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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84, 루마니아 브라쇼브 2: 독일인이 만들고 헝가리인과 루마니아인이 함께 살아 온 동화 같은 도시 브라쇼브 (20190517)

경계넘기 2020. 10. 22. 11:03

 

 

독일인이 만들고 헝가리인과 루마니아인이 함께 살아 온,

동화 같은 도시 브라쇼브(Brasov)

 

 

브라쇼브(Brasov)는 트란실바니아(Transylvania) 평원의 초입에 있는 도시이다.

 

트란실바니아는 루마니아 북서부 지역으로 슬로바키아에서 시작한 카르파티아 산맥(Carpathian Mountains)이 루마니아 북부 가운데로 들어와서 중부까지 내려오다가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가로지르면서 만든 고원의 평원지대이다. 카르파티아 산맥이 마치 초승달처럼 감싸고 있는 넓은 분지라고 하면 이해가 빠르겠다.

 

다만, 루마니아 중부를 가로지르는 카르파티아 산맥의 이 부분을 특별히 트란실바니아알프스 (Transylvanian Alps)산맥으로 부른다. 그러니까 트란실바니아알프스산맥이 남부의 왈라키아(Walachia) 평원지역과 트란실바니아 고원지역을 나누고 있는 것이다.

 

어제 부쿠레슈티(Bucureşti)에서 타고 온 기차가 바로 트란실바니아알프스산맥의 좁은 계곡을 따라 이곳 브라쇼프에 온 것이다. 브라쇼브는 그 계곡이 막 끝나고 평원으로 이어지는, 트란실바니아 평원의 남동부 초입에 있다. 따라서 브라쇼프의 남쪽으로는 높은 산들이 병풍을 치고, 북쪽으로는 평원이 넓게 펼쳐져 있다.

 

오늘은 우선 브라쇼브의 올드타운을 구경하기로 한다.

 

브라쇼프의 올드타운은 정말 예쁘다. 그간 유럽의 많은 올드타운을 봐오면서 많이 식상해졌는데, 이곳은 뭐랄까 진짜 유럽의 전래동화에 나오는 작은 중세 도시 같다고나 할까. 아기자기하면서도 다채로운 게 무척이나 좋다. 브라쇼브는 트란실바니아에 이주한 독일인들이 13세기 만들었는데, 이후 헝가리인들과 루마니아인들도 이곳으로 많이 이주해 살았다고 한다. 따라서 브라쇼브는 기본적으로 독일식 양식에 헝가리와 루마니아 양식이 더해졌을 것이다.

 

브라쇼브가 정말 예쁘다는, 루마니아를 여행한 많은 여행객들의 말이 허언이 아니었다.

 

올드타운에 초입에 들어서면 넓은 광장과 연결되는 넓고 예쁜 거리가 나온다. 차가 다니지 않는 길이다. 이 거리에 들어서자 마자 감탄의 소리가 절로 나온다. 마치 내가 한 폭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라면 너무 과한 표현일까! 거리 양편으로는 멋진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제법 크지만, 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을 찍어 누르는 듯한 석조건물의 웅장함과 삭막함보다는 뭐랄까 친근하면서도 예쁜, 그러면서도 나름의 멋을 가진 건물들이다. 건물의 색깔도 다양한데 조금도 촌스럽게나 어색하지가 않다.

 

거리를 걸어들어가면 레스토랑 거리가 나온다. 거리 가운데에는 야외 테이블도 나와 있다. 오전의 거리라 사람들은 한산하지만 레스토랑은 한창 장사 준비에 여념이 없다. 숙소를 올드타운에서 멀게 잡은 것이 후회되는 순간이다. 이런 예쁜 올드타운은 매일 아침, 저녁으로 걸어주어야 하는데. 골목길 카페에서 커피도 마셔주고.

 

 

 

거리의 끝에 넓은 광장이 나온다.

 

이곳이 스파툴루이 광장(Piața Sfatului)이다. 넓은 광장 가운데에는 작은 분수가 있고, 주변으로는 주황색 지붕을 가진 중세 유럽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다. 그 가운데에는 구 시청 건물이 있고, 주변 건물들 1층에는 레스토랑과 카페들이 들어서 있다. 전형적인 유럽 올드타운의 광장 모습이다.

 

 

 

광장 뒤편으로 브라쇼브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검은 교회(Black Church, Biserica Neagră)가 나온다.

 

커다란 고딕식의 건물인데 외관이 검다고 해서 검은 교회라 불린다. 그렇다고 이 교회가 원래부터 검은색이었던 것은 아니다. 1689년 합스부르크와의 전쟁 중에 화재가 발생에 외관이 검게 그을려졌기 때문이란다. 안으로 들어가 보면 다른 교회나 성당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카펫들이 교회당을 빙 둘러싸고 걸려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울러 4000개의 파이프로 구성된 오르간도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성당 뒤편으로 올드타운 길을 걸어서 유대인 성당을 지나 슈케이 게이트(Șcheii Gate)에 닿는다.

 

슈케이 게이트, 즉 슈케이 문은 독일인이 거주하는 지역과 루마니아인들이 거주하는 지역을 연결하는 문이다. 브라쇼브는 독일인들이 만든 도시로 독일인들은 중심 시가지에 살았다고 한다. 나중에 이주한 루마니아인들은 독일인 거주지의 외곽에 살았다고 하는데 루마니아인들의 거주지를 슈케이라고 불렀다. 원래 독일인들의 거주지와 루마니아인들의 거주지는 엄격히 구분되어 루마니아인들은 함부로 독일인들의 거주지에 들어올 수 없었다. 그러다 18세기 이 문이 만들어지면서 출입이 다소 완화되었다고 한다.

