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민의 꿈, 보헤미안의 삶

세상의 모든 경계를 넘어 보다 자유로운 미래를 그린다

미얀마의 민주화와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기원하며...

세계 일주 여행/멕시코(Mexico )

D+462, 멕시코 멕시코시티 3: 멕시코 피라미드의 도시, 테오티우아칸(Teotihuacan)(20200219)

경계넘기 2020. 7. 22. 15:53

 

피라미드는 이집트에만 있는 줄 알았다.

 

아니다. 만주의 고구려 왕릉으로 알려진 장군총도 피라미드니 피라미드는 세계 곳곳에 있다. 돌을 쌓아 만든 적석총, 즉 돌무지무덤이 피라미드이기 때문이다.

 

말을 바꾸자. 거대한 규모의 피라미드는 이집트에만 있는 줄 알았다.

 

멕시코에 와서야 멕시코에도 피라미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이집트 피라미드와는 비교할 수 없는, 그저 작은 규모의 피라미드라 생각했다. 만주의 장군총 같은.

 

멕시코 피라미드의 도시, 테오티우아칸(Teotihuacan)에 가보고야 알았다. 거대한 규모의 피라미드가 이집트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고대도시 테오티우아칸과 현재의 멕시코시티(Mexico City)는 거리만 가깝지 전혀 다른 도시다. 도시를 건설한 시기와 종족이 모두 다르다. 멕시코시티가 1325년 아즈텍(Aztecs) 족이 건설했다면, 테오티우아칸은 그보다 훨씬 앞선 기원전 2세기 무렵부터 시작해 서기 7세기에서 8세기까지 지속한 도시다. 도시를 건설한 종족은 아직까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테오티우아칸은 멕시코시티에서 북동쪽으로 40km 정도 떨어져 있다.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현재는 멕시코시티를 방문한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유적지다.

 

멕시코시티에서 테오티우아칸에 가는 버스는 멕시코시티의 북부터미널에서 출발한다. 왕복 티켓을 끊었다가 돌아올 때도 같은 버스를 타고 오면 된다. 북부터미널에서 테오티우아칸까지는 1시간 정도 걸렸다.

 

유적지 입구를 통과해서 들어가면 눈앞에 돌로 쌓은 작은 성곽 같은 곳이 보인다. 평지에 쌓은 성으로 마치 해미읍성을 보는 기분이다. 돌담 위에 올라가서 보면 꽤 넓은 정사각형의 광장을 만들고 있었다. 돌담을 넘어 들어가면 맞은편 정면에 피라미드가 보인다. 크긴 하지만 이집트 피라미드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태양의 피라미드에서 본 모습

 

이집트 피라미드와 달리 멕시코의 피라미드는 석탑처럼 단이 있었다. 단의 높이는 일정하지만 위단으로 올라갈수록 너비는 좁아지면서 삼각형을 만들었다. 그리고 가운데는 계단을 만들어서 위로 올라갈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4단으로 이루어진 낮은 피라미드는 맨 위가 넓고 평평했다.

 

 

 

피라미드를 올라갔다. 4단의 피라미드를 올라가니 바로 뒤편에도 피라미드가 있다. 뒤편의 피라미드에는 계단과 기단에 용과 같은 형상의 돌상도 있었다. 사원 같아 보인다. 뒤의 피라미드는 올라갈 수 없었다.

 

 

 

이게 다인가? 역시 낚였구나 싶은 생각이 든 순간 저 멀리 거대한 규모의 피라미드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이건 맛보기였군!

 

좀 멀리 보인다 싶긴 했지만 정말 한참을 걸어야 했다. 맑은 하늘로부터 강렬한 햇살이 작렬하지만 평지에 건설된 피라미드 도시에는 햇살을 피해갈 그늘이 거의 없었다.

 

드디어 눈앞에 거대한 피라미드의 위용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집트 피라미드와 비교해서 규모 면에서도 손색이 없다. 정말 이집트에만 거대한 피라미드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멕시코에 오기 전에는 듣도 보도 못했는데 정말이지 나의 무지의 소치다.

 

 

 

작년 여름에 난 이집트 카이로의 기자 피라미드(Pyramids of Giza)에 있었다. 피라미드가 바로 보이는 숙소에서 1박도 했다. 숙소에서 바라보면 모래사막 위에 세 개의 피라미드가 나란히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대()피라미드(Great Pyramid of Giza). 해의 움직임에 따라 피라미드의 색깔이 달라졌다. 야간에는 조명의 색깔을 달리해서 만드는 피라미드 쇼도 봤다. 책과 방송에서만 봤던 그 피라미드들을 내 눈으로 직접 보면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 정도로 피라미드는 감동이었다.

