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민의 꿈, 보헤미안의 삶

세상의 모든 경계를 넘어 보다 자유로운 미래를 그린다

미얀마의 민주화와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기원하며...

세계 일주 여행/에콰도르(Ecuador)

D+412, 에콰도르 키토 4: 2019년 마지막 날 적도선(위도 00도 00분 00초) 위에 서다(20191231)

경계넘기 2020. 1. 5. 07:17

 

이번 여행에서 맞는 두 번째 새해. 첫 번째 새해는 라오스 루앙프라방(Louang phrabang)에서 맞이했었다. 그게 엊그제 같은데. 세계를 떠돌며 보낸 한해라 그런지 더욱 빠른 것 같다. 이제 햇수로는 3년째 여행이다.

 

이제 막 자정을 넘긴 시간, 그러니까 2019년에서 2020년으로 넘어온 시간 지금 밖은 폭죽 터트리는 소리로 무척이나 시끄럽다. 저녁 8시가 넘어서 혹시 신년 축제나 행사가 있을까 싶어서 중심가를 뱅뱅 돌아다녔을 때에는 썰렁하기만 하더니만, 이 폭죽은 어디서 터트리는 것인지. 다시 나가보고 싶지만 귀찮다. 집 옥상들에서 터트리겠지......

 

2019년은 오롯이 해외에서 여행을 하면서 보냈다면 오는 2020년에는 여행을 마무리하고 다시 한국으로 들어가야 한다. 과연 여행을 마치고 난 어떤 모습으로 한국으로 돌아갈까? 여행을 떠나기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은 시간뿐인 것 같아서 안타까울 뿐이다.

 

2019년의 마지막 날, 난 적도선 위에 있었다. 수없이 들어왔던 적도지만 막상 그 선 위에 내가 서 보니 그냥 선이었다. 그 선을 한 발짝 넘나들을 때마다 내가 선 자리의 반구가 바뀐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질 않는다. 선을 한 발짝 넘으면 내가 살아 온 북반구가 되고, 다시 선을 한 발짝 넘어오면 내가 지금 있는 남반구가 된다는 사실이.

 

 

 

적도선이 그냥 서울이나 경기도와 같은 행정구역처럼 마치 인간이 작위적으로 그어 놓은 선처럼 생각되었다. 그런데 가이드가 보여준 한 가지 실험으로 그런 생각은 사라졌다. 많이들은 이야기지만 막상 눈앞에서 일어나니 신기했다.

 

가이드가 한 실험은 배수구로 흘러 들어가는 물의 소용돌이 방향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바닥에 배수 구멍이 있는 물통에 물을 붓고 그 위에 나뭇잎을 띄어 놓은 다음 배수구를 여는 실험이다. 나뭇잎은 물의 소용돌이 방향을 명확하게 보여주기 위함이다.

 

적도 선 위에서 물은 소용돌이 없이 바로 배수구로 빠져 나갔다. 하지만 선에서 두어 걸음 떨어진 남반구 쪽에서 물은 시계 방향으로 소용돌이치며 빠져 나갔고, 다시 선을 건너 몇 발짝 떨어진 북반구 쪽에서는 반시계 방향으로 소용돌이쳤다. 단지 선을 좀 넘었을 뿐이다.

 

 

적도선 상, 소용돌이가 없다
남반구, 시계방향으로 소용돌이가 인다
북반구, 반시계 방향으로 소용돌이가 인다

 

그 외에도 적도선 위에서 눈 감고 걷기, 달걀 세우기 등의 실험을 했다.

 

 

 

선 하나를 넘어 자연현상이 확 바뀌는 것을 보고 있으니 이 적도선이 결코 인위적인 선이 아님이 확 실감난다. 지금 밟고 있는 선의 의미가 확 달라지는 순간이었다.

 

이 선을 넘으면 계절도 반대가 된다. 지금 선을 넘어 북반구로 가면 겨울인 것이고 다시 선을 넘어 남반구로 오면 여름인 것이다. 오늘 적도선을 수십 번 넘나들었으니 오늘 하루에만 겨울과 여름을 수십 번 오간 셈이다. 평생 동안 단 번도 적도를 넘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수두룩한 세상에서 오늘 난 그렇게 남반구와 북반구를 넘나들었다.

 

적도선에 서 있으니 인생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보이지 않는 어느 선을 넘으면 우리의 삶도 확 달라지지 않을까 하고. 그 선이 무엇이고,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 선을 찾아 가는 것이 인생이고 여행이 아닐까도 생각한다. 어차피 적도도 눈에는 보이지 않으니까!

 

그걸 인생의 전환선이라고 부른다면 인생의 전환선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어쩌면 포기하는 순간마다 바로 우리 옆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한 가지는 분명할 게다. 자연의 적도선은 멀리 와야 하지만 인간의 전환선은 항상 가까이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마치 파랑새처럼. 그저 우리가 보지 못할 뿐이리라.

