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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일주 여행/태국(Thailand)

D+068, 태국 람빵 7: 여행의 풍미 (20190121)

경계넘기 2021. 6. 18. 13:20

 

 

여행의 풍미

 

 

여행은 직면한 현재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
비 오면 비 오는 대로,
눈 오면 눈 오는 대로,
해 나면 해 나는 대로.
미래의 파랑새를 쫓아 나서는 길이 아니다.

 

 

숙소를 옮긴다.

 

람빵(Lampang)에서만 세 번째다. 이번 호스텔에서도 방을 한 번 옮겼으니 그것까지 치면 4번째 짐을 싸는 셈이다. 치앙라이(Chiang Rai)에서는 두 번 숙소를 옮겼다. 세 번째 옮겨야 할 때 그냥 치앙마이(Chiang Mai)로 와 버렸다.

 

어디든 성수기는 배낭여행자에게 쥐약이다.

 

치앙라이에서는 도시를 옮겨버렸지만 람빵에서는 꿋꿋하게 숙소를 옮긴다. 볼 것이 없다는 이곳에서 세 번씩 이사를 한다. 나에게 이곳 람빵은 여행 중 쉬었다 가는 베이스캠프 같은 곳이다.

 

이번 숙소를 옮기는 이유는 호스텔에 방이 없어서가 아니라 도미토리에서 다시 호텔의 개인실로 옮기려는 것이다. 주말이 지나니 람빵의 숙소에도 다시 숨통이 트였기 때문이다. 이번에 옮기는 호텔은 지난 번 묵었던 게스트하우스의 개인실에서 10밧 비싼 500밧짜리 중급 호텔이다. 이곳 호스텔 8인실 도미토리의 하루 숙박비가 350밧이니 150밧을 더 써서 아예 개인실을 쓰려 한다. 이게 차라리 가성비가 더 낫다.

 

체크아웃을 하고 여유롭게 숙소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시간을 보낸다. 체크인 시간 전에 가봐야 아직 방이 나오지 않아서 기다리기 심상이다개인실로 옮기는 것이라 도미토리 호스텔에 미련 남을 것은 없지만 이 카페만은 무척 아쉽다. 카페가 예쁘기도 하지만 커피 가격도 착하고 맛도 좋다.

 

 

 

 

여행의 풍미는 가지지 않은 것을 아쉬워하기보다는 가지고 있는 것을 즐기는 데에 있다.
단점보다는 장점에 집중한다.

 

 

람빵에서 두 번째로 묵은 이 호스텔 주변에는 마땅한 식당도, 술을 파는 곳도 가까이에 없다. 숙소에서도 식사와 맥주를 팔지 않는다. 맥주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사람에게, 더욱이 덥고 습한 동남아에서 이런 숙소는 고문일 수 있다.

 

그렇다고 마냥 식당과 맥주를 찾아 헤매지는 않는다. 식당 대신 카페에, 맥주 대신 커피에 정착했다. 숙소에서 운영하는 멋진 카페에서 다양한 태국의 커피를 저렴하게 맛보는 즐거움에 빠져 들었다. 에어컨이 빵빵하게 틀어진 시원한 카페에서 짙은 아이스커피 한 잔을 마시며 글 작업을 했다. 그러다 지루해지면 고즈넉한 숙소 주변 마을을 산책하거나 왕강(Wang River) 변을 걸었다.

 

 

 

식당이 없는 덕분에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맥주가 없는 덕분에 커피의 맛에 빠지고, 볼거리와 할 일이 없는 덕분에 글을 쓰고, 산책을 하며 내면에 집중할 수 있었다.

 

숙소의 단점이 장점으로 바뀌는 시간이었다.

 

최후의 한 방울까지 달콤한 꿀을 핥아 먹듯 이 카페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긴다. 다른 곳으로 옮기면 또 그곳만의 즐거움이 있겠지.

 

 


 

 

이번에도 걸어서 간다.

대충 걸어서 30분 정도 걸린다.

 

11시 반쯤 숙소를 나서는데 한낮으로 가는 태양이 뜨겁다. 최대한 그늘을 이용해서 걷는다. 그나마 길을 아니 덜 힘들게 느껴진다. 얼마나 걸릴지 모르면 심정적으로 더 힘들다. 동남아의 도로에는 신호등만 있어도 감사하겠다. 길을 건너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 특히 태국은 다른 동남아 국가들에 비해 도로 정비가 잘 되어 있어서 그런지 제법 세게 달린다. 배낭을 메고 다닐 때에는 몸이 자유롭지 않으니 더 조심을 한다.

 

이번에는 호텔이다.

 

저렴해서 걱정했는데 5층 건물의 호텔은 생각보다 깔끔하다. 외곽에 있는 호텔이라 가격이 싼 것이리라. 이번에도 숙소는 구시가지 외곽이다. 호스텔이 람빵 기차역 근처, 구시가지의 동쪽 편에 있었다면 이번 호텔은 구시가지의 남쪽 편에 있다. 주변 동네도 깨끗하다.

 

 

 

도착하자마자 방이 나왔다고 해서 바로 체크인. 5층 방이다. 한쪽 벽면이 모두 유리로 되어 있어서 전망도 좋고 무엇보다도 햇살이 가득 들이차서 밝다. 오랜만에 갖는 괜찮은 방이다. 화장실도 깨끗해서 바퀴벌레가 나올 것 같지는 않다.

 

람빵에는 높은 건물이 없어서 3층만 해도 가시거리가 좋은데 5층이라니. 저 멀리 도시를 둘러싼 산들도 눈에 들어온다. 시가지에서 좀 떨어져 있어서 도심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외곽의 한적한 풍경이 좋다. 눈이 시원해지는 기분.

