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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일주 여행/루마니아(Romania)

D+180,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1: 도나우강을 건너서 루마니아로(20190513)

경계넘기 2020. 10. 19. 11:21

 

 

도나우(Donau)강을 건너서 루마니아(Romania)로

 

 

이번 여행의 12번째 나라 루마니아(Romania)로 간다.

 

벨리코 투르노보(Veliko Târnovo)에서 루마니아의 수도인 부쿠레슈티(Bucuresti)로 이동한다. 소피아(Sofia)에서 벨리코 투르노보로의 여정이 동쪽으로 오는 길이었다면 이번에는 북상 길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간만에 아침 산책을 해본다.

 

어제 늦은 오후에 걸었던 성 아래 강변길을 걷는다. 숙소에서 바로 연결되는 길이다. 아침 공기는 상쾌하고, 햇살은 화창하고, 5월의 아카시아 꽃향기는 진하다. 5월이면 한국에서도 곳곳에서 아카시아 향기가 진동하는데 마치 한국의 어느 작은 국도변을 걷는 기분이다. 소피아를 떠날 때만 해도 아쉬움이 그리 크지 않았는데 이곳에서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성 하나만은 제대로 걷고 즐기고 가니 그나마 위로가 된다.

 

체크아웃하고 숙소 뒤 정원의 테이블에서 이 글을 쓴다.

 

가장 여유로운 시간이기도 하다. 싱그러운 오전 햇살 속에서 물소리와 새소리가 들린다. 바로 앞에는 푸르른 녹음의 산이 보이고. 마치 산장에 온 느낌을 받는다. 여유롭기도 하지만 떠나는 곳의 아쉬움과 가야할 곳에 대한 기대감과 불안감이 공존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맥주나 커피 한 잔이 생각나지만 버스를 타야 하니 자제한다. 기차라면 마지막 돈을 모두 사용해서 맥주나 커피를 마실 터인데.

 

시간의 여유를 가지고 숙소를 나선다.

 

물론 걸어서 간다. 터미널 근처 한 빵집에서 가지고 있는 불가리아 돈을 모두 털어서 피자와 빵을 좀 산다. 터미널 화장실 비용으로 1레프 동전 하나를 담겨두고. 터미널 화장실이 1레프다. 오줌 한 번 싸는데 700원이라니. 불가리아에서 맥주 500ml 한 캔 값이 1레프다. 소변 한 번 누는 값이 맥주 한 캔 값이라! 돈이 없으면 화장실도 못 간다. 여행 다니다 보면 이게 은근히 신경 쓰인다. 생돈 나가는 듯한 기분도 기분이지만 현지 돈이 없는 경우는 화장실조차 갈 수가 없다. 터미널은 물론이고 버스가 들리는 휴게소도 대부분 유료인지라 돈이 없으면 불안해진다.

 

오후 230분쯤 버스가 들어온다.

 

대형버스가 아니라 봉고에 가까운 미니버스다. 그래도 사람이 별로 없어서 큰 불편은 없다. 버스도 새것이고.

 

 

 

245분에 버스는 출발한다.

 

소피아에서 이곳으로 오는 길, 즉 루마니아 서쪽에서 동쪽으로 오는 길은 산들이 연이어 있는 산악지대였다. 넓은 평지는 거의 보질 못했었다. 제법 높은 산들이 동쪽으로 오면서 조금씩 낮아져서 벨리코 투르노보(Veliko Târnovo)로 이어지고 있었다. 불가리아의 가운데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발칸 산맥(Balkan Mountains)이다. 한반도와 반대로 서고동저(西高東低)의 지형이다.

 

반면에 불가리아 벨리코 투르노보에서 루마니아 부쿠레슈티(Bucuresti)로 가는 길, 즉 북상하는 길은 모두가 낮은 구릉으로 연결되는 평원이었다. 그 가운데를 도나우(Donau)강이 흐리면서 불가리아와 루마니아의 국경선을 형성하고 있다. 도나우 강 주변으로는 넓은 평야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평야는 드넓어서 거의 지평선을 볼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런 드넓은 들판에 밀밭과 유채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푸른 밀밭과 노란 유채꽃밭의 물결은 눈이 시릴 정도로 아름답다. 밀밭은 멀리서 보면 제대로 골프장처럼 보인다. 논이 많은 우리네 농촌 풍경이 모자이크 같은 바둑판이라면 유럽의 밀밭은 그냥 밭 하나가 끝없이 펼쳐져 있어서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도나우(Donau) 평원과 왈라키아(Walachia) 평원

 

도나우강 남쪽, 즉 불가리아 쪽 평야는 도나우 평원이라 불리고 강의 북쪽 즉, 루마니아 쪽 평야는 왈라키아(Walachia) 평원이라 불린다. 도나우강을 따라 드넓게 펼쳐지는 도나우 평원은 불가리아 면적의 3분의 1를 차지하는 비옥한 토지란다. 도나우 평원이든 왈라키아 평원이든 도나우강이 만들어준 축복이다.

 

도나우강을 중심으로 하는 루마니아와 불가리아의 이 평원지대는 슬로바키아에서 시작해서 폴란드와 우크라이나를 거쳐 발칸반도를 남북으로 초승달처럼 가로지르는, 거대 산맥인 카르파티아 산맥(Carpathian Mountains)이 그믐달처럼 감싸고 있다. 카르파티아 산맥 중에서 루마니아 가운데를 남북으로 관통하다가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루마니아 왈라키아 평원의 북서쪽 경계를 형성하는 산맥을 특별히 트란실바니아알프스 산맥(Transylvanian Alps)이라고 부른다.

