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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일주 여행/몬테네그로(Montenegro)

D+197, 몬테네그로 코토르 2-3: 코토르성(코토르 성벽)의 시간여행자 (20190530)

경계넘기 2022. 1. 14. 16:05

D+197, 몬테네그로 코토르 2-1: 코토르성(코토르 성벽) 오르는 길

 

D+197, 몬테네그로 코토르 2-1: 코토르성(코토르 성벽) 오르는 길의 풍경 (20190530)

코토르성(코토르 성벽, Kotor Wall) 오르는 길의 풍경 새벽까지 비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창밖은 여전히 침침하다. 흐린 날씨라 천천히 나가자고 생각하고 있는데 “오늘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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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97, 몬테네그로 코토르 2-2: 코토르성의 정상, 세인트존 성채(St. John Fortress)에 앉아서

 

D+197, 몬테네그로 코토르 2-2: 코토르성의 정상, 세인트존 성채(St. John Fortress)에 앉아서...(20190530)

D+197, 몬테네그로 코토르 2-1: 코토르성(코토르 성벽) 오르는 길의 풍경 D+197, 몬테네그로 코토르 2-1: 코토르성(코토르 성벽) 오르는 길의 풍경 (20190530) 코토르성(코토르 성벽, Kotor Wall) 오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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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토르성(코토르 성벽)의 시간여행자

 

 

성곽 길을 걷노라니 절로 상상의 나래를 탄다.

 

불가리아 벨리코 투르노보(Veliko Turnovo)의 차레베츠 요새(Tsarevets Fortress)에서도, 세르비아 베오그라드(Beograd)의 베오그라드 성(Belgrade Fortress)에서도 한적한 성곽 길을 걷거나 성벽에 앉아 있을 때 곧잘 그랬다.

 

 

 


 

 

어느새 난 과거로 날아가 있다.

 

언제인가부터 코로트 성안이 뒤숭숭하다. 불가리아 벨리코 투르노보의 차레베츠 요새가 오스만 제국에 떨어졌다는 소식이 이곳 코토르에도 전해졌기 때문이다. 차레베츠는 천혜의 요새로 역사적으로 소아시아에서 나오는 아시아 세력이 유럽과 만나는 첫 관문이었다. 지금은 오스만 제국의 이슬람 세력을 방어하는 유럽 기독교 세력의 최전방이다.

 

아무리 천혜의 요새라 하더라도 당대 최강 오스만 군의 파상 공격을 버티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그나마 3개월을 버틴 것도 차레베츠였기에 가능했다. 어쨌든 기독교 세계 최전방의 요새가 이슬람군에 떨어졌다는 소문은 코토르뿐만 아니라 모든 발칸 지역을 발칵 뒤집어 놓기에 충분했다.

 

차레베츠가 뚫렸으니 다음은 내륙의 베오그라드와 해안의 코토르다.

 

 

불가리아 차레베츠 요새(Tsarevets Fortress)

 

발칸의 관문을 타격한 오스만 군대는 두 진으로 나뉘어 유럽을 겨눌 것이다. 1진은 가장 지름길인 발칸의 내륙 길을 통해 동유럽으로 들어갈 터이고, 2진은 발칸의 해안길을 따라 이탈리아로 들어가 서유럽을 공략할 것이다.

 

예상대로 오스만 제국군의 1진은 베오그라드 요새(Belgrade Fortress)를 공략했다. 도나우(Donau)강과 사바(Sava)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에 있는 베오그라드 요새가 떨어지면 오스만의 육군은 사바강 건너 허허벌판을 가로 질러서, 해군은 도나우강을 따라 바로 헝가리의 부다페스트(Budapest)를 공략할 것이다. 그 다음은 물론 오스트리아의 빈(Wien)일 것이다.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요새(Belgrad Fortress)

 

발칸의 내륙에서 아드리아 해안의 코토르로 들어오려면 험준한 디나르알프스(Dinaric Alps)를 넘어야 한다. 산맥이 제국군을 지연시켜 시간을 벌 수는 있어도 그들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곧 이곳에도 오스만 군이 몰려들 것이다.

 

성모 마리아 성당에서 잠시 기도를 드리고 성곽 길을 걷는다.

 

그때 포성이 들리고 내 주변으로 흙먼지와 돌 파편이 날린다. 오스만 제국군의 공격이다. 내일 아침이나 공격을 개시할 줄 알았는데 꽤나 급하다. 도착한 당일부터 포격이라니. 작은 도시 코토르를 깔본 모양이다. 아니면 1진과 2진이 경쟁이 붙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코토르성을 잘못 봤다.

 

성은 도시만을 감싸고 있지 않다. 실질적인 방어의 주력은 세인트존산 정상의 성채(St. John Fortress)에 있다. 우리는 적을 굽어보며 싸운다. 성 안의 시민들도 이미 성채로 피신시켰다. 도시를 향한 적의 포탄은 성과 성 안의 건물들을 조금 파괴할 지언정 병력에는 전혀 피해를 주지 않는다.

 

 

 

첫 포격만으로 오스만 군은 당황할 것이다.

 

하찮은 발칸의 조그마한 도시의 성이 웬만한 포격으로도 끄덕하지 않을 터이니 말이다. 그럴 만도 하지. 이 성은 베네치아 공화국이 개발한 새로운 방어기술이 적용되어 개축된 성이다. 성을 공략하는 공성전의 주역으로 대포가 등장하면서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은 대포에 강한 성 건축술 개발에 매진했다. 베네치아 역시 마찬가지다. 다행히 르네상스가 번성했던 이탈리아에는 과학자, 수학자, 기술자 등이 많았다.

