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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일주 여행/아르메니아(Armenia)

D+119, 아르메니아 예레반 14: 예레반(Yerevan)의 어느 일상(20190313)

경계넘기 2020. 8. 5. 10:19

 

 

예레반(Yerevan)의 어느 일상

 

 

한 며칠 근교와 시내를 빡세게 돌아다녔다니 힘들다.

 

힘든 것도 힘든 거지만 더 이상 돌아다니고 싶은 곳이 없다. 오늘 하루는 그냥 쉬기로 한다. 한 곳에 좀 오래 있으면 그냥 일상을 즐기고 싶어진다. 여행에서 일상이란 어디 새로운 곳을 찾아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주변을 즐기는 것이다. 소가 되새김질을 하듯 그렇게 여행지의 어느 곳을 나의 일상으로 만드는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한 달 살기 같은 것이 낯선 곳에서 나의 새로운 일상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다.

 

조식이 나오는 숙소에서는 오전 내내 늘어지게 자기가 쉽지 않다. 아침을 포기한다면 그럴 수 있겠지만 조식을 먹겠다면 아침을 먹고 다시 잠을 자야 한다. 하지만 막상 아침을 먹으려고 움직이다 보면 잠은 어느새 떨어져 나가고 없다.

 

늦은 아침을 그것도 천천히 먹는다.

잠은 이미 달아났다.

 

정오가 넘어서 산책을 나선다. 오페라 하우스를 거쳐서 캐스케이드(Cascade)를 다시 한 번 올라가 본다. 생각은 매일 아침 캐스케이드를 오르내리며 아침 운동을 하는 것이었는데 게으름을 피우다 보니 한 번도 그렇게 하지를 못했다. 예레반의 여행자 중에서 아침으로 캐스케이드의 계단을 오르내리며 아침 운동을 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특별함을 지극히 일상으로 만들 수 있었는데 무척이나 아쉽다.

 

처음 며칠은 매일 한 번씩은 꼭 왔던 곳인데 지금은 정말 간만에 왔다. ‘

 

 

 

오페라 하우스 맞은편 단골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하는데 패트릭이 들어온다.

 

패트릭이나 나나 이곳은 일상이 되었나 보다. 나를 발견한 패트릭이 내 옆자리에 왔다. 오늘은 좀 혼자 있고 싶은 생각도 없지 않아 있었는데 이렇게 다시 만난다.

 

 

 

점심을 먹고 가끔 가던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을 한다.

 

이 카페는 원두를 골라서 마실 수 있다. 인디아와 에티오피아 원두를 반반 섞어서 만든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인디아 원두는 패트릭이 에티오피아 원두는 내가 골랐다.

 

 

 

카페를 나와서는 항상 그렇듯 슈퍼에 가서 맥주 몇 병 사들고 숙소로 돌아간다.

 

 

내가 좋아하는 아르메니아 맥주
내가 좋아하는 아르메니아 맥주

 

아제르바이잔의 바쿠에서도 그렇고 이곳에서도 그렇고 간단히 술 한 잔 할 술집(pub)을 뚫지 못한 것이 아쉽다. 주변에 널렸는데도 이상하게 들어가지질 않는다. 혼자 청승맞게 술 마시는 것도 좀 그렇고, 낮에 돌아다니다 보면 피곤하기도 하고, 또 밤에 주로 글 작업을 하다 보니 더 안 가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어찌되었든 이런 일상이 여행에서 자주 있었으면 싶다. 새로운 곳을 가고, 새로운 것을 경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온전히 이 낯선 곳의 일상을 즐기고 싶다. 그게 진정한 여행이 아닐까. 어느 날 다시 나의 자리로 돌아가면 그곳에서의 일상은 일상이 아니라 진정한 특별함이었다는 것을 깨달을 터인데.

 

 

 

대체 그런 일상을 즐기려면 한 곳에 어느 정도 머물려야 하는 것일까?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번잡한 대도시일수록, 그곳이 한국이든 외국이든, 일상을 즐기려면 그만큼 더 오래 걸린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