 

그런데 지금 난 멕시코 피라미드의 위용에 압도당하고 있다. 생각지도 못했다. 크다 한들 얼마나 크겠냐 싶었다.

 

이 피라미드는 이곳 테오티우아칸에 있는 피라미드 중 가장 큰 피라미드다. 이름이 태양의 피라미드(Pyramid of the Sun)'. 태양의 피라미드가 이집트 기자 피라미드(Pyramids of Giza)의 대()피라미드보다 더 커 보였다. 아마도 이집트에서는 피라미드에 올라가 볼 수 없었던 반면에 테오티우아칸의 피라미드는 직접 그 꼭대기까지 올라가 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저 밑에서 바라만 보는 것과 직접 걸어서 올라가 보는 것은 확연히 달랐다. 마치 돌을 깎아 계단을 낸, 가파르고 높은 바위산을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아니면 호주 한가운데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단일 바위덩어리 울룰루(Uluru)에 오르는 느낌이랄까. 태양의 피라미드는 5단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정상까지 쉬지 않고 단숨에 올라가기는 쉽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단을 올라가면 단과 단 사이에 있는 평평한 곳에서 쉬었다.

 

 

 

나 역시 쉬었다. 쉬기만 한 것은 아니다. 피라미드의 4면을 한 바퀴 돌았다. 마치 탑 돌기를 하듯이. 면이 바뀔수록 보이는 풍경이 확 달라졌다. 마치 4면 입체의 파노라마 같다.

 

 

 

힘들게 올라간 꼭대기, 즉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압권이었다. 모든 세상이 내 발 아래 있는 것 같았다. 왜 권력자들이 이렇게 높고 거대한 건물을 만들려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멕시코의 피라미드가 더 커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북쪽으로 달의 피라미드가 그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나중에 확인해봤다. 이집트 기자의 대()피라미드는 바닥 한 변의 길이가 평균 230.4m, 멕시코 태양의 피라미드는 평균 225m라고 한다. 바닥 면적만으로는 대()피라미드와 태양의 피라미드가 거의 비슷하다. 다만, 높이에서 확연한 차이가 났다. ()피라미드는 147m인 반면에 태양의 피라미드는 66m. 여하튼 태양의 피라미드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피라미드라 한다.

 

그러나 직접 힘들게 올라가 본 태양의 피라미드가 주는 느낌은 밑에서만 올려다 볼 수 있었던 이집트의 대()피라미드를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태양의 피라미드를 내려오는데 아쉽다. 보온병에 커피나 맥주를 담아오는 것을 잊었다. 피라미드 정상에 펄썩 주저앉아서 커피나 맥주 한 잔 마셔주어야 하는데. 잘도 가지고 다녔는데 정작 이런 날에는 잊어버렸다.

 

태양의 피라미드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또 하나의 거대한 피라미드가 위용을 자랑한다. 주변에 일군의 피라미드들이 둘러싸고 있어서 더 위풍당당해 보인다. 달의 피라미드(Pyramid of the Moon).

 

태양의 피라미드에서 달의 피라미드를 가기 위해서는 양쪽으로 건축물들이 길게 늘어서 있는 죽은자의 거리(Avenue of the Dead)를 지나가야 한다. 정오의 태양이 뜨겁게 작렬 하는 그곳을 걷는데 무척이나 길었다. 확인해 보니 너비가 40m, 길이가 2.4km나 되었다. 햇살을 피할 나무나 처마 등은 없다.

 

여기가 왜 죽은자의 거리인지 모르겠다. 주변에 줄지어 서 있는 돌을 쌓아 만든 건물들은 제단이나 군대 벙커 같은 느낌이지, 무덤들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때 어쩌면 이 곳이 인신공양을 위해 끌려왔다, 시체가 되어 끌려갔던 수많은 인질들이 걸었던 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대 중미의 여러 부족들에게는 산사람의 심장을 제물로 바치는 인신공양의 풍습이 만연했다고 한다. 바로 이 피라미드의 도시를 만든, 중미의 고대문명인 아즈텍족(Aztec)이 대표적이다. 그들은 태양신을 믿었는데 살아 있는 사람의 심장을 매일 바치지 않으면 태양이 운행을 멈춘다고 믿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제물로 바쳐지는 인질은 매년 수백에서 수천 명에 이르렀고, 살아 있는 제물을 얻기 위해 주변 부족들과 전쟁을 했다고 한다.

 

살아있는 인질의 심장을 적출해서 제물로 바치는 곳이 바로 여기 피라미드였다고 한다. 즉 피라미드는 태양의 신께 살아 있는 사람의 심장을 바치는 제단이었던 것이다. 내가 방금 올라갔다 내려온 피라미드가 그곳일지 모른다. 이름조차도 태양의 피라미드아닌가!

