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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일주 여행/말레이시아(Malaysia)

D+083, 쿠알라룸푸르 6: 디지털 고난 3, 하나를 넘으니 또 하나가 (20190205)

경계넘기 2021. 8. 3. 11:35

 

 

디지털 고난 3, 하나를 넘으니 또 하나가.

 

 

새벽에 일어나 인터넷 뱅킹을 시도한다.

 

하다하다 새벽에 시도를 해보지만 역시나 숙소의 와이파이로는 한국의 은행 업무를 처리하기에는 무리인가 보다. 말레이시아에 산 유심으로도 핫스팟을 통해 시도를 해보지만 역시 마찬가지다. 숙소 와이파이보다 약하다.

 

전반적으로 말레이시아 인터넷 여건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 페낭(Penang)에서도, 수도인 쿠알라룸푸르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번 여행에서 거쳐 왔던 나라들-중국, 베트남, 라오스, 태국-과 비교해도 최악이다.

 

 

 

호스텔 직원에게 와이파이가 괜찮은 카페를 묻는다.

 

스타벅스에 한번 가보라고 한다. 오전 930, 일찌감치 스타벅스에 간다. 일단 이체를 해서 돈을 찾아야 무엇이든 할 수 있으니 이게 가장 시급하다. 외국에서 돈 떨어지는 것만큼 큰 압박도 없다. 여권 분실과 함께.

 

스타벅스의 와이파이 이용도 꽤나 복잡하다. 자체 게이트가 뜨더니 내 이메일 주소와 전화번호를 입력하란다. 이게 무슨 무료 와이파이인고. 짜증이 난다. 직원에게 말레이시아 전화번호가 없는데 다른 방법이 없냐고 물으니 자신의 이메일과 전화번호를 적어서 이용할 수 있게 해준다. 말레이시아는 인터넷 인프라도 약한데 이용마저도 무척 까다롭다.

 

카페 구석에 자리를 차지하고 경건한 자세로 이체를 시도한다.

 

은행 사이트에 접근을 시도한다. 보안 프로그램을 검색하고 업그레이드 작업을 하는 중에 노트북이 다운된다. 당황스러워진다. 여기마저 안 되면 정말 PC방을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몇 번 시도를 하니 겨우 은행 사이트에 들어간다. 이체를 시도한다. 역시 다운이다. 한 번 은행 사이트에 들어가니 다시 들어가는 것은 쉽다. 다시 이체를 시도한다. 인증서 비밀번호를 입력하라는 창이 뜬다. 아직 방심은 금물이다. 숙소에서도 여기까지 된 적은 있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인증서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엔터를 친 후 잠시 숨을 머금고 기다리고 있으니 이체 성공 메시지가 뜬다. ! 장장 3일 간의 이체 시도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는 순간이다. 역시 인터넷 와이파이의 문제였다.

 

마치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듯한 희열이 솟는다. 이게 뭐라고. 아니다. 이체가 안 되면 국제 거지가 될 판이니 작은 일은 아니다. 여하튼 걱정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카페에서 나와 바로 옆에 있는 은행 ATM에서 돈을 인출한다. 돈을 보니 반갑다.

 

 

 

이제는 항공권을 예약해야 한다.

 

어젯밤 드디어 원래의 계획대로 가기로 결정했다. 조금의 일정 변경은 있다. 스카이스캐너로 항공권을 확인해 보니 네팔의 카트만두(Kathmandu)에서 두바이(Dubai)로 가는 저렴한 표가 있었다. 그 표를 제외하면 모두 비쌌다. 원래 계획은 인도에서 육로로 네팔에 들어갔다가 다시 육로로 뉴델리(New Delhi)로 나오는 것이었다.

 

바로 예약을 시도한다.

 

숙소에 와서 스카이스캐너를 열고 다시 한 번 그 표를 확인해보니 같은 가격에 자리가 있다. 결제를 시도하니 스카이스캐너에서 항공사 사이트로 넘어간다. 오만 항공사다. 항공사 사이트에서 개인정보를 입력하고 카드정보까지 입력하고 엔터를 누른다.

