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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일주 여행/불가리아(Bulgaria)

D+175, 불가리아 소피아 4: 햇살 아래의 소피아(Sofia)(20190508)

경계넘기 2020. 10. 15. 11:00

 

 

햇살 아래의 소피아(Sofia)

 

 

오전에는 흐리더니 오후 들어 소피아(Sofia)에도 햇살이 들기 시작한다.

 

소피아에서 처음 보는 햇살이다. 소피아에 온 이래 흐리고 비 오는, 바람도 강하게 부는 추운 날의 연속이었다. 여기에 더해 소피아에 도착한 날이 마침 일요일이었고, 그 다음날도 휴일이어서 인적이 드문 소피아가 더욱 황량하고 칙칙하게 다가왔었다. 햇살이 반짝이는 평일 소피아의 모습은 생기롭고 활기차다. 이전의 칙칙하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소피아 시내 곳곳에는 푸른 공원이 많다.

 

시 중심가는 물론이고 시 외곽에도 넓고 푸른 공원이 곳곳에 있다. 도시가 공원을 담고 있는 것인지 공원이 도시를 담고 있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날씨가 맑으니 그간 흐리게 보이던, 소피아 시 남쪽으로 병풍처럼 펼쳐진 푸른 Vitosha 산이 선명하게 보인다. 봉우리는 여전히 눈에 덮여 있어서 설산이 소피아를 품고 있는 것 같다. 도시 근처에 이런 높은 산이라니.

 

 

 

소피아 시 중심가에서도 가장 중심이 되는 거리가 있다.

 

일직선으로 나 있는 꽤 널찍한 거리는 차량이 통제되는 보행자 거리로 양 편에는 카페와 레스토랑 그리고 상점들이 늘어서 있는 가장 화려한 거리다. 구글맵에서는 거리 이름이 ‘Vitosha’로 나온다.

 

이 거리는 소피아 중심을 남북으로 가르는데 햇살 좋은 하늘 아래에서 보니 북쪽으로는 St. Kyriaki Cathedral Church의 푸른 돔이 보이고 남쪽으로는 높은 Vitosha 산의 눈 덮인 봉우리가 바로 보인다. 그래서 거리의 이름도 그렇게 붙였나 보다. 산이 보이도록 계획한 거리였을 터인데 그간 흐리고 칙칙한 날씨로 인해서 매일 오면서도 제대로 보이지 안 않다.

 

 

 

Vitosha 거리를 걷는데 문득 Vitosha 산을 향해 걸어가 보고 싶어졌다.

 

마치 걸어서도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처럼 보이는 산이다. 남쪽으로 한참을 걷다보니 이름이 남쪽 공원(South Park)’인 공원이 나온다. 공원과 공원으로 연결되는 도심 남단의 맨 마지막 공원으로 지도상으로도 꽤 넓어 보인다. 이스탄불에서 소피아로 매일 도시만 걸었더니 산야가 그리워진다. 멀리 보이는 산에 가고 싶지만 그냥 넓은 공원을 걷는 것으로 만족하려 한다.

 

가까워 보이지만 꽤 걸었다. 공원은 넓고, 안에는 작은 호수며 작은 동산도 있다. 곳곳으로 산책길이 조성되어 있는데 낮이라 그런지 유모차를 끌고 나온 엄마들과 간혹 아빠들도 눈에 많이 띈다.

 

 

 

강아지, 아니 개를 끌고 나온 사람들도 많다.

 

이곳 사람들은 개 목줄을 거의 하지 않고 다니는데 개가 다들 송아지만해서 다가오면 위협감이 들 정도다. 커다란 개들이 푸른 풀밭을 장난치며 뛰어 다니는 모습은 자유롭고 평화롭다. , 나에게 오지만 않는다면.

 

우리네 강아지들은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은데 부럽기 그지없다. 하긴 강아지뿐인가 인간 아이들조차도 마음대로 뛰어놀 공간이 없다. 그나마 있는 공간은 자동차가 다 차지하고 있으니 생물이 무생물에 쫓겨나는 곳이 바로 도시의 모습이고 한국의 지금 모습이다.

 

 

 

공원이 특별히 아름답다거나 하지는 않다.

 

굳이 이 멀리까지 이 공원을 보려고 찾아올 필요는 없다. 도심에도 작지만 오히려 더 잘 꾸며진 공원이 많으니 말이다. 난 그저 도심을 조금 벗어나서 자연을 걷고 싶었던 것뿐이다. 공원을 한 바퀴 도는 데도 꽤 시간이 걸린다. 공원의 남쪽 끝으로 가니 Vitosha 산이 더 잘 보인다. 정말 푸른 산이다. 올라가고픈 산. 그간 코카서스(Caucasus)와 터키에서 나무가 별로 없는 황량한 산들을 많이 봐서 그런지 녹음이 우거진 푸른 산을 보니 반갑다. 산 아래에는 예쁜 지붕을 가진 작은 마을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평화롭고 예쁜 모습이다.

 

 

 

뚜벅이로 여행을 하다 보니 점점 오토바이나 차를 가지고 여행하는 사람들이 부러워진다.

 

차나 오토바이가 있다면 좀 더 가고 싶은 곳을 자유로이 갈 수 있을 텐데. 차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저 산까지 가서 그 언저리나마 걸을 수 있을 터다. 벌써 다음 세계여행의 계획이 생긴다. 다음에는 차나 오토바이를 가지고 여행을 하련다.

 

 


 

 

오늘은 소피아를 떠날 준비도 해야 한다.

 

이제야 겨우 화창한 소피아를 봤는데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아쉽다. 준비를 한다고 해서 무슨 거창한 것은 아니고 버스를 예약하러 터미널에 가야 한다. 버스든 기차든 비행기든 일단 표를 사면 더 이상 망설임은 사라진다.

