에 그 화려한 모습이 비취면서 신비로움까지 자아낸다. 거기에 더해 도나우 강변에 놓인 가지각색의 다리들까지.

 

낮과 밤 중 하나를 선택하라 한다면 주저 없이 야경을 즐기라 하겠다.

 

 

 

다행히 비가 안 와서 좋긴 한데 대신 배에 사람이 많다.

 

사진을 찍느라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일어나 앞을 가리는 통에 정신이 없다. 멋은 있으나 사람들의 북적임 탓에 낮과 같은 감흥에 젖어들긴 어렵다. 부다페스트에는 특히나 한국인 여행객이 무척이나 많다. 거리에도 그리고 지금 이 배에도. 외국인 중에서는 가장 많은 듯하다. 역시 터키의 이스탄불, 헝가리 부다페스트 그리고 체코 프라하로 연결되는 동유럽 대표 여행 코스답다.

 

딱 일주일 후에 이곳에서 한국인 여행객 33명을 태운 유람선이 침몰해 생존자를 수색 중이라는 뉴스를 접했다. 헝가리를 떠난 직후였다. 이 소식을 듣자마자 이날 낮에 봤던 거칠고 탁했던 도나우 강물이 떠올랐다. 그 거친 강물 속에서 생존자는 물론이고 시신조차 수습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안타까움이 앞섰다.

 

보트에서 내려 나이가 좀 있으신 한 분은 숙소로 바로 돌아가시고 젊은 사람 세 명은 Pub에서 가서 맥주를 한 잔 더 한다. 간만에 한국인 여행객들과 하는 술자리다.

 

여행은 짧은 시간에도 사람들을 금세 친하게 만든다.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처럼. 그리고 무척이나 솔직하게 만든다. 어차피 헤어지면 다시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이기에 굳이 속이거나 변명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 나와 같이 있는 두 여성여행객은 한 명이 20대 말, 다른 한 명은 30대 초. 화제는 여행에서 곧 남자친구 이야기로 넘어간다. 이 자리에서 난 홀로 대한민국 남자를 대변하고 있다.

 

술 취하신 한 헝가리 아저씨가 불쑥불쑥 끼어드시는 것 빼고는 즐거운 자리였다. 문 닫을 때까지 있었으니까.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