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민의 꿈, 보헤미안의 삶

세상의 모든 경계를 넘어 보다 자유로운 미래를 그린다

미얀마의 민주화와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기원하며...

세계 일주 여행/루마니아(Romania)

D+186, 루마니아 브라쇼브 4: 루마니아 왕들의 여름 휴양도시, 시나이아(Sinaia)(20190519)

경계넘기 2020. 10. 22. 20:59

 

 

루마니아 왕들의 여름 휴양도시, 시나이아(Sinaia)

 

 

슬로바키아 친구가 추천한 곳, 시나이아(Sinaia)

 

아르메니아 예레반(Yerevan)에서 만났던 슬로바키아 친구가 꼭 가보라고 했던 곳 중의 하나가 이곳 브라쇼브(Brașov)와 함께 시나이아. 친구는 시나이아에 가거든 꼭 부체지(Bucegi) 산을 올라가보라고도 했다.

 

브라쇼브에서 남쪽으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시나이아는 트란실바니아알프스산맥(Transylvanian Alps) 안에 위치한 작은 도시다. 동유럽의 알프스라고 일컫는 트란실바니아알프스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곳이 이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곳은 루마니아 왕들의 여름 휴양도시였다고.

 

어제, 그제 계속 비가 내려서 날씨를 걱정했는데 오늘 아침은 안개가 자욱하다. 날씨가 걱정이지만 일정이 촉박하니 어쩔 수 없다. 840분에 기차를 탄다. 표는 어제 미리 사두었는데 정말 잘했다. 빈자리 하나 없는 만석이기 때문이다. 기차는 지난번 부크레슈티(Bucureşti)에서 브라쇼브 왔던 길을 되짚어 가기 시작한다. 그때 평지로 나왔던 기차는 다시 계곡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신기한 일이다.

 

브라쇼브에서는 앞이 잘 보이질 않을 정도로 자욱했던 안개가 도시를 조금 벗어나자마자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햇살이 쨍쨍한 맑은 하늘이 나온다. 기차가 계곡으로 들어서면서 좌우로 아름다운 트란실바니아알프스산맥의 산들이 늘어서 있다. 트란실바니아알프스산맥은 동유럽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카르파티아 산맥(Carpathian Mountains) 중에서 루마니아 중부를 가로지르는 부분을 특별히 지칭하는 말이다. 후미에 붙은 알프스(Aips)에서 알 수 있듯이 동유럽의 알프스라고 불린다.

 

모처럼 나온 맑은 하늘 속에서 기차는 브라쇼브역을 떠난 지 정확히 1시간 후인 940분에 시나이아역에 도착했다. 시나이아는 좁은 계곡에 위치한 작은 도시. 하지만 웅장하고, 그림 같은 산들이 감싸고 있는 정말 아름다운 곳이다.

당일치기로 오기에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바로 든다.

 

이곳은 부체지산과 함께 루마니아 국보 1호에 빛나는 펠레스 성(Peleș Castle) 등이 있다.

 

일반적으로는 시내에 있는 성 등의 볼거리를 구경하고 부체지 산을 간다는데 난 먼저 부체지 산을 갔다가 내려오면서 시내의 볼거리를 보기로 한다. 부체지산에서 트레킹을 할 수도 있기에 시간을 넉넉히 가져야 한다. 부체지산은 걸어서도 올라갈 수 있지만 곤돌라를 이용해서 올라갈 수도 있다. 이곳이 스키장이기 때문이다. 난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서 트레킹을 할 수 있다면 정상부의 능선을 걸을 생각이다. 시나이아 기차역에서 꽤 올라가야 곤돌라 타는 곳이 나온다.

 

중간에 길을 잃어 헤매기도 했는데 덕분에 시나이아 주택가를 둘러볼 수 있었다. 푸른 나무와 숲에 둘러싸인 빨간 지붕을 가진 아름답고 예쁜 마을이다. 계곡 언덕을 따라 집들이 들어섰기 때문에 올라갈수록 주위의 풍광이 좋다.

 

 

 

예쁘고, 개성 있는, 독특한 집들이 참 많다.

 

일반 주택인지 별장인지 호텔인지 모르겠다. 브라쇼브 근처에 드라큐라 성의 배경이 되었다는 브란 성(Castelul Bran)이 있는데 그런 괴기스런 분위기를 풍기는 집들도 있다.

 

 

 

30분 정도 걸어서 곤돌라 타는 곳에 도착했다.

