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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73, 불가리아 소피아 2-2: 비오는 소피아에서 울리는 교황의 평화 메세지(20190506)

경계넘기 2020. 9. 14. 11:27

 

 

비오는 소피아(Sofia)에서 울리는 교황의 평화 메세지

 

 

러시아 성당을 나와서 걷는데 멀리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보인다.

 

그쪽으로 가는 길은 보행자도 통제한다. 우회해서 가는데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곳이 있다. 검문검색을 하는 폼이나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이곳에서 교황의 집회가 있나 보다. 오늘은 모든 교황의 일정이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일정이 남아 있나 보다. 하긴 그러니 경찰들이 계속 통제하고 있었겠지. 나도 들어가 본다. 여권 신분증이 없어도 그냥 몸 검색만 하면 된단다.

 

 

 

단상 근처의 한 돌계단 위에 올라선다.

 

한 시간 정도 기다렸을까 오후 630분쯤에 교황이 단상에 오르는 것이 보인다. 하얀 옷을 입은 교황은 멀리서도 바로 보인다. 내가 서 있는 곳에서 교황이 있는 곳까지는 한 30~40m 밖에 되지 않는다.

 

 

 

교황이 올 때쯤 해서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한다.

 

우산을 쓰긴 해도 자리를 피하는 사람은 없었다. 성가 소리와 함께 자리를 연단에 선 교황은 빗속에서 5분 정도의 설교를 했다. 나 역시 빗속에도 꿋꿋이 들었다. 설교는 라틴어로 하시는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다. 가끔 나오는 소피아라는 단어만이 들린다.

 

 

 

비가 오는 소피아에서 교황도 뵙는다.

 

비록 천주교 신자는 아니지만 가까운 곳에서 직접 교황을 보니 감개가 무량하다. 우리 시대를 이끄는 사람들 중에 한 분이 아니신가!

 

 

로마 가톨릭과 동방 정교회

 

 

동방 정교회의 사제단은 참석한 것 같지 않다.

지도자 몇 분만 참석한 것 같다.

 

기사에 의하면 교황의 불가리아 방문은 그리 환영을 못 받는다고 한다. 기독교 국가이긴 하지만 불가리아는 로마 가톨릭(Roman Catholic)이 아니라 동방 정교회(Eastern Orthodoxy)이기 때문이란다. 교황은 로마 가톨릭의 수장인 반면 불가리아는 대부분의 주민이 동방 정교회 신자이고 가톨릭은 0.6%에 불과하다고 한다.

 

원래 로마 가톨릭이나 동방 정교회나 하나의 기독교 교회였다. 로마의 분열 이후 서로마 제국의 로마를 중심으로 하는 서방 교회와 동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지금의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하는 동방 교회도 서로 반목과 갈등을 지속했다. 그러다 급기야 1054년에 서방 교회는 로마 가톨릭, 동방 교회는 동방 정교회로 갈라서고야 말았다. 로마 가톨릭의 수장은 교황 그리고 동방 정교회의 수장은 총대주교라 부른다.

 

교회의 반목과 분열의 배경에는 문화적 차이가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러니까 이탈리아 로마를 중심으로 하는 서방 교회는 당연히 라틴 문화권에 라틴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고, 소아시아 콘스탄티노플를 중심으로 하는 동방 교회 역시 그리스 문화권에 그리스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양 교회의 문화와 언어의 차이는 사고의 차이로 이어져 서로 독립적인 교리를 촉진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언어, 문화, 교리 등의 차이가 심해지면서 갈등과 반목도 높아지고 결국에는 갈라서게 된 것이다.

 

동방 정교회와 로마 가톨릭 간에 앙숙이 된 결정적 사건이 있었다.

 

부부가 이혼을 했다하더라도 앙숙이 아니라 친구처럼 지내는 경우도 많다. 하물며 같은 뿌리에서 나온 피붙이 형제라면 더욱 그렇다. 갈라서긴 했지만 얼마간의 관계를 이어가던 동방 정교회와 로마 가톨릭를 완전히 갈라서게 만든 결정적인 사건은 바로 제4차 십자군 원정이다. 로마 가톨릭의 교황 인노첸시오 3(Papa Innocenzo III)는 성지인 예루살렘의 탈환과 이슬람의 본거지인 이집트 공략을 위해 제4차 십자군 창설을 추진했다.

 

그런데 제4차 십자군이 향한 곳은 예루살렘도, 이집도도 아니고, 바로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었다. 1203년 콘스탄티노플을 침공한 제4차 십자군은 여성과 아이, 성직자를 가리지 않은 잔혹한 학살과 보물과 예술품에 대한 철저한 약탈 그리고 건축물에 대한 철저한 파괴를 자행했다. 1453년 이슬람 제국인 오스만이 이 도시를 함락시켰을 때에도 이렇게 잔혹하고 파괴적이지는 않았다고 하니 당시 십자군의 만행이 어떠했는지 짐작조차 어렵다. 십자군은 한 발 더 나아가 라틴 제국을 건설하고 이후 60년 동안 이곳을 지배했는데 로마 가톨릭 교황이 이를 승인했다.

