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민의 꿈, 보헤미안의 삶

세상의 모든 경계를 넘어 보다 자유로운 미래를 그린다

미얀마의 민주화와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기원하며...

세계 일주 여행/루마니아(Romania)

D+182,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3: 부쿠레슈티의 올드타운과 독재자 차우셰스쿠 흔적(20190515)

경계넘기 2020. 10. 21. 16:10

 

부쿠레슈티(Bucureşti)의 올드타운(old town)과 독재자 차우셰스쿠(Ceauşescu) 흔적

 

조금씩 마음이 조급해진다.

 

가야할 곳은 많고 시간은 화살과 같이 빠르고. 루마니아의 첫 도시이자 수도인 부쿠레슈티(Bucureşti)에서 3박만 하고 이동하기로 한다. 나라는커녕 도시조차 간보기도 어려운 짧은 시간이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숙소를 나와서 가장 먼저 할 일이 부쿠레슈티 북부 기차역으로 가서 다음 목적지인 브라쇼브(Brasov)에 가는 기차표를 끊는 일이다. 루마니아는 버스보다 기차를 이용하는 것이 더 편리하고 가격도 저렴하다고 한다. 일단 가격이 비슷하거나 약간 비싸다면 기차가 버스보다는 여행하기에 훨씬 좋다.

 

북부 기차역은 지하철을 이용하면 한 번에 갔다. 덕분에 루마니아 지하철도 타 본다. 패스는 2회권을 살 수 있다. 갈 때는 지하철을 이용하지만 올 때는 천천히 시내를 구경하면서 걸어올 생각이라 내일 갈 때 것까지만 생각해서 2회권을 끊었다. 2회권이 5레이. 우리 돈으로 대략 1,500원이다.

 

 

 

지하철역에서 내리자 바로 기차역과 연결된다.

 

창구에 사람이 많지 않아 금방 표를 샀다. 3시간 정도 가는데 가격이 48.60레이다. 생각보다 싸지 않다. 나중에 알았는데 많은 역을 거치는 기차, 즉 완행기차도 있어서 그것은 가격이 싸다. 내가 선택한 기차는 급행인 셈이다.

 

 

 

기차표를 샀으니 내일 갈 준비는 숙소 예약만 하면 된다.

더 있을까 망설이다가도 이렇게 표를 사고 나면 고민은 사라져 버린다.

 

북부 기차역은 올드타운에서 대략 걸어서 40분 거리다. 기차역에서 내려오면서 혁명광장, 대학광장 그리고 올드타운을 거치면서 구경할 요량이다. 어제 무료 워킹 투어(Free Walking Tour)로 대충 둘러 본 곳도 있지만 이번에는 찬찬히 둘러볼 요량이다. 더불어 혁명광장에 있는 국립미술관과 올드타운에 있는 국립역사박물관 그리고 부쿠레슈티의 하이라이트 인민궁전도 보려고 한다.

 

혁명광장에 있는 국립미술관은 원래 왕궁이었던 것을 공산 정권이 수립한 이후 미술관으로 사용되었다. 

 

지금도 이곳의 일부를 국립미술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국립미술관의 입장료는 15레이. 불가리아 소피아(Sofia) 국립미술관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도 크고 소장품도 많다. 먼저 옛 미술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대부분 기독교와 관련된 종교적 작품들이다. 현대미술 전시관에는 루마니아를 대표하는 화가들의 회화와 조각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미술을 잘 볼지는 모르지만 보고 있자면 나라보다 조금씩 다른 특색이 보이곤 한다. 말이나 글로는 표현하지 못하지만.

 

대충 둘러보는데도 두 시간 정도 걸린 것 같다. 이런 곳 하나 둘러보면 다리가 무척 아프다. 2시간 트레킹 하는 것보다 2시간 박물관이나 미술관 둘러보는 것이 다리가 더 아픈 데 그 이유를 모르겠다. 머리도 아프고.

 

 

 

미술관이 있는 혁명광장에서 대학광장으로 터벅터벅 걸어간다. 배도 고프고 다리도 아프다. 그때 문득 대학광장 근처에서 어제 본 한국 식료품 가게인 KJ 마켓(Korean and Japanese Market)에서 컵라면을 사먹자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잠깐 들렸었는데 나오면서 보니까 한국의 편의점처럼 가게 안에서 컵라면을 먹을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얼큰한 한국 컵라면을 먹을 생각을 하니 다리에 힘이 솟는다. 어제 보지는 못했지만 즉석밥도 있다면 컵라면에 즉석밥도 말아 먹을 생각이다.

 

어제는 오후 늦게 가서 손님이 많다는 생각은 못했는데 점심시간 조금 지난 시간에 가니 손님들이 많다. 대부분 젊은 여대생들로 보이는데 이들 중 대부분이 한국 컵라면을 사서 먹는다. 특히 진라면을 많이 사먹는데 김치까지 사서 한국인처럼 제대로 라면을 먹는 친구들도 있다. 라면 먹는 폼이 아주 익숙한 것으로 봐서 자주 오기도 하지만 한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많이 본 것 같다.

 

한국과 일본 상품을 판매하는 가게지만 젊은 여대생들이 먹는 것은 대부분 한국 상품이다. 수정과 캔을 사서 마시고 있는 친구도 있다. 내가 컵라면을 먹고 있는 동안에도 손님들이 계속 들어온다. 맞은편에 부쿠레슈티 대학이 있으니 여기 학생들이 많을 것으로 짐작하는데 놀랍다 못해 신기하다. 한류의 위력이 이 정도인가 싶기도 하고.

