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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일주 여행/불가리아(Bulgaria)

D+177, 불가리아 벨리코 투르노보 1: 불가리아의 아름다운 도시, 벨리코 투르노보 (20190510)

경계넘기 2020. 10. 16. 11:25

 

 

불가리아의 아름다운 도시, 벨리코 투르노보(Veliko Târnovo)

 

 

소피아(Sofia)를 떠난다.

 

한 나라의 수도를 이렇게 일찍 떠나다니 아직은 익숙하지가 않다. 수도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한 나라의 첫 도시라는 의미가 크다.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보니 새로운 나라에 들어가기에 앞서 그 나라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가지고 있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어디를 가야 하는지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새로운 나라에 들어가면 그 나라에 대한 정보도 얻고, 현지 적응도 해야 해서 첫 도시에서는 좀 길게 머무는 경우가 많다.

 

불가리아가 복잡하지 않은 면도 좀 있고, 그간 코카서스 국가들로부터 유럽 나라에 익숙해진 면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마음이 급하기 때문이다. 불가리아까지 포함하면 이제 겨우 12개 국가 여행했는데 6개월이 거의 다 지나가고 있다. 이렇게 여행하다가는 언제 여행을 마칠 수 있을지 까마득하다. 특히, 유럽은 나라도 많아서 지금처럼 한 나라에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면 유럽에서는 한도 없을 것 같다. 나의 여행에 계획이 없다는 것은 언제 끝날지도 모른다는 것. 1, 2년 그 이상도 될 수 있지만 반대로 내일 당장이라도 한국에 들어가야 할 수도 있다.

 

전전반측(輾轉反側).

 

어제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았다. 이런 저런 생각만 가득. 덕분에 저녁 내내 비 내리는 소리를 들었다. 보통은 빗소리를 들으면 잠이 잘 오는데. 다행히 아침에는 비가 멎었다. 터미널까지 30분 가까이를 걸어가야 하는 지라 비가 올까 내심 걱정했는데.

 

터미널까지 걸어가는 길은 상쾌하다.

 

출근 길 소피아 시민들의 모습도 보고. 이 길을 올 때도 걸었었는데 완전 딴판이다. 그때는 일요일 오전이라 사람들도 거의 없고, 상점들도 거의 문을 닫아서 황량하게 느꼈었다. 그런데 사람과 차가 다니고, 상점이 열리니 다른 길을 걷는 기분이다.

 

1030분 버스를 타고 소피아를 떠난다.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하자마자 잠이 오기 시작한다. 어제 한숨도 잠을 못 잤기 때문이리라. 잠을 쫓느라 무던히도 노력하고 있다. 버스에서 보는 풍경도 중요한 여행이기에.

 

창밖의 풍경이 예쁘다. 소피아에서 목적지인 벨리코 투르노보(Veliko Târnovo)로 가는 길에는 산이 참 많다. 넓은 평지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산들은 우리나라 강원도 같은 높고 험한 산은 아니다. 대체로 낮고 능선이 부드러운 산이다. 이런 산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산과 산 사이의 좁은 평지에는 목초지와 밀밭이 나오고, 간간히 노란 유채밭이 펼쳐지기도 한다. 그 사이사이로 빨간 지붕을 가진 작은 마을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졸다 구경하다를 반복하는 사이 어느새 버스는 목적지에 도착한다.

 

도착 시간이 오후 140. 3시간 10분 걸렸다. 대충 소피아(Sofia)에서 이곳까지는 3시간 거리인가 보다. 지도를 보니 터미널에서 숙소까지는 2km가 조금 넘는 거리다. 마찬가지로 걷기로 한다. 힘은 들지만 걸으면서 도착지의 풍경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버스 터미널은 벨리코 투르노보의 신시가지와 구시가지의 중간에 있나 보다. 터미널에 막 내렸을 때는 그다지 옛 도시 같다는 느낌이 없었는데 조금 걷다보니 오래된 구시가지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조금 더 걸으니 건물 사이사이로 얀트라(Yantra)강이 보인다. 내가 지금 걷고 있는 길이 강의 깊은 협곡 위에 있음을 알겠다.

 

구시가지는 얀트라 강의 협곡을 따라 형성되어 있다.

 

벨리코 투르노보가 얀트라강의 깊은 협곡 위 경사면에 만들어진 도시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경사면에 계단식으로 만들어진 구시가지를 보고 있자니 신기하기도 하고 앙증맞기도 하다.

 

 

 

숙소는 막바지에 한참을 내려가야 나온다. 숙소 바로 앞이 바로 얀트라강이다. 협곡 위에서 강가로 내려온 셈이다. 숙소 안에서는 나무와 집들에 가려서 강이 보이진 않지만 강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숙소 앞으로 녹음이 우거진 산도 있다. 강과 산이 가까운 숙소다. 강과 가까운 숙소는 라오스 루앙프라방(Louang phrabang) 이후 처음인 것 같다. 루앙프라방의 메콩 강은 유유히 흐리는 큰 강이라 강물 흐르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는데 얀트라강은 크지 않고 상류지역이라 그런지 소리가 들린다.

 

샤워하고 짐을 정리한 후에 동네 한 바퀴를 해 본다.

 

시가지는 터미널에서 걸어오면서 봤으니 숙소 근처의 강과 차레베츠 요새(Tsarevets Fortress) 주변을 둘러보기로 한다. 숙소의 위치가 참 좋다. 터미널에서는 조금 멀어도 도시의 최대 볼거리인 차레베츠 요새는 5분 거리도 안 되고 강은 바로 앞이고.

 

요새는 내일 들어갈 생각이니 주변을 둘러본다.

 

요새가 높은 곳에 있다 보니 그곳에서 도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도시를 둘러싼 자연의 풍광이 너무 예쁘다. 푸른 녹음 속에 강이 흐리고 빨간 지붕을 가진 도시가 있다.

 

얀트라 강이 S자를 그리면서 깊은 협곡을 만들고 그 협곡들 경사면에 마을이 들어서서 도시를 이루고 있다. 우리네 강원도 영월의 한반도의 모습을 그리며 굽이쳐 흐리는 동강의 모습을 그리면 된다. 그 굽이굽이 협곡 사이의 비탈진 면에 빨간 지붕을 가진 집들이 계단식으로 층층을 이루면 줄줄이 들어서 있다.

 

 

 

이 도시의 최대 볼거리인 차레베츠 요새는 강이 만든 협곡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삼면은 강으로 둘러싸인 절벽을 이루고, 한 면만이 좁게 연결되어 있는 천혜의 요새다. 성의 가장 가운데 높은 곳에는 푸른 지붕을 가진 성당이 우뚝 솟아 있다.

 

 

 

강변으로 내려와 마을 넘어 요새를 바라보면 그 웅장함과 아름다움에 또 한 번 감탄한다.

 

강이 만드는 아름다운 지형과 그 위에 옹기종기 형성되어 있는 도시, 그리고 웅장한 차레베츠 요새의 모습은 인간과 자연이 함께 만든 아름다운 작품이다.

 

 

 

이곳에 안 왔으면 어쩔 뻔 했나 싶다.

 

불가리아는 소피아만 보고 바로 루마니아로 이동하려고 했었다. 다행히 소피아에서 이곳을 듣고, 마침 루마니아 가는 중간에 있어서 들린 곳이었는데 탁월한 선택이다.

 

소피아만 들렸다 갔으면 불가리아가 흔한 동유럽의 한 도시로만 기억되었을 터인데 이제 불가리아는 나름 제대로의 멋을 가진 나라로 내게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