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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의 비극 2-1: 발칸에 떠도는 집단 학살의 악령들, 우스타샤(Ustaša)와 체트니크(Chetnik) 1

경계넘기 2022. 1. 22. 17:06

우스타샤 (Ustaša) (출처: Poskok)

 

 

발칸에 떠도는 집단 학살의 악령들, 우스타샤(Ustaša)와 체트니크(Chetnik) 1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Beograd).

 

도심을 걷다가 1999년 유고슬라비아 전쟁 중 나토(NATO)의 공습을 받은 세르비아의 전 국방성과 육군본부 건물을 마주한다. 공습 받은 당시의 모습 그대로 보존 중이다. 흉물스런 건물 앞에 서니 만감이 교차한다.

 

 

 

측은함과 통쾌함이 뒤섞인다.

 

1991년에서 1999년까지 8년간의 유고슬라비아 전쟁 내내 세르비아(Serbia)는 잔인한 집단 학살과 인종 청소(ethnic cleaning)의 중심에 있었다. 수도 베오그라드가 나토의 공습을 받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과연 세르비아에게만 그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나치보다 더 잔혹했던 크로아티아의 우스타샤(Ustaša)

 

 

 

2차 세계대전 중의 일이다.

 

유고슬라비아 왕국(Kingdom of Yugoslavia)의 일원이었던 크로아티아(Croatia)에는 독일의 지원을 받은 괴뢰국인 크로아티아 독립국( Independent State of Croatia, NDH)이 세워졌다. 유고슬라비아 왕국은 구()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전신으로 슬로베니아(Slovenia), 크로아티아, 세르비아가 연합한 국가다.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사이에 존재했다.

 

세계대전 기간 내내 크로아티아 독립국에서는 세르비아인(Serb), 유대인, 집시 등에 대한 잔혹한 집단 학살이 일어났다. 기록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최대 50만 가까이 학살되었다.

 

나치 독일군에 의한 것일까?

 

아니다.

같은 나라를 일구고 살았던 크로아티아인에 의해서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 우스타샤(Ustaša)가 있었다.

 

 

우스타샤(Ustaša): 설립과 배경

 

 

 

크로아티아 독립국의 주축 세력은 우스타샤(Ustaša)였다.

 

우스타샤의 정식 명칭은 우스타샤-크로아티아 혁명 운동(Ustaša Croatian Revolutionary Movement)’. 유고슬라비아 왕국 아래에서 크로아티아의 독립을 주장하던 크로아티아 파시스트 극우 민족주의 단체였다. 우스타샤(Ustaša)의 본래 뜻은 봉기(uprising)를 의미한다.

 

우스타샤의 조직 이념에는 파시즘(fascism), 민족주의(nationalism), 로마 가톨릭 교권주의(Roman Catholicism), 여기에 나치의 인종이론(Nazi racial theory)이 결합되어 있었다.

 

 

우스타샤(Ustaša) (출처: Wikipedia)
우스타샤 깃발 (출처: Wikipedia)

 

우스타샤는 안테 파벨리치(Ante Starčević)라는 인물과 함께 했다.

 

파벨리치는 유고슬라비아 왕국에서 크로아티아의 독립을 주장하던 극단적인 반체제 인사였다. 유고슬라비아 왕국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가 결합해 만든 국가지만 세르비아가 주축이었다. 초기 이름은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Kingdom of Serbs, Croats and Slovenes)’이었으나 1929년 유고슬라비아 왕국으로 개명하고 대세르비아(Great Serbia), 즉 세르비아 중심의 국가로 변모해가고 있었다.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Kingdom of Serbs, Croats and Slovenes) (출처: Wikipedia)

 

파벨리치는 반()유고슬라비아 왕국의 중심에 있었다.

 

대등하고 평등한 관계에서의 연합을 희망했던 다른 민족들의 반발은 당연해 보였다. 크로아티아에서는 독립을 요구하는 강경파의 목소리가 나왔고, 파벨리치가 그 중심에 있었다. 세르비아의 감시와 탄압이 심해지자 그는 1929년 이탈리아로 망명했다. 그곳에서 그는 우스타샤를 설립하고 해외에서 극우 민족주의 운동을 주도했다. 우스타샤는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전복과 크로아티아의 독립을 위해서 테러와 암살 등의 폭력적인 수단도 마다하지 않았다.

 

 

안테 파벨리치(Ante Starčević) (출처: Wikipedia)

 

문제는 파벨리치의 정치적 이념이었다.