 

터미널 가는 데 문제가 있다. 지금 난 소피아 시 남쪽에 와 있는데 버스 터미널은 시 북쪽에 있다. 도심을 관통해서 거의 7km를 걸어가야 한다. 잠시 버스나 트램을 탈까 하다가 그냥 걷는다. 귀찮다. 머리는 고민을 하고 있지만 이미 내 발은 걷고 있다. 날씨도 좋은데 쉬엄쉬엄 걷지 뭐. 힘들면 커피나 한 잔 하면서.

 

2~3일 둘러봤던 거리지만 흐린 날 보던 거리와 화창한 날 보는 거리의 풍경은 많이 다르다. 같은 거리, 같은 건물도 전혀 다른 느낌을 주기도 한다. 나름 다 특색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맑은 날 걷는 거리의 풍경이 좀 더 나은 것 같다.

 

 

 

버스 터미널에서 표를 사려니 머리가 아프다.

 

이곳도 한 곳에서 버스표를 일괄적으로 파는 것이 아니라 버스 회사별로 파는 방식이다. 각기 다른 버스 회사의 창구가 20여 개가 넘는다. 더욱이 영어가 되는 창구는 하나도 없다. 대체 다음 목적지인 벨리코 투르노보(Veliko Târnovo)에 가려면 어디서 사야하나?

 

인포메이션(Information) 창구가 보인다. 창구에 계신 직원 아주머니가 전화하느라 정신이 없다. 보아 하니 공적인 전화는 아닌 것 같고 사적인 전화 같다. 사람들이 많이 기다리는데도, 그걸 빤히 보면서도 전화하는데 왜들 귀찮게 하냐는 듯한 심드렁한 표정이다. 굴하지 않고 한참을 전화하고 나서야 응답을 한다. 그 응답은? 옆 버스 회사 창구 가서 물어보란다. 망할! 옆 버스 회사 창구에 갔더니 1, 2번 창구에 가면 된단다. 인포메이션 창구보다 훨씬 더 친절하게 잘 가르쳐 준다.

 

인포메이션 창구에 있는 직원 아주머니 모습은 이전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시간만 때우면 되었던 사회주의 시절의 습관이다. 예전엔 중국에서도 많이들 그랬는데 요새는 중국도 확 달라졌다. 특히 최근 10년 사이에. 자본주의의 물이 철저히 들었다.

 

느린 서비스는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마찬가지다. 기차표나 버스표 하나 파는 데도 하 세월이다. 한국처럼 빠른 서비스나 행정 처리를 하는 곳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빨리 빨리문화의 탁월한 장점이다.

 

창구에 가니 오늘 가는 버스도 있다. 굳이 예약을 하지 않아도 되나 보다. 하지만 난 금요일에 가야 하니 예약을 해야 한다. 어느 나라든 주말은 장담할 수 없다. 금요일 1030. 19 레프. 대충 13,000원 돈이다.

 

벨리코 투르노보는 다음 목적지인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Bucurest) 가는 길에 있는 불가리아의 작은 도시다.

 

작은 도시지만 역사적 유적도 있고 풍경도 아름답다고 해서 거쳐 가기로 한다. 다른 이유도 있다. 개인적으로 야간에 버스나 기차를 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야간 버스나 기차 자체가 싫다기보다는 이동하면서 보는 풍경 자체도 여행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야간에 움직이면 출발하는 곳과 도착하는 곳, 즉 점에서 점만 본다. 반면에 낮에 이동하면 가는 길의 풍경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선을 본다. 그 선을 조금 넓히면 면이 된다. 여행의 폭이 그만큼 넓어진다. 이번 여행에서 비행기보다는 최대한 육로로 이동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에게 여행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부쿠레슈티는 소피아에서 버스로 거의 10시간 가까이 걸리기 때문에 야간 이동이 불가피하다. 낮에 가는 차편이 있다고 하더라도 출발하는 곳에서는 아침 일찍 움직여야 하고 현지에는 저녁 늦게 도착할 가능성이 높으니 낯선 곳에 가는 경우라면 피하는 것이 좋다.

 

 


 

 

버스 터미널에서 돌아오는 길에 전에 봐둔 시장을 들린다.

 

제법 큰 시장이다. 딸기가 한창인지 곳곳에서 알 굵은 딸기를 판다. 시장 안이 딸기 냄새로 진동한다. 가격도 비싸 보이지 않는다. 사다가 먹고 싶은데 숙소에서 씻어야 하는 것이 귀찮아서 못내 손이 가질 않는다.

 

 

 

바람은 여전히 쌀쌀하지만 햇살은 강렬하다.

썬 크림을 바르지 않은 맨 얼굴이 따가울 정도다.

 

오늘도 변함없이 맥주 몇 캔 사들고 숙소로 향한다.

 

불가리아는 맥주가 저렴해서 좋다. 터키에서 비싼 맥주에 고민이 많았는데 이곳은 500미리 맥주 한 병이 천 원도 안 한다. 생수 가격보다 조금 비싼 정도. 물론 수입 맥주는 조금 비싸다. 하지만 이곳 불가리아까지 와서 다른 나라 맥주를 마실 의미는 없지 않은가! 한국 어디에서 불가리아 맥주를 마셔보겠나. 여기서라도 열심히 마셔 둔다.

 

술값이 싼 곳에 오면 맘이 편해진다. 그렇다고 많이 마시는 것은 아니지만, 가난한 배낭여행자에게는 하루에 한, 두 캔 먹는 술값도 비싼 곳에 가면 많이 망설여진다.

 

술값 싼 곳에서는 오래 있어야 하는데....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