 

330년에 건설되어 오랜 세월 이슬람 세력의 공격을 막아내며 기독교 세계를 지켜왔던 콘스탄티노플이 오히려 같은 기독교 세력에 의해 철저히 약탈당하고 파괴되었으니, 동방 정교회 입장에서는 뒤통수 맞은 정도가 아니라 제대로 칼을 맞은 사건이다. 8백 년 가까이 지난 2001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동방 정교회의 총대주교에게 로마 가톨릭이 저지른 제4차 십자군의 만행에 대하여 깊은 유감을 표명하였고,  8백 주년이 되는 2004년에는 양 교회가 화해를 했다고 하던데 지금도 여전히 동방 정교회와 로마 가톨릭은 사이가 안 좋은가 보다.

 

기사에 의하면 동방 정교회 측에서는 교황의 불가리아 방문을 자신들의 초청이 아니라 정부의 초청에 의한 것이라고 선을 긋고, 오늘 방문한 알렉산드르 네브스키 대성당에서도 교황이 그곳에서 어떤 종교적 의식도 할 수 없도록 했다고 한다. 아울러 내일 광장에서 교황 주관으로 열리는 기도회에서도 자신들의 사제단을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고 한다.깊이 파인 앙금이 사과 한 마디로 씻어낼 수 없는 것이긴 하나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를 넘어 원수마저도 사랑하라고 가르친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으면 싶다.

 

그나저나 이복형제인 이슬람과는 전쟁을 불사하고, 동복형제 간에도 이렇게 사이가 안 좋으니 대체 기독교는 누구의 말씀대로 사는 것일까?

 

개인적으로 종교도 정치적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한다. 그것도 아주 강력한. 정치적 이데올로기는 기본적으로 권력자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 집단의 단결을 강조한다. 이를 위한 가장 강력한 수단이 바로 배타성의 강조다. 나와 남, 친구와 적을 명확하게 구분시킬수록 내부의 결집력은 더 강화된다. 흑과 백, 천사와 악마의 이 단순한 이분법적 사고가 인간을 가장 미치게 만드는 사고 원리다.

 

역사적으로 배타성, 즉 이분법적 원리를 가장 잘 활용하는 집단이 바로 종교가 아닐까 싶다. 기독교와 이슬람, 기독교 안에서도 동방 정교회와 로마 가톨릭은 서로를 적, 또는 이단으로 돌림으로써 자신의 종교적 권력을 더 공고히 하고 있다. 나쁜 권력 집단이다.

 

그냥 사랑하면 안 될까!

 

 

 

 

난민에 보내는 평화 메세지

 

 

기사에 의하면 교황은 내일 소피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난민 캠프에도 들린다고 한다.

 

그곳에서 난민 유입을 막고 있는 나라들을 향해 난민을 받아 줄 것을 호소할 계획이라고 한다. 평화를 향한 교황의 호소가 이곳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울리고 있지만 그 결과에는 회의적이다.

 

불가리아만 하더라도 중동에서 터키를 거쳐 밀려오는 난민을 막기 위해 터키와 불가리아 국경지역을 철통같이 통제하고 있다. 인구가 훨씬 많고 잘 사는 나라인 독일이나 프랑스, 영국에서도 지금 중동에서 밀려드는 난민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인구가 겨우 7백만에 불구한 가난한 나라 불가리아가 국제 사회의 지원 없이 밀려드는 난민을 받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불가리아가 자국 국경선을 통제하는 데에는 여타 유럽 국가들과의 이해관계도 걸려 있다.

 

중동의 난민들이 육로를 통해 비교적 잘 사는 서유럽 국가들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터키와 이곳 불가리아를 거쳐야 한다. 터키와 불가리아 국경을 통과하면 루트도 다양해질 뿐만 아니라 사실상 유럽의 솅겐(Schengen) 조약국들로의 이동도 용이하다. 솅겐 조약국 간에는 국경 통제 없이 자유로이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일단 이곳에만 들어가면 난민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부유한 서유럽 여러 나라로 이동할 수 있다.

 

따라서 많은 난민들의 유입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유럽 국가들이 터키와 불가리아 정부에게 직간접적으로 국경 통제를 강력히 요청하고 있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이게 냉엄한 국제 사회의 현실이다.

 

빗속에 걸어오는 쌀쌀한 귀가 길이지만 마음만은 훈훈하다.

 

귀로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마음은 교황의 따뜻한 평화의 소리가 전해졌나 보다. 정치는 기적을 바랄 수 없지만 종교는 기적을 바랄 수 있다. 진정한 종교의 힘이 비오는 소피아에서 울리는 교황의 음성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면 싶다.

 

막강한 여권 파워를 가져서 국경 넘기가 식은 죽 먹기인 한국의 여행자가 목숨을 걸어야만 국경을 넘을 수 있는 사람들의 고통과 마음을 어찌 이해할 수 있을까! 그저 종교가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는 나의 생각이 진정 어리석고 치기어린 생각이기를 바랄 뿐이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