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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87, 콜카타 1-5: 콜카타란 도시, 참 이중적이다 (20190209)

경계넘기 2021. 10. 8. 15:49

 

 

콜카타(Kolkata)란 도시, 참 이중적이다

 

 

콜카타(Kolkata)는 참 이중적이다.

 

콜카타는 인도에서도 가장 더럽고 부산한 도시로 통하지만, 사실 1772년에서 1911년까지 영국령 인도의 수도였던 도시다. 1912년 영국이 수도를 뉴델리(New Delhi)로 옮기면서 쇠락의 길로 접어들기는 했지만, 영국이 만들어 1.5세기 가까이 수도였던 도시답게 인도 근현대사가 녹아 흐리는 역사 도시이자 동서양의 문화가 공존하는 문화 도시다.

 

수도의 변천으로 보면 지금의 수도인 뉴델리는 신도시(新都市)가 되고, 콜카타는 구도시(舊都市)가 되겠다. 하나의 도시로 치면 한때 번영했다 쇠락한 구시가지가 콜카타라면 뉴델리는 새롭게 개발되어 번쩍번쩍하는 신시가지가 아닐까. 어째든 콜카타는 구도시 또는 구시가지의 뉘앙스를 많이 풍기는 도시다.

 

콜카타라는 인도 도시가 생소하게 들리는 사람도 많을 게다.

 

인도의 도시들 중 캘커타(Calcutta)는 많이들 들어보셨을 것이다. 콜카타의 옛 이름이 바로 캘커타다. 2001년 공식 명칭을 캘커타에서 콜카타로 바꾸었다. 그렇다고 콜카타가 새로운 이름은 아니다. 현지어인 벵골어(Bengali)의 콜카타를 영어식으로 부르는 이름이 캘커타였다. 식민 잔재라 할 수 있는 영어식 명칭을 벵골 고유의 명칭으로 바꾼 것이다.

 

콜카타는 인도의 주()인 서벵골(West Bengal)의 주도(州都).

 

벵골(Bengal)은 서벵골과 방글라데시를 포함하는 지역이다. 갠지스 강과 브라마푸트라 강 등이 벵골 만으로 흘러들어가면서 형성한 넓고 비옥한 삼각주 평원이 펼쳐진다. 덕분에 인구 밀도가 대단히 높은 지역이다. 이 지역에 주로 거주하면서 벵골어를 사용하는 민족을 벵골인이라 부른다.

 

 

벵골 (출처: Orgins)

 

벵골은 1905년에서 1911년까지 잠시 영국에 의해 힌두교도가 많은 서(西)벵골과 무슬림이 많은 동()벵골로 분리되기도 했다가 다시 합쳐졌다. 하지만 1947년 인도가 독립하면서 힌두교의 인도와 이슬람의 파키스탄으로 분리되면서 동벵골은 파키스탄으로 들어갔다. 동벵골은 파키스탄의 동벵골 지방, 동파키스탄 등으로 불리다가 1971년 방글라데시로 다시 독립했다.

 

 

파키스탄 독립 시기 (출처: Timegraphics)

 

종교적인 이유로 벵골인들이 서벵골과 방글라데시로 갈라서긴 했지만 원래 벵골인들은 영국의 식민지 시기 인도 독립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반영(反英) 의식이 높았던 벵골인들은 민족주의자들도 많이 배출했을 뿐만 아니라 세포이 항쟁에서부터 영국에 저항하는 무력 항쟁의 진원이었다. 당연히 콜카타는 항상 그 중심에 있었다. 영국이 식민지 수도를 콜카타에서 뉴델리로 옮긴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콜카타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벵골인들의 독립운동과 무력항쟁 때문이었다.

 

영국이 1905년 벵골을 서벵골과 동벵골로 분할했던 이유도 벵골을 분할해서 두 벵골을 대립시킴으로서 벵골인들의 독립 의지와 반영 의지를 무력화시키려는 분할 통치(divide and rule) 전략의 일환일 수 있다. 벵골인들을 대립시키고 경쟁시키기 위해서 교묘히 힌두교와 이슬람의 종교를 이용했을 것이다. 영국은 아니라고 하지만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영국 놈들이 아니 썼을 리가 없다.

 

민족과 독립 운동의 본산 콜카타가 2001년까지 영국 식민지 냄새가 풀풀 나는 캘커타란 이름을 사용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늦게라도 제대로 바꾸었으니 잘 된 일이다.

 

여하튼 여러모로 콜카타는 의미 있는 도시다.

 

 

콜카타는 거대한 근현대사 세트장 같다

 

 

 

숙소 침대에 잠시 누웠더니 스르륵 눈이 감긴다. 아무래도 공항에서 불편한 잠을 잤나보다. 샤워를 하고 나니 더욱 노곤해진다. 낮잠을 좀 잔다. 침대가 3층이라 주변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롭다.

 

오후 4시 반에 숙소를 나선다.

달랑 하루 콜카타에 묵는지라 시간이 없다.

 

숙소 바로 윗길이 콜카타의 여행자거리인 서더 스트리트(Sudder Street).

