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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81,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2: 부쿠레슈티(Bucureşti) 혁명광장에서 5·18 광주를 생각하다(20190514)

경계넘기 2020. 10. 20. 21:45

 

부쿠레슈티(Bucureşti) 혁명광장에서 5·18 광주를 생각하다

 

혁명광장(Piața Revoluției)에 가기 직전의 한 카페에 앉아 있다. 비를 피하기 위해서 들어온 카페.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 시켜 놓고 비오는 부쿠레슈티(Bucureşti)의 거리 풍경을 보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배만 고프지 않으면 좋으련만 부실한 조식을 먹고 오후 4시가 되가는 지금까지 먹은 게 없는지라 허기가 진다. 원래는 식당을 찾으려 했으나 근처에 만만한 식당은 보이지 않고 비는 계속 쏟아지는 지라 급하게 눈에 보이는 카페에 들어왔다.

 

이곳 동유럽의 비도 일단 시작하면 만만치 않게 내려서 우산이 무용지물이 된다. 도로의 하수시설도 좋지 않아서 잠깐 내리는 비에도 도로 곳곳에 물이 고인다. 건너다니기도 힘들지만 괜히 걷다가 달리는 자동차에 물벼락 맞기 십상이다. 도로에 고인 물과 다가오는 자동차의 거리를 잘 계산하며 다녀야 한다.

 

현대적인 깔끔한 카페다. 도로가 바로 보이는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구글맵으로 도로 이름을 찾아보았다. 1번 도로로 이름은 니콜라 발체스쿠(Nicolae Balcescu). 서울의 세종로나 종로처럼 부쿠레슈티 중심가를 관통하는 중심 도로다. 이 도로는 부쿠레슈티 대학광장(Piata Universitatii)에서 혁명광장을 연결하는 길이기도 하다. 대학광장에서 올라와서 혁명광장으로 들어가는 길 초입에 앉아 있는 것이다.

 

 

 

아침부터 흐렸던 날씨는 무료 시내 투어를 하는 중에 쏟아지기 시작하더니만 지금까지 계속 내리고 있다.

 

무료 워킹 투어(Free Walking Tour)의 젊은 가이드는 투어가 시작하는 부쿠레슈티 통일광장(Piata Unirii)에서부터 이전 공산주의 정권에 대한 분노를 드러내더니만 대학광장에 이르러서는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투어 가이드인지 루마니아 현대사 강사인지 분간하기 힘들다.

 

 

 

그는 대학광장이 바라보이는 곳에 서서 19891220일에서 25일 사이에 있었던 루마니아 민주화 시위를 온몸을 다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Nicolae Ceauşescu)가 혁명광장의 구 공산당 본부에서 연설을 하는 동안 일어났던 부쿠레슈크 시민들의 반발과 저항, 그들을 향한 보안대의 사격, 혁명광장에서 빠져나온 시위대가 어디로 흩어졌다가 다시 어떻게 대학광장으로 모이고, 이들에 대해 보안군이 어떻게 강제진압을 했는지 등을 말이다.

 

대학광장을 둘러싼 건물들의 지붕을 가리키며 젊은 가이드는 보안대의 저격수들이 저 건물들의 지붕에서 비무장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발포를 했다고 열변을 토한다.

 

아울러 물러나지 않는 시위대에 놀란 차우셰스쿠가 급기야 자신의 관저로 사용했던 구 공산당 본부 지붕에서 헬기를 타고 도망치는 모습이 찍힌 사진을 보여준다.

 

 

 

젊은 가이드의 온몸을 다하는 열변을 들으면 들을수록 내 머리에서는 1989년 겨울의 루마니아 부쿠레슈티가 아니라 1980년 봄 대한민국의 광주가 생각났다.

 

당시 시민들로 가득 메워졌던 혁명광장에서 대학광장을 연결하는, 지금 내가 보고 이 글을 쓰면서 보고 있는, 니콜라 발체스쿠 도로는 광주의 금남로가 되고 혁명광장에 있는 구 공산당 본부는 전남도청이 되고 있다. 그리고 시위대에 총격을 가하는 보안대는 당시의 공수부대로 대체되고 있다.

 

모두가 딱 들어맞는데 한 가지만 정 반대로 보인다. 차우셰스쿠가 도망가기 위해 탄, 막 구 공산당 본부 건물을 떠나는 헬기의 사진은 전남도청을 선회하며 기총사격을 했던 헬기의 모습으로 말이다.

