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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043, 베트남 하노이 5-4: 하노이(Hanoi)에서 루앙프라방(Luang Prabang), 최악의 국제버스(20181227)

경계넘기 2021. 4. 10. 07:19

 

하노이(Hanoi)에서 루앙프라방(Luang Prabang), 최악의 국제버스 for me

 

 

성수기 동남아에는 안 좋은 추억이 많다.

 

 

숙소에서 픽업을 기다린다. 픽업 시간이 오후 5시였는데 30분이 넘어서야 오토바이 픽업이 온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니 다시 제2의 집결 장소다. 이미 몇몇의 서양 친구들이 먼저 와 기다라고 있다.

 

이번에는 밴이 온다. 이미 사람들로 차 있는 곳에 우리까지 들이민다. 한 서양인 친구의 말에 모두 웃는다. 15명 정원인 차에 지금 21명이 타고 있다고. 그것도 짐과 함께. 성수기 동남아의 풍경답다.

 

동남아 국가들이 좋아하는 밴이나 미니버스. 성수기에 태국이나 라오스에 갔다가 이렇게 밴에 짐짝처럼 실린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밴이라 좌석 간격도 좁아서 다리도 제대로 필수 없는데 그런 곳에 배낭 짐도 있으니 거의 고문 수준이다. 그런 채로 대여섯 시간을 달린 적도 있다.

 

그게 질려서 동남아에서는 되도록 돈이 많이 들어도 대형 버스를 타려고 한다.

그래도 어느새 버스가 바뀌어 오긴 하지만.

 

중국에 머물다가 동남아 최대 성수기인 연말연시를 피해서 넘어오려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어찌하랴, 성수기의 불편함보다는 자유가 더 좋은 것을....... 선택을 후회하진 않는다.

 

다만, 동남아 성수기의 저주는 이제 막 시작이다.

 

버스 터미널까지 그리 먼 거리는 아닌 듯싶은데 퇴근 시간대의 교통 정체로 꽤 시간이 걸린다. 나는 운 좋게 자리에 앉아 가지만 설 수도 없는 밴에 거의 반 무릎 자세로 서서 가는 몇몇 친구들은 그 시간이 지옥 같았을 것이다.

 

운명은 바로 뒤바뀌었다.

 

터미널에는 라오스 비엔티안(Vientiane) 가는 버스와 루앙프라방(Luang Prabang) 가는 버스가 같이 있었다. 출발 시간도 오후 6시로 같다. 그러다 보니 픽업 나온 차 안에 루앙프라방 가는 친구들과 비엔티안 가는 친구들이 섞여 있었다. 그걸 모르고 아무 생각 없이 같이 버스에 탄 친구들을 쫓아갔다가 뒤늦게야 비엔티안 가는 버스란 걸 알았다.

 

바로 루앙프라방 가는 버스로 갔지만 내가 거의 마지막이다. 짐을 맡기고 버스에 올라타니 역시나 베트남 친구들은 버스에서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뒤로 가니 웬걸 자리가 없다. 정확이 말하면 맨 뒤에 내 자리 하나가 있긴 있지만 내 바로 뒤로 서양 여자 여행객 한 명이 나를 따라 오고 있다.

 

1명이 오버부킹 된 것이다.

 

 

 

 

베트남의 장거리 버스

 

 

내가 버스를 예약한 곳은 신투어리스트(TheSinh Tourist). 일명 신카페(TheSinh Cafe)로 한국인 여행객들 사이에서 잘 알려진 여행사다. 티켓을 살 때 내 부탁에 따라 신카페에서 버스회사에 전화를 걸어서 좌석 요청까지 해두고, 티켓에다 middle seat(중간 좌석)라고 좌석 표기까지 해놨는데 중간커녕 좌석조차도 부족하다.

 

중국에서 하노이로 들어온 다음날 바로 신카페에 갔었다. 라오스로 가는 국제버스를 예약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신카페에 버스 예약을 하러 간 이유는 베트남 장거리 버스의 운행 습관 때문이다. 베트남 장거리 버스들이 외국인 여행객들을 매우 기분 나쁘게 만드는 것이 하나 있다. 베트남의 장거리 버스들은 대부분 32단의 침대 버스다. 침대 버스의 경우 버스 앞 쪽의 하단 좌석이 가장 좋다. 특히 맨 뒤 좌석은 화장실 옆자리이기도 하지만 3개의 좌석이 붙어 있어서 무척이나 불편하다.

