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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일주 여행/인도(India)

D+088, 콜카타 2-2: 외국 매장에서 주문하기 (20190210)

경계넘기 2021. 10. 11. 19:40

 

외국 매장에서 주문하기

 

 

점심시간이 가까워지니 배가 고파진다.

 

여태 먹은 게 없다. 거리를 걸으며 먹을 만한 곳을 찾지만 마땅한 곳이 보이지 않는다. 먹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다 보니 혼자 여행 다닐 때 끼니때가 가장 귀찮아진다. 대충 아무 거나 먹었으면 싶은데 그 대충 아무거나도 낯선 곳에서는 만만치가 않다.

 

 

 

그냥 어제 봤던 도미노 피자집에 들어가서 피자 대()자를 시킨다.

 

토핑이 어쩌고 계속 말을 하는데 무슨 말인지 도통 못 알아먹겠다. 영어를 잘 하지 못한다지만 인도 영어는 도대체가 들리지가 않는다. 하지만 피자집에서 직접 피자를 시켜본 적이 없기 때문에 한국말로 한다 하더라도 잘 알아먹지 못할지도 모른다. 피자집이든 카페든 요즘 뭐 하나 시키려면 아주 복잡하다.

 

 

 

이럴 때마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호주에 갔을 때가 생각난다.

 

가장 만만하다고 들어간 맥도날드에서 처절한 좌절을 맛봤다. 햄버거 하나 제대로 시킬 수가 없었다. 한국의 영어 교육이 얼마나 형편없는 개판인지를 절실히 깨닫는 순간이었다. 무섭게 물어대는 데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내 뒤로 사람들이 줄을 서 있으니 더 당황스러웠다. 나중에는 가져 갈 것인지 여기서 먹을 것인지를 물어보는 말도 못 알아먹었다.

 

호주에 한 7개월 있으면서 다시 깨달았다. 맥도날드에서 자연스럽게 주문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피자집에서 피자를 시키든 카페에서 라떼 하나를 시키든 그곳에서 사용하는 전문용어가 따로 있고, 그곳만의 문화가 따로 있어서 언어를 아는 것과는 또 다른 지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나마도 단어를 줄이거나 압축해서 사용하니 아무리 영어를 잘한다 하더라도 그곳 매장의 문화를 모르면 당황할 수밖에 없다.

 

스타벅스(Starbucks)만 하더라도 그곳에서 사용하는 많은 단어들이 그곳 매장에서만 특화된 단어들이다. 그네들만의 차별화된 문화를 만들기 위해 마케팅 전략의 일환으로 부러 만든 것이다. 음료의 사이즈를 말하는 쇼트(short), (tall), 그란데(grande)가 대표적이다. 그냥 small, medium, large하면 될 것을 다른 브랜드와의 차별화를 위한다고 스타벅스가 만든 단어들이다. 누구든 처음 스타벅스를 방문한 사람이라면 물어볼 수밖에 없다.

 

여기에 더해 호주에서 처음 들어간 그 맥도날드의 점원이 호주 사투리를 사용했다. “여기서 먹을 건가요?”“eat here”를 호주 사투리로는 아잇 히야로 발음한다. 호주는 ‘day’다이로 발음한다. “What day is today?”를 호주 사투리로 발음하면 왓 다이 이즈 투다이. ‘죽다는 다이만 두 번 들리니 거리의 낯선 이에게서 이 말을 처음 들으면 섬뜩해진다.

 

 

 

그런 경험이 있어서 안 들리는 영어에 그때처럼 좌절하지는 않는다. 다만 귀찮을 뿐이다. 배도 고프고, 곧 비행기를 타면 언제 다시 밥을 먹게 될지 알 수 없어서 그냥 대자 하나 달라고 하는데 고객의 의사는 안중에도 없이 매뉴얼대로 쉼 없이 물어오니 짜증만 난다.

 

인도에 딸랑 하루 있으면서 거의 패스트푸드다.

 

어제 햄버거에 오늘 피자까지. 어쩔 도리가 없다. 재작년 한 50일간 인도 여행을 하면서 커리(curry)와 달(daal)에 질린 것이 여태 복구되지 않는다. 여전히 냄새만 맡아도 절로 인상이 써지니 인도 식당에 발길이 가질 않는다. 아마 이곳에 한국식당이 있었다면 줄기차게 갔을지도 모른다.

 

 

 

남은 피자를 싸가려고 봉지 하나만 달라고 했더니 없단다.

 

남은 걸 싸가서 공항에서 먹으려고 일부러 큰 것을 시켰다. 봉지가 없으면 작은 박스 하나를 주든지 팔든지 할 수 없냐니까 줄 수도 팔 수도 없단다. 그럼 남은 음식을 어떻게 하냐고 물으니 어깨만 으쓱 한다. 저놈의 으쓱은! 평상시에는 과하게 융통성 있는 친구들이 필요할 때는 이렇게 융통성이 없다.

 

국제적인 프랜차이즈 가게에서 너무한다 싶기도 하지만 이곳이 인도라는 사실을 전제로 두면 이해가 안 되는 바도 아니다. 융통성 발휘하게 놔두면 인도인들 성격상 남아나는 물건이 없을지도 모르니 아예 여지를 둘 수 없도록 규정을 엄격하게 해 두었을 것이다. 나라도 인도에서 사업을 한다면 그럴지도 모른다.

 

처음으로 피자 대자를 혼자 먹어본다. 악착같이 먹었지만 마지막 한 조각은 도저히 넘길 수가 없다. 아쉽다. 남은 피자와 맥주 한 캔 사서 공항에서 먹으면 진짜 맛날 텐데.

 

 

 

이래저래 인도는 언제 떠나도 미련이 남지 않는다.

그건 좋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