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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가 될 수 없는 윤석열

경계넘기 2021. 4. 3. 15:51

 

이성계가 될 수 없는 윤석열

 

친구들이 다시 묻는다.

 

그럼, 윤석열은 이성계가 될 수 있을까?”

 

지난 번 포스팅 글 때문이다.

열린 결말로 글을 맺었더니 이리들 묻는다.

각자 알아서들 생각하면 될 것을.....

 

 

이성계가 되고 싶은 윤석열

 

이성계가 되고 싶은 윤석열

이성계가 되고 싶은 윤석열 추미애와 윤석열의 전쟁이 치열하던 작년에 친구들로부터 질문을 자주 받았다. 비대면 시대에 맞추어 주로 전화통화였다. “추미애와 윤석열은 왜들 저리 죽자고 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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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윤석열은 그런 이성계도 될 수 없다.

 

 

첫째, 적어도 이성계는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가지고 있고 그 신념에 따라 행동한 사람이다.

 

이성계의 정치적 신념은 새로 일어나는 명나라와 친교를 맺고 스러져가는 원나라와는 단교해야 한다는 친명반원(親明反元) 정책 그리고 수구 세력인 친원파(親元派) 권문세족의 척결이 그것이다.

 

우왕의 요동 정벌에서도 이성계는 그의 신념을 분명히 했다. 이성계는 명과의 전쟁인 요동 정벌을 반대하고 우왕과 최영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다. 요동 정벌을 위해 출정하던 중간에도 그는 요동 정벌의 부당성을 재차 주장했다. 비록 위화도 회군을 통해 우왕과 최영에게 칼을 돌리긴 했지만 그는 그의 신념에 충실했던 사람이다.

 

윤석열의 정치적 신념을 난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최근 검찰총장의 퇴임을 전후한 그의 행보와 말을 통해 보건데 그의 신념은 반()검찰개혁, 특히 수사와 기소 분리의 반대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그의 신념의 옳고 그름, 작고 크고를 떠나서 그는 과연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했을까?

 

문재인 정부의 검찰 개혁은 그의 집권 공약이었다. 공수처의 설치 그리고 수사와 기소의 분리는 그 검찰 개혁의 핵심이었다. 만일 그가 문재인 정부의 검찰 개혁에 반대한다면 검찰총장에 임용되기 전부터 그 뜻을 밝혔어야 했다. 뿐만 아니라 검찰총장에 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자신의 신념을 피력하면서 개혁의 조정을 위해 노력했어야 한다. 검찰총장은 일개 검사의 신분이 아니라 한 조직의 수장으로 조직 개혁에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검찰총장에 임명되기 전에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에 반대를 표명했다면 과연 문재인과 조국이 그를 검찰총장에 임명했을까? 윤석열이 문재인 정부의 검찰 개혁을 몰랐다면 정말 바보인 것이고, 알면서도 숨기고 그 직을 받았다면 그는 무척이나 영악한 사람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충성하지 않아도, 적어도 자기 자신에게는 충성하는 사람이다.

 

 

 

 

둘째, 이성계는 신념이 있기에 그와 신념을 같이 하는 동지 또는 지지 세력이 있었다

 

자신의 절대적인 지지기반이 있는 사람이다.

 

이성계의 지지 기반은 신진사대부들이다. 이들은 고려 말 공민왕의 개혁 정책에 따라 성장한 관료 계층이다. 이들은 유교적 이념을 바탕으로 외부적으로 친명반원 정책을, 내부적으로는 원나라를 등에 업고 정치를 유린하던 친원파 권문세족의 척결을 주장하였다. 이들 신진 사대부들이 이성계 등의 신흥 무인 세력과 협력하면서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신념이 없거나 신념을 알지 못하는 윤석열에게는 그 자신의 절대적 지지 기반이 없다. 그저 그가 가진 세력이란 문재인의 반대 세력에 불과하다. 윤석열이 좋아서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문재인이 싫어서 지지하는 세력이다.

