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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일주 여행/라오스(Laos)

D+053, 라오스 루앙프라방 10-1: 여행 속의 일상 (20190106)

경계넘기 2021. 5. 3. 17:47

 

 

여행 속의 일상

 

 

여행을 하면서 여행 속의 일상이라는 주제가 생소하다.

 

하지만 사실이 그런 걸 어쩌랴. 어제와 다름없는 오늘이다.

변함없다는 것은 나의 피상적인 일상, 그 속에서 무엇이 자라고 있는지는 모른다.

 

 

여행의 여백

 

 

여행지에서 일상을 즐긴다는 말이 뭔가 역설적이면서도 의미가 있다.  

 

볼거리를 다 둘러보고 나서야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 마치 의무 방어전을 끝내고 맞은 휴식이라 할까. 바쁜 여행자에서 게으른 여행자로 들어온 느낌이다.

 

루앙프라방(Luang Prabang)에서 나의 일상은 이른 아침의 산책과 운동으로 시작한다.

 

숙소에서 메콩강변을 따라 산책을 하다가, 메콩강(Mekong River)과 남칸강(Nam Khan River)이 만나는 두물머리의 작은 공원에 닿는다. 메콩강과 남칸강이 바로 보이는 이 공원에서 운동을 한다. 가끔 운동을 하러 나온 현지인들을 만나긴 하지만 이른 아침 강변 공원은 무척 한산하다.

 

 

 

운동을 하면 하루가 상쾌하다. 몸도 좀 풀리는 것 같고. 여행이 일상인 나 같은 장기여행자에게 이런 리듬감 있는 일상이야말로 중요하다.

 

아침 운동을 하다가 가끔 가슴이 저려오는 때가 있다. 루앙프라방에서 메콩강을 바라보면 운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는 순간이다. 의미 없는 일상처럼 여기다가 불현듯 이 자리와 이 순간의 의미가 살아난 것이다. 상상 속의 이야기가 현실이 되었음 실감하는 순간이다.

 

숙소로 돌아올 때는 남칸강변을 따라 내려오다가 루앙프라방의 그 예쁜 골목길을 산책한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아침을 먹는다.

 

숙소에서 주는 늘 똑 같은 아침이지만 여전히 맛있다. 아쉽다면 양이 적어서 조금만 지나면 배고픔이 밀려온다는 것. 양도 양이지만 내 배와 허리를 휘감고 있던 지방들이 빠지면서 금세 배가 고파지는 것이리라. 하루 먹어 하루 사는 몸이 되었다.

 

아침을 먹고 샤워를 한다.

 

이 시간쯤 되면 도미토리 방 안의 화장실도 한산해진다. 8인실 도미토리 방의 아침은 항상 부산하다. 하지만 산책과 식사까지 마친 이 시간에는 나갈 사람들은 다 나갔다.

 

도미토리 생존법은 시간 차 공격이 최상이다.

조금 일찍 움직이거나 조금 늦게 움직이거나.

 

오전에는 카페로 출근을 한다.

 

옷을 차려 입고 카페에 간다. 출근이다. 루앙프라방에서의 오전 일터는 빅트리 카페(Big tree Cafe). 소문난 카페라 항상 사람들로 붐비지만 이른 오전은 이곳 역시 한산하다. 메콩강이 보이는 창가 자리나 야외 파라솔 아래에 자리를 잡고 블랙커피를 시킨다.

 

커피가 나오기 전에 테이블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글 쓸 준비를 한다. 나름 일할 채비다. 이내 나온 커피 한 잔과 함께 글을 쓴다. 글이 막히면 커피를 마시며 메콩강이나 야자수를 본다. 햇살이 비취면 더욱 좋다.

 

 

 

점심은 일찍 한다.

 

점심에 가는 시엥통((Xiengthong) 식당이 맛집이라 조금만 늦게 가도 자리가 없다. 11시가 넘으면 카페를 나선다. 라오스 쌀국수인 카오삐약(Kao Piak)을 먹으러 간다. 서둘러야 기다리지 않는다.

 

아침이 빈약하다 보니 이 시간만 되어도 배가 고파져 다행이다. 일찍 식당에 갈 수 있으니 말이다. 카오삐약 곱빼기에 라오 맥주 한 병 그리고 남은 국물에 누룽지를 말아 먹는다. 그제야 포만감이 밀려온다.

 

 

 

오후 출근은 메콩강변 카페다. 나의 아지트.

 

시엥통 식당을 나서서 강변 카페에 간다. 라오 맥주(Beerlao) 한 병을 시켜놓고 메콩강을 마주하고 글도 쓰고 음악도 듣고 멍도 때린다. 가장 무료할 수도 있고, 가장 행복할 수도 있는 시간이다. 가끔은 여기서 저녁도 먹는다.

 

 

 

강변 카페에 가기 전에 숙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다 보니 점심을 먹은 뒤에는 춘곤증이 온다. 도미토리가 아니었다면 점심 먹고 항상 낮잠을 자거나 좀 쉬었을 게다. 더운 지방을 여행할 때 하는 나의 여행 방식으로 한낮의 무더위를 피하려는 것이다. 선선한 오전에 일찍 돌아다니다가 한낮의 태양이 좀 기울어질 무렵 다시 움직인다. 나만의 방식이라기보다는 현지인들의 삶의 방식을 따라 하는 것뿐이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강변 카페에서 석양을 본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메콩강의 일몰은 이번 루앙프라방 여행에서 가장 좋아하고, 기억에 남는 순간이다.

 

노을진 메콩강과 라오 맥주!

 

 

 

석양을 보고나면 강변카페를 뒤로 하고 보통 숙소로 돌아온다. 이때부터 외로운 여행객은 딱히 할 일이 없다. 숙소의 공용 공간에서 못 다한 글을 쓰거나 드라마나 영화를 보기도 한다.

 

지금 루앙프라방에서의 나의 일상이다.

 


 

일반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뭐하나 싶을 게다.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는 팔자 좋은 사람일 터이고.

 

여행에서 일상을 즐긴다는 것은 점점 진정한 여행자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은 아닐까? 낯선 공간의 특별함에서 벗어나 그곳에 적응하면서 나만의 공간과 시간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이때가 정말 좋다.

 

 

여유와 여백이 생기면서 스케줄이 빡빡한 바쁜 여행자일 때 볼 수 없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곳의 일상이기에 쉽게 무시했던 것들이 점점 더 크게 다가온다. 특별한 곳에서 더 특별한 것들만을 찾아다니는 여행객들은 결코 느낄 수 없는, 잔잔히 느껴지는 이곳의 진짜 숨결일지도 모른다.

 

나를 둘러싸고 있던 사회적 상식, 통념, 잡다한 지식들, 선입견 등에서 벗어나 나의 오감만을 통해서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이곳을 오롯이 느끼기 시작한다.

 

 

 

이곳에서 나의 일상은 참 단순하다.

하지만 매일 같은 길을 걷지만 매번 새로운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사람들의 표정들도 매일 달라진다.

 

단골이 되고 내 얼굴을 그네들이 알면 알수록 나에게 주는 표정이나 인사가 다르다. 처음에는 나를 보면 영어로 인사를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는 싸바이디라고 라오스말로 인사를 해준다. 고맙다는 말도 땡큐에서 컵짜이.

 

동네 사람이 되어가는 기분이다.

 

그런데,

여행자의 숙명이 이런 것이리라.

익숙해지면 그만큼 떠날 때가 가까워진다는 사실이.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