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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일주 여행/불가리아(Bulgaria)

D+178, 불가리아 벨리코 투르노보 2: 아름다운 풍광의 차레베츠 요새 (20190511)

경계넘기 2020. 10. 18. 11:46

 

 

아름다운 풍광의 차레베츠 요새(Tsarevets Fortress)

 

 

지금 벨리코 투르노보(Veliko Turnovo) 구시가지의 중심거리인 차르샤(Samovodska Charshia) 거리의 한 카페에서 생맥주 한 잔 하고 있다.

 

차르샤 거리는 구시가지 낮은 언덕에 있는데 그리 길지 않은 길이다. 어제도 지나간 거리인데 그냥 한국의 인사동 같은 곳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작고 좁은 길 사이에 상점들과 카페, 레스토랑 등이 있는데 장인들이 직접 운영하는 상점들이어서 독특한 물건들이 많다고 한다.

 

이곳에 오기 전에 터미널에서 들려서 월요일에 루마니아 부쿠레슈티(Bucuresti)로 가는 버스표를 샀다. 원래 내일가려고 했는데 이곳이 너무 좋아서 하루 더 묵기로. 날짜에 구애받지 않는다면 더 묵었다가 갈지도 모른다. 그만큼 주변이 너무 아름다운 곳이다.

 

 

 

벨리코 투르노보는 굽이굽이 꺾여 흐르는 얀트라(Yantra)강 협곡 위에 만들어진 도시다.

 

터미널에 가고 오는 길에 벨리코 투르노보 구시가지를 한 바퀴 둘러봤다. 숙소에서 터미널까지는 구시가지를 관통해야 하는 길이다. 갈 때와 올 때 길을 달리하니 작은 구시가지의 풍경을 금방 담을 수 있다.  얀트라강은 깊고 좁은 S자의 협곡을 만드는데 그 사이 사이 경사진 언덕에 집들이 들어서 있다. 푸른 강과 짙은 녹음 그리고 빨간 지붕이 파란 하늘과 만나 잘 어울린다.

 

 

 

 차레베츠 요새도 훌륭하지만 요새 위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압권이다.

 

도시 자체도 독특하고 예쁜지만 무엇보다도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풍광이 정말 훌륭하다. 그 풍광의 정점에 차레베츠 요새(Tsarevets Fortress)가 있다. 차르샤 거리의 카페 겸 레스토랑의 가든에서 생맥주 한 잔 하면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차레베츠 요새 위에서 본 풍경이 눈에 선하다.

 

주변을 둘러싸는 초록의 산들과 협곡 사이사이 비탈 위에 들어선 빨간 지붕의 마을들. 강이 요새를 휘감으며 흐르기 때문에 요새를 둘러싸고 강이 보이고 그 강 건너 비탈에는 어김없이 빨간 지붕의 집들이 계단을 이루며 층층이 들어서 있다. 그 사이사이 성당들도 보이고. 더욱이 오늘은 불가리아에서 본 가장 맑은 날이다. 파란 하늘과 푸른 산들, 그리고 빨간 지붕과 그 지붕 위를 떠가는 하얀 구름이 너무도 잘 어울린다.

 

 

 

이곳의 지형은 산의 정상부가 평평한 모습.

 

원래 평지였던 곳에 오랜 세월 비와 강이 약한 부분을 깎아 내려 협곡이나 분지를 만들고, 단단해서 깎이지 않은 곳은 산으로 남은 것으로 보인다. 원래 평지였던 곳이기에 산의 정상 부분이 평평하다. 터키 카파도키아(Cappadocia) 괴레메(Göreme) 지형도 마찬가지다. 다만 터키의 괴레메는 건조한 지역이라 푸른 녹음은 없다.

 

 

 

차레베츠 요새는 깎아지른 협곡이 좁게 휘어지면서 만드는 차레베츠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천혜의 요새. 협곡 위의 언덕이 무척이나 가파른데 그 옛날 협곡 아래 강가에서부터 요새까지 올라오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성이 자리하고 있는 언덕 정상 역시 비교적 평평하다. 때문에 멀리 비슷한 높이의 평평한 산들이 차레베츠 언덕을 휘감으며 요새를 둘러싸고 있는 듯하다.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풍광이다.

 

요새 자체도 훌륭하다.

 

영어로 Fortress요새로 해석하지만 우리의 개념으로는 이 더 부합한다. 요새가 처음 만들어진 시기는 5~7세기 무렵이라 하는데 현재와 같은 완연한 성의 개념으로 건축된 것은 12세기 말이라고 한다. 당시는 제2차 불가리아 제국(1185~1396)의 성립 시기였는데 벨리코 투르노보는 제2차 불가리아 제국의 수도였다. 이 요새가 수도를 방어하는 성이자 궁전이었다.