 

대포가 등장하기 전의 성벽은 대체로 높고 얇았다.

 

높아야만 적이 넘어오기도 힘들고 화살의 사정거리가 길어졌다. 하지만 높고 얇은 성은 대포에 치명적이었다. 높으니 타격점도 넓었고, 얇으니 대포 한 방에도 성이 무너져 내렸다.

 

해결책이 낮고 두터운 성이었다.

 

대포는 돌에 강했지만 오히려 흙에 무력했다. 대포의 파괴력을 흙의 탄성이 흡수해버리기 때문이다. 돌로 만든 성벽 뒤로 흙을 두텁게 쌓아 성벽을 두껍게 했다. 흙더미로 지지되는 두터운 성벽은 대포의 충격을 완화시켰고, 성의 낮은 높이는 대포의 타격점을 좁혔다.

 

하지만 낮은 성은 보병의 월성(越城) 작전에 약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성의 모서리마다 앞으로 튀어나온 삼각형 또는 반원 모양의 두터운 능보(Bastion)를 설치해 대포와 살수를 배치했다. 이렇게 하면 사각지대였던 성벽이 능보와 능보 사이의 사정권으로 들어온다. 성벽을 넘으려는 보병들을 양쪽의 능보에서 대포나 화살로 공격할 수 있다.

 

아울러 해자를 깊게 팠다.

 

해자는 보병의 월성 공격에 성을 높이는 효과를 낳았다. 해자 밖에서 쏘는 대포는 원래의 낮은 높이로 타격점이 낮지만, 반면에 성을 직접 공략하는 보병에게는 해자 바닥만큼 성의 높이가 높아졌다.

 

베네치아 공화국이 코토르성 역시 그렇게 만들었다.

 

 

베네치안 양식의 성 (출처: UNESCO)

 

듣던 대로 오스만 재국의 대포는 강력하다.

 

이름이 오르반(Orban)인가 우르반(Urban)인가 했던 것 같다. 비잔틴 제국 천년의 난공불락이었던 콘스탄티노플성(Walls of Constantinople)을 날려버린 대포라더니 허언이 아니었나 보다. 대포의 길이가 무력 8m에 이르기 때문에 사거리도 길었다.

 

 

터키 이스탄불의 콘스탄티노플성(Walls of Constantinople)

 

포격이 끝날 때까지 나를 포함 코토르군은 성벽에 기대 숨을 죽이고 있다.

 

어차피 아군의 대포로는 오스만 대포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지금으로는 오스만의 대포에 맞설 아무런 수단이 없다. 적의 포격이 끝나고 보병이 성을 공략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포격이 끝난 사이 재빨리 바다를 향한 성벽의 남쪽 능보로 간다. 오스만 군이 개미떼처럼 성을 향해 달려오는 것이 보인다. 성 안은 건물들은 타격을 제법 받았지만 성벽은 대체로 온전하다. 성으로 달려오는 오스만 군대도 온전한 성의 모습에 짐짓 놀란 모양이다.

 

이번엔 오스만 군이 우리 대포의 사격권 안에 들어온다. 대포들이 화염을 뿜고, 뒤이어 살수들이 화살을 날린다. 그 속을 뚫고 온 오스만 군이 성벽에 달라붙어 가쁜 숨을 몰아쉰다. 일단 위험을 피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곧 알게 될 것이다. 그곳이 더 지옥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보통은 사각지대였던 성벽 아래조차도 능보에 있는 대포와 살수의 사정권이다. 그것도 아주 가까운. 아마도 그들은 베네치아식 성을 처음 만났음이 분명하다.

 

사다리를 걸고 월성하려는 오스만 군을 위와 옆에서 협공한다. 양쪽의 능보와 성벽 위 이렇게 삼중의 공격을 받는 오스만 군은 사다리도 제대로 걸지 못한다.

 

그때 산에서도 적의 함성이 울린다.

 

하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그곳으로의 월성은 더 힘들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다리도 미치지 않는 절벽 같은 급경사로에 쌓은 성을 어떻게 넘어간다 말인가!

 

 

 

일몰이 일 무렵 북 소리와 함께 오스만 군이 퇴각하기 시작한다.

 

이겼다는 기쁨과 안도감이 흐른다.

 

적어도 오늘은. 하지만 언젠가는 함락될 것이다. 대포가 주력이라지만 사실 공성전의 기본은 포위다. 적에게 포위되어 모든 공급망이 끊긴 상황에서 언제까지고 버틸 수 있는 성은 없다. 코토르 같이 작은 성은 더욱 그렇다.

 

 

 

그때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바그 상, hurry up”

 

고개를 들어보니 저 아래 숙소 동기인 일본인 아주머니가 나를 부른다. 그렇게 내 성()Park의 발음을 연습시켰건만. 박을 바그로 발음하는 소리가 아니 들릴 수가 없다. 뒤쳐진 나를 부르는 소리다. 그 소리와 함께 나는 현실로 돌아온다.

 

 

 

다시 말하지만 이 이야기는 그저 상상이다.

조각조각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둔 완전 공상이다.

 

나중에 혼자 와서

맘껏 멍 때리며 상상의 나래도 펴고 싶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