 

 

 

큰 컵라면 하나를 다 먹고 나니 얼큰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가격은 대략 우리 돈으로 3천 원 정도 하니 한국에 비하면 거의 두 배의 가격이다. 바로 옆에 있는 젊은 여대생이 김치에 라면을 먹고 있다. 나도 김치와 함께 먹었어야 했다.

 

얼큰한 컵라면 하나 먹고 나니 힘이 쏟는다. 젊은 친구들이 계속 가계로 들어와 이제는 앉을 자리도 없다. 내가 그나마 한가할 때 온 모양이다.

 

 

 

어제 대충 둘러본 올드타운을 천천히 둘러보면서 걸어 내려간다. 부쿠레슈티의 올드타운은 제법 규모가 있다. 크고 웅장한 건물들도 많고, 건물마다의 양식도 다채롭다. 건축기술에 지식이 있다면 무척 흥미로울 것 같지만, 없다 하더라도 그 양식의 차이는 확실히 느껴진다.

 

동유럽의 파리라고 하더니만 그 말이 허명(虛名)은 아니다.  건물 하나하나마다 역사적 의미와 예술적 가치가 있을 터인데 그냥 훑고만 가야하니 무척이나 아쉽다. 

 

 

 

올드타운 그리고 도시 곳곳에 성당들도 많은데 모양이 각기 독특하다. 이들 또한 의미와 가치가 있을 터인데 아쉽다.

 

 

 

올드타운 거리마다 카페나 레스토랑들이 줄지어 있어서 먹자거리를 형성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있는 곳에 앉아서 맥주와 식사를 한 번 해주어야 하는데 혼자라 그런지 쉽게 들어가지질 않는다. 한 곳에 조금 오래 머물다보면 현지 음식도 대충 알고, 단골 식당도 생겨서 자주 가게 되는데 이렇게 짧게 거쳐 가는 경우는 대충 먹게 된다.

 

 

 

시간이 꽤 돼서 일단 부쿠레슈티의 가장 명물 중의 하나인 인민궁전을 먼저 보고 시간이 되면 역사박물관을 보기로 한다. 인민궁전도 지금은 미술관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하니 그쪽도 꽤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서둘러 인민궁정으로 가는데 빗방울이 떨어진다. 빗속을 뚫고 겨우 인민궁전에 왔는데 웬일! 7월까지 개방을 안 한단다. 어쩔 수 없이 담장 아래에서 외관만 본다. 원체 건물이 커서 담장을 따라 한 바퀴 돌 엄두도 나질 않는다.

 

부쿠레슈티에 오면 의외로 북한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어제 무료 워킹 투어 가이드도 북한을 자주 언급했다.

 

부쿠레슈티에서 북한이 자주 언급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인민궁전이다. 현존 가장 큰 궁전이라고 하는데 평양을 방문한 차우셰스쿠가 김일성 궁전을 본떠서 만들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인민궁전에서 통일광장까지 직선으로 연결되는 도로 주변을 거대한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는데 이 도시 계획 역시 평양을 보고 만들었다고 한다.

 

 

 

차우셰스쿠와 북한은 사이가 좋았다. 독재자 차우셰스쿠가 북한 부자세습에 매우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란다. 북한처럼 가족이 대를 이어 루마니아를 지배하고 싶은 욕구가 도시와 궁전까지 북한을 모방하게 만든 가장 큰 원동력이 된 것이다.

 

인민궁전에서 통일광장까지의 건물과 공원, 도로의 모습은 전형적인 중앙집권적 계획경제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계획에 의해 일괄적이고 획일적으로 만들어진 도시구조. 이 구역 개발을 하면서 구역에 있던 오래된 유적들도 모두 이전시켰다고 한다. 계획 속에 개인은 물론이고 문화, 역사 등도 묻혀 버렸다.

 

어제 가이드가 그런 말도 했다. 차우셰스쿠가 지금도 살아 있다면 올드타운이 전부 없어졌을지도 모른다고.

 

부쿠레슈티 곳곳에 독재자 차우셰스쿠의 흔적이 남아 있다. 혁명광장과 대학광장에는 민주화 혁명 당시 무자비한 강제진압에 의한 유혈의 흔적이, 그리고 이곳에는 그의 획일적 망상의 잔재가 남아 있다.

 

인민궁전에는 거의 축구장만한 회의장인지 연회장인지가 있다고 해서 꼭 들어가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막히니 맥이 빠진다. 다시 되돌아가서 역사박물관을 볼 생각도 나지 않는다.

 

빗방울도 떨어지고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프고 그냥 숙소로 돌아가기로 한다.

 

여행자 중에는 부쿠레슈티를 삭막한 도시라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 볼거리도 할거리도 무척 많아 보이는 도시다. 이삼일만에 이 도시를 둘러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아니 대충 훑어보기에도 충분한 시간은 결코 아니지만 다음을 기약하기로 하고 아쉽지만 이렇게나마 마무리하기로 한다.

 

도시를 돌아다니다 보니 부쿠레슈티에는 공연장들도 많은 것 같다. 문화예술 관련 기관이나 학교도 많이 보이는 것이 문화예술이 발전한 도시로 보인다. 시간이 좀 있다면 이곳에서 공연을 좀 봤으면 하는 아쉬움도 많이 남는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