 

찬밥이었던 루마니아인들이 지금은 이곳의 주인의 되었으니 역사란 알 수 없다. 덧붙이자면 트란실라비아 지역은 헝가리인들이 9세기 이곳을 지배한 이래 다소의 변화는 있었지만 주로 헝가리의 영토였다. 그러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과 함께 동맹국이었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패배하면서 1920년에 이곳이 루마니아에 넘어갔다.

 

굴러온 돌이었던 루마니아인들이 오랜 기간 박힌 돌이었던 헝가리인들과 독일인들을 몰아내고 현재 이 땅의 주인이 된 셈이다. 헝가리인들로서는 통탄할 일인지라 헝가리인들이 루마니아인들을 마냥 좋아할 수는 없어 보인다.

 

 

 

이 문을 나가면 나오는 마을이 옛날 루마니아인들이 살았던 슈케이 지구다. 좁은 골목길로 집들이 다닥다닥 정겹게 붙어 있다. 옛날에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곳도 예쁘다.

 

 

 

슈케이 문에서 한 15분 정도 쭉 올라오면 작은 광장이 나오는데 아담하니 예쁘다. 아마 슈케이 지구의 중심이지 않았을까 싶다. 광장 옆으로 성당도 있다.

 

 

 

그 위로 난 길을 따라 쭉 걸어간다. 빵집에서 빵 좀 사서 먹으면서 걷는다. 골목골목 집들이 너무 예쁘다. 푸르른 숲 사이로 빨간 지붕과 파스텔 톤의 집들이 마치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것 같다.

 

 

 

이곳 집들이 좀 독특한 것이 창가 안쪽으로 화분을 둔다는 사실이다.

 

밖에서 보면 마치 한 폭의 꽃그림 같다. 다양한 꽃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난이 가장 많은 것 같다. 안쪽 창틀에는 주로 난을 바깥쪽 창틀에는 빨간 맨드라미를 주로 놓고 있다. 얼마나 관리를 잘하는지 창문도 깔끔하고 화분의 꽃들도 싱싱하다. 나중에 독일에 와서 보니 독일인들의 가정집들이 브라쇼브의 집들처럼 창가에 화분을 놓고 있었다. 독일인들이 만든 도시 답게 독일들의 문화적 영향으로 보인다.

 

 

 

브라쇼프는 이렇게 올드타운 시가지뿐만 아니라 외곽 마을의 골목길도, 집들도 동화 같은 무척 예쁜 도시다. 걷기 좋은 도시라고나 할까. 아담하지만 다채롭다. 사람들의 삶이, 생활이 묻어 있는 곳이라 더욱.

 

 

 

건물들도 다채롭다.

 

색상도 모양도. 독일, 헝가리, 루마니아의 문화가 혼합되어 그럴까? 잘은 모르겠다. 웅장한 건물도, 소박한 건물도, 생활의 때가 낀 건물도, 성당도, 아파트 조차도 다들 나름의 멋과 낭만을 간직하고 있어 보인다. 특히 난 빨간 기와의 지붕이 참 좋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올라가니 바로 숲이 나온다.

 

숲 사이로 길이 나 있는데 주변의 나무들은 전형적인 유럽의 삼림을 보여주고 있다. 도시에서 바로 이어지는 숲이었지만 이곳이 트란실바니아알프스산맥의 줄기라 그런지 울창하다.

 

트레킹이나 산책하기 좋은 길. 간만에 자연의 길을 걷는다. 한 시간 남짓 숲길을 걸었을까 길은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더 걷고 싶지만 아침부터 하루 종일 쉬지 않고 걸었던지라 다리가 너무 아프다. 여기서 숙소까지 걸어갈 것도 생각해야 한다.

 

 

 

돌아설 무렵 갑자기 하늘이 흐려지더니만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다행히 우산을 가지고 있었고 비도 곧 멎는다비가 내린 숲길은 더욱 싱그럽다. 풀 향기, 나무 향기 그윽하고.

 

브라쇼프 정말 아름다운 곳이다.

 

이곳에 오래 있어도 좋을 것 같다. 그렇다면 아마 숙소는 올드타운 안으로 옮길 것이다. 그러면 매일 이렇게 올드타운도 걷고, 숲길도 걷고 할 수 있을 터이니 말이다. 숲길이 잘 되어있다 보니 걷는 사람들도 있지만, 산악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많다. 시간이 있다면 그 좋은 숲길을 하루 종일 걸어보고 싶다.

 

 

 

올드타운에 진입해서 막 나올 무렵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짙은 구름으로 덮인 하늘을 보니 쉽게 그칠 것 같지가 않다. , 두 시간 전만 해도 햇살이 영롱하던 맑은 하늘이었는데 어느새 먹구름 가득한 하늘이 되었다. 근처의 맥도날드에 들어갔다가 손님이 많아서 옆 건물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는데 좀체 잦아들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계속 있을 수가 없어서 빗속에 길을 나선다. 몇 걸음 안 되어 옷이 흠뻑 젖는다. 원체 비가 강하게 오니 우산이 무용지물. 더욱이 배수가 잘 안 되는 길은 곳곳이 한강이다.

 

숙소에 오자마자 젖은 옷을 벗어 세탁기를 돌렸다. 이 숙소는 세탁기도 무료라 좋다. 시원하게 샤워하고 따뜻한 커피 한 잔 하면서 빗소리를 듣고 있자니 기분은 상쾌하다. 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