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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39, 칠레 푸에르토 나탈레스 3: 토레스 델 파인(Torres del Paine) 트래킹(20191019)

경계넘기 2019. 11. 8. 09:40

아침 7시에 트레스 델 파인에 가는 버스가 출발한다. 일찍 일어나서 조용히 숙소를 나섰다. 숙소에서 터미널까지의 거리가 걸어서 2~3분 거리라 너무 좋다.

 

7시 정각에 출발한 버스는 845분에 국립공원 입구에 도착했다. 아직은 비수기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지는 않다. 입장료까지 어제 터미널에서 미리 사둔 터라 그나마 줄도 설 필요가 없었다.

 

국립공원 입구에서 본격적인 트래킹 코스가 시작되는 곳까지 다시 셔틀 버스를 타야 한다. 7km의 거리라고 하는데 트래킹 코스도 편도 10km인지라 걸어서 갈 수가 없다. 셔틀의 왕복비용은 6,000 페소다. 달랑 15분 달리는 비용으로는 과하다 싶지만 칠레에 싼 게 없으니 그러려니 한다.

 

본격적인 트래킹이 시작하는 곳에서 시각을 보니 오전 910분이다. 여기서 목적지인 삼봉까지는 10km, 왕복 20km의 거리다. 편도라면 모르지만 왕복해야 하는 거리니 짧은 거리는 아니다. 트래킹 코스는 대체로 완만하지만 마지막 삼봉에 오르는 2km 정도가 깔딱 고개로 경사가 심하다고 한다. 여기만 무사히 올라가면 될 것으로 보인다.

 

날씨는 나쁘지 않았다. 물론 구름이 좀 많이 껴 있긴 하지만 버스를 타고 오면서도 삼봉이 훤히 보이는 날씨였다. 삼봉이 구름에 가려 전혀 보지 못하고 내려오는 경우도 많다고 하니 이 정도 날씨면 감사한 일이다.

 

초입의 길은 평탄했다. 높은 나무도 거의 없는 길이라 조금씩 올라갈수록 시야가 넓어지면서 경치가 좋아졌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를 걸으니 계곡 길이 나오고 저 아래로 깊은 계곡이 흐리고 앞으로는 멀리 설산이 보였다. 어느 블로그에서 이 길을 중국 윈난성의 호도협(虎跳峽)과 비슷하다고 했는데 이 계곡 길만은 호도협과 많이 닮았다. 이 계곡 길을 걸을 때는 바람도 많이 불어서 가끔 바람에 밀려 계곡 아래로 떨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두 시간 정도 걸으니 치레노 산장이 나왔다. 거기서 잠시 쉬었는데 찬바람이 엄청 불어서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치레노 산장에서부터는 삼봉이 보이는 정상까지는 쉬지 않고 한 번에 올라갔다. 대충 한 시간 반 정도 걸린 것 같다. 사실 치레노 산장에서 삼봉 직전의 깔딱 고개까지는 숲길을 가는데 한국의 일반 산길과 별반 다른 것이 없었다.

 

나머지 깔딱 고개도 쉬자 않고 한 번에 올랐는데 바위가 많다 뿐이지 쉬엄쉬엄 올라가니 그렇게 힘든지는 몰랐다.

 

1250분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에서 보는 삼봉의 경치는 좋았다. 삼봉 앞에는 설산의 눈이 녹아내린 물이 모여 만들어진 호수가 있어서 제법 운치를 준다. 호수 뒤로 바위로 된 세 봉우리가 마치 형제처럼 어깨를 맞대고 병풍처럼 호수를 감싸고 있다. 멀리 구름이 끼긴 했지만 삼봉은 구름에 가린 곳 없이 그 모습을 완연히 드러내 주었다. 나도 운이 나쁘지는 않나 보다.

 

너도 나도 삼봉을 배경으로 사진들을 찍느라 정신들이 없다. 나도 몇 장 찍고 바위 사이에 자리를 깔고 앉았다. 정상 부근이라 찬바람이 엄청 불어서 바위를 바람막이로 해서 앉은 것이다. 그곳에서 가져온 와인과 빵을 먹었다.

