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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일주 여행/칠레(Chile)

D+337, 칠레 푸에르토 나탈레스 1: 푼타 아레나스(Punta Arenas)에서 푸에르토 나탈레스(Puerto Natales)로, 수상한 칠레의 물가(20191017)

경계넘기 2019. 11. 8. 09:32

빈대 덕에 다시 잠을 설쳤다. 이번 숙소는 나름 깔끔했는데. 만실인 내 방에서 빈대 물린 것은 나뿐인 것으로 보인다. , 잘도 물린다.

 

아침에 숙소 근처에 있는 터미널로 가서 버스표를 샀다. 아침 9시 버스다. 어제 잠시 들려서 시간을 확인하니 버스는 많아서 굳이 예약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숙소에 돌아와서 체크아웃을 하는데 작은 해프닝이 생겼다. 이곳은 24시간 직원이 있는 곳임에도 아무리 벨을 누르고 불러 봐도 직원이 오질 않았다. 그렇다고 그냥 나올 수도 없었다. 어제 칠레 돈이 없어서 방값을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버스 시간은 다가오고 직원은 올 생각을 안 하고.

 

그냥 갈까, 돈을 놓고 갈까, 아니면 그냥 갔다가 나중에 계좌이체로 등 다양한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갈 무렵 우수아이아에서부터 같은 숙소, 같은 버스를 타고 온 친구가 나를 보더니 직원이 우리 방 침대에서 자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해준다. 같이 가서 그를 깨워주는데 이 직원 녀석 세상 모르고 자고 있었다. 이 친구가 영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직원을 대신해서 스페인어 통역까지 해준다. 그 친구 덕분에 무사히 버스를 탈 수 있었다.

 

터미널에 가니 한국인 단체 여행객이 있다. 아는 척은 하지 않았지만 반갑기는 하다. 이 먼 곳까지 단체 여행객이라니. 배낭여행객인 나에겐 그게 더 신기하다.

 

9시에 출발한 버스는 1230분에 푸에르토 나탈레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3시간 30, 한국이라면 서울에서 부산까지도 갈 수 있는 시간이지만 여기서 이 정도 시간은 그냥 시내버스 탄 기분이다. 10시간 이상은 되어야 버스 좀 탄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에서도 숙소는 터미널 바로 옆이다. 이동이 잦은 경우는 터미널 근처가 딱이다.

 

호스텔은 낡았지만 평 그대로 숙소 방에서 보는 경치가 아주 좋았다. 높은 건물이 없어서 낮은 언덕배기에 있는 숙소에서 저 멀리 설산과 호수 그리고 도시 경관이 모두 보였다.

 

슬슬 나가서 동네 구경을 해봤다. 도시라기보다는 작은 타운이었다. 우수아이아보다 작은. 푸에르토 나탈레스는 칠레 파타고니아의 자랑 토레스 델 파인 국립공원(Torres del Paine National Park)을 가기 위한 전초 기지로 작은 관광 타운이다. 물론 여기에서도 토레스 델 파인을 가려면 버스를 타고 1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를 가야 한다.

 

트래킹 코스가 유명한 토레스 델 파인 국립공원으로 가는 전초기지답게 타운 중심거리에는 여행사와 아웃도어 가게나 트래킹 장비 렌탈 가게들이 많았다. 도시 자체는 볼 것이 거의 없었다.

 

출출한 배를 좀 채워볼까 싶었는데 이곳의 식당 가격은 푼타 아레나스보다 더 살인적이다. , 하나 우리 돈 만 원 아래로는 찾기가 싶지 않다. 햄버거 하나가 기본 5~6천 페소부터 시작한다. 우리 돈으로 8천 원이 넘는 돈이다. 햄버거 전문점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그냥 동네 분식점 즉, 패스트푸드 식당의 가격이다.

 

비싼 것도 비싼 거지만 너무 얄밉다는 생각이 들어서 들어가기가 싫다. 뭘 믿고 칠레는 이리 물가가 비싼 것이지. 도대체 칠레 서민들은 어떻게 생활을 하는 것일까? 단순히 관광도시인 이곳만 그렇다면 이해를 하겠지만 앞선 푼타 아레나스에서도 물가가 비싸다. 생활물가인 마트 물가마저도.

 

너무 이해가 안 되어 숙소에 들어와서 칠레의 1인당 국민소득을 찾아보았다. 2017년 자료에 의하면 남미에서 우루과이와 함께 높은 소득을 자랑하지만 15천 달러 정도다. 올해 17천 달러 정도 된다고 하더라도 한국 1인당 국민소득의 반 정도에 불과하다.

 

물론 1인당 국민소득이 낮다고 해서 그곳 사람들의 삶이 퍽퍽할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만큼 물가가 저렴하다면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다. 문제는 칠레의 경우 마트물가마저도 한국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물가 구조다. 칠레의 통계가 잘못 되었든지 아니면 칠레 사회가 극심하게 왜곡되었든지. 만일 칠레 사회구조가 왜곡된 것이라면 서민들의 생활고는 장난이 아닐 것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칠레의 2배가 되는 나라에서 온 여행객도 함부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는 식당이 즐비한 곳에서 어떻게 살아간단 말인가!

 

가난한 배낭여행자에게는 더더욱 칠레의 물가는 살인적이다. 식당에 들어갈 엄두는 도저히 안 나서 거리를 배회하다가 샌드위치를 파는 푸드 트럭을 발견했다. 샌드위치 하나가 1,000~1,500 페소다. 그나마 본 저렴한 가격. 얼른 2개를 샀다.

 

칠레는 비닐봉투를 사용하지 않는다. 이곳도 마찬가지. 그냥 종이 케이스에 담아 주는데 들고 가기가 만만치 않다. 근처에 벤치나 공원도 보이지 않아서 그냥 걸으면서 먹었다. 날씨도 쌀쌀한데 걸으면서 소스가 뚝뚝 떨어지는 샌드위치를 먹고 있자니 가난한 배낭여행자의 신세가 처량하다. 그 와중에 눈치 없는 거리의 강아지가 샌드위치 좀 달라고 계속 쫓아온다.

 

어제, 오늘 칠레에서 먹은 것은 마트에서 산 컵라면 2개와 거리에서 파는 샌드위치 2개가 다다. 칠레에 정이 붙을 수가 없다.

 

숙소에 돌아오기 전에 마트에 들려서 먹거리를 좀 샀다. 그나마 푼타 아레나스의 마트에 있던 컵라면은 이곳에 없다. 하도 먹을 것이 없어서 바나나와 사과 등 과일을 좀 샀는데 과일마저도 한국 마트 수준이다. 주먹보다 작은 사과 4개에 우리 돈 2,500원 돈이 나왔고, 바나나 작은 거 대여섯 개 붙은 것이 2천 원 훌쩍 넘었다.

 

칠레를 빨리 먹어나는 것이 정답이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