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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일주 여행/태국(Thailand)

D+070, 태국 람빵 9: 외국 여행 중 머리 깎기 (20190123)

경계넘기 2021. 6. 21. 11:25

 

 

외국 여행 중 머리 깎기

 

 

람빵(Lampang)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가끔 떠날 교통편을 미리 예약하려면 좀 불안해지곤 한다. 더 있고 싶어지면 어쩌나 싶어서다. 떠나고 싶을 때 기차역이나 터미널에서 바로 표 사서 훌쩍 떠나는 것이 가장 좋으나 지금 같은 성수기엔 언감생심이다. 더욱이 기차표는. 그래서 표를 예매하기는 했는데 람빵이 떠나기 아쉬운 곳이 되었다. 기차표만 미리 예약하지 않았어도 며칠은 더 쉬어갈 터인데.

 

 

 

머리를 깎기로 한다.

 

서울을 떠난 지 두 달이 훌쩍 넘어 처음이다. 머리가 많이 자라기도 했고, 복잡한 큰 도시에 가면 미용실 찾느라 시간이 걸릴 것 같기도 해서다. 이곳에서는 오다가다 몇 군데 미용실을 봐두었는데 호텔에서 가까운 곳으로 가기로 한다. 저녁에 몇 번 지나칠 때 보면 항상 사람이 많은 미용실이었다. 사람이 많은 곳이라면 실력이 있다는 것이니, 크게 망칠 염려는 덜 수 있다.

 

저녁에는 손님도 많고 미용사도 여럿이었는데 오전이라 그런지 나이가 좀 있으신 여자 미용사 한 분만이 계신다. 당연히 손님도 없고. 이곳이 그곳이 맞는가 싶을 정도다.

 

일단 말은 통하지 않으니 손가락으로 머리 자르는 시늉을 하면서 영어로 “cut, cut”을 외친다. 알아들으신 듯 샴푸, 샴푸 하신다. 머리를 감을 것이냐고 묻는 것이리라. 보통 외국에서는 머리감는 것도 따로 돈을 받는다. 중국이나 여타 아시아 국가들에서는 샴푸로 머리를 감겨줄 때 안마를 잠깐 해주는 곳도 있다. 가격을 묻자 미용실 한쪽에 붙어 있는 가격표를 가리킨다. 200. 샴푸 포함한 가격이다. 좋다고 고개를 끄덕이니 자리로 안내한다.

 

머리감기를 먼저 한다. 머리를 감고 드디어 머리를 자르기 시작한다. 긴장되는 순간이다. 아니다. 사실 나에게 긴장되는 순간은 머리를 깎고 난 후 안경을 쓰고 자른 머리를 볼 때다. 눈이 나빠서 안경을 벗으면 눈이 있으나 보이지가 않는다. 실력이 느껴지는 손길. 조심스럽고 섬세한 손길로 봐서 머리를 엉망으로 자르지는 않을 것 같다. 마음을 놓고 이내 눈을 감는다.

 

안경을 쓰고 잘린 머리를 보니 역시 나쁘지 않다.

미용실을 잘 선택했다는 생각에 흐뭇한 미소가 나도 모르게 번진다.

 

 

 

외국 여행을 하다가 현지에서 머리를 자르는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을 것이다. 웬만큼 여행 기간이 길지 않으면 쉽지 않은 일이다.

 

이전에도 외국에서 머리를 자른 적이 두 번 있다.

호주와 중국.

 

호주는 대학생 때 휴학을 하고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가지고 가서 7개월 정도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외국인 호주에서 머리를 잘랐다. 그땐 미용실이 아니라 이발소(barber’s shop)였다. 호주 만해도 기본적으로 사람의 서비스가 들어가면 비싸진다. 머리 자르는 것도 비싸지만 샴푸까지 하면 엄청 비싸지기 때문에 샴푸는 하지 않았다.

 

중국에서는 베이징(北京)2년 넘어 있었기 때문에 자주 갔다. 살던 동네에 깔끔하고 규모 있는 미용실이 있었다. 이곳에서는 간단한 마사지도 해주었다. 머리 깎는 가격에 간단한 마사지까지 받으니 나쁘지 않았다. 중국은 흥미롭게 미용실에 남자 미용사가 많았다. 몇몇 미용실을 다녔는데 그때마다 미용사는 다 남자였다.

 

호주와 중국에 이어 태국에서 머리를 잘랐다.

 

치렁치렁하던 머리를 자르니 기분까지 상쾌해진다. 머리가 길어 산발이 되면 심히 귀찮아진다. 동남아같이 더운 나라에서는 더욱. 자르니 상쾌하고 시원하다.

 

 

 

 


 

 

여새를 몰아서 호텔 주변에서 발견한 마사지 숍으로 간다.

 

당연히 현지인들이 주로 가는 곳이다. 원래 외국인 관광객이 적은 도시에다가 도심에 있는 것도, 메인 도로에 있는 것도 아니니 뜨내기 외국인이 결코 찾을 수 없다. 이곳으로 숙소를 옮기면서 발견했다. 인테리어도 깔끔하고 가격도 시간 당 200밧으로 여느 곳과 갔다.

 

정오가 조금 안 된 시각이니 마사지 숍에도 다른 손님이 없다. 젊은 여자 안마사에게 안마를 받는다. 남자 안마사는 없어 보인다. 나는 안마를 주로 치료차 받기 때문에 되도록 남자 안마사에게 받으려고 한다. 아무래도 힘이 좋기 때문이다. 어깨나 허리 등 불편하거나 근육이 뭉친 곳을 손으로 가리키며 잘 부탁한다는 제스처를 취한다.

 

걱정을 했는데 생각 이상으로 잘한다. 어깨나 목의 뭉친 부분을 안마할 때는 아파서 나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낸다. 중국이나 태국에서 안마를 자주 받아서 웬만해서는 통증을 안 느끼는데도 말이다.

 

머리 자르고 안마까지 받으니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몸이 시원하다.

이제 다시 먼 길을 떠날 준비가 된 모양이다.

 

 

 

 


 

 

람빵의 나의 베이스캠프답게 게으른 여행자의 모습으로 살았다.

 

주로 먹고 자면서 드라마나 영화도 보고. 다만 이렇게 있으니 생활의 리듬은 좀 깨진다. 아마 맘먹고 한 달 정도 쉬었다 가기로 했다면 이렇게 막 쉬지는 않았을 터인데.

 

쉴 때도 나름의 리듬을 유지해야 건강에도 좋고 제대로 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정당히 긴 시간이 필요하다. 한국처럼 일 년에 3, 4일 받는 휴가나 그 정도의 명절 연휴 가지고는, 다들 경험했겠지만, 쉰다고 쉬지만 막상 더 피곤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휴가나 명절 끝날 무렵에는 회사나 학교에 더 가기 싫고, 더 잠자리에서 일어나기 어려운 이유도 그런 이유다. 쉼에도 리듬이 생길 정도의 넉넉한 시간이 필요하다.

 

내일은 저녁 기차라 미리 짐을 쌀 필요도 없다. 마지막 날, 마지막 순간까지 늘어지게 있다가 잠이 들 것이다.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빈둥빈둥 지낸 람빵의 마지막 날이 간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