 

모든 것이 순조롭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카드 결제에 에러가 뜬다.

 

결제 정보를 다시 입력하고 시도를 해봤지만 계속 에러가 뜬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다른 카드도 준비했다. 비자(Visa) 하나, 마스터(Master) . 체크카드 2, 신용카드 1.

 

그런데 당황스럽다. 다른 카드들마저 모두 에러 사인이 뜬다. 카드 자체의 문제일까, 항공사 사이트의 문제일까 아니면 이 역시 인터넷 문제일까? 알 수가 없으니 더욱 난감하다.

 

창을 닫았다가 한참 후에 다시 열고 결제를 시도해보지만 매 한가지다. 카드건, 항공사 사이트건 인터넷 인프라건 정말이지 디지털 세상이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디지털 세상에서는 무형의 적과 싸워야 한다.

 

 

 

노트북을 달래가며 오후 한낮을 내내 시도해보지만 결국 모두 실패로 끝났다. 이제는 카드 문제가 아니라 항공사 사이트이거나 인터넷 환경이 문제로 보인다. 회사가 다른 카드 세 장이 다 먹통일 수도 없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렇게 오랜 시간 먹통일 수는 없다.

 

산 넘어 산이라더니.

 

가지고 있는 세 개의 카드에 모두 에러가 뜨니 난감해진다. 다른 항공권을 확인해보니 그 항공권 외에는 카트만두에서 두바이로 가는 항공권 가격이 다들 너무 비싸다. 차라리 육로로 뉴델리로 이동해서 뉴델리에서 두바이 가는 편이 싸게 먹힌다.

 

다시 선택의 상황에 직면한다.

 

그냥 비싼 표를 살 것인가? 육로로 뉴델리로 나갈 것인가? 아니면 이참에 인도 콜카타(Kolkata) 가는 항공권을 찢어 버리고 바로 두바이 거쳐서 아제르바이잔(Azerbaijan)으로 갈 것인가?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일단 확실한 것은 카트만두에서 두바이 가는 저렴한 항공권은 물 건너 갔다는 사실이다.

 

카드 결제가 안 돼서 일정을 바꿔야하다니 이런 경우도 또 처음이다.

 

어차피 인도에 들어갈 거라면 인도에서 항공권을 구매할 수 있지 않겠냐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 인도 입국할 때 도착 비자로 들어갈 생각이기 때문이다. 도착 비자를 신청하려면 반드시 출국항공권 즉 아웃티켓이 있어야 한다. 그건 인도 도착 비자 신청 규정에 명확히 나와 있는 사항이다. 인도를 가지 않더라도 말레이시아에서 다른 나라를 가려면 여하튼 항공권은 사야한다.

 

문제는 다른 항공권이라고 카드 결제가 되겠냐는 것이지만,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일단 다른 여정을 결정해야 한다. 이래저래 고민만 는다.

 

 

 

일단 모든 계획을 보류하고 설 연휴에 이곳으로 여행해 온 친구네와 저녁 약속 장소에 간다. 오늘은 설. 이국땅에서 친구네와 설 저녁을 같이 할 수 있으니 뜻 깊다. 지금까지 가족들끼리의 자유 시간을 주었으니 이제 좀 끼어들어도 괜찮을 게다.

 

식당을 나와서는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Petronas Twin Towers)에 간다. 뒤편 호숫가에 있는 카페에서 맥주와 음료수를 한다. 이국땅에서 설을 친구 가족들과 같이 보낼 수 있어서 감사하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친구가 가족들에게 묶여 있어서 편하게 술 한 잔 따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분 좋게 저녁을 했지만 숙소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겁다.

 

요 며칠 인터넷과 씨름하느라 쿠알라룸푸르에서 하는 일이 거의 없다.

콧물만 계속 질질 흐른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