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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일주 여행/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Bosnia And Herzegovina)

D+203, 보스니아 사라예보 3-3: 유럽의 예루살렘, 사라예보 산책 (20190605)

경계넘기 2022. 4. 13. 17:55

사라예보 성당 (Sarajevo Cathedral) 이라고 불리는 예수 성심 대성당 (Sacred Heart Cathedral) 골목

 

 

유럽의 예루살렘(Jerusalem of Europe), 사라예보 산책

 

 

사라예보는 가톨릭, 정교회 그리고 이슬람이 공존하는 곳이다.

 

그래서 유럽의 예루살렘(Jerusalem of Europe)’ 또는 발칸의 예루살렘(Jerusalem of the Balkans)’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유럽의 도시 중에서 한 도시 안에 가톨릭 성당, 정교회 교회 그리고 이슬람 모스크를 같이 볼 수는 있는 곳은 흔치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예루살렘에는 유대교 예배당(synagogue)까지 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Bosnia and Herzegovina)에는 보스니아인, 세르비아인 그리고 크로아티아인의 3개 민족이 다수 민족을 차지한다. 2013년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전체 인구 중에서 보스니아인이 50.1%, 세르비아인이 30.8% 그리고 크로아티아인이 15.4%를 차지한다.

 

 

 

사실 이들은 모두 같은 슬라브 민족이다.

 

슬라브족 중에서도 남슬라브족. 그런데 왜 같은 민족이 서로 다른 민족들로 갈라졌을까? 여기에는 험준한 발칸의 지형적 요인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종교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솔직히 이들 민족들을 구분하는 가장 대표적인 특징 역시 종교 외에는 달리 생각나는 것도 없다.

 

발칸의 국가들, 그 중에서도 구()유고슬라비아 연방의 독립국들은 크게 세 종교로 나뉜다.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는 로마 가톨릭,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북마케도니아는 동방 정교회 그리고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이슬람이다. 7세기부터 슬라브족들이 발칸에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로마에 가까운 서북부의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는 로마 가톨릭의 영향을 받았고, 동로마 즉 비잔티움 제국(Byzantine Empire)에 가까운 동남부의 국가들은 정교회의 영향을 받았다. 여기에 15세기 이후 발칸이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보스니아는 정교회 국가에서 이슬람 국가가 되었다.

 

무슬림 보스니아인, 정교회 세르비아인, 가톨릭 크로아티아인이 공존하는 보스니아다보니 수도 사라예보에 이슬람 모스크, 가톨릭 성당, 정교회 교회가 공존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사라예보는 15세기 중엽 오스만 제국이 건설한 도시이기에 수백 년 동안 이슬람의 문화 위에 가톨릭의 문화와 정교회의 문화가 더해졌으리라.

 

 

 

올드타운만 조금 걸어도 이슬람 모스크, 가톨릭 성당, 정교회 교회와 만난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가지-후스레브 베이 모스크(Gazi Husrev-begova džamija).

1531년에 건축되었다고 하니 거의 사라예보와 역사를 같이 하고 있다. 그만큼 보스니아에서 가장 중요한 이슬람 건축물이란다. 대부분의 모스크 이름이 우리에게 친숙하진 않지만 그럼에도 이 모스크는 유독 이상하다 싶었는데 당시 이곳을 통치하던 오스만 통치자의 이름을 땄다고 한다. 살짝 정원까지 들어가 보니 무슬림 교인들이 많다.

 

 

 

그곳에서 조금만 내려오면 골목 사이로 보이는 건물이 있다.

 

사라예보 성당(Sarajevo Cathedral)이라고 불리는 예수 성심 대성당(Sacred Heart Cathedral)이다. 수수해 보이지만 보스니아에서 가장 큰 가톨릭 성당이라고. 하지만 생각만큼 그렇게 오래된 성당은 아니다.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시기인 1887년에 완공되었다. 화려하지 않아서 오히려 친근감이 드는데 자세히 둘러보면 건물 곳곳에 사라예보 포위전 당시의 상흔이 남아 있다.

 

 

 

대성당 맞은편에 동방 정교 교회당(Cathedral Church of the Nativity of the Theotokos)이 있다.

 

노란색 외관이 눈을 확 끄는 정교회 교회다. 유치원 같은 노란색 벽면에 검은색에 가까운 다섯 개의 돔이 뭔가 독특한 느낌을 준다. 보스니아에서 가장 크고, 발칸에서도 가장 큰 정교회 교회 중의 하나란다. 예수 성심 대성당보다는 13년 앞선 1874년에 건설되었다. 13년 사이지만 대성당이 건설될 때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이 지배하던 시대이고 교회당이 건설 당시는 오스만 제국의 영향력 아래 있던 시기다.

