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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일주 여행/아르메니아(Armenia)

D+118, 아르메니아 예레반 13: 코르비랍(Khor Virap) 수도원에서 바라본 아라랏산(Mt. Ararat)(20190312)

경계넘기 2020. 8. 4. 18:01

 

 

코르비랍(Khor Virap) 수도원에서 바라본 아라랏산(Mt. Ararat)

 

 

예레반(Yerevan)에서는 어느 곳이든 아라랏산(Mt. Ararat)을 볼 수 있다.

 

예레반의 랜드마크인 캐스케이드(Cascade)에서도 물론인데, 캐스케이드와 예레반을 설계한 알렉산더 타마니안(Alexander Tamanyan)가 시 중심에서 아라랏산을 바라볼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한다. 그만큼 아르메니아인들에게 아라랏산은 우리네 백두산만큼이나 의미가 깊은, 성스러운 산이다.

 

아라랏산은 구약성경 창세기에서 노아의 방주가 닿았다는 바로 그 산이다. 성경 상에서는 지구상 가장 높은 산인 셈이다. 서기 300년 세계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한 아르메니아이고 보니 아라랏산은 성산(聖山)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역사의 아이러니가 이럴까?

 

기독교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아라랏산이 이슬람 국가인 터키의 영토 안에 있다. 수도 예레반에서도 날이 좋으면 손이 잡힐 듯 보이는 산이 터키 영토인 것이다. 아르메니아인들과 기독교인들에게는 마음 아픈 일일 수밖에 없다.

 

해발고도가 5,137m에 이르는 아라랏산은 터키에서도 가장 높은 산이다. 한여름에도 정상에는 만년설이 덮여 있다고 한다. 지금은 산의 대부분이 하얗게 눈으로 덮여 있다.

 

 

 

오늘은 아르메니아에서 아라랏산을 가장 가깝게 볼 수 있는 곳을 가려고 한다.

 

그곳은 아라랏산을 마주 보고 있는, 자그마한 동산 위에 있는 코르비랍(Khor Virap) 수도원이다. 수도원 자체도 의미가 있겠지만 그곳에서 바라보는 아라랏산의 풍경이 가장 가깝고 또한 일품이다. 코르비납은 예레반에서 남쪽으로 32km 정도 떨어져 있다. 거리상으로는 가까운데 대중교통이 그리 편하지는 않다.

 

블로그들과 론리 플래닛에 의하면 예레반 중앙역 뒤로 나가면 코르비납을 가는 마슐레카(marshruthk)가 있다고 한다. 오전 9, 11시 그리고 오후 2시에 출발하는 차가 있다고.

 

11시 버스를 탈 생각으로 10시쯤 숙소를 나섰다. 공화국 광장에서 지하철을 타고 2정거장만 가면 바로 중앙역이다.

 

 

지하철역

 

 

마슐레카가 있다는 기차역 뒤편 광장에 도착한다.

 

1030분쯤이다.  그런데 타려는 버스는 오전 11시에 없고 09:00, 14:00, 16:00에 있다고 기사 아저씨가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그러면서 택시를 이용해서 다녀오라고 호객을 한다. 코르비납에 더해 몇 군데 더 들려서 8,000드람이란다. 영 미덥지가 않아서 광장을 두어 번 둘러보는데 거짓말이 아닌지 버스가 없다. 아니 뭔 놈의 차가 가장 중요한 시간대에는 없고 아침 일찍 아니면 오후 늦게 있는 것인지 알다가다 모를 일이다. 혹시 이 시간대에는 관광객이 많으니 택시를 이용하게 하려고 택시업계와 담합을 한 것일까!

 

택시가 비싼 것은 아니다.

 

8,000드람이면 우리 돈으로 2만원 돈이다. 그 돈으로 코르비납과 한, 두 군데를 더 들린다니 과히 나쁘지는 않다. 내가 별 반응 없이 계속 광장을 서성이고 있으니 아저씨가 7,000드람에 가잖다. 그래도 별 반응이 없으니 5,000드람에 코르비납만은 갈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싸든 안 싸든 배낭여행자에게는 이상한 고집이 있다. 택시 타는 것은 좀 자존심이 상한다. 택시는 돈만 있으면 누구든 타고 어디든 갈 수 있는 것이니 배낭여행스럽지 않다는.

 

한참 고민을 해보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영어가 가능해 보이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한참을 서성이다가 멀리서 경찰 두 명이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아까 한 경찰에게는 물어봤는데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해서 전혀 도움이 되질 못했다. 이번엔 두 명이니 혹시 그중에 한 명은 가능할지도. 마지막으로 한 번 시도해 본다.