 

아즈텍족이 벌였던 잔인한 인신공양의 모습은 멜 깁슨(Mel Gibson)이 감독한 영화 아포칼립토(Apocalypto)에서 적나라하게 그려지고 있다. 영화에서는 수많은 젊은 인질들이 겁에 질린 채 줄줄이 피라미드로 끌려올라가는 모습이 나온다. 피라미드 꼭대기에는 제단이 있고, 그 제단 위에는 방금 끌려온 인질이 산채로 묶여 심장을 적출당하고 있다. 적출한 심장을 손에 든 제사장은 아직도 뛰고 있는 심장을 제단 옆 화로에 던지고, 심장을 적출당해 죽은 사지는 바로 피라미드의 가파른 계단 아래로 굴려 떨어진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인신공양의 행렬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그렇게 제물이 된 그네들이 끌려가고 끌려왔던 길. 그래서 죽은자의 거리라는 이름이 붙여졌을 수도 있다.

 

생각하면 할수록 섬뜩하다.

 

한참을 걸어 달의 피라미드 앞에 다다랐다. 죽은자의 거리는 그곳에서 끝난다. 달의 피라미드를 올라가는 길은 태양의 피라미드보다는 쉬웠다. 낮고 또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달의 피라미드의 모습은 독특했다. 뒤에 7단으로 구성된 본체와 그 앞에 다시 5단의 작은 피라미드가 붙여진 모습이다. 본체의 7단도 전체적으로 같은 높이가 아니라 각 단이 엇갈리게 되어 있다. 올라갈 수 있는 곳은 전면에 있는 5단의 피라미드 정상까지고 그곳에서 연결되는 본체 피라미드는 올라갈 수 없었다.

 

 

 

비록 태양의 피라미드보다는 낮았지만 그곳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평지에 덩그러니 홀로 솟아 있는 태양의 피라미드와 확연히 달랐다. 뭐랄까? 더 신비롭고 웅장하다고 할까. 마치 영화 스타워즈(Star Wars)’에 나올 법한 다른 혹성, 다른 문명의 한 가운데로 들어선 느낌이다. 달의 피라미드를 중심으로 늘어선 알 수 없는 형이상학적인 도시의 구조와 건물들.

 

달의 피라미드 바로 앞으로는 거대한 사각형의 광장이 있다. 달의 피라미드를 중심에 두고, 그 좌우로 각각 6개의 4단 파리미드가 대칭을 이루며 사각형의 광장을 만들고 있다. 달의 피라미드 바로 앞에도 1단의 낮은 제단이 있고, 그 뒤 광장의 중앙에도 1단의 넓은 제단 또는 무대가 있다. 그 광장의 중앙으로부터 죽은자의 거리가 길게 곧게 뻗어 있다.

 

대칭으로 각이 딱딱 맞추어진 건축물들은 눈으로 봐서는 그 용도를 알 수 없지만, 이들 형이상학적인 건축물들 안과 지하에 거대한 문명도시가 숨어 있을 것만 같다. 인간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태양의 피라미드가 훨씬 크지만 이 고대도시 테오티우아칸에서 중심은 달의 피라미드로 보였다.

 

달의 피라미드를 내려와 주변에 있는 피라미드에 올라갔다. 달이나 태양의 파리미드에 비견할 수 없을 뿐이지 이들 피라미드 역시 규모는 크다. 헬기 착륙장처럼 정상부는 평평하다. 내 상식으론 제단이 아니고는 이 건물들을 설명할 수 없다.

 

 

 

돌아가는 길은 새로운 문명 세계에 들어 왔다 나가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햇살은 여전히 뜨겁고 그늘을 찾기 힘들었지만 이렇게 떠나는 것이 아쉬웠다. 이집트 기자의 피라미드처럼 이곳에서도 피라미드가 보이는 곳에 방을 얻어 하루라도 하염없이 바라보고 싶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려도 좋고.

 

커피 한 잔, 맥주 한 병이 생각나는 곳이었다. 그만큼 아쉬운 곳.

시간이 아니라 문명을 넘나든 날이었다.

 

테오티우아칸에서 하지 못한 것을 멕시코시티 숙소 옥상에서 한다. 중국집에서 뷔페로 저녁을 하고 숙소에 돌아오면서 편의점에서 커피 한 잔을 샀다. 옥상에 의자에 누워 커피를 마시며 음악을 듣는다. 그리고 해질녘의 멕시코시티를 보고 있다.

 

멕시코시티는 정말 역사적인 도시다.

그만큼 문화도 궁금해지는 도시이기도 하고.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