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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일주 여행/불가리아(Bulgaria)

D+174, 불가리아 소피아 3: 불가리아의 슬픈 역사, '성 페트카 교회'와 '바냐 바시 자미야 모스크' (20190507)

경계넘기 2020. 9. 15. 11:23

 

 

불가리아의 슬픈 역사, 

'성 페트카 교회(Sveta Petka Church)'와 '바냐 바시 자미야 모스크(Banya Bashi Mosque)'

 

 

소피아는 여전히 겨울인 것일까?

 

아니면 계절이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일까? 5월의 문턱을 한참 넘었는데도 오늘은 어제보다 더 춥다. 바람도 엄청나게 불고. 안에 옷을 하나 더 껴입었는데도 춥다. 배낭에서 파카를 다시 꺼내야 하나. 거리에서도 경량 패딩을 걸친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터키를 여행하면서 겨울옷들은 배낭 깊숙이 넣고, 여름옷들을 꺼내 있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북상했다고 다시 초겨울의 날씨다. 더구나 비 오는 흐린 날의 연속. 덕분에 소피아에 대한 인상마저 칙칙해진다.

 

소피아 도심에서도 멀리 설산이 보인다.

 

만년설은 아니고 아직까지 눈이 녹지 않은 것 같은데, 도시를 둘러싸고 높은 산이 펼쳐져 있어서 참 보기 좋다. 그런데 날씨가 흐리니 제대로 분위기가 안 산다.

 

중심가에 있는 한 카페로 들어간다.

 

흐린 날씨와 바람 그리고 간간히 떨어지는 빗방울을 피해기 위함이다. 어제는 그렇게 찾아도 안 보이던 카페들이 바글거리는 거리를 찾았다. 중심가 대법원 건물을 등지면 정면에 남쪽으로 길게 난, 차가 다니지 않는 보행자 도로가 나온다. 길 양쪽으로 예쁜 카페, , 레스토랑이 줄지어 있다. 사이사이 골목에도 특색 있는 카페나 바, 레스토랑이 많다.

 

에스프레소 더블 한 잔 시켜 놓고 글을 쓴다.

간간히 거리의 풍경을 보면서.

 

 

 

오후에 접어들어 시내를 걷는다.

 

오후임에도 날씨가 꽤 춥다. 옷을 계속 여민다. 소피아의 중심가 거리는 예쁘다. 현대와 과거 자연스럽고 아기자기하게 공존한다. 현대적 건물들 사이로 곳곳에 옛 성당들과 옛 건물들이 나온다. 일일이 이름을 찾아보지는 않는다. 그저 걸으며 눈에 담을 뿐이다.

 

 

 

 

국립 미술관
National Art Gallery

 

 

국립 미술관(National Art Gallery)에 들어간다.

 

지난번 봐둔 곳이다. 건물도 꽤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입장료는 6레프.

국립 미술관에서는 미술 작품들을 통해서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읽을 수 읽어서 좋다. 미술 작품도 보고 그 나라도 이해하고.

 

발칸 반도의 국가들 중 안 아픈 역사를 가진 나라가 어디 있겠는가! 불가리아 역시도 다르지 않다. 불가리아인들이 이 땅에 최초로 국가를 세운 것이 7세기 말의 일이라고 한다. 10세기 초부터 한 세기 정도 비잔틴 제국의 지배 아래에 있다가 독립을 한 불가리아는 다시 15세기 말부터 19세기 말까지 5세기 동안 오스만 제국의 지배 아래에 있었다.

 

5세기에 걸친 오스만 제국의 오랜 지배 아래에서 불가리아인들이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지키고 발전시키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이미 9세기에 동방 정교회를 국교로 채택함으로써 기독교 국가의 길을 걸었던 불가리아였기에 이슬람 국가인 오스만의 지배는 문화적으로 더 치명적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불가리아 현대 미술의 발전은 실질적으로 러시아-투르크 전쟁으로 불가리아가 독립을 쟁취한 1878년 이후의 일일 것이다. 미술관에 곳곳에서도 이런 모습이 많이 묻어 나온다.