 

코르비납을 가려한다고 하니, 한 경찰이 영어로 답을 한다. 자기를 따라 오라고. 코르비납에 바로 가는 마슐레카는 지금 정말 없나 보다. 큰 버스들이 여러 대 서 있는 곳으로 가더니 한 기사와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는 이 버스를 타고 가서 기사가 내려주는 곳에서 코르비납까지 4, 5km 정도 걸어가면 된다고 말해준다. 날씨도 좋은데 4, 5km 정도 걷는 것은 나쁘지 않다. 지난번 게그하르트 갈 때는 그 이상을 걸었으니 말이다.

 

그 경찰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바로 버스에 올라탄다. 이게 바로 배낭여행자의 자세. 없으면 뚫어야지, 돈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여행은 재미가 없다.

 

 

 

버스는 12시 조금 넘어서 출발한다.

 

햇살 가득한 버스 안은 따뜻했고, 예레반 시내를 벗어나자 왼편 창밖으로 아라랏산이 차를 따라오고 있다. 맨 뒷자리에 앉았는데 로컬버스의 덜컹거리는 엔진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린다. 조금 잠이 들려고 할 무렵 지도를 보니 목적지 근처다. 내리려고 제스처를 취하니 나를 본 기사분이 다음 정거장이라는 제스처를 취해 주신다.

 

다음 정거장에서 내린다.

 

요금은 400드람. 요금도 아까 경찰 분이 나에게 말씀해 주었었다. 아르메니아 사람들, 특히 남자들은 겉으로는 무뚝뚝한 것 같은데 은근히 친절하게 잘 챙겨준다. 기사에게 인사를 하고 버스에 내리니 나 말고 한 가족들이 더 있다. 외국인 관광객들로 보이는데 자기들도 코르비납에 간다고 한다. 앞서 걸어가도록 난 좀 천천히 걷는다.

 

길은 넓은 평야 한가운데로 나있다. 길 옆으로 밭과 과수원이 펼쳐져 있고 저 멀리 눈 덮인 산들이 둘러싸고 있다조금 걸으니 마을이 나온다. 이곳이 코르비납 초입에 있는 마을 Pokr Vedi인 것 같다. 예레반에서 이곳으로 오는 버스가 있다고 하니 내려올 때는 이곳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타면 될 것 같다. 구글맵으로 확인을 하니 이곳에서 코리비납까지 한 4km 조금 넘게 걸어야 한다.

 

 

 

마을을 지나니 다시 밭과 과수원 사이의 도로다.

 

그곳부터는 멀리 언덕 위의 코르비납이 보인다. 봄은 봄이다. 곳곳에서 농부들이 농사 준비를 하고 있는데 우리가 논두렁에 불을 지르듯 이곳도 밭에 불을 지르고 있다. 해충을 죽이는 방법은 이곳이나 저곳이나 마찬가지다.

 

 

 

한참을 걸어가는데 갑자기 내 앞으로 허름한 자동차 하나가 서더니 코르비납에 가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했더니 타란다. 말로만 듣던 그런 친절이 나에게도! 그런데 아저씨 말이 이 차가 택시란다. 혹 내려올 때 택시가 필요하면 타고 가란다. 일종의 판촉. 하지만 그런들 어떠리! 여하간 2km 남짓 차를 타고 편하게 간다. 앞서 걸어갔던 가족들을 앞질러 간다. 그쪽은 4명이라 차에 태울 수가 없다.

 

코르비납 주차장에 내려서 작은 구릉 길을 올라갔다. 작은 구릉 중간에 코르비납 수도원이 있고 그 뒤로 좀 더 올라가면 정상이 나온다. 바로 정상으로 올라간다. 그곳에서 아라랏산을 볼 생각이다.

 

 

 

동산 정상에 서니 아라랏산이 바로 보인다.

 

비록 낮은 동산이지만 아라랏산과 동산 사이가 가리는 것이 없는 평지이기에 눈앞에 아라랏산이 그 모습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가시거리는 좀 나쁘지만 아라랏산 그 완연한 모습을 바로 보여준다. 그 뒤에 있는 작은 아라랏산은 구름에 조금 가려 있다.

 

 

 

정상 바위 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는다.

 

그리고 보온병에 담아온 커피를 꺼냈다. 지난번 세반 호수 때부터 보온병에 커피를 담아가지고 다니기 시작했다. 바위 위에 걸터앉아 커피를 마시며 아라랏산을 한없이 바라본다. 그 모습 하나하나 눈에 새기듯.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인 아라랏산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눈이 시려진다.

 

 

 

여기서 아라랏산은 한 20km 거리라고 한다.

 

걸어서도 반나절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인데 갈 수가 없다. 아래를 보고 있으니 동산 바로 아래 직선의 길이 보이고 그 옆으로 철조망이 보인다. 국경선인가 보다. 내 발 아래에서 한 500m 정도 떨어져 있으려나. 코르비납이 이렇게 국경선에서 가까웠던 것이다.