 

정상부까지 가려면 곤돌라를 한 번 갈아타야 한다. 일단 1,400m까지 올라가서 그곳에서 2,000m까지 올라가는 곤돌라로 갈아탄다. 2,000m까지 올라가는 곤돌라 왕복 요금이 55레이다. 2,000m까지 올라가면 그곳에서 부체지산 정상까지는 능선을 따라 걸어서 갈 수 있다고 한다. 가능하다면 정상까지 가는 것이 오늘의 목표다.

 

비수기라 한산하다. 덕분에 곤돌라도 모두 혼자 탑승한다.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니 트란실바니아알프스산맥의 위용이 점점 눈앞에 드러난다. 그 사이의 계곡도 드러나고, 시나이아뿐만 아니라 계곡을 따라서 크고 작은 도시와 마을이 길게 들어서 있다. 지붕이 빨간색들이라 푸른 숲 사이에서 잘 보인다.

 

 

 

곤돌라가 2,000m에 가까워지면서 눈이 보이기 시작하더니만 정상에는 곳곳에 아직도 눈이 덮여 있다. 햇살은 따스했지만 기온은 확실히 차갑다. 바람이 불면 추울 정도다.

 

 

 

2,000m 정상에 올라서니 좀 황량하다.

 

스키장이라 그런지 주변은 전부 민둥산. 원래 민둥산인 것인지 스키장으로 만들려고 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둘 다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조금만 눈을 들어 보면 굽이굽이 트란실바니아알프스산맥의 위용이 드러난다
.

 

정상부의 능선은 무척 완만하다. 마치 소백산 정상부의 능선처럼. 트레킹은 하지 않기로 한다. 가는 길이 나무 하나 없는 황무지의 심심한 길이기도 했지만 얼었던 땅이 막 녹기 시작하면서 땅이 매우 질퍽하다. 눈으로 덮인 곳은 밟으면 푹푹 들어간다. 신발 젖기 딱 좋다.

 

대신 근처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경치가 가장 좋은 곳에 걸터앉아 보온병에 담아온 커피를 마신다. 음악도 들으면서. 그렇게 한 동안 멍 때리듯 트란실바니아알프스의 정경을 눈이 시리게 담는다. 푸른 산도 있고, 황량한 산도 있고. 산들은 다양했지만 능선이 너무 평탄해서 이곳이 정말 높은 산들로 이어진 곳인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얼마나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한산하던 곳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일어날 때가 된 모양이다. 시계를 보니 오후 2시다. 정상까지 트레킹을 못해 아쉽지만 이만 내려가기로 한다.

 

시나이아에는 두 개의 성이 있다.

 

하나는 앞서 말한 루마니아 국보 1호의 펠레스 성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옆에 있는 펠레쇼르 성(Pelișor Castle). 루마니아 왕들의 여름 휴양도시답게 여름에 왕들이 지내다 가는 여름궁전이다.

 

펠레스 성은 루마니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성답게 작지만 무척이나 세련되고 멋지다. 성 주위를 감싸고 있는 트란실바니아알프스산맥의 푸르름이 성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입장료를 내야해서 그냥 생략한다. 귀찮기도 하고, 지쳤기도 하고.

 

 

 

펠레스 성에서 걸어서 3분 거리에 있는 펠레쇼르 성도 작지만 예쁘다.

나름의 개성도 있는 것 같고.

 

 

 

성 아래로 조금 걸어 내려가면 시나이아 수도원(Sinaia Monastery)이 나온다.

들어가서 둘러볼 만 하다.

 

 

 

아침부터 하도 걸었더니 다리도 아프고, 손가락 까닥할 힘도 없다.

이젠 절경이 있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도 먹어야지. 수도원 아래에 있는 공원에서 맥주에 빵을 사가지고 와서 늦은 점심을 한다. 날씨를 걱정했는데 완전히 기우다. 하루 종일 하늘은 맑다. 햇살은 강렬해서 햇볕 아래에 가면 덥지만 그늘로 가면 금세 시원해진다. 이틀 동안 내린 비에 먼지마저 사려져 눈이 부실 정도로 화창한 감사한 날이다.

 

숙소로 돌아와 보니 오늘은 손님이 진짜 나 혼자다.

눈치 볼 것 없이 라면도 끓여 먹고, 와인도 마시고, 커피도 마시고.

이 큰 집에 혼자라니 나쁘지 않다.

 

아름다운 도시 브라쇼브의 이런 집에서 한, 두 달 지내다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마구 밀려온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