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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일주 여행/에콰도르(Ecuador)

D+408, 에콰도르 바뇨스 12: 아무 것도 안한 바뇨스(Baños)(20191227)

경계넘기 2020. 1. 4. 07:43

 

내일 키토(Quito)로 가는데 생각해보니 바뇨스(Baños)에서 한 것이 없다.

! 하나 있다. ‘세상 끝 그네에 간 것.

 

바뇨스가 스페인어로 온천이라는 뜻. 그만큼 이곳에 온천이 많은 데도 불구하고 온천 한 번 가질 않았다.

 

변명을 대자면 나름 있다. 비가 계속 내렸기 때문이기도 하고, 온천은 지난번 세상 끝 그네에 갔다 오면서 도랑에 빠져 다친 상처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말 그대로 변명이다. 비가 하루 종일 오는 것도 아니고, 가려고만 하면 비옷을 입고라도 갈 수 있다. 며칠 전부터는 상처 난 곳도 대충 아물어서 물에 들어갈 정도는 되었다. 아니면 방수 밴드 붙이고 가도 되고.

 

 

 

진짜 이유는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디 가고 싶은 곳도, 딱히 보고 싶은 것도 없었다. 아무 것도 안하고 그냥 게으름을 피우고 싶었다.

 

길게 머물면서 쉬어 가기 좋은 곳은 갈 곳이 많고, 볼거리가 많은 곳이 아니다. 할거리가 없으면서도 자기에게 편한 곳이 쉬어 가기 정말 좋은 곳이다.

 

반면에 바뇨스는 할거리가 적지 않은 곳이다. 도시 자체는 작아서 할 것도, 볼 것도 거의 없지만 주변에는 갈 만한 곳이 많다. 트레킹 할 만한 곳도 있고. 특히 바뇨스는 저렴한 액티비티의 천국 아닌가!

 

 

 

그런데 처음 2~3일을 제외하고는 계속 내려준 비와 도랑에 빠져 난 상처가 핑계거리를 만들어 준 것이다. 죄책감도 많이 덜어 주고. 더욱이 비가 내리기 시작할 무렵에 옮긴 숙소는 좋은 전망을 가진, 편한 개인실이어서 어디 따로 갈 필요를 많이 느끼지 못했다.

 

덕분에 할거리가 많은 바뇨스임에도 불구하고 주로 숙소에서 뒹굴면서 나름 편하게 잘 쉬었다. 조금 더 머물고 싶지만 이 숙소가 내일부터 예약이 차서 더 이상 연장할 수가 없다.

 

 

 

여행이 1년이 넘으면서 열심히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는 것은 많이 지양하는 것 같다. 지쳐서 그런 것 같지는 않고. 동적인 것보다는 정적인 면으로 변하고 있는 것 같다. 여러 곳을 많이 다녔더니 조금 식상해진 면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여행의 여백과 여유를 더 가지고 싶어지는 것 같다고 할까.

 

앞으로의 일정도 남았지만 열심히 다니기 보다는 천천히 쉬엄쉬엄 다니고 싶다.

 

 

 

사실 이번 여행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다. 많은 곳을 다니는 것보다는 한, 두 군데라도 오래 머무르면서 찬찬히 들여다보고 싶고, 경험하자는 것.

 

그런데 세상은 넓고 갈 곳은 많은데 시간과 돈은 한정적이다 보니 어느새 마음이 조급해져서 초심을 잃어 버렸다. 여행이 말미로 넘어가면서 다시 그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바쁘게 돌아다닌 곳은 한 것, 본 것은 많은 것 같은데 생각해보면 남는 것이 없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