 

차레베츠 요새는 1393년 오스만 제국의 공격을 받아 3개월을 버티다 마침내 함락되었다. 성을 함락시킨 오스만 제국군은 성을 완전히 불태우고 붕괴시켰는데 3개월 동안 성을 공략하느라 갖은 악을 써서 약이 바짝 올랐던 모양이다.

 

차레베츠 요새의 붕괴와 함께 제2차 불가리아 제국도 막을 내렸다. 이후 불가리아는 1878년 독립할 때까지 5세기에 걸치는 오랜 시간 동안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아야했다. 그러고 보면 동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지금의 이스탄불)이 이슬람 방어의 최전선이었다면 차레베츠 요새는 기독교 유럽의 첫 관문인 셈이다. 허물어졌던 차레베츠 요새의 복구는 1930년에 시작되어 1981년에야 복구를 완료했다. 하지만 성 안에 있던 건축물들은 여전히 복구 중인 것으로 보인다.

 

 

 

성벽은 대부분 복구되어 완연한 옛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 성벽을 따라 걷다보면 곳곳에서 아름다운 경치를 만날 수 있다. 숙소에서 아침을 먹자마자 요새에 올라와서 그런지 이른 오전의 성 안은 한적했다. 좀 외진 성벽 길을 걸을 때에는 음악을 잔잔하게 틀어놓고 걸었다. 이어폰이 아니라 스피커로.

 

 

 

성 안 정상에는 성당이 있다.

 

이름은 The Cathedral of the Ascension of the Lord. 승천 대성당 정도로 해석해 본다. 옛날 전성기에는 이곳 요새 안에 18개의 성당이 있었다고 한다. 성당 탑에는 전망대가 있어서 도시 전체를 관망할 수 있다. 따로 입장료를 낸다. 

 

 

 

그 밖에도 다양한 건물들의 터가 많이 남아 있어서 그 옛날 이 요새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성 안에서 꽤 좋은 산책길도 발견했다.

 

마치 깊은 산속의 숲길과 비슷하게 녹음이 우거진 곳이다. 사람들이 거의 가지 않는 곳이라 조용히 음악 들으며 산책하기 딱 좋은 곳이다.

 

 

 

그 외에도 이곳저곳 좋은 풍광 아래에서 멍 때리기 좋은 곳이 많다. 커피와 맥주를 좀 가지고 와서 곳곳에서 한 잔씩 하면서 멍도 때리고 책도 읽고 음악도 들었으면 하는 곳이다.

 

 

 

하루를 더 묵기로 했지만 사실 한 일주일 이상 묵고 싶은 곳이다.

 

내일은 커피와 맥주를 좀 사가지고 다시 요새에 올 생각이다. 하루만이라도 요새에서 제대로 벨리코 투르노보의 풍광을 즐길 생각이다. 12시 넘어 요새를 나오는데 요새 입구에 티켓 검사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 아침에 내가 올 때는 아무도 없었고 티켓 파는 곳도 보이지 않았다. 나와서 보니까 도로 건너에 티켓 파는 곳이 있다. 알아보기 힘들게 가게들 사이에 숨어 있다.

 

내가 요새에 들어간 시간이 대충 오전 9시쯤 되었는데 아마도 그때 티켓 검사원이 잠시 자리를 비웠던 모양이다. 덕분에 공짜로 들어오긴 했지만 정확히 말하면 난 요금을 더 냈다. 이렇게 좋은 곳을 무료로 개방한다고 생각한 나머지 너무 고마워서 요새 안 성당에 들어갔다가 입구에 있는 기부함에 거금 10레프를 넣었기 때문이다. 이런 곳이 더욱 번창하길 바라면서. 요새의 입장료가 6레프이니 좀 더 낸 셈이다.

 

지금은 초저녁인 8. 그런데 여전히 해가 떠 있다. 해가 무척이나 긴 듯하다. 지금은 숙소 정원의 한 테이블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데 물소리와 새소리가 귓가를 계속 울린다. 참 좋은 곳이다.

 

1리터 패트병 맥주도 하나 사와서 마시고 있다. 이 지역 맥주라고 하는데, 브랜드명이 Britos. 1리터 패트병이 1.2래프다. 7백 원으로 계산해도 840.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맛도 나쁘지 않다.

 

버스표 찢어 버리고 한 일주일 더 이곳에 머물다 갈까!

가면 갈수록 좋은 곳이 많으니 정말이지 미치겠다.

 

묵고 싶은 대로 묵고 다닌다면 과연 세계여행을 언제 마칠 수 있을까?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