 

남북한 휴전선만큼의 긴장감은 없지만 아르메니아인들은 지척에 두고 있는 아라랏산을 갈 수가 없다. 바로 너머의 마을에는 터키인으로 살아가는 아르메니아인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내 앞에 펼쳐져 있는 정경은 평화롭고 아름답다.

 

그러나 현실은 그 사이를 보이지 않게 갈라놓고 있는 국경선의 철책처럼 냉철하고 차갑다. 보고 있노라니 여러 가지 생각들로 머리가 어지럽다. 이런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머리가 맑아져야 하는데....

 

한 시간 넘게 그러고 앉아 있었나 보다. 목동 두 분이 양떼들을 몰고 동산 앞을 지나간다. , 목가적 아니 성서적이다.

 

 

 

내가 걸어왔던 동산 뒷편의 풍경도 좋다.

물론 이곳은 아르메니아의 영토다.

 

지대가 높아 추웠던 세반 호수와 달리 이곳은 바람은 좀 불어도 따스하다. 햇살도 좋다. 한없이 그렇게 멍 때리며 있고 싶었지만, 돌아가는 차가 어떻게 될지 몰라서 서둘러 엉덩이를 뗀다.

 

 

 

이곳에 왔으니 코르비납 수도원은 봐주어야 한다.

 

수도원 자체에 특별한 것은 없다. 원체 게그하르트 수도원(Geghard Monastery)의 인상이 강렬해서 그럴 수도 있다. 다만 기독교적 의미를 갖는 아라랏산이니 만큼 이 수도원을 걸어서 아라랏산을 찍으면 더 운치가 있고, 의미도 강해진다.

 

하지만 정작 여기서는 수도원을 걸어서 아라랏산을 찍을 수 없다. 도저히 각이 나오질 않는다. 아마 그렇게 찍은 사진들은 조금 떨어진 다른 산에서 줌으로 당겨서 찍었을 것 같다.

 

 

 

오후 3시쯤 수도원을 내려온다.

 

걸어서 버스 타는 데까지 가려 하는데 한 할아버지 한 분이 모시는 택시가 맞은편에 선다. 낡은 택시를 모시는, 순박한 모습의 할아버지 기사의 손짓을 마냥 거절하기가 어렵다.

 

버스 타는 데까지 700드람에 왔다. 역시 Pokr Vedi 마을 입구에 있는 도로변에 버스 정류장이 있다. 할아버지 기사께서 손짓으로 길 건너 쪽을 가리키시고 다음에는 내 손목시계의 숫자를 가리키신다. 해석을 하면 요 앞 길 건너 버스 정류장에서 320분에 예레반 가는 버스가 온다는 것. 영어 한마디 안 되시는 분이지만 그렇게 우리는 중요한 이야기는 다 했다.

 

도로는 그늘 하나 없어서 작렬하는 태양빛을 그대로 받는다. 3월 초순의 햇살도 이리 강렬하니 한여름 햇살은 과히 상상이 안 간다. 320분에 온다는 버스는 감감 무소식. 그래도 걱정이 안 되는 것은 나 말고도 현지인 서너 분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혹시 몰라서 예레반을 외치니 고개를 끄덕거린다.

 

40분에야 버스가 온다.

버스를 가리키며 예레반을 외치니 다들 고개들을 끄덕거린다. 예레반 간다는 답이다. 정겹다.

 

아르메니아 남자들이 무뚝뚝하지만 속정이 깊다는 것이 여기서도 나온다. 빈자리가 없어서 서 있는데 내 옆에 같이 서 있던 친구가 갑자기 나를 살짝 치면서 뒷자리를 가리킨다. 금방 누가 내렸는지 자리가 비어 있다. 나보고 앉으라는 것이다. 앞쪽에 서 있는 여자 분도 있어서 괜찮다는 제스처를 주었다. 조금 더 가니 내 앞에 앉아 있던 친구가 내리려고 자리를 뜬다. 그때는 서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는지라 바로 앉았다. 그런데 내리는 줄 알았던 그 친구는 종점에서 나랑 같이 내렸다. 그냥 아무 말 않고 내리는 척하면서 나에게 자리를 양보해 준 것이다. 덕분에 편하게 예레반까지 왔는데,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다.

 

이래서 여행 중에는 로컬 버스를 타봐야 한다.

그래야 현지인들의 모습과 마음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다.

 

숙소에 새로운 사람이 왔다. 중년의 서양인인데 이 친구 저녁으로 고기 몇 덩어리를 삶아서 혼자 먹는다. 내 도미토리 방에서 누군가 기타 비슷한 것을 연주하며 노래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솜씨가 너무 좋아서 패트릭과 함께 방 안을 들여다봤다. 중년의 그 남자다. 연주 솜씨도 좋지만 노래도 일품이다.

 

지금 멋진 라이브 음악을 들으면서 글을 쓰고 있다. 예레반은 진짜 예술의 도시인가 보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