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민의 꿈, 보헤미안의 삶

세상의 모든 경계를 넘어 보다 자유로운 미래를 그린다

미얀마의 민주화와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기원하며...

세계 일주 여행/칠레(Chile)

D+354, 칠레 산티아고 2: 산티아고(Santiago)의 격렬했던 시위 흔적들(20191103)

경계넘기 2019. 11. 8. 09:45

 

어제의 산티아고는 우리에게 무척이나 평온하고 활기찬 도시로 기억되었다. 하지만 정작 산티아고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니 결렬하고 참혹했던 시위의 흔적들과 잔해들이 시내 곳곳에 산재해 있었다.

 

오늘 아침 식사를 하러가니 한국인 여행객 한 명이 더 와 있었다. 지금 나와 같이 여행하는 친구와 엘 찰텐(El Chaltén)에서 잠시 피츠로이(Fitz roy) 산행을 같이 했던 친구란다. 서로 연락이 되어서 오늘 이렇게 한 자리에 모이게 된 것이다. 다들 산티아고가 걱정이 되어서 서로들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던 것.

 

무료 시티투어가 이곳에도 있다고 해서 그곳으로 갔다. 센트로에서 조금 벗어난 광장 같은 곳이었는데 그곳에 가니 격렬했던 시위의 흔적들이 곳곳에 있었다.

 

거리 곳곳에 시위대들이 던졌을 것으로 보이는 돌들이 곳곳에 널려 있었고, 청소부들이 그 돌을 모아서 치우느라 고생을 하고 있었다. 바람이 불 때 마다 기침이 나오고 눈물이 나오는 것을 보니 최루가스를 뿌린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청소원들은 모두 두터운 마스크를 하고 있었다. 이게 몇 년 만에 느끼는 최루탄 맛인지.

 

그 중에서도 격렬했던 시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곳이 있었는데 바로 지하철 입구였다. 지하의 지하철 입구는 불에 타서 허물어져 있었고, 지하철 입구를 둘러싼 담들도 곳곳이 허물어져 있었다.

 

 

 

이번 시위의 도화선이 되었던 것이 지하철 요금 인상이어서 그런지 시위의 상징적 표적이 되었나 보다. 지하철역 옆의 버스 정류장도 간판이나 유리 등이 불에 타거나 박살이 나서 그저 철제 뼈대만 남아 있었다.

 

 

 

걸어오면서도 이런 시국에 무료 시티투어를 할 수 있을지가 궁금했는데 아니다 다를까 아무리 기다려도 가이드나 다른 여행객들은 오지 않았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이곳이 바로 산티아고에서 가장 격렬한 시위가 일어나고 있는 이탈리아 광장(Plaza Italia)으로도 불리는 바케다노 광장(Plaza Baquedano)이었다. 그 작살이 난 지하철역이 바케다노 지하철역(Baquedano Metro Station)이다. 매일 가장 격렬한 시위가 일어나는 곳에서 무료 시티투어를 한다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셀프 시내투어를 하기로 했다. 마침 새로 온 친구가 산티아고를 열심히 공부하고 와서 가이드 역할을 아주 훌륭히 했다. 더욱이 한국어 가이드라 설명도 쏙쏙.

 

먼저 간 곳은 대통령궁. 정확한 명칭은 Palacio de La Moneda. 칠레대학교 맞은편에 있는 곳이다. 대통령궁 근위병 교대식이 볼 만하다고 해서 오전 11시 시간에 맞추어서 서둘러서 갔으나 역시 시국이 시국인지라 하지는 않는다.

 

시위 초기에는 이곳에서 주로 시위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경찰들과 군인들이 철통 같이 경계를 하고 있어서 시위 장소를 옮긴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서 시위대들과 진압 경찰들이나 군인들과의 격렬한 대치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대통령을 찾아 가는 거리 곳곳에는 역시나 참혹하고 격렬했던 시위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거리의 상점이나 벽에 글이나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은 기본이고, 역시나 거리의 지하철역이나 버스정류장의 간판이나 벽 등은 불에 타거나 허물어져 있었다. 곳곳의 유리창과 문이 박살난 호텔도 보였고, 아예 한쪽 면이 불에 탄 호텔도 눈에 들어왔다.

 

 

 

유독 호텔들이 이렇게 시위대의 타격 대상이 된 이유는 정확히 모르지만 호텔이 가진 자들이나 신자유주의를 상징하는 곳이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호텔처럼 서민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도 없지 않은가! 고급호텔일수록 더욱.