 

소피아에서 벨리코 투르노보로 오면서 거친 산맥, 즉 불가리아 중부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산맥은 카르파티아 산맥에서 뻗어 나온 발칸 산맥(Balkan Mountains)이다. 이 산맥이 중부를 가로지르면서 불가리아는 도나우 강변의 북부 평원지대와 마리차(Maritsa) 강변의 남부 평원지대로 나눈다.

 

루마니아 역시도 트란실바니아알프스 산맥이 동서로 중부를 가로지르면서 북서부의 트란실바니아 고원분지와 남부 왈라키아 평원지대로 나눈다.

 

지금 나는 발칸산맥의 북쪽 언저리에 있는 벨리코 투르노보에서 불가리아와 루마니아의 국경을 이루는 도나우강을 건너 루마니아 왈라키아 평원 중앙에 있는 수도 부쿠레슈티로 가는 길이다. 벨리코 투르노보를 조금 지나자마자 끝없이 평원지대가 펼쳐지는 이유다.

 

 


 

 

1시간 반 정도를 달린 버스는 불가리아의 국경도시인 루세(Ruse)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40~50분을 정차하면서 사람을 가득 태운 버스는 드디어 도나우강을 건너기 시작한다.

 

 

 

불가리아와 루마니아의 국경 검문소는 도나우강을 건너서 나온다.

 

일반적으로 강을 경계로 하는 국가들 경우 강을 건너기 전에 출국 심사를 하고 강을 건너서 입국 심사를 하는 데 반해서 이곳은 강을 건너자 통합 검문소가 나온다. 국경 경찰이 올라와서 일괄적으로 여권을 수거해갔다가 도장을 찍어서 다시 나눠준다. 차에서 내려 개별적으로 출입국 심사를 받지 않으니 무척 편리하다.

 

여권을 들여다보니 루마니아 입국 도장은 있는데 불가리아 출국 도장은 없다.

 

어차피 입국 도장을 받으려면 출국 도장이 필요한 것이니 불필요한 절차를 생략한 것으로 보인다. 하긴 이들 국가들이 아직은 쉥겐조약국이 아니긴 하지만 언젠가는 쉥겐조약국으로 들어갈 것이기 때문에 국경 심사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도나우강을 버스로만 훌쩍 넘어오니 좀 아쉬운 감이 없지 않다. 라인(Rhine) 강과 함께 유럽문화의 중추를 형성한 양대 강인데 너무 아쉽다. 넘어오면서 보니 강의 폭이 무척 넓다. 강 주변으로 습지도 넓게 형성되어 있고.

 

 

 

국경을 돌파해서 부쿠레슈티까지는 채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물론 산이라곤 거의 보이지 않는 평원지대다.

 

새로운 곳에 가까워지면 구글맵을 켠다.

 

오픈라인 상태에서 구글맵은 좀 켜두고 있어야 내 위치를 잡는다. 그런데 이번에는 부쿠레슈티로 진입해서도 위치를 잡지 못하고 있다. 이 경우 내 위치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예약한 숙소를 찾아가는 데에 문제가 생긴다. 대체로 기차역이나 중앙 터미널은 지도에서 찾기가 쉬운데 작은 터미널이나 터미널이 아닌 곳에 내려주면 낯선 곳에서 내 위치를 알기가 어렵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버스는 터미널이 아닌 중심가 언저리에 내려준다. 숙소를 중심가에 잡았기 때문에 분명 멀지는 않아 보이지만 구글맵이 작동을 안 하니 내 위치가 어디인지를 알 수가 없다.

 

일단 버스에 내려서 잠시 고민하고 있는데 구글맵이 내 위치를 잡는다.

 

숙소는 내가 있는 곳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다. 이렇게 감사할 수가. 도착 시간이 오후 650. 늦은 시간이지만 여름을 향해 가는 유럽의 낮은 길어서 아직도 훤하다. 이제 5월인데도 해는 거의 9시가 되어야 지는 것 같다.

 

동유럽 도시들의 첫인상은 항상 황량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터미널이나 기차역이 도심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있다 보니 주변으로 소비에트 식의 우중충한 건물이나 아파트가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유럽식의 분위기는 도심, 특히 올드타운으로 들어가야 느낄 수 있다. 이곳도 마찬가지다. 분명 저쪽으로 중심가가 펼쳐져 있는 것 같은데 숙소는 약간 외곽에 있는 모양이다. 가는 길에 보니 주변으로 낡은 회색빛 아파트들만 늘어서 있다.

 

숙소에서 짐을 대충 정리하고 샤워를 하고 나온다.

 

일단 ATM에서 현금도 찾고 저녁도 해결해야 한다. 은행은 가까이 있는데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중심가까지 나갔는데도 마땅한 식당이 보이지 않는다. 어딘가에 몰려 있을 터인데 그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냥 숙소로 돌아오면서 아까 봐두었던 숙소 옆 가게로 들어간다. 편의점이다. 생각해보니 태국 이후로는 편의점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잘 꾸며진 마트나 가게는 있었지만 제대로 된 편의점은 보질 못했다.

 

편의점이라 다양한 먹거리를 판다. 샌드위치, 햄버거에 샐러드까지. 맥주하고 햄버거와 샐러드를 들었다. 가격은 싸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맥주만큼은 루마니아도 싸다. 불가리아와 비슷한 가격으로 500ml900원 안팎이다. 물론 루마니아 로컬 맥주.

 

좀 아쉽다면 컵라면이 없다는 것. 그것만 있다면 환상일 터인데.

 

첫 발을 디딘 루마니아의 첫 저녁은 변함없이 루마니아 로컬 맥주로 시작한다.

아쉽지만 이렇게나마 세계여행 6개월을 자축하면서......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