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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088, 콜카타 2-1: 빅토리아 기념관(Victoria Memorial)에서 인도 식민지 시대를 생각한다 (201902100)

경계넘기 2021. 10. 11. 11:51

 

 

빅토리아 기념관(Victoria Memorial)에서 인도 식민지 시대를 생각한다

 

 

새벽 6시에 눈이 떠진다.

 

오줌이 마려워서 눈을 뜨긴 했지만 이때까지 세상모르고 잤다. 3층 침대의 3층이라 높아서 좋은 것은 다른 사람들의 간섭을 덜 받는다는 것. 아래였으면 들락거리는 소리와 불빛에 이런 단잠을 이루지는 못했을 것이다. 물론 어제 공항에서 거의 뜬 눈으로 보낸 것도 큰 영향을 미쳤겠지만.

 

 

 

좀 누워 있다가 체크아웃 하는 친구들이 짐 챙기느라 소란한 틈을 이용해서 샤워를 하러 나온다. 사람 많은 도미토리에서는 일찍 샤워를 해두는 것이 좋다. 다들 일어난 시간에 이용하려면 한참을 기다릴 수도 있다. 이곳 숙소는 사람에 비해서 샤워 시설이 많이 부족한 것 같으니 더욱 미리미리 해두어야 한다.

 

샤워를 하고 다시 침대로 올라와 좀 누워 있다가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할 무렵 나도 짐을 챙긴다. 오늘 바로 출국을 한다. 저녁 비행기인지라 천천히 챙겨도 되지만 일찍 체크아웃을 하고 콜카타를 좀 더 둘러보고 싶어서다.

 

 

빅토리아 기념관(Victoria Memorial)

 

 

 

9시쯤 체크아웃을 하고 짐을 숙소에 맡기고 길을 나선다.

숙소에서 가까운 빅토리아 기념관(Victoria Memorial)을 구경해볼 생각이다.

 

 

 

입장료가 있다.

 

건물 안 갤러리까지 구경하는 경우는 500루피, 그냥 정원만 구경할 수는 입장료는 30루피다. 정원 입장료는 내외국인이 동일한데 기념관 입장료는 이중 가격제를 하고 있어서 내국인과 외국인의 가격차가 엄청나다. 시간도 넉넉하지 않고 아쉽지만 건물을 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빅토리아 기념관은 콜카타의 상징적인 건물로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직위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901년 시작해서 1921년에 완공했다고 한다. 건축 당시 영국이 인도의 타지마할(Taj Mahal)을 빗대어 만들었다고 한다. 그 말이 무색하지 않게 하얀색 대리석의 빅토리아 기념관은 웅장하고 아름답다. 오늘따라 유난히 맑은 파란 하늘과 너무도 잘 어울린다.

 

 

 

하지만 영국의 자존심을 살리기 위해 타지마할보다 더 잘 만들려고 했음에도 타지마할 사원의 아름다움을 넘지 못한다고 하니 타지마할 사원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상상하기가 어렵다. 이번 인도 여행에서도 타지마할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여기에 있으니 더욱 뼈저리게 아쉬워진다.

 

비록 타지마할을 넘지는 못하지만 영국 식민지 시기의 수도였던 콜카타의 가장 상징적인 건물이다. 서양과 동양의 절묘하게 융합된 건물이기도 하고. 빅토리아 기념관의 넓은 정원도 너무나 잘 가꾸어져 있다. 많은 인도인들도 이곳을 찾아오는 것 같다.

 

 

 

이런 건물에 설 때마다 드는 감정이 있다.

 

빅토리아 기념관은 영국 식민지의 상징적인 건물이자 인도를 식민 지배했던 식민 종주국의 수장인 영국 여왕을 기리는 기념관이다. 인도인에게는 굴욕과 고통의 시대를 의미할 수 있다. 더욱이 여기는 인도 독립 운동의 심장이었던 콜카타 아닌가. 빅토리아 기념관은 옛날 광화문 바로 앞에서 경복궁을 짓누르며 서 있던 일본의 중앙청 건물과 비슷하지 않을까? 아니다. 일제 식민지 시기 일본 천황을 기리는 건물이 여전히 서울 한복판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일본에 의해 만들어진 건물들을 볼 때마다 착잡한 심정이 들곤 하는데 여전히 영국 식민지 시대의 건물이 다른 어떤 인도 건물들보다 더 잘 가꿔지고 있고, 많은 인도인들이 즐겁게 찾아오는 것을 보면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싶다.

 

 

 

인도인들은 이 건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자신들의 땅에 지어진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치욕스런 역사를 상기시키는 역사 교육의 현장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 둘 다 일수도 있다. 하지만 만일 내가 인도인들과 이 건물에 대해 이야기 한다면 난 무엇을 먼저 말해야 할까? 아름답고 훌륭한 건물로서 너희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라고 말해야 하나, 아니면 눈처럼 하얀 저 대리석 건물 속에 스며있을 수많은 인도인들의 피와 눈물을 말해야 할까?

 

지금 이곳을 구경하고 있는 많은 인도인들의 모습에서는 이곳이 슬픈 역사의 현장이라는 의미는 전혀 읽을 수 없다. 외국의 한 이방인의 눈에는 저 하얀 건물이 오히려 서럽게 느껴지는데, 이렇게 느끼는 내가 이상한 것일까? 아름다운 건물을 보면서 굳이 남의 아픈 역사를 생각하는 내가 정말 이상한 것일까?

 

 

 

버려진 것 같은 콜카타 구시가지와 비교해서 너무도 잘 가꿔진 빅토리아 기념관 건물과 공원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인도인들은 영국 식민지 시대를 그리워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이게 정말 잘못된 생각이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빅토리아 기념관을 나와서 다시 구시가지를 구경하면서 숙소 쪽으로 걸어올라 온다. 기념관이 있던 공원과 시가지는 정말이지 천지 차이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