 

브라질 리우데 자네이로(Rio de Janeiro)에서 인간이 사는 가장 남단의 도시 우수아이아(Ushuaia)로 내려갔다가 다시 육로로 이곳 적도까지 올라왔다. 남북으로 늘어진 남미 대륙은 참 길고도 멀었다.

 

이제 다음 목적지인 콜롬비아부터는 다시 북반구로 들어선다. 이 적도선을 넘어가는 것이다.

 

이 적도선은 키토 시내에서 북쪽으로 20km 정도 떨어져 있다. 그 말은 아직까지는 내가 남반구에 있다는 사실이다.

 

에콰도르(Ecuador)라는 국명 자체가 스페인어로 적도라는 말이란다. , 에콰도르는 적도의 나라’. 이 적도의 나라에서 크리스마스도 새해도 맞는다.

 

반전이 있다면 여기가 적도 한가운데에, 더욱이 여름이 한창인 남반구임에도 불구하고 에콰도르에서 난 무지 시원하게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내가 거쳐 온 도시들이 모두 고산지대이기 때문이다. 이곳 키토만 해도 무려 해발 2,820m이니 우리나라의 최고봉 백두산보다 훨씬 높다. 쿠엥카(Cuenca)2,596m, 바뇨스(Baños)가 그나마 낮아서 1,820m이다. 그래도 1,708m의 설악산보다 높다.

 

한여름에도 설악산 소청 산장에서는 아침저녁으로 서늘함을 느끼는데 무려 2,820m나 되는 키토는 어떻겠는가! 그나마 춥지 않은 이유는 이곳이 바로 적도이기 때문이리라.

 

적도 박물관은 2개가 있다. ‘세계의 가운데(Middle of the World)’라는 뜻을 가진 미타드 델 문도(Mitad Del mundo)라는 잘 꾸며진 박물관이 있는데 사실 이곳은 정확히 적도가 지나는 곳이 아니라고 한다. 오랜 전에 프랑스 학자들이 이곳에 적도가 지나간다고 해서 기념탑을 세웠는데 현대 GPS 기술로 다시 측정해 보니 진짜 적도선은 그곳에서 220m 떨어진 곳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곳엔 이미 오랜 옛날 원주민들이 태양을 섬겼던 유적지가 있었다고 한다.

 

 

적도탑, 그런데 이곳이 아니다

 

그곳에 다시 작은 적도박물관이 지어졌는데 이름이 Intiñan Solar Museum이다. 이곳이 진짜 적도선이 지나는 적도 박물관인 셈인데, 전자에 비해 무척이나 초라하고 찾아가기도 어렵다. 물론 난 후자로 갔다.

 

 

Intiñan 적도 박물관

 

적도 박물관에서 나와서 천사상이 있는 엘파네시오 산(Loma el Pancecillo)으로 가는 버스가 있어서 바로 그곳으로 갔다. 천사상보다는 엘파네시오 산에서 내려다보는 키토의 전망이 좋은 곳이었다. 하지만 비가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해서 일찍 하산을 했다.

 

 

버스를 타고 내려오다가 엘파네시오 산 중턱에서 내렸다. 그곳에 웬 수도원 같은 곳이 보여서 보고 가려고 내린 것인데, 사실 이 엘파네시오 언덕길은 키토의 빈민가로 위험해서 절대 걸어서 가지 말라는 곳이다.

 

 

 

위험한 곳을 좀 벗어났다고 생각해서 내린 것인데 중간 중간 카메라를 꺼내서 사진을 찍는데 지나가던 한 젊은 현지인 여자 분이 내 카메라를 가리키며 가방에 넣으라는 손짓을 하신다. 물론 말로도 했는데 내가 스페인어를 못 알아들어서. 지나가던 현지인이 대뜸 위험하다고 카메라 집어넣으라는 말을 할 정도니 위험하긴 정말 위험한 동네인가 보다.

 

숙소가 있는 중심가에 가까워지니까 갑자기 비가 굵어지기 시작한다. 얼른 우비를 꺼내 입었다. 올해의 마지막 날 저녁 늦게까지 달리려고 했는데 비가 이렇게 오다니....

 

숙소에 들어와서 생각해 보니 아직까지 한 끼도 못했다. 빗속에 다시 나갈 엄두는 안 나고, 그냥 가지고 있는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그것도 한국 라면도 아니고 이곳 라면으로. 올해 마지막 날에 난 라면으로 첫 끼이자 마지막 끼니를 해결했다.

 

저녁에 비가 잠시 멈춘 사이 밖을 나가봤다. 보신각 타종과 같은 그런 새해맞이 행사나 축제 같은 것이 있을까 싶었는데, 웬걸 사람들도 거의 없고, 상점들마저 일찍 문을 닫아서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망할, 대체 폭죽은 어디서 터트리는 것일까?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