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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085, 쿠알라룸푸르 8-1: 디지털 고난 5, 디지털 시대의 소고(小考) (20190207)

경계넘기 2021. 8. 4. 14:34

 

 

디지털 고난 5, 디지털 시대의 소고(小考)

 

 

아침부터 스타벅스에 간다.

 

어제 에어아시아(AirAsia) 사이트에 들어가서 웹 체크인을 하고 탑승권과 수화물 택을 다운로드를 받으려는데 계속 에러가 났다. 숙소에서는 안 되겠다 싶어 그나마 와이파이가 나은 스타벅스에 온 것이다. 숙소보다는 낫다는 것이지 스타벅스의 와이파이가 훌륭하다는 것은 아니다. 진한 경험으로 말레이시아의 전반적인 인터넷 인프라가 좋지 않아 보인다.

 

여기서도 안 된다!

 

이제는 달리 방법이 없다.

에어아시아 지점에 찾아 가봐야겠다.

일의 마침은 디지털이 아니라 역시 아날로그다.

 

 

 

온 김에 이것저것 정보를 찾고 있는데 와이파이가 안 된다. 시간이 다 되었다는 메시지가 뜨는 것으로 봐서 2시간의 시간제한이 있나 보다. 이곳 스타벅스에서 와이파이를 이용하려면 개인 메일이나 전화번호 등의 신상 정보를 입력해야만 사용할 수 있다. 여기에 시간제한까지 있을 줄이야. 커피 한 잔 더 시키면 2시간 연장해주나?

 

다른 나라를 여행하면서 이런 말은 되도록 안 쓰려고 하는데 인내에도 한계가 있다.

정말 가지가지 한다!

 

말레이시아의 인터넷은 나에게 시련만을 주었다.

 

 

디지털만으로는 안 된다

 

 

 

쿠알라룸푸르(Kuala Lumpur)에서 든 생각이 하나 있다.

 

디지털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디지털이 편하긴 한데 문제가 생기는 경우 다른 대안이 없다. 확인조차 할 수 없는 경우도 태반이다. 인터넷 상에서의 작업 과정은 블랙박스다. 그 안에서 이뤄지는 과정을 전혀 알 수가 없다. 따라서 과정에서 파생되는 문제에는 속수무책이다.

 

최근 편의점이나 패스트푸드점들에서 무인 판매를 강화하면서 나이 드신 어른들이나 장애자들은 물건조차 살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곳 말레이시아에서의 내 경험은 장애인이나 어르신 등 사회적 약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디지털의 문제는 언제나 수시로 발생할 수 있고, 누구든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아울러 디지털 시대가 가속화되고 심화될수록 디지털에서 파생되는 작은 문제가 쉽게 대재앙으로 전이될 수도 있다.

 

 

 

예전에 영화인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이야기 중에 디지털 영화가 보편화되면서 영화 보관과 보존의 문제가 커졌다는 말이 나왔다. 의아해서 디지털 영화가 공간도 차지하지 않고 변형의 우려도 적으니 보관과 보존에 더 유리한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 분들 말이 필림 영화들이 비록 공간은 차지하고 변형의 가능성은 높지만 보존 상태를 직관적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어서 오히려 관리가 수월하다고 한다. 혹 변형 되었다고 하더라도 요즘은 복원 기술이 뛰어나서 거의 대부분 살릴 수 있다고 한다.

 

반면에 디지털 영화는 공간과 변형의 우려는 적지만 일일이 틀어보지 않는 이상 보관 상태를 확인하기 어렵고, 바이러스나 저장기기의 문제 등으로 파손이 쉬우며, 엔터 키 한 번으로도 쉽게 삭제될 수 있어서 보관과 보존이 훨씬 어렵고 까다롭다고 한다. 더욱이 한 번 삭제되거나 파손된 영화 파일은 거의 복원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만큼 리스크가 더 크다고 한다.

 

같은 선상에서 지금 대부분의 현대 문명의 자료들은 디지털로 보관하고 있다. 개인 신상은 물론이고 자산과 세금 등의 공적 기록부터 금융, 연구, 의료 등의 사적 기록에 이르기까지.

 

극단적인 사례긴 하지만 만일 서울 상공에서 EMP 폭탄이 터지면 어떻게 될까?

 

EMP 폭탄은 강력한 전자기파를 발생시켜 지상의 모든 전자기기의 내부 회로를 태우는 폭탄을 말한다. 생명체에는 전혀 손상을 주지 않지만 EMP 폭탄이 터지면 디지털로 이룩한 현대 문명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어디 EMP 폭탄뿐인가?

컴퓨터 바이러스 하나가 같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디지털만은 답이 아니다.

 

인간과 인간이 대면하는 것이 불편할 수도 있지만 때론 그것이 더 편하고 부드러울 수 있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 속에서는 따뜻한 감성과 문화가 묻어 나온다. 반면에 디지털의 세계에는 그런 감성과 문화가 없다. 있더라도 획일적이고 차가운 것들이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다양성이 확대되면서 상호보완적인 방향으로 가야한다.

 

디지털과 아날로그도 같이 가야 한다. 그래야 다양성이 늘어나고 상호보완성도 높아진다. 디지털이 빠진 아날로그도 문제지만 아날로그가 빠진 디지털도 삭막하다. 삭막하다 못해 사람을 때론 미치게 만든다.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에서 인터넷과 씨름하면서 이걸 배운다.

에어아시아 사이트가 불안했던 것이 에어아시아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