 

하지만 불가리아 국립 미술관은 많이 실망스럽다.

 

건물에 비해 전시 공간 자체도 너무 좁고, 전시된 작품 수도 너무 적다. 국립 미술관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국립 미술관이 작은 것인지 불가리아 미술이 이 정도 뿐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전자이기를 바란다.

 

불가리아가 인구는 겨우 7백만에 불구하고, 사회주의에서 1990년대 초반에야 겨우 자본주의로 전향했고 그래서 아직 경제적 사정이 좋지 않은 나라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오랜 기간 오스만의 지배를 받았고, 인구는 고작 3백만에 불과하고, 구소련 연방에 있다가 구소련 붕괴 이후에야 독립한 아르메니아(Armenia)라는 더 작고 가난한 나라의 국립 미술관도 불가리아보다 10배 가까이 컸다.

 

 

 

 

'성 페트카 교회(Sveta Petka Church)'와
'바냐 바시 자미야 모스크(Banya Bashi Mosque)'

 

 

5세기에 걸친 오스만 제국의 지배 시기는 분명 기독교 국가인 불가리아 역사와 문화에 깊은 암흑기였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이러한 시대적 아픔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곳이 있다.

 

미술관에서 나와서 소피아 광장 그러니까 레닌 동상을 밀어내고 소피아 여신의 동상이 들어선 광장으로 내려간다. 어제 교황이 주도하는 집회가 있었던 바로 그 광장이다. 광장 북단의 바로 아래에 보면 자그마한 교회 하나가 있다. 지붕만 달랑 보이는 교회인데 왜 그렇게 푹 꺼진 곳에 교회를 지었나 싶겠지만 원래 지하에 지은 교회란다. 교회 이름이 성 페트카 교회(Sveta Petka Church)’.

 

교회는 오스만 제국의 지배 아래에 있었던 14세기 말에 오스만의 눈을 피하기 위해 그렇게 지하에 만들었다고 한다.

 

 

 

교회에서 북쪽으로 살짝 고개를 들면 바로 앞에 커다란 건물 하나가 바로 보인다.

 

2백여 미터 떨어져 있으려나. 그 건물은 이슬람 성전인 바냐 바시 자미야 모스크(Banya Bashi Mosque)’. 오스만 지배 시절인 1566년에 지어졌다고 하니 지하교회인 성 페트카 교회 보다는 조금 늦게 지어졌다.

 

 

 

같은 땅 같은 하늘 바로 이웃에 어느 종교의 예배당은 햇빛도 잘 들지 않는 지하에, 어느 종교의 예배당은 햇빛 찬란한 지상에 있다. 그리고 어느 종교의 예배당은 지하도 부족해서 혹시나 눈에 뜨일까봐 창문도 없는 아주 조그마한 건물을 앙상하게 드러내고 있는 반면에 어느 종교의 예배당은 웅장한 몸체에 번쩍이는 돔을 자랑하고 있다.

 

성 페트카 교회에서 성 페트카 교회와 바냐 바시 모스크를 한 눈에 담아 바라보고 있노라면 5세기, 5백여 년 그 긴 세월 동안 그렇게 두려움에 떨며 어둠 속에서 지냈을 불가리아인들의 서글픈 역사가 너무도 잘 그려진다.

 

물론 지금은 그 신분이 완전히 바뀌었다. 오스만의 지배 시기 이곳에는 많은 모스크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바냐 바시 모스크 하나만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단다. 독립을 이룬 불가리아인들이 당장 때려 부수고 싶었겠지만 문화적 유적의 의미로 하나는 남겨 두었으리라.

 

성 페트카 교회와 바냐 바시 자미야 모스크는 한 눈에 담아 꼭 같이 보길 바란다. 이왕이면 성 페트카 교회 쪽에서 바라보는 것이 더 좋으리라. 지배받았던 쪽에서 지배했던 쪽을 바라봐야 그나마 제대로 느낄 수 있을 터이니.

 

 

 

이제 겨우 발칸 국가 중 하나에 왔는데 벌써 역사는 복잡해진다.

과거에도 지금도....,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지금 소피아의 날씨처럼.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