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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가 되고 싶은 윤석열

경계넘기 2021. 3. 16. 13:40

 

이성계가 되고 싶은 윤석열

 

추미애와 윤석열의 전쟁이 치열하던 작년에 친구들로부터 질문을 자주 받았다.

비대면 시대에 맞추어 주로 전화통화였다.

 

추미애와 윤석열은 왜들 저리 죽자고 싸우는데?”

 

내게 묻는 이유는 오직 하나 내가 정치학을 전공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나에게 분명한 답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해도 너무 한다 싶으니 그저 답답해서 묻는 질문이다.

 

글쎄 난들 잘 알겠냐마는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의 싸움을 보면 고려 말 요동 정벌을 둘러싼 우왕과 최영 그리고 이성계가 생각나.”

 

여기까지만 이야기해도 대충들 감을 잡는다.

 

 

 

 

칼을 거꾸로 잡은 이성계

 

중국에서 원나라와 명나라가 교체하던 고려 말, 북진 정책과 반원 정책을 주도하던 공민왕이 서거하고 그의 아들 우왕이 왕위를 물려받았다. 우왕 14년인 1388년 원을 몰아낸 명이 공민왕이 수복한 철령 이북의 땅을 원래 원의 영토였다는 이유로 반환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격분한 우왕이 공민왕의 북진 정책 유지를 받들어 요동 정벌을 명령한다.

 

이성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왕의 요동 정벌은 당시 최고 권력자인 최영의 지지를 받아 신속하게 추진되었다. 우왕은 최영을 총사령관으로 조민수와 이성계를 좌우 부사령관으로 하여 요동 정벌군을 편성하고, 이성계와 조민수를 필두로 약 5만의 정벌군을 요동으로 급파했다. 이때 총사령관 최영은 우왕의 만류로 개성에 남았다.

 

장마를 맞아 압록강 위화도에서 병력이 주춤하는 사이 이성계가 4불가론을 들어 회군할 것을 재차 요청했지만 우왕은 단호하게 이를 거부했다. 이에 이성계는 조민수를 설득해서 회군을 결정하고 요동을 향하던 칼날을 고려로 돌렸다. 말머리를 개경으로 돌린 이성계의 정벌군은 당시 고려군의 전부. 잔여 병력으로 이성계를 저지하려던 최영은 중과부적이었다. 개성을 함락시킨 이성계는 최영을 참살하고 우왕 대신 창왕을 왕위에 올렸다. 그러나 그도 잠시 이성계는 끝내 고려 왕실을 폐하고 스스로 왕이 되어 조선 왕실을 열었다.

 

요동 정벌의 총책임자였던 최영을 참살하면서 이성계가 붙인 죄명은 요동 정벌을 무리하게 진행하고 왕을 능멸하며 권세를 탐했다는 것이었다. 이에 격노한 최영이 내가 조금이라도 탐욕을 했다면 내 무덤에 풀이 무성할 것이다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눈을 감았다. 실제로 그의 무덤에는 풀이 나지 않고 오랫동안 붉은 황토만이 남아 적분(赤墳)이라 불렸다 한다.

 

 

최영과 이성계

 

 

칼을 거꾸로 잡은 윤석열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정부의 개혁 정신을 그대로 계승해서 검찰 개혁을 그 기치로 내걸었다. 특히 퇴임 후 친구, 동료, 친인척을 망라하는 검찰의 집요하고 무리한 수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자살로 내몰았기에 오랜 친구로 노무현 정부의 초대 민정 수석이자 마지막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에게 개인적으로도 검찰 개혁은 숙원 사업이었을 것이다.

 

대통령 당선과 함께 문재인(우왕)은 민정 수석 조국(최영)을 필두로 검찰 개혁을 준비한다. 한동안 정지 작업을 진행하던 문재인은 조국을 법무부 장관으로, 그간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의 적폐 청산을 담당하던 윤석열(이성계)을 검찰총장으로 하는 개혁 진용을 짜고 본격적인 검찰 개혁에 드라이브를 걸고자 했다.

 

20197월 문재인은 조국에 앞서 윤석열을 검찰총장으로 임명했다. 그런데 1개월 뒤, 문재인이 조국을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자마자 전황이 예상치않게 돌아갔다. 돌연 윤석열이 조국에게 칼을 겨누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거꾸로 잡은 윤석열의 검이 조국과 정권의 폐부를 깊숙이 찌르고 들어왔다.

 

조국을 향한 윤석열의 칼은 집요하고 잔인했다. 검찰 최정예 칼잡이인 특수부 검사들이 떼로 덤비는 상황에서 실전 경험이 없는 조국은 무력했다. 아내와 친인척은 물론이고 딸까지 윤석열의 칼이 베고 들어갔다. 검찰 칼잡이들의 잔인한 칼날에 딸의 인생은 망신창이가 되었다. 윤석열이 거꾸로 잡은 칼날에는 털어 먼지 안 나는 놈 없다는 대한민국 검찰의 신념이 깊이 배어 있었다.

 

윤석열의 검찰을 막을 후임 법무부 장관의 인선은 어려웠다. 윤석열의 칼은 검찰에 칼을 겨누는 자들을 그가 어떻게 다룰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법조계는 숨을 죽였다. 윤석열과 검찰을 상대할 만한 장수들은 이미 겁에 질렸다.