 

교회당 건축비의 대부분은 사라예보에 있던 세르비아인 상인들이 모아서 댔고, 오스만 제국의 슐탄 등도 건축비의 일부를 냈다고 한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이 교회가 건설될 당시 교회의 탑이 대부분의 모스크보다 높아서 보수적 무슬림들을 좀 열 받게 했다고 한다.

 

 

 

10분도 채 안 되는 거리를 걸으며 가톨릭 성당, 정교회 교회, 이슬람 모스크를 모두 본다.

 

말레이시아 페낭(Penang)이 생각난다. 그곳에서도 한, 두 블록의 거리를 걸으며 세계 4대 종교인 가톨릭 성당, 불교 사원, 힌두교 사원, 이슬람 모스크를 모두 봤었다.

 

사라예보를 유럽 또는 발칸의 예루살렘이라고 부르는 또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의 성지인 예루살렘의 역사는 사실 피의 역사다. 지금도 예루살렘은 기독교인과 무슬림들 사이에 총성이 오가는 곳이다. 그래서 종교의 성지라는 예루살렘은 조화보다는 갈등, 평화보다는 전쟁의 의미로 먼저 다가온다.

 

그래서 사라예보를 예루살렘이라고 하는 것은 아닐까? 사라예보도 다양한 종교와 민족이 공존하지만 사실 조화보다는 갈등, 평화보다는 전쟁으로 다가온다. 사라예보 역시 피 냄새가 난다. 보스니아 전쟁에서 유독 무슬림 보스니아인에 대한 인종 청소, 집단 학살이 집중되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종교적인 이유가 가장 컸을 것이다. 가재는 게 편이라고 서로 앙숙인 가톨릭과 정교회도 이슬람은 못 보겠다는 것일 게다. 역사적인 감정과 경험으로 보면 세르비아인들이 주도한 인종 청소와 집단 학살의 대상은 크로아티아인이었어야 한다. 왜냐하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크로아티아인들이 수십만 명의 세르비아인들을 잔혹하게 학살했기 때문이다.

 

수십 년 이웃으로, 친구로, 동료로 함께 했던 사람들이 어느 날 자신을 고문하고 학살하고 성폭행하는 사람으로 나타났듯이 사라예보의 서로 이웃하고 있는 성당, 교회, 모스크도 자꾸 그런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래서일 게다.

 

숙소 사장의 바람과는 달리 사라예보의 종교 건축물을 보면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사라예보에서는 성당이나 모스크 등의 종교 건축물을 제대로 보지 않았다. 종교가 종교로서의 의무를 망각하고 있는 곳에서 그깟 건물 따위를 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볼 생각도 볼 의욕도 없다.

 

 

 

다만 사라예보의 올드타운은 독특한 면이 있다.

 

동쪽으로 갈수록 높이가 낮은 오스만식 건물이 많고 서쪽으로 갈수록 유럽식 웅장한 석조건물이 많이 나온다. 아마도 올드타운이 동쪽에서부터 시작해 서쪽으로 확대되었나 보다. 따라서 동쪽으로 갈수록 오스만 제국 시기의 건물이 많고 서쪽으로 갈수록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건물이 많이 나오는 것이리라.

 

 

 

시내를 둘러보는데 간만에 날씨가 좋다.

 

그간 비 내리는 축축한 사라예보를 봤는데 맑은 날에 보니 무척이나 화려하다. 도시를 감싸는 산들도, 도시 한가운데를 흐르는 밀라츠카강(Miljacka River)과 도시의 풍경도 산책하기 정말 좋다.

 

이런 곳을 너무 대충 홅고 가는 것 같아 너무 아쉽다. 아쉬움이 큰 만큼 다시 올 가능성도 크다. 그때는 사라예보에 대한 공부도 열심히 해서 좀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아울러 보스니아의 진정한 평화도 기원한다.

 

 

 

! 난생 처음 우박을 봤다.

 

어느새 하늘이 심상치 않아서 서둘러 숙소에 돌아왔다. 샤워를 하고 나오는데 무언가 방 창문을 세차게 두드리는 것 같다. 내다봤더니 글쎄 우박이다. 굵기가 작은 것은 완두콩 크기에서 큰 것은 포도송이만한 것까지. 비에 섞여 내리고 있다. 창문을 살짝 열어 손으로 집어 보았다. 단단하다. 진짜 우박. 말로는 많이 들었지만 실제 보고 만져보는 것은 처음이다.

 

여름에 향해 한 걸음 성큼 들어가는 6월에 내리는 우박이다. 그것도 도시에 내리는. 34일 사라예보에서 별거를 다 본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