 

 

 

이럴 땐 맥주가 필요하다. 맥주를 사러 가려는데 호텔 1층에 맥주가 보인다. 가격마저 싸다. 창 맥주(Chang Beer) 한 병에 65. 지금까지 태국 숙소에서 팔던 맥주 중 가장 싸다. 감사한 가격이다. 이제는 다시 맥주를 즐길 시간인가보다.

 

커튼을 활짝 열고 시원한 맥주와 함께 한낮의 나른함을 즐긴다.

 

 

 

시원한 방에서 탁 트인 풍경에 차가운 맥주를 곁들이니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속옷만 입고 방에서 뒹굴 수 있다는 자유도 좋다. 도미토리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해방감. 150밧을 더 주고서라도 이곳에 온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렇게 있으려니 기차를 예약한 것이 후회된다. 이곳이라면 한 일주일 더 쉬었다 가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궁합이 맞는 도시 람빵. 동남아에서는 베트남의 후에(Hue)가 또 그렇다.

 

 

 

 

이번엔 람빵의 모던 라이프(modern life)를 즐겨볼까!

 

 

이곳의 위치는 구시가지와 신시가지 그리고 기차역의 중간에 묘하게 자리 잡고 있다. 한 마디로 다들 적당히 멀다는 말이다. 이곳에선 무얼 할까 궁리하려는데 창 밖으로 딱 들어오는 것이 있다. 현대적 쇼핑몰인 센트럴 프라자(Central Plaza). 호텔이 쇼핑몰 근처다. 센트럴 프라자 맞은편에는 빅씨(Big C)의 맞수인 대형마트 테스코 로터스(Tesco Lotus)도 있다. 센트럴 프라자만큼은 아니지만 빅씨도 멀지 않다.

 

센트럴 프라자는 람빵의 현대적인 쇼핑몰. 백화점, 대형마트에 다양한 브랜드의 상점들, 멀티플렉스 영화관, 고급 식당가가 있다. 예전에 가봤던 곳이다. 이제는 람빵의 모던 라이프를 즐겨볼 수 있겠다. 숙소를 옮기면서 주변의 가까운 곳들을 즐기다보니 람빵을 속속들이 경험한다. 숙소를 자주 옮기니 좋은 점도 있다.

 

 

 

맥주로 허기진 배를 채우다가 한낮의 태양이 힘을 잃을 무렵 숙소를 나선다.

 

숙소에서 프라자까지 걸어서 15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하긴 내 방에서 바로 센트럴 프라자가 보이니. 우선 3층의 영화관으로 바로 간다. 상영 영화들과 가격을 알아보기 위함이다. 여행을 시작하고 아직 극장에서 영화를 보지 못했다. 일정표를 확인하니 아쉽게도 오늘은 모두 시간이 맞질 않는다. 하지만 시간표를 봐두었으니 내일부터 영화를 즐길 수 있다. 티켓 가격은 빅씨보다 싼 120밧이다.

 

 

 

이제는 주린 배를 채우러 식당가로 간다.

 

식당가에 변한 것은 거의 없는데, 하나 있는 것이 한국 식당이 없어진 것이다. 한국 식당이 있던 자리에는 일본 식당이 들어섰다. 이것도 기분 나쁜데 일본 식당에서 한국 요리도 같이 판다. 일본 식당 입구에 한 직원이 한복도 입고 있다. 글로벌 시대고, 융합 시대이긴 한데 이런 조합은 영 불편하다.

 

이제는 뷔페를 즐길 시간이다.

 

예전에 갔던 샤브샤브 뷔페식당은 그대로다. 가격은 400. 예전에도 그 정도 했던 것 같다. 400밧이면 가난한 배낭여행자에게 결코 싸지 않은 가격이지만 뷔페라 맘껏 먹을 수 있으니 부족한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이 샤브샤브 집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다. 바로 초밥을 무한정 먹을 수 있기 때문. 물론 초밥은 주로 김밥 종류들이고 생선 초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연어와 새우 초밥 정도지만 그래도 초밥을 실컷 먹을 수 있다는 게 어딘가. 초밥만 실컷 먹어도 본적은 뽑는다.

 

 

 

현지인들은 주로 샤브샤브를 열심히 먹지만 난 초밥을 집중 공략한다. 그것도 연어초밥을. 좀 아쉬운 맛이긴 하지만 김치도 있다. 샤브샤브는 개인 혼자와도 먹을 수 있도록 1인용 화로 시설이 되어 있다. 회전 초밥 집처럼 샤브샤브에 들어가는 음식들은 작은 접시에 담겨서 돌아다닌다. 그것을 잡아서 개인 샤브샤브 화로에 담가서 먹으면 된다. 혼자와도 전혀 무안하지 않은 곳이다.

 

다만 시간제한이 있다. 1시간 15분 안에 먹어야 한다. 무척 짧은 시간 같지만 예전에 먹어본 경험으로는 오히려 시간이 남는다. 술집이 아닌 관계로 시간은 충분하다.

 

숙소를 옮기느라 아침만 먹고 식사를 못했다. 배도 고프고, 살도 빠져서 제법 많이 먹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역시나 금세 배가 불러진다. 가져온 음식들을 꾸역꾸역 다 먹고 나왔지만 이번에도 시간은 남는다.

 

 

 

태국 람빵에서 즐기는 모던 라이프.

 

현대적 호텔의 아늑한 방 그리고 현대적 쇼핑몰의 아이쇼핑과 좋은 식사. 람빵의 모던 라이프다. 다만 모던 라이프에는 태국이 없다. 모던 라이프는 초국적 문화, 즉 한국이나 태국이나 다른 나라나 현대적 호텔과 쇼핑몰은 모두 똑같다. 하지만 그만큼의 익숙함이 있다. 이 또한 즐거움이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