 

결국 문재인은 백전노장의 추미애를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여당의 전 당대표로 대선을 향하는 추미애가 윤석열을 상대하기 위해 장관으로 간다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만큼 꼬리를 바짝 내린 법조계는 무력하다 못해 비겁했다.

 

정치 일선에서 산전수전을 겪은 추미애는 조국과 확실히 달랐다. 추미애를 겨누던 윤석열의 검이 추미애의 빈틈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누군가! 윤석열의 칼날이 또 다시 추미애의 아들을 베고 들어갔다. 조국은 딸을, 추미애는 아들을 난도질당했다.

 

최영을 죽인 이성계의 칼도 비겁했지만, 조국과 추미애를 겨눈 칼날은 비겁하다 못해 양아치스러웠다. 아니 참으로 대한민국 검찰스러웠다.

 

 

 

 

검찰 개혁도 문제지만 어른들 싸움에 애 잡고 위협하니 인간적으로도 열을 받았겠지.  처자식이 없는 나도 심하다 싶은데. 솔직히 웬만한 양아치들도 그러지는 않을 게다.”

 

"그럼, 윤석열이 문제란 건가?"

 

"윤석열이 문제긴 한데.....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하게 만든 단초와 빌미를 우왕과 최영이 주었듯이 윤석열도 따지고 보면 문재인과 조국 그리고 추미애의 작품이 아닌가 싶다는 거지."  

 

조금만 더 구체적으로

 

윤석열과 검찰의 양아치 짓에 열 받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래도 검찰 개혁이라는 큰 그림을 위해서라면 다르게 접근했어야 한다고 봐. 사실 반개혁파인 윤석열의 칼은 비열하고 잔인했지만 그 핵심을 제대로 찌르고 들어간 반면에 문재인, 조국, 추미애 등 개혁파의 칼은 쓸데없이 윤석열의 칼만 받아주고 있었다는 말이지. 생각해봐. 검찰 개혁의 핵심은 사람이 아니라 제도에 있지 않나. 공수처, 수사와 기소 분리 등의 제도 개혁이 본 게임이지, 검찰 칼잡이 몇 명 걷어내는 데 있지 않다는 말이야.”

 

......”

 

조국이 실전에서 무력했다는 것은 본 게임인 제도 개혁은커녕 칼잡이 몇 명에게 자신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것이지. 하지만 조국을 대신해 추미애를 등판시켰다면 이건 완전 다른 이야기야. 추미애는 단순한 백전노장이 아니야. 다선 의원에 여당의 당대표였으면 국가 정규 병력의 총사령관급이야. 칼잡이들로 구성된 일개 특수부대의 지휘관인 윤석열과는 급도 맞지 않아.”

 

그렇지. 여당 대표는 국가 의전 서열로만 봐도 7위니까.”

 

사실 추미애를 등판시켰을 때 이제 제대로 제도 개혁의 본 게임에 들어가나 싶었지. 더욱이 추미애 뒤에는 본 게임을 위해 국민이 선발한, 180명의 여당 국회의원 최정예 정규군이 도열해 있는 상황이니까. 추미애는 장수 몇 명 보내서 윤석열을 상대하게 하면서, 정규군을 투입해 본 게임을 진두지휘했어야 해. 제도 개혁의 본 게임에서는 칼잡이들로 구성된 윤석열의 검찰부대는 의미가 없어. 칼잡이들은 요인 암살에는 뛰어나도 정예군이 맞붙는 정규전에는 아주 무력하지. 그런데...... 지금, 추미애가 필마단기로 달려가 윤석열과 다이다이(순화 국어로 '일대일로 맞붙다')로 죽자고 개싸움을 하고 있는 거지. 덕분에 급도 안 되는 윤석열의 급만 올려주고, 검찰 개혁의 고귀한 기치는 칼잡이들의 개싸움으로 프레임 전환 되었고 말이야.”

 

추미애가 잘못 판단한 건가?

 

위화도 회군 때 우왕이 결정적 실수를 하지. 요동 정벌을 위해 5만의 정벌군을 보내면서 정작 전쟁터에 가겠다는 총사령관 최영을 한사코 말리며 자신의 곁을 떠나지 못하도록 해. 우왕이 정적에 대한 두려움이 많았거든. 덕분에 이성계의 손아귀에 고려군의 전부를 주고 말았지. 지금은 좀 반대 상황이야. 오히려 180 정예 정규군이 문재인 자신의 손에 있는데 덜렁 추미애만 홀로 개싸움에 보낸 셈이지. 설령 다혈질의 추미애가 오판했더라도 문재인이 칼날의 방향을 제대로 잡아주면서 정규군을 투입해 전황을 정규전으로 전환시켰어야 해.”

 

결국 문재인의 용병술과 판단력에 문제가 있었다는 말이군

 

"아쉽게도 내 생각에는. 전략의 부재와 함께"

 

 

당시에는 추미애와 윤석열의 싸움을 설명하느라 비유로 든 이야기지만, 최근 윤석열이 검찰총장을 suddenly 그만두고 정치적 행보를 하는 것을 보니, 이제 정말 윤석열이 이성계가 되고 싶은가 보다.

 

하지만,

문재인이 우왕이 아니고 조국이 최영이 아니듯,

윤석열도 이성계는 아니리라.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