 

윤석열이 상수가 아니라 문재인이 상수인 지지기반 그리고 신념이나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지지 기반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위기를 지탱할 동력을 얻을 수 없다. 지금 그에게 몰려드는 사람들을 봐도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그저 문재인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 선거철만 되면 한 자리 얻기 위해 몰려드는 철새 정치인들이 현재 그의 지지 기반이다. 사실 그런 사람들에게 윤석열 자신의 신념이나 가치는 의미가 없다.

 

 

 

 

셋째, 이성계에게는 자신의 신념에 수반하는 명분과 미래가 있었다.

 

친명반원 정책과 권문세가의 척결은 당시 쓰러져 가는 고려를 일으켜 세우고 백성을 안돈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개혁이었다. 따라서 이성계와 신진 사대부에게는 새로운 정치를 향한 개혁파로서의 명분과 미래가 있었다.

 

윤석열의 신념은, 그것이 현재 한국 사회를 발전시키고 새롭게 할 수 있는 것인지는 난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이 보수적이고 수구적인 가치, 즉 기득권의 유지에 있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검찰총장으로서의 그의 마지막 행보가 대구 방문에 있었다는 사실 또한 이를 잘 증명한다. 그의 정치적 행보는 미래나 현재가 아니라 과거를 향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신념에는 명분도 미래도 보이질 않는다.

 

윤석열의 정치적 행보는 지금까지도 이성계를 괴롭히는 의문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성계 사후에도 끝없이 따라 다니는 의문. 과연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 당시 이미 쿠데타 또는 역성혁명의 욕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의 정치적 신념이라는 것도 그저 자신이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허울에 불과했던 것이 아닐까?

 

윤석열이 본격적으로 대선을 향하는 순간 그 역시 그런 의문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검찰총장을 벗어 던지자마자 대선에 나서려는 그가 검찰총장에 있을 때 과연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지켰을까? 조국과 정권에 대한 수사에 과연 정치적 의도가 전혀 없었을까? 그게 가능할까? 하물며 이성계도 피해가지 못하는 그 멍에를 윤석열이 피해갈 수 있을까? 윤석열이 그나마 가지고 있던 작은 신념과 명분마저도 흔들린다.

 

 

 

 

넷째, 이성계는 결코 유령과 싸우지 않았다.

 

이성계에게는 없지만 윤석열에게는 있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현대 한국인의 의식 속에 깊이 내재되어 있는 독재의 트라우마다. 오랜 시간 독재를 경험한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그 살 떨리는 공포. 현재 미얀마 민주화 시위에 대한 군부의 만행을 보면서 그 어느 나라의 국민들보다 한국인이 더 치를 떠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독재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국민들은 권력을 가진 자에게 또 다른 권력을 주지 않는다. 권력의 집중이 독재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한국의 권력 집단들, 그 중에서도 강력한 권력 수단을 독점하고 있는 집단들 군부, 검찰, 재벌 등등. 이들 집단들에게 정치적 권력까지 주지 않으려는 심리는 독재를 막으려는 이성적이고 합리적 견제 심리이자 저 깊은 트라우마의 심연에서 나오는 무의식적 공포 심리다.

 

트라우마가 무서운 것은 트라우마가 무의식을 지배한다는 것. 평상시는 괜찮은 것 같아도 막상 그 순간이 되면 표면으로 급부상한다. 투표일이 가까워질수록, 투표의 순간이 다가올수록 그 트라우마는 유권자의 심리를 무의식적으로 장악한다.

 

윤석열이 싸워야 하는 적은 보이지 않는 그 무의식의 적이다.

문재인의 정부도, 집권 여당도 아닌 트라우마라는 유령.

 

과연 윤석열이 이 유령과 싸울 수 있을까?

 

 

 

아쉽게도

대통령이 되기 위한 윤석열 자신의 노력은 무의미하다.

오직 문재인의 정부와 민주당에 달렸다.

 

윤석열이 이성계가 될 수 없는 이유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