 

칠레에 보니 팩으로 된 와인이 많았다. 1리터, 2리터의 대용량도 있지만 500ml의 팩도 있었다. 그것을 보자마자 오늘 이곳에서 마시려고 팩을 하나 샀었다. 이번 트래킹에 마시려고 와인 한 팩과 맥주 한 캔을 담아왔다.

 

삼봉의 정상에서 무엇을 마실까 잠시 고민했지만 역시 이곳에서는 와인이었다. 운치도 더 있지만 찬바람이 불어대서 차가운 맥주 마실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도수가 좀 있어서 속에 들어가면 따뜻해질 것 같은 와인이 제격이다.

 

삼봉을 눈 시리게 보면서 와인을 마셨다. 이걸 보려고 세계를 돌아 여기까지 왔나 싶다. 홀짝홀짝 마셨는데 어느새 500ml 와인이 없어졌다. 1리터짜리로 사올 걸 그랬나 싶기도 하다.

 

슬슬 엉덩이를 들어본다. 다시 돌아갈 길이 10km. 다리도 많이 풀린 것 같으니 일찍 일어나서 천천히 내려가야 한다. 더욱이 난 왼쪽 무릎이 좋지 않아서 빨리 내려갈 수도 없다.

 

오후 150분 하산을 시작했다. 깔딱 고개를 내려가는데 무릎이 시려지는 것이 느껴진다. 올 것이 오는 것이다. 최대한 왼쪽 무릎을 안 굽히려 애쓰면서 쉬엄쉬엄 내려왔다.

 

치게노 산장에 도착해서는 산장에서 커피도 한 잔 사서 마셨다. 이런 경치에서 따뜻한 커피 한 잔 마셔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쉬엄쉬엄 내려와 트래킹이 시작하는 웰컴센터에 도착하니 오후 615분이다. 거기서 셔틀을 기다리면 가져온 맥주를 털어 마셨다. 시원하다. 정상에서 와인, 하산해서 맥주. 나쁘지 않는 조합이다.

 

7시에 국립공원 입구에서 버스를 타고 바로 푸에르토 나탈레스(Puerto Natales)로 돌아왔다.

 

결론적으로 토레스 델 파인을 평하자면 기대가 높은 만큼 실망도 크다고 토레스 델 파인 트래킹이 딱 그 꼴이다. 파타고니아(Patagonia)가 자랑하는 절경이라고 하던데, 많은 블로그에서 남미에 간다면 꼭 다시 가고 싶은 곳으로 많이들 꼽던데 난 왜 사기 당한 기분이 들까?

 

물론 W트래킹이나 O트래킹을 하지 않고, 삼봉까지의 1일 트래킹만 한 사람이 전체를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다. 그래서 1일 트래킹만을 한정해서 말한다면 들인 돈과 시간에 비해서 많이 실망스럽다는 것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런데 W트래킹을 한 사람들 중에서도 좋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뛰어나다고 말할 수 없다는 사람들도 있고, W트래킹 전 구간 중에서 삼봉 가는 길이 가장 경치가 좋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으로 봐서는 나만의 생각이나 느낌은 아닌 것 같다.

 

일단 하루 트래킹을 위한 비용을 계산해보자. 난 어제 버스와 입장료를 미리 구매했었는데 여기 푸에르토 나탈레스에서 토레스 델 파인 국립공원까지의 왕복 버스비가 15,000 페소, 그리고 국립공원 입장료가 21,000 페소다. 그리고 버스가 내린 곳에서 트래킹을 시작하는 곳까지 다시 셔틀을 타야하는데 달랑 15분 정도 달리는 그 셔틀 왕복 비용이 6.000 페소다. 결국 하루 트래킹을 하기 위해서 들인 비용은 전체 42,000 페소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대략 7만원이 넘는 돈이다.

 

여기에 푸에르토 나탈레스까지 온 비용이나 이곳에서의 체제 비용과 그 시간까지 계산한다면 비용은 더 많아진다. 그 돈과 시간을 들여 온 것 치고는 많이 실망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W트래킹이나 O트래킹을 할 것이 아니라면 굳이 올 필요는 없어 보인다.

 

저녁 10시가 다 되어서 숙소에 도착했는데 내일 또 이른 아침에 이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조심조심 짐을 챙겨 두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래도 간만에 한 제대로 된 트래킹이라 그런지 많이 힘들다. 무릎도 시끈거리고.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