 

독립을 위한 폭력적인 수단의 사용은 하등 문제될 것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는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를 거부하고, 크로아티아의 독립은 파시즘이나 나치즘에 있다고 믿었다. 그의 이념을 신봉하는 우스타샤는 1930년대 말 공식적으로 크로아티아 독립을 방해하는 적으로 세르비아인, 유대인, 평화주의자, 공산주의자 등을 지칭하기에 이른다.

 

 

히틀러와 파벨리치 (출처: Wikipedia)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1941년 독일이 발칸을 점령했다.

 

그해 4월 독일은 유고슬라비아 왕국 내에 나치의 괴뢰국인 크로아티아 독립국을 세웠다. 그리고 나치의 열렬한 추종자인 파벨리치를 불러들여 정권을 인수하게 했다. 사실 나치 독일에 있어서 크로아티아 독립국은 유고슬라비아 왕국을 분열, 대립시켜 발칸에서 독일 제국의 통치를 유리하게 하고자 하는 전형적인 분할통치(Divide and rule) 전략의 일환이었다. 파벨리치는 당연히 그 전략의 말()이었다.

 

 

크로아티아 독립국( Independent State of Croatia, NDH) (출처: Wikipedia)

 

 

우스타샤(Ustaša)의 광기: 집단 학살과 강제 개종

 

 

 

우스타샤의 광기에 잔혹한 나치 독일마저도 혀를 내둘렀다.

 

크로아티아 공화국에서 정권을 인수한 파벨리치의 우스타샤는 세르비아인, 유대인, 집시를 크로아티아인의 적으로 선포했다. 그리고 나치의 인종 이론에 따라서 크로아티아인의 순수성을 지킨다며 이들에 대한 인종 청소에 가까운 집단 학살을 저질렀다.

 

우스타샤는 인종적으로 순수한 크로아티아를 만드는 데에 크로아티아 영토에 살고 있는 정교회 세르비아인을 가장 큰 장애로 봤다. 이들을 제거하기 위해 우스타샤는 ‘1/3 전략을 추진했다. 세르비아인의 3분의 1은 죽이고, 3분의 1은 추방하고, 3분의 1은 가톨릭으로 개종시킨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우스타샤의 세르비아인 학살 (출처: Wikipedia)

 

나치의 지원을 받아 우스타샤는 잔인한 인종 학살을 시행했다.

 

우스타샤는 정권을 인수하자마자 독일의 유대인 집단수용소를 본받아 크로아티아 독립국 내 각지에 10여 개가 넘는 집단수용소를 건설했다. 이곳에 세르비아인, 유대인, 집시 등을 수용하고 그곳에서 대대적이고 조직적인 학살을 자행했다. 여기에는 아기와 아이들을 전문적으로 학살하는 아이들 집단수용소도 있었다.

 

 

아이들 전문 집단수용소 (출처: 홀로코스트 백과사전)

 

 

가장 대표적인 집단수용소가 야세노바츠(Jasenovac) 집단수용소였다.

 

19418월에 건설되어 19454월에 폐쇄되기까지 이 수용소에서만 대략 10만여 명의 세르비아인과 유대인이 학살되었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여기서는 나치의 집단수용소들과 달리 잔인한 수단을 통한 일대일 학살에 특화되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학살된 1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은 대부분 주로 칼, 망치, 도끼 등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하니 그들의 잔인함과 악랄함이 어느 정도인지 능히 알만 하다. 이들에 비하면 가스를 이용해 집단 학살했던 나치 독일은 그나마 인도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우스타샤의 학살 (출처: Wikipedia)
세르비아인 학살 무기 (출처: Wikipedia)

 

수용소뿐만 아니라 도처에서 잔인한 집단 학살이 자행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을 짐승처럼 묶어서 잔혹하게 살해하고 산채로 불덩이에 집어넣는가 하면 여성과 아이들을 산채로 구덩이에 집어넣어 매장하고, 때로는 절벽 아래로 떨어뜨려 죽였다. 여성들에 대한 강간과 고문은 일상이었고 죽은 세르비아인들의 눈을 파내어 화환처럼 만들어 차고 다니는 우스타샤도 있었다고 한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잔인함이 동원되었는데 나치 독일군조차 우스타샤의 광기어린 학살에 치를 떨었다고 한다.

