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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일주 여행/베트남(vietnam)

D+042, 베트남 하노이 4-1: 베드버그(bedbug), 빈대에 물리다(20181226)

경계넘기 2021. 4. 4. 09:35

 

베드버그(bedbug), 빈대에 물리다

 

이번 여행 처음으로 베드버그(bedbug), 즉 빈대에 물렸다.

 

호안끼엠 호수(Hoan Kiem Lake)에서 아침 산책을 하고 막 숙소로 돌아와서의 일이다. 도미토리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내 위 침대에 있던 프랑스인 아저씨가 빈대에 물리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자기도 물렸고, 주변 침대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물렸단다.

 

그저께 저녁에 모기에 꽤 시달렸다. 열 방 정도 물렸는데 어제 낮에 보니 내 등과 어깨에 각각 한 방씩 큰 혹처럼 부어 있었다. 무언가 물린 것은 확실한데 그 두 방은 적어도 모기는 아니었다. 마침 궁금해 하던 차에 프랑스 아저씨께 내 등 뒤의 물린 곳을 보여주니 딱 빈대란다. 서양에는 빈대가 많아서 잘들 알아본다.

 

어쩐지 빈대 같더라니.

 

빈대 물린 게 처음은 아니다. 예전에 미얀마 껄로(Kalaw)에서 트레킹을 하다가 한 소수민족 집에서 잠을 잔 적이 있었다. 그때 몇 군데 벌레 물린 곳이 있었는데 며칠이 지나도 낫질 않았다. 보통 모기에게 물린 곳은 약을 바르고 긁지만 않으면 하루, 이틀에 사라진다. 같이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물으니 빈대란다. 그때도 물린 곳이 한 2주 정도 갔던 것 같다.

 

 

 

다행인 것이 어제 저녁에는 물리지 않았다.

 

리셉션에 말하러 간다며 방을 나선 프랑스 아저씨와 직원이 곧 같이 올라왔다. 직원에게 내 물린 곳을 보여줬더니 빈대가 맞는지 직원도 금세 수긍을 한다. 잠시 후에 직원이 다시 와서 다른 방으로 옮겨주겠단다. 이 방은 소독을 해야 한다고. 나 역시 원하던 바라 귀찮긴 해도 방을 옮긴다.

 

하지만 빈대는 방만 옮긴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내 짐 속에 빈대가 들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빈대가 있다는 것이 확인되면 모든 옷가지들은 삶거나 뜨거운 물로 세탁을 해야 한다. 가방 역시도 햇살에 소독을 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런데 난 내일 라오스로 떠난다. 도저히 빨래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사실 난 나를 문 빈대 놈을 보고도 살려주었다.

 

어제 아침에 내 침대 위를 기어 다니는 작은 벌레를 봤었다. 그 놈의 크기는 0.5cm 정도 했다. 살생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지라 그냥 벌레겠지 싶어 입바람으로 불어서 날려버리기만 했다. 빈대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막연하게 빈대도 이처럼 좁쌀만 한 크기라고 생각했다. 물려는 봤어도 본적이 없으니 그럴 만도 했다. 기억을 되새겨보면 피를 많이 먹어서 몸통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그런데 그 피가 내 피라니.

 

나중에 인터넷을 통해 확인해보니 실제 0.5cm 정도 한단다. 살생은 싫어해도 복수는 해야 하는 법인데. 나를 물고 내 피를 빤 놈을 살려 보냈으니 통탄스럽다. 더욱이 침대 바닥에 떨어진 그 놈이 바닥에 있는 내 배낭에 들어갔을 수도 있다.

 

 

 

짐을 다른 방으로 옮기고 숙소를 막 나서는데 입구에 있던 그 직원이 조용히 나를 부른다. 종이 위에 글을 써서 보여주는데 하루치 방값을 돌려주겠단다. 이왕 저질러진 일이긴 하지만 방도 바로 옮겨주고 방값도 물러주니 숙소의 대처가 나쁘지 않다.

 

그런데 방값을 되돌려 받자마자 다시 종이 위에 무언가를 써서 보여주더니 내 손을 꼭 잡는다. 종이 위에는 제발 리뷰나 인터넷에 이 사실을 알리지 말아달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영어가 가능한 이 친구가 말로 안하고 종이에 쓴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좀 더 확실히 하려고 글로 쓴 줄 알았는데 주위에 있는 다른 여행객들이 들을까봐 그런 것이다. 환불을 받고 나서 이런 부탁을 하니 꼭 내가 인터넷에 말을 안 하는 조건으로 환불을 받은 꼴이 되었다.

 

애초에도 숙소 탓을 할 생각은 없었다. 여행객을 받는 숙소에서 빈대 문제는 병가지상사. 대부분의 경우 빈대는 여행객이 실어 오는 경우가 많다. 그저께만 물렸고 어제 물리지 않은 것으로 봐서는 빈대가 많은 것 같지도 않다. 원래 빈대가 많은 숙소라면 계속 물렸을 테니까. 억울한 것은 숙소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숙소의 대처다.

 

이곳의 대처는 나름 빨랐다. 더욱이 생각지도 않은 환불까지 해주니 긍정적인 평가를 하면 했지 부정적인 평가를 내릴 이유는 없다. 그저 내 배낭 안으로 빈대가 들어가지 않았기만을 바랄 뿐이다.

 

 

 

모기나 빈대는 배낭여행객에게는 불가원(不可遠) 상대. 그래도 빈대만은 극구 사양하고 싶다. 한 번 물리면 너무 오래가고 무척이나 가렵기 때문이다. 가려워서 긁으면 나중에 흉터까지 생긴다. 모기는 병을 옮겨도 빈대는 병을 옮기지는 않는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싫다.

 

세계여행을 시작하면서 어디서쯤 첫 빈대에 물리나 궁금했는데 그곳이 하노이다. 지난 여름 한 달간의 베트남 종주 여행에서도 물리지 않았는데.

 

하노이에서는 어쩔 수 없지만 라오스에서는 빨래와 배낭 소독을 해야 할 것 같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