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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일주 여행/중국(China)

D+032, 중국 다리 7: 다리 예술촌(大理床單廠藝術區)(20181216)

경계넘기 2021. 1. 16. 07:31

 

다리 예술촌(大理床單廠藝術區)

 

다리(大理)가 딱 쉬기 좋은 곳이다. 물가도 싸고 번거롭지 않고. 다리에서는 마땅히 할 일이 많은 것이 아니다. 그저 쉬고 멍 때리고 빨래나 할 뿐. 다리가 배낭여행자들의 성지였던 이유다. 최근에는 급속히 상업화되면서 그런 여유로움이 사라져가고 있어 아쉬울 뿐이다.

 

오늘도 창산(蒼山) 주변에는 먹구름이 한 가득이다. 높긴 높은가 보다. 하긴 한라산만 해도 백록담이 곱게 드러난 모습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2천 미터도 되지 않는 산이 이럴진대 4천 미터 급 창산이야 말해 무얼까.

 

 

 

베이징(北京)에는 798 예술구(798藝術區)라는 곳이 있다. 원래는 베이징에 있었던 거대한 군수공장 공단이었다. 군수공장이 다른 곳으로 이전하면서 빈 공장만 남은 폐허가 되었는데, 이런 곳에 예술인들이 하나둘 모여 공장을 작업장과 전시관으로 이용하면서 점차 거대한 예술촌으로 발전한 곳이다.

 

다리에도 이런 곳이 있다. 숙소 사장이 알려준 곳인데 당연히 규모는 베이징의 그곳과 비교할 수는 없다. 원래는 다리에 있던 침대 시트 공장이었다고 한다. 798 예술구와 마찬가지로 공장이 이전하면서 빈 공장만 남았던 이곳에 예술인들이 정착해서 지금은 다리의 예술촌이 되었다고 한다. 이름을 제대로 번역하면 다리 침대 시트 공장 예술구(大理床單廠藝術區).

 

 

 

쉬엄쉬엄 그곳에나 가보기로 한다. 고성의 서문 근처에 있다.

 

3~4층 정도 되는 공장 건물 3, 4채로 구성되어 있다. 베이징에 비하면 규모가 작아서 크게 볼만한 것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일요일이라 문을 닫은 곳도 좀 있다.

 

 

 

하지만 아기자기하게 있을 것은 다 있다. 독특한 전시관도, 예쁜 카페와 서점도 있다. 판매를 겸하는 전시관은 다채로운 수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하나하나 구경하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물론 예술인들의 작업실도 있다. 일요일이라 작업하는 친구들은 많이 볼 수 없었지만 밖에서나마 예술인들의 작업실을 엿볼 수 있다. 어느 작업실에는 텐트도 쳐 있다. 작업하다가 그곳에서 잠도 자나 보다. 간이침대 정도는 자주 보지만 텐트는 처음이다.

 

아담하게 작업실과 판매를 겸한 전시실을 갖춘 화랑들이 있어서 눈요기를 할 수 있지만 일요일이라 많이들 닫았다.

 

 

 

건물 뒤편으로는 사진 전시관이 있었는데 이곳에도 개혁개방 40주년 기념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다리의 옛날 모습과 지금 모습을 비교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중국 공산당의 지난 40년간의 치적을 과시하고 선전하는 것이지만 다리의 옛 모습을 볼 수 있어 흥미롭다.

 

베이징이나 청두(成都) 등에 있던 전시관에서 본 대도시의 예전 모습들은 우리네 60, 70년대의 모습을 생각나게 한다면, 다리의 예전 모습은 50, 60년대 우리네 농촌 모습을 연상시킨다. 세부적으로는 다른 점이 많겠지만 사진에 잡힌 모습을 멀찍이 보고 있노라면 한국이나 중국이나 크게 다른 점이 없어 보인다.

 

 

 

예술촌이 서문 쪽에 있다 보니 서문 밖으로 나가본다. 상가 거리와 주택가가 이어지는데 흰색을 숭상하는 바이족(白族)이라 건물들이 온통 하얀색이다. 하얀 나라에 온 느낌이다.