 

 

 

한 대형마트도 전쟁터처럼 박살이 나 있는데 마트도 자본주의의 상징적 존재이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약탈이 있었던 곳이 아닌가 싶다.

 

 

 

칠레 대학 건물, 정확히 칠레 의과대학 건물 앞에는 동상들이 있는데 사람들이 열심히 동상을 닦고 있었다. 시위대들이 페인트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어제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들이다. 어제는 시위가 거의 없었던 곳으로만 다녔나 보다. 하긴 어제 주로 간 곳이 센트로 시장 주변이었으니 시장에서 무슨 반정부 시위를 하겠는가!

 

참혹한 시위의 현장을 보고 있자니 칠레 국민들이 가진, 빈부 즉 양극화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분노가 어떠한지를 분명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간 남미에서 가장 안정적인 경제성장과 사회제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었던 칠레에서 오히려 깊은 분노의 골이 패어져 있었다.

 

난 아르헨티나의 최남단 도시 우수아이아(Ushuaia)에서 칠레의 최남단 도시인 푼타 아레나스(Punta Arenas)로 들어갔다가 푸에르토 나탈레스(Puerto Natales)를 거쳐서 다시 아르헨티나로 넘어갔다. 그리고 아르헨티나 멘도사(Mendoza)라는 곳에서 이곳 산티아고로 다시 넘어왔다.

 

처음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에서 칠레의 푼타 아레나스로 갔을 때 칠레의 물가에 깜짝 놀랐었다.

 

흔히들 남미 여행의 대표적인 루트로 두 가지 방향을 든다. 하나가 한국여행객들이 주로 가는 반시계 방향의 루트다. 페루나 콜롬비아에서 시작해서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을 거치는 루트다. 다른 하나는 그 반대로 시계 방향, 즉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에서 시작해서 칠레, 볼리비아, 페루, 콜롬비아 등을 여행하는 루트다.

 

한국인들이 반시계 방향의 루트를 선호하는 이유는 한국에서 페루나 칠레로 들어가는 항공편이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로 가는 것보다 비교적 저렴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시계 방향은 유럽에서 들어오는 여행객들이 주로 하는 여행 루트다. 세계지도를 보면 그 이유를 금방 알 수 있다.

 

항공요금 외에 반시계 방향과 시계 방향의 여행 일정을 말할 때 자주 언급되는 것이 물가다. 반시계 방향은 물가가 가장 싼 나라에서 시작해서 점점 물가가 비싼 국가로 간다는 것이다. , 콜롬비아, 페루, 볼리비아 등은 무척이나 물가가 저렴한 국가들이고 여기서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로 갈수록 물가가 비싸진다는 것이다.

 

난 북아프리카의 모로코에서 브라질로 들어와서 남미여행을 시작하고 있으니 시계방향의 일정을 따라가고 있다. 그래서 가장 물가가 비싼 브라질에서 아르헨티나 그리고 칠레로 들어왔다. 브라질의 물가는 비쌌다. 아르헨티나로 왔을 때 아르헨티나의 물가도 싸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브라질 보다는 저렴했다. 그래서 칠레로 들어왔을 때 칠레는 아르헨티나보다는 저렴하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칠레의 물가는 브라질의 물가를 뛰어 넘은 것으로 보였다. 특히, 마트물가 즉 생활물가는 거의 한국의 생활물가와 다름없었다. 내가 주로 먹는 맥주나 생수의 가격은 오히려 한국보다 비쌌다. 사과나 바나나를 좀 샀는데 주먹만한 사과 네 개에 거의 25백 원을 지불했고, 작은 바나나 대여섯 개 묶인 것도 2천 원을 훌쩍 넘었다.

 

와인이나 소고기는 당황스러웠다. 아르헨티나가 너무 저렴한 것인지 소고기는 기본 아르헨티나의 2배였고, 저렴하다는 와인 역시도 가장 싼 와인들 기준으로 아르헨티나의 2~3배 가격을 형성하고 있었다.

 

마트를 나와서 거리의 식당을 들어가 보았다. 그 가격에 놀랐다. 웬만한 로컬식당에 들어가도 대충 우리 돈으로 돈 만 원 이상은 주어야 그나마 햄버거라도 먹을 수 있었다. 칠레에서 처음 간 두 도시가 파타고니아 즉, 남미의 주된 여행지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직전에 갔었던 아르헨티나의 우수아이아도 파타고니의의 최남단 도시로 대표적인 관광도시였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그리고 전국체인을 가지고 있는 대형마트의 가격은 아무리 지역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하더라도 그 폭이 결코 클 수가 없다.