 

대부분의 베트남의 장거리 버스들은 좌석 지정제가 아니다. 문제는 장거리 버스들이 승객을 태울 때 먼저 온 순서와 상관없이 베트남 승객들은 앞에서부터 좌석을 배정하고 외국인 승객들은 맨 뒤에서부터 자리를 배정한다는 곳이다. 뿐만 아니라 베트남 승객들은 아래 좌석에 외국인 승객들은 주로 위 좌석에 앉힌다.

 

이걸 당하면 불편한 것도 불편한 것이지만 일단 기분이 더럽다. 차별 아닌가 싶어서다. 외국인들은 아무리 일찍 와도 앞자리에 앉을 수가 없다. 뒷자리부터 앉히기 때문에 오히려 일찍 오면 맨 뒷자리에 앉기 쉽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봐서는 차별하려는 의도에서 하는 것은 아니다. 대개의 장거리 버스들은 중간 중간 수시로 사람들을 태우고 내린다. 중간에 타고 내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베트남 승객들이다. 외국인 여행객들은 대부분 끝까지 간다. 중간에 내리거나 하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베트남 승객들이 뒷자리나 위쪽 좌석에 있으면 수시로 타고 내릴 때 많이 번거롭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그러니 자주 타고 내리는 베트남 승객들은 앞쪽에, 주로 끝까지 가는 외국인 승객들을 뒤쪽에 태우는 것이 버스나 승객에게 효율적이다.

 

좌석만 같다면야 좋은 배려다. 하지만 버스의 형편과는 상관없이 무조건 외국인 여행객들을 뒤로 보내는 것이 하나의 관행으로 굳어 버린 것이 문제다. 의도가 좋다하더라도 일단 앞자리 그리고 아래 좌석은 베트남인들에게 먼저 배당되니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빈자리가 남아 있어도 외국인은 꼭 뒷자리부터 채운다. 중간에 어디서 탈지 그네들도 모르기 때문이다. 관습처럼 굳어진 것이라 양해를 구하지도 않는다.

 

예전에 화장실 바로 옆자리에서 10시간 넘게 이동한 적이 있다. 사람들이 화장실에 들락거릴 때마다 풍기는 암모니아 냄새로 아주 고생을 했다. 생전 없던 멀미까지 나올 것 같았다. 게다가 화장실 옆 맨 뒷자리는 세 자리가 나란히 붙어 있어서 일행이 아닌 경우는 매우 좁고 당황스러워진다.

 

그런데 신카페의 여행자 버스와 풍짱(Futa) 등의 몇몇 버스회사는 좌석 예약제를 운영한다.

 

원하는 좌석을 예약할 수 있다. 굳이 신카페를 찾아간 이유다. 24시간 이상을 타고 가야 하는데 맨 뒷자리 화장실 옆에 짐짝처럼 실려 가고 싶지는 않았다.

 

막상 신카페를 찾아갔는데 조금 당황스러웠다. 신카페 홈페이지 상에는 국제버스 티켓을 판다고 나왔는데 국제버스는 직접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대행하는 거란다. 당연히 좌석 지정도 할 수 없다고. 그것 때문에 신카페를 일부러 찾아왔는데 참 황당했다.

 

풍짱 등의 대형 버스회사도 국제버스를 운행하지 않으니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신카페에서 표를 사면서 되도록 좌석 지정을 요청했다. 신카페에서도 전화를 걸어보더니 앞쪽은 안 되고 중간쯤은 가능하다고 했다. 티켓에도 좌석을 표시해 주었다.

 

버스 가격은 천만 동에 육박하는 990만 동. 우리 돈으로 5만원 돈이다. 동남아시아에서 버스로 이동하는 곳 중에서 가장 비싼 구간이 아닐까 싶다. 내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에서 인도의 콜카타까지 끊어 둔 항공권 가격과 비슷하다.

 

그런데 오버부킹이라니!!

 

 

 

 

최악의 국제버스 for me

 

 

그래도 신카페의 위력이 있는 것일까?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이던 기사들이 내가 신카페 티켓을 보여주니 달라진다. 어딘가에 전화를 걸더니만 급기야는 다른 좌석에 자고 있던 베트남 승객 한 명을 깨워서 맨 뒷자리로 보내고 나보고 거기에 앉으란다.

 

그래봐야 어차피 한 자리. 그 좌석을 내 뒤의 서양 친구에게 주었다.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버스에서 내리거나 통로에 누워서 가야하는데 젊은 여자애를 통로에 눕힐 수는 없었다.

