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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일주 여행/칠레(Chile)

D+357, 칠레 산티아고 5: 본의 아니게 산티아고(Santiago)가 내 남미여행의 중간 기착지가 되었다(20191106)

경계넘기 2019. 11. 8. 12:05

원래 내 남미여행의 중간 기착지는 이곳 산티아고에서 가장 가까운 아르헨티나의 도시, 멘도사(Mendoza)였다. 물가 저렴하고, 날씨 좋고, 특히 와인이 좋은 곳.

 

그랬는데, 산티아고에서 일어나고 있는, 어쩌면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될 수 있는, 작금의 정치적 상황이 나를 급하게 이곳으로 불렀다. 같이 여행하던 친구도 산티아고로 간다고 하고.

 

산티아고에 오긴 왔지만 이곳에 오래 머물 생각은 없었다. 역사적 현장을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위험한 곳에 오래 머물 수도 없었고, 개인적으로 대도시의 번잡함을 싫어할 뿐만 아니라 현재 남미에서 칠레의 물가가 가장 비싸기도 했다.

 

그랬는데, 같이 여행하던 친구도 먼저 보내고 이틀을 연장하더니만 오늘 이틀을 또 연장했다. 산티아고가 좋다기보다는 무언가 지금 내 여행을 잠시라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이곳을 지나면 다시 끊임없이 이동을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중간 기착지로서 산티아고 자체는 큰 매력은 없지만 산티아고 작금의 상황과 숙소는 나를 이곳에 머무르게 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일단, 계속되는 시위로 인해서 산티아고에 여행자들이 오지 않는 관계로 현재 숙소에 사람이 거의 없다. 10인실의 도미토리 방에 나를 포함 단 두 명뿐이다.

 

뿐만 아니라 호스텔 자체도 맘에 든다. 내 도미토리 방 바로 앞으로 넓은 테라스가 있는데 이곳에서 바로 보는 아르마스 광장(Plaza de Armas)의 풍경이 무척 좋기 때문이다. 한낮의 해가 잦아져 테라스에 그늘이 드리워질 무렵 테라스 테이블에 앉아서 선선한 바람과 함께 커피 한 잔 마시며 글을 쓰고 있노라면 내가 전망 좋은 고급 호텔에 와 있는 기분마저 든다.

 

저녁에는 저녁대로 야경도 훌륭하다. 전망대에서 본 산티아고 야경보다 솔직히 여기가 더 예쁜 것 같다.

 

호스텔에 사람마저 거의 없으니 이 테라스의 테이블은 내 고정자리가 되고 있다. 산티아고가 아니라 이 호스텔의 이 자리가 나를 이곳에 계속 붙들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넓은 테라스에는 나 혼자뿐이다. 저녁 7시가 훌쩍 넘은 시각이지만 해가 길어지고 있는 지금, 선선한 바람이 불면서 서편으로 기울어진 해는 아르마스 광장에는 그늘을, 주변의 건물들과 건물들 너머의 산에는 일몰의 햇볕이 반사되어 주황빛을 보이고 있다. 아름다운 산티아고 일몰이 그려지고 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커피와 함께 난 지금 이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러니 자꾸 연장을 할 수밖에. 산티아고의 시위가 나에게 주는 작은 선물 같다.

 

물가가 비싸서 식당은 가지 않는다. 어제 중앙시장 구경 갔다가 궁금해서 먹은 해물탕과 맥주 한 캔으로 8,500 페소를 지불했다. 해물탕이라 해봐야 작은 접시에 대합과 같은 조개류가 주였고 맛도 그저 그랬다.

 

대신 한국 마트에서 라면을 사서 먹고 있다. 물가가 비싸다 보니 상대적으로 한국 라면 가격이 싸다. 그래서 라면을 사서 열심히 끓여 먹고 있다. 신라면, 비빔라면, 지금은 짜장라면. 며칠 있으면서 한국 라면 실컷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 한 동안 라면 생각은 나지 않겠지.

 

어제 남미 카톡방에 대사관에서 오늘 큰 시위가 있을 거라며 주의를 당부했다. 오늘은 이곳 아르마스 광장에서 하루 종일 집회가 열리고 있다. 규모는 크지 않다. 규모가 커지거나 격렬해질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물론 바케다노 광장(Plaza Baquedano)은 다르겠지만, 어쨌든 현재 산티아고 센트로의 풍경은 지난 월요일보다 조용하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