 

바다만 있다면 그리스 산토리니(Santorini) 분위기가 나겠다 싶다. 다만 하얀 바탕에 파란색, 살구색 등 다양한 색깔로 포인트를 주는 산토리니가 수채화 같다면, 지붕이나 처마에 검은색과 짙은 회색만으로 포인트로 주는 바이족의 마을은 흑백의 수묵 담채화가 되겠다.

 

 

 

 

중국 젊은 세대

 

숙소에 돌아왔더니 사장이 오늘 새로 온 한국인 여자여행자 한 분을 소개시켜 준다. 들어오는 길에 잠시 봤었는데 중국인인 줄 알았다. 한국인이라니 당황스러울 정도.

 

요즘은 정말이지 한국인과 중국인을 구별하기 어렵다. 중국인의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잘 입고 다니기도 하지만 구별이 어려운 더 중요한 이유는 한국식 패션을 많이들 선호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경제 수준이지만 일본인의 패션에는 독특한 개성이 있어서 구분이 간다.

 

한국인 여성여행자는 반갑게도 같은 배낭여행자다. 이 친구는 이미 중국을 2달째 여행 중이란다. 중국과 동남아를 6개월 정도 여행할 생각이라고. 이번 여행 중 처음으로 만나는 장기 배낭여행자다. 일정이 나와는 달라서 같이 다니기는 힘들겠지만 이곳 다리에서만이라도 같이 할 수 있으니 반갑기 그지없다. 숙소에 같이 묵고 있는 한국인 남자여행객은 일반여행자라 가끔 공감대가 떨어진다.

 

이 친구도 반갑다고 난리다. 좀 호들갑을 떠는 스타일인 것 같은데 2개월 이상 중국을 여행하면서 한국인 여행객을 거의 보질 못했다고 한다. 오랜 만에 한국말을 원 없이 한단다.

 

저녁에 이 친구를 포함한 두 한국인 그리고 중국인 친구들과 저녁을 하러 간다. 상하이(上海) 친구가 식당을 정했다 해서 좀 불안했는데 역시가 가격이 만만치 않다. 간단한 저녁 식사에 일인당 100위안이 넘게 나왔다.

 

일반 여행자라도 간단한 한 끼 식사에 2만원 돈을 쓴다면 부담이 갈 터인데 배낭여행자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처음으로 자리를 함께 한 여자 여행객도 조금 당황한 모양이다.

 

상하이 친구가 좀 특별하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요즘 중국 젊은이들의 소비 수준은 한국과 별반 차이가 없다. 아니, 중국의 경제 수준을 고려한다면 한국 이상의 소비 수준이다.

 

지금 중국의 20대라면 90년대 태어나서 2천 년대 중국 경제의 고속 성장을 경험한 세대다. 한국의 70년대생 X세대와 비슷하다고 할까.

 

하지만 소비 수준에 있어서 한국의 X세대와 다른 면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이들이 중국의 한 자녀 갖기 정책에 따른 외아들, 외동딸이라는 사실. 하도 귀하게 커서 중국에서도 이들을 소황제(小皇帝)라고 부른다.

 

이들 세대들은 부모가 6명이라고 한다. 이 친구들의 부모 세대들도 한 자녀 정책의 세대이기 때문에 형제자매가 없다. 즉 이들 세대는 외아들 아버지와 외동딸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어머니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이렇게 6명이 하나의 손자 또는 손녀만 있다. 직접적으로 말하면 이들 6명의 모든 재산이 한 명의 소황제에게 간다.

 

경제 성장도 성장이지만 한 자녀 정책으로 인해 6명의 부모 세대의 돈이 한 명의 자녀에게 집중되니 돈 무서운 줄 모르고 컸을 게다.

 

 

 

저녁 같이 먹자고 한 한국여성분께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든다. 그 친구도 돈을 아끼며 여행 중일 텐데 한 끼 식사로 6일치 이상의 방값을 날리게 만들었다. 여기 숙소의 도미토리 방이 하루에 15위안이다.

 

하룻밤 15위안 방에 살면서 한 끼 식사에 100위안이라니.

걸인의 방, 황제의 밥이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