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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일주 여행/칠레(Chile)

D+355, 칠레 산티아고 3: 시위 현장 그리고 지진(20191104)

경계넘기 2019. 11. 8. 12:02

 

시위도 할로윈 축제와 연이은 주말을 즐겼나 보다. 주말 내내 바케다노 광장(Plaza Baquedano)을 제외하면 시위도 거의 없었다. 내 숙소가 있는 산티아고의 중심 아르마스 광장(Palaza de Armas)은 다양한 거리 공연으로 주말 내내 시끄러웠지 시위의 자도 보기 어려웠다.

 

칠레의 시위가 잦아드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나의 무지한 착각이었다.

 

오전 11시쯤. 환전을 하러 아르메스 광장 주변을 걷고 있었다. 그런데 거리거리마다 플랭카드를 들고, 때론 북치고 냄비를 두드리는 시위대를 만날 수 있었다. 작은 시위대도 있었고 제법 긴 시위대도 있었지만 큰 규모의 시위대는 아니었다.

 

 

 

환전을 하고 마트를 들려오는데 아르마스 광장에 있는 대성당 뒤편 길로 많은 시위대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쫓아가서 보니 지금까지 돌아다니던 시위대들이 이곳으로 집결하는 것으로 보였다. 꼬리를 꼬리로 몰고 이곳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시위대가 모여 드는 곳은 어느 건물 앞의 작은 광장. 건물 위를 보니 글자가 쓰여 있는데 스페인어라 잘 모르겠지만 Justicia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영어의 Justice의 의미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곳은 법원이거나 관련 기관이 아닐까 싶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산티아고 법원(Palacio de los Tribunales de Justicia de Santiago)이 맞았다. 그리고 법원 앞 광장은 Plaza de la Justicia Montt-Varas. 법원 앞 광장은 그리 넓지는 않았는데 이 광장을 시위대가 계속 메우고 있었다.

 

 

 

시위는 평화시위였다. 플랭카드, 칠레국기를 들고 호루라기를 불거나 북을 두드리거나 냄비를 두드리는 시위대였다. 때론 각 산업체를 대표하는 유니폼을 입은 시위대들도 있었다. 노래를 부르거나 구호를 외치는 정도의 평화로운 시위. 연령대도 직업도 무척이나 다양한 시위대였다.

 

 

 

그렇게 모인 시위대들은 그곳에서 집회를 열었다. 스페인어를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나로서는 무슨 내용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낮에는 그렇게 평화로웠던 시위대였지만 밤에는 좀 달라지는 것 같았다. 현장에는 있지 않았지만 내 숙소에서 시위대가 집결했던 법원 앞 광장까지는 겨우 2, 3백 미터 거리였다. 숙소에 있다 보니 저녁 늦게 그쪽에서 연기가 올라오기도 했다. 소방차도 그쪽으로 굉음을 내면서 달려가는 것도 보였다. 저녁 늦게까지 남은 시위대가 불을 피우는 등 조금 과격한 방향으로 갔나 보다.

 

나중에 기사를 보니 이곳 법원 앞에서는 평화시위였지만 바케다노 광장(Plaza Baquedano)에서는 격렬한 시위가 있었나 보다. 어제도 시위가 있었던 그곳에서는 역시나 경찰과 시위대가 격렬하게 부딪힌 모양이다. 한국 기사들에는 화염병에 맞아 몸에 불이 붙은 여자 경찰들의 사진도 보였다.

 

그러고 보면 칠레 산티아고의 시위는 참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 내 숙소 옆 법원 광장에서는 평화시위가, 그곳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떨어진 바케다노 광장에서는 시위대와 진압경찰이 화염병과 최루탄을 교환하는 격렬한 시위가 동시에 펼쳐지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도 그 중간에 있는 아르마스 광장에서는 여전히 다양한 거리공연들이 펼쳐지고 있었고, 그 사이 거리에는 많은 노점상들이 노점을 펼쳐 놓고 변함없이 장사를 하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서울을 예로 들어 말하자면 광화문 거리에서는 평화 시위가, 시청 앞 광장에서는 격렬한 시위가 그리고 그 중간 청계천 광장에서는 다양한 거리 공연이, 이어지는 청계천 길에는 수많은 노점상들이 노점을 펼쳐놓고 장사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조금 이해가 안 가는 시위 문화이다.

 

한국의 기사들은 대부분 바케다노 광장에서 일어난 격렬한 시위만을 다루고 있었다. 화염병과 최루탄, 돌멩이가 난무하는 격렬 시위가 자극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제목도 무척이나 자극적이다.

 

대규모 시위에 6.0 강진에전쟁터 방불케하는 칠레’”(SBS 뉴스, 20191106),

칠레 반정부 시위, 3주째.. 화염병·최루가스 '격화'”(머니투데이, 20191106),

불붙은 칠레 시위 진압 경찰”(동아일보, 20191106),

불붙고, 끌려가고 무정부 상황의 칠레..여기에 지진까지”(중앙일보, 20191105).

 

이 기사들만 보면 난 지금 전쟁터의 한 복판에 있다. 무정부 상태의 산티아고에 있다. 그러나 산티아고의 중심 아르마스 광장에 있는 난 오히려 광장 여기저기에서 울리는 거리공연 소리에 정신이 없다.

 

대부분의 기사들이 바케다노 광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격렬 시위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 이상의 시위대가 평화롭게 집회를 가진 법원 앞 시위를 다룬 기사는 거의 보기 힘들다. 어찌 되었건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 여기는 무정부 상태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위의 첫 기사제목에서도 나왔지만 오늘 난 산티아고에서 내 생애 처음으로 지진을 경험했다. 저녁 7시 조금 안 되었던 것 같다. 숙소의 방 침대에 잠시 누워 있었는데 갑자기 도미토리 방이 흔들리더니 누워 있던 2층 침대도 흔들리면서 움직였다. 지진 경험이 없었던 나는 처음에 옆에서 공사가 있나 싶었다. 하지만 웬만한 공사가 이렇게 흔들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지진임을 직감했다. 얼른 방을 나와 보니 다른 방에서도 사람들이 나와서 서로들 지진아니냐고 묻는다. 나도 그렇지만 두려움 보다는 모두 신나하는 표정들이다.

 

지진은 짧게 스치고 지나갔다. 20~30초 정도 흔들렸나 보다.

, 흥미롭고 버라이어티한 작금의 산티아고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