 

생각만큼 번화하거나 혼잡하지가 않다. 길이 너무 좁고 별 것이 없어서 이곳이 그 유명한 콜카타의 여행자거리인가 싶을 정도다. 뉴델리 여행자거리인 빠하르 간즈(Pahar Ganj)와는 비교할 수가 없을 정도로 작고 별게 없다. 오전에 숙소 오는 길에도 거쳐 온 길이라 얼른 지나친다.

 

 

 

서더 스트리트 바로 위로는 서울의 남대문 시장 같은 뉴 마켓 콜카타(New Market Kolkata)가 펼쳐진다.

 

주말이라 그런지 그 큰 시장이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뉴 마켓은 정말 볼거리가 많다. 거리에도 많은 먹거리와 매대들이 있지만 이어지는 건물마다 다양한 상품들이 있다. 시장도 시장이지만 잘 보고 있자면 건물에도 역사가 흐르고 동서양이 만난다.

 

 

 

여행에서 시장이 즐거운 건 다양한 상품만큼 다양한 사람들의 생생한 삶의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인도답게, 콜카타답게 시장 사람들의 삶의 모습은 너무도 다채롭고 열정적이다. 사는 사람들이나 파는 사람들이나. 가난해보이거나 부유해보이거나. 색으로 말하자면 뭐랄까 다양한 원색의 조화가 너무도 화려해서 인도 시장의 모습만큼은 흑백사진이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정육코너를 지날 때에는 그 비린 냄새에 순간 멀미기가 생기기도 한다. 순간 훅 하고 들어오는데 임신한 임산부가 느끼는 멀미기가 이런 것인가 싶다. 냄새마저도 열정적이다.

 

 

 

콜카타의 골목길은 카메라만 들이대면 시대영화다.

 

족이 한 세기가 공존하는 것 같다. 사람이 직접 끄는 인력거, 자전거 인력거, 말이 끄는 마차, 거기에 자동차와 오토바이까지. 골목 하나에 20세기 초에서 21세기 지금이 함께 공존한다. 그냥 골목길에서 샌드위치(50루피)에 짜이 한 잔(20루피) 먹으며 지나가는 길거리의 모습만 보고 있어도 흥미롭다. 다채로운 인도의 모습이다.

 

 

 

샌드위치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서더 스트리트의 한 골목길에서 샌드위치를 하나 사 먹었는데 그냥 사들고 나올 걸 그곳에 괜히 앉아서 먹었다 싶다. 앉아서 먹고 있자니 그 친구들 샌드위치 만드는 것을 보게 된다. 아마 미리 봤다면 절대 먹지 않았을 것이다. 안 보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았을 성 싶다.

 

 

 

샌드위치로는 저녁이 안 되니 저녁 먹을 곳을 찾는다. 인도에 하룻밤 묵는 것이니 역시 탄두리 치킨(tandoori chicken)에 인도 맥주인 킹피셔(Kingfisher)를 먹어주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나름 인도의 치맥이다. 그런데 한참을 돌아다녀도 두 개를 모두 파는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맥주를 파는 곳에는 탄두리가 없고, 탄두리가 있는 곳은 맥주가 없다.

 

별수 없이 서더 스트리트 가운데에 있는 블루스카이(Blue Sky) 레스토랑에서 탄두리만을 시켜 먹는다. 맛이 없다. 맥주 없이 먹으려니 더욱 맛이 없다.

 

 

 

거기서 혼자 여행하는 한국인 여자 여행객을 만나서 같이 맥주 마시러 간다. 그 친구도 오늘 콜카타에 왔단다. 나보다 2시간 정도 늦게 도착했다고 하는데 방콕에서 에어아시아 타고 왔다고. 공항에서 노숙을 했다고 하던데 다른 곳에서 잤나 보다.

 

맛없는 킹피셔(270루피)를 마신다. 그것도 강한 레드로. 인도 맥주 진짜 맛이 없다. 그나마 탄두리와 같이 마시면 괜찮은데 여기서는 탄두리 따로, 맥주 따로 이러고 있으니 그 시너지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한국인 여성분은 여기서 바라나시(Varanasi) 거쳐서 네팔 들어간다고 한다. 원래의 내 계획과 같다. 만일 쿠알라룸푸르에서 항공권 결제만 잘 되었다면 아마도 이 친구랑 인도, 네팔을 내내 같이 여행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더라도 내가 인도에 대한 애정이 조금만 더 있었거나 이 친구와 2, 3일 더 만났다면 두바이 행 항공권을 찢었을 수도 있다.

 

 

 

맥주 한 잔 하고 그 친구가 묵는 숙소까지 바래다주고 돌아오는 길이다.

 

한국에서는 사귀는 여자 친구도 깊은 밤이 아니라면 잘 바래다주지 않지만 외국에서는 되도록 꼭 숙소까지 바래다준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한국인 남자가 한국인 여자에게 해주어야할 최소한의 예의이자 의무라고 생각한다.

 

바에서 나오니 길이 촉촉하다. 술 먹는 사이에 비가 내렸나 보다. 이렇게 콜카타에서의 처음이자 마지막 밤을 보낸다. 한편으로는 아쉽고, 한편으로는 홀가분하다.

 

낮잠을 잤음에도 잠은 잘 온다. 그래도 잠결에 떨어질지 몰라서 벽 쪽으로 최대한 붙어 잔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