 

형이라 통화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니 형이 대뜸 물었다.

그럼 칠레인들은 도대체 어떻게 생활을 하는 거냐?”

난들 알겠어. 하지만 죽어나겠지

 

칠레 물가에 놀라서 푼타 아레나스 숙소에서 칠레의 1인당 국민소득을 확인했었다. 혹시 내가 칠레의 경제수준을 잘못 알고 있었나 싶어서다. 확인한 1인당 국민소득은 예상과 다르지 않았다. 비록 우루과이와 함께 남미에서 가장 높은 국가이기는 했지만 16천 달러(2018년 기준) 정도로 우리의 절반 수준이었다. 여기에 칠레의 양극화가 극심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서민들은 그보다 훨씬 적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런데 마트에서 보여주는 생활물가는 일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의 우리와 비슷하다. 3만 달러인 우리도 물가 때문에 힘이 드는데 칠레 서민들은 어떠했을까?

 

이번 시위의 도화선이 되었던 산티아고의 지하철 요금도 결코 저렴하다고 말할 수 없다. 산티아고의 지하철 요금은 시간대마다 달랐는데 러시아워 기준으로 800 페소였다. 800페소면 지금 환율로 대략 우리 돈 1,350원이다. 여기는 거리에 따른 가격 차이가 없기 때문에 한 정거장만 가도 이 돈을 내야 한다. 서울 지하철 기본요금이 1,250원이니 서울보다 비싼 요금이다. 여기에 30 페소, 대략 50원 정도를 더 올리려고 했던 것이다.

 

내가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에서 칠레 푼타 아레나스로 넘어온 날이 1016일이고 칠레의 푸에르토 나탈레스에서 아르헨티나의 엘 칼라파테라는 곳으로 넘어간 날이 1020일이었다. 칠레에서 지하철 요금을 인상하기로 한 날이 1018일이고 그 직후 시위가 일어났기 때문에 내가 칠레의 물가에 놀라면서 대체 이런 물가 속에서 칠레 사람들은 어떻게 생활하는지 무척이나 궁금해 하고 있을 즈음에 산티아고에서는 그로 인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대통령궁을 구경하고는 산티아고의 전망을 볼 수 있다는 산타 루시아 공원(Santa Lucia Park)로 갔다. 도심에 있는 작은 산이었는데 한 20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정상이었다. 그곳에서 산티아고를 내려다 볼 수 있었는데 힘들게 올라간 것 치고는 산티아고 전경이 그다지 예쁘지는 않았다. 산티아고를 휘감고 있는 산들도 산티아고의 대기질이 안좋아서 뿌옇게 보였다.

 

저녁 7시쯤에는 일몰을 보기 위해서 중심지 근처에 있는 다른 산 위의 전망대에 갔다. 이름이 Parque Metropolitano de Santiago였는데 이곳은 거리가 있어서 우버를 이용했다. 우버를 타고 가는데 아침에 무료 시티투어를 기다렸던 광장, 즉 바케다노 광장에서 격렬한 시위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우리가 관심 있어 하니 우버 기사가 차를 세워준다. 무장 시위진압 차량이 달려가고 멀리서도 최루탄을 쏘는 모습이 보였다.

 

 

 

격렬한 시위는 바케다노 광장 주변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외 지역에서는 무척이나 평온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가이드님께서 차로 산 정상의 전망대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했으나 간발의 차이로 시간이 늦어서 차량은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걸어서 올라갔는데 꽤 힘들었다. 산은 시 중심가에 있는데 마치 서울의 남산과 비슷했다.

 

걸어 올라가느라 제대로 된 일몰은 놓쳤지만 정상에서 바라보는 산티아고의 야경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산티아고 자체의 전경이 그다지 좋지 않아서 훌륭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해가 진후 걸어 내려오니 장난이 아니다. 등산로는 가로등도 없을 뿐만 아니라 길도 제대로 알 수 없어서 무척이나 힘들었다. 남자 세 명도 조금 긴장했는데 홀로 왔거나 여자들만 가신다면 굳이 야경을 보려고 늦게까지 있으면 안 될 것 같다. 일단 이곳으로 올라오는 케이블카는 일찍 운행을 정지한다.

 

걸어서 도심의 숙소까지 왔는데 다행히 오는 길에는 시위가 없었다. 가끔 칠레국기를 들고 호루라기를 불어대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아마도 시위에 참여했다가 집으로 가는 사람들로 보였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