 

좌석을 여자애에게 양보하고 통로에 앉으려고 하니 이번에는 중앙 좌석에 있던 한 베트남 친구를 통로에 앉히려고 한다. 말하는 시늉으로 봐서 네가 체구가 작으니 통로에 누워가라는 것이다. 같이 돈 내고 탄 처지에 이건 말이 안 된다. 앞서 뒷자리로 보낸 친구도 미안은 했지만 어린 여자애를 앉힐 자리라 받아들인 것뿐이다.

 

같은 남자고 승객인 이상 나에게 그럴 권리는 없다. 내가 통로에 누워 가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미안하다며 매트리스도 깔아주고 쿠션과 담요도 원하는 대로 가져다준다. 나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긴 하다만 통로가 좁아서 어깨가 끼는 관계로 옴짝달싹하기도 어렵다.

 

어찌되었든 신카페의 위력은 있었다. 단순 대행임에도 처음에는 개 닭 쳐다보듯 꼼짝 않던 기사들을 저리 뛰어다니게 한다. 깐깐한 한국 여행객들이 신카페, 신카페 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동남아 성수기의 저주는 항상 상상 그 이상이다.

 

최악의 경우 화장실 옆 맨 뒷자리도 생각을 했지만 침대 칸 좁은 통로에서 누워갈 것이라고는 감히 생각지 못했다. 여행사에서 말하는, 하노이에서 루앙프라방까지의 공식적인 버스 시간은 24시간이지 실제 타본 숱한 여행객들에 의하면 27시간에서 30시간 가까이 걸린다고 하니 이거 완전히 죽음이다.

 

, 이런 경우가 처음은 아니다.

예전 중국에서는 1, 2층 통로까지 승객을 꽉꽉 채운 침대 버스도 타본 적이 있다.

 

중국 최대 성수기의 하나인 노동절 휴가 기간에 베이징에서 침대 버스를 타고 지린성(吉林省)의 한 도시에 간 적이 있다. 그때도 32층의 침대 버스였는데 좌석이 있는 승객들이 다 타자 갑자기 2층 침대 좌석 사이 통로에 깔판을 걸기 시작했다. 깔판을 다 깔자 그 자리에 승객들을 태우기 시작했다. 2층이 통로에 다 타자, 다음은 1층 통로에 사람이 탔다. 내릴 때에는 역순이다. 1층 통로의 승객이 먼저 내리고, 다음으로는 2층 통로의 승객 그리고 2층 통로에 걸었던 깔판을 떼면 마지막으로 좌석에 있는 승객이 내렸다. 휴게소를 들릴 때마다 난리도 아니었다.

 

3열의 침대 버스가 5열의 침대 버스로 바뀌었다. 좁은 버스에 다섯 명이 옆으로 누워 가니 몸을 움직이는 것은 고사하고 옆 사람의 체취와 숨결까지 그대로 느껴야 했다. 남자는 그렇다 치더라도 여자는 결코 버틸 수 없는 그런 버스였다. 그래도 그때의 나는 좌석이라도 있었다지만 지금은 꼼짝없이 통로다.

 

통로 맨 뒤에서 쿠션과 담요를 뒤에 대고 자세를 잡는다. 그래도 옆으로 좁은 것은 어쩔 수 없다. 팔을 내리고 누울 수가 없어서 배 위에 두 손을 가지런히 얹거나 머리 위로 만세를 부르는 자세로 있어야만 한다. 아니면 옆으로 눕든지. 저리지 않도록 가능한 이 네 가지 동작을 반복적으로 하면서 밤새 통로에서 잠을 청한다.

 

 

아래 발끝에서부터 내 자리

 

오후 6시 조금 넘어서 출발한 버스는 한 1시간 정도 가더니만 어느 곳에 서서 짐을 싣기 시작한다. 통로에 누워 있으니 버스 아래 짐칸에 짐을 싣는 소리가 온 몸에 전해진다.

 

다시 출발한 버스는 채 1시간도 안 되어서 저녁을 먹는다고 휴게실에 선다. 통로에 누워 있다 보니 내가 먼저 나가야 다른 사람들이 좌석에서 내릴 수가 있다. 탈 때는 물론 맨 뒤에 타야 한다. 이거 완전 미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저녁을 먹고 나서는 달리 휴게실에 세우지 않고 계속 달린다. 누군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면 잠시 차를 세웠지만 다행히 내 주변에는 그런 친구가 없었다. 정말 없었던 것인지 나에게 미안해 참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좁은 통로에 불편한 자세지만 피곤은 잠을 끌고 온다.

 

짧게 거쳐 가는 베트남이 절대 잊지 못할 추억거리 하나를 만들어 준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