 

루마니아의 혁명은 성공했지만 그 혁명 과정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혁명 과정이 밝혀져야 당시 시민 학살에 연루된 사람들을 처벌할 수 있을 터인데, 당시의 권력자들이 여전히 살아남아서 그것을 막고 있다고 한다.

 

1989년 루마니아의 민주화 투쟁이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고르바쵸프(Gorbachev)에 의한 소련의 변화도 있었지만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루마니아 군부와 경찰이 차우셰스쿠와의 관계를 끊고 시민 편에 섰기 때문이다.

 

당시의 권력자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막판에 시민 편에 섰던 군부와 경찰이지만 이전 차우셰스쿠 치하에서는 시민들을 억압하고 탄압했을 뿐만 아니라 일부는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시민들을 학살했던 조직이라는 점이다.

 

상황이 차우셰스쿠에게 불리하게 돌아간다고 판단한 군부와 경찰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약삭빠르게 차우셰스쿠를 버리고 시민 편에 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들이 권력을 유지하면서 혁명 이전과 과정에 있었던 실체적 진실은 그들에 의해 감쳐지고, 그 모든 책임은 온전히 차우셰스쿠가 다 짊어지고 간 셈이 되었다. 꼬리 자르기가 아니라 머리 자르기다.

 

젊은 가이드가 열변을 토하면서 보여준 당시의 또 다른 사진들이 있다. 니콜라 발체스쿠 도로와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모습. 198912월 이곳의 모습이다.

 

 

 

거리의 사진들을 보니 또 다른 장면이 생각난다.

 

19805월의 광주가 비극적 결과를 맞이했다면 19876월의 서울은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 그때 종로와 광화문을 메웠던 시민들. 꼭 그때의 모습과 비슷하다.

 

혁명광장에서 대학광장과 연결되는 니콜라 발체스쿠 도로는 마치 서울에서 대학로와 광화문을 연결하는 종로와 비슷해 보인다. 혁명광장에서 대학광장까지 걸어서 15분 정도 걸리니 거리는 이곳이 훨씬 짧다.

 

예전에 대학로에는 서울대가 있었다. 그래서 대학로라 불리는 것인데 니콜라 발체스쿠 도로와 연결되는 이곳 대학광장에도 우리의 서울대와 같은 부쿠레슈크 대학이 있다. 루마니아 최고 명문 대학 중의 하나다. 한국에 민주화를 가졌었던 1987년 종로가 그랬듯이 1989년 루마니아에 민주화를 가져왔던 이 도로도 마찬가지였으리라.

 

비가 그쳤다. 물바다가 된 거리를 뚫고 혁명광장으로 간다. 시티투어에서는 가지 못했던 곳. 광장에 들어서자 바로 앞으로 지금은 국립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왕궁(Palatul Regal)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맞은편에는 말을 탄 카를 1(Carol)의 동상을 앞에 두고 중앙도서관 건물이 있다. 혁명 과정에서 불이 나서 귀중한 도서들이 모두 불타버렸다고 한다.

 

 

 

그 건물들 사이와 옆으로 혁명광장이 나온다. 생각보다 넓지는 않다. 지금은 거의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고, 그날을 추모하며 세워진 추모비만이 이곳이 혁명광장임을 말해 준다. 혁명광장 바로 앞에 웅장한 내무부 건물이 보인다. 가이드가 사진으로 보여줬던 구 공산당 본부 건물이다. 혁명 당시 차우셰스쿠가 연설을 하다 성난 군중에 놀라 뒷걸음 친 곳이 바로 이 건물 테라스다.

 

 

 

혁명광장을 둘러보고 온 길을 되돌아서 대학광장을 간다. 대학광장 바로 앞에는 웅장한 몸체를 자랑하는 부쿠레슈티 대학건물이 있다. 돌로 깔려진 대학광장은 혁명광장과 달리 광장의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다. 간간히 공연도 있는지 간이 무대로 설치되어 있다.

 

 

 

대학이 있는 곳이라 젊은이들이 많다. 그네들은 지금 자신들이 공부하고 있는 이곳이 어떤 장소라는 사실을 잘 알 것이다.

 

그런데 기사에 의하면 다시 차우셰스쿠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경제가 생각만큼 성장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그 점도 우리와 많이 비슷하다. 우리도 여전히 박정희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딸까지 감방에 간 지금까지도.

 

빵이 자유보다 소중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아 보인다.

절대 빈곤의 상황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러고 보니 대부분의 사회적 문제는 절대적 빈곤보다는 상대적 빈곤에서 나온다.

 

비 오는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거리를 걸으며 그렇게 난 우리를 생각했다. 몰랐는데 생각해보니 곧 5.18이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