 

 

세르비아인 가족 학살 (출처: Wikipedia)
세르비아인을 톱으로 참수하는 우스타샤 (출처: Wikipedia)

 

집단 학살은 강제 개종과 함께 했다.

 

우스타샤는 세르비아인의 3분의 1을 개종시킬 것이라 공언했다. 모든 세르비아인들은 가톨릭으로 개종해야 한다는 강제 개종법도 만들었다. 이에 따라 정교회 세르비아인에게 개종과 죽음 사이의 선택이 강제되었다. 가톨릭으로 개종하지 않으면 죽음을 당했다. 그것도 잔인한 고문과 함께 학살되었다. 그러나 교육을 받은 세르비아 지식층은 그런 개종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집단 학살은 최소 20만에서 최대 50만에 이르렀다.

 

우스타샤에 의해 집단 학살된 희생자의 수는 자료에 따라 다르다. 최소 20만에서 최대 50만까지 차이가 나지만 대체로 많은 전문가들이 30만에서 35만 명의 세르비아인들이 학살되었다고 보고 있다. 여기에 32,000명의 유대인 희생자, 적어도 25,000명의 집시 희생자들이 더해진다.

 

 

로마 가톨릭의 연루

 

 

 

놀랍게도 집단 학살을 주도한 사람들의 상당수가 가톨릭 사제였다.

 

집단 학살을 주도한 공직 다수를 가톨릭 사제들이 차지했다. 수많은 크로아티아의 가톨릭 사제들이 학살에 깊숙이 가담해 전후 전범으로 수배되거나 기소되었다. 이에 따라 우스타샤의 집단 학살에는 로마 교황청이 연루된 것이 아닌가하는 짙은 의혹까지 나왔다.

 

 

나치와 크로아티아 사제들 (출처: Wikipedia)

 

악명 높은 야세노바츠 수용소의 경비 책임자인 미로슬라브 필리포빅(Miroslav Filipović).

 

그 역시 우스타샤의 군목이자 프란치스코(Franciscan) 수도회의 사제였다고 한다. 필리포빅은 잔혹한 학살로 독일군에 의해서도 전범으로 기소될 정도였다고 하니 그 잔혹함이 어느 정도일지는 능히 알만 한다. 야세노바츠에서 그의 별명이 사탄 형제(brother Satan)였다고. 1946년 유고슬라비아 법원에 의해 전범으로 교수형에 처해졌다.

 

 

미로슬라브 필리포빅 (Miroslav Filipović) (출처: Wikipedia)

 

대주교 알로이지예 스테피나츠(Aloysius Stepinac).

 

당시 이들 사제들의 수장인 크로아티아 수도 자그레브(Zagreb)의 대주교 알로이지예 스테피나츠1941414일 나치 독일이 발칸을 점령하자 환영 성명을 내고 협력을 약속하기도 했다. 수직적 질서가 절대적인 가톨릭에서 대주교의 묵인이나 승인 없이 수많은 사제들이 집단 학살에 참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스테피나츠는 집단 학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의 묵인이나 승인 없이 사제들이 집단 학살에 가담했다면 분명 그런 사제들은 파면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알로이지예 스테피나츠와 파벨리치 (출처: Wikipedia)

 

사제들의 집단 학살 가담에 교황청은 은폐하기에 급급했다.

 

전쟁이 끝난 후 구유고슬라비아 연방의 대통령인 된 티토(Josip Broz Tito)는 실제로 집단 학살에 연루된 다수의 사제들과 함께 스테피나츠 대주교도 전범으로 기소했다. 교황청은 집요하게 방해를 놓으며 이들을 해외로 빼돌리기에 바빴다. 티토도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도 대주교의 기소에는 바티칸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기소 대신 대주교의 교체를 원했다. 하지만 교황청은 가타부타 답도 없이 뭉개기만 했다. 이에 티토가 스테피나츠 대주교마저 전범 재판에 기소해 징역 16년을 이끌어냈다. 그제야 반응을 보인 교황청은 한편으로는 국제사회를 통해 스테피나츠의 사면과 석방을 압박하고, 한편으로는 그를 추기경으로 승진시켰다. 뿐만 아니라 1998년에는 교황 바오로 2세가 그를 순교자로 추서하고 성인의 반열로 올려 버렸다.

 

 

다음 글에 이어서

 

 

발칸의 비극 2-2: 발칸에 떠도는 집단 학살의 악령들, 우스타샤(Ustaša)와 체트니크(Chetnik)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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