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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위기 1-2: 배경과 원인 2

경계넘기 2022. 1. 31. 16:43

우크라이나군 (출처: wikipedia)

 

우크라이나 위기 1-1: 배경과 원인 1

 

우크라이나 위기 1-1: 배경과 원인 1

우크라이나 위기 1-1: 배경과 원인 1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경고음이 연일 높아지고 있다. 미국은 “언제든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급기야 며칠 전(2022.1.23)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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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위기 1-2: 배경과 원인 2

 

2. 내부적 요인: 우크라이나의 동서 분열

 

 

 

우크라이나 위기를 나토의 동진이라는 외부적 요인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2014년의 우크라이나 위기는 러시아와 두 가지 전쟁 양상으로 분출되었다. 하나는 러시아에 의한 크림 반도 병합(Annexation of Crimea)이고 다른 하나는 돈바스 전쟁(Donbas War)이다.

 

그렇다면 두 전쟁을 나토의 동진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크림 반도에 대한 러시아의 강제 병합은 그렇다 치더라도 내전의 형태를 띠고 있는 돈바스 전쟁은 외부적 요인만으로 설명하기는 분명 한계를 갖는다. 돈바스 전쟁은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친러 성향의 우크라이나인 반군에 의해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돈바스 전쟁 (출처: wikipedia)

 

따라서 분명 더 중요한 요인이 있어 보인다.

 

놀랍게도 실마리는 내가 보름간 머물렀던 리비우(Lviv)에서 시작한다.

 

평화로운 예술의 도시로만 여겼던 리비우가 사실은 친서방 정권의 등극과 나토와 유럽 연합(EU) 가입을 촉구했던 2004년 오렌지 혁명(Orange Revolution)2014년 유로마이단(Euromaidan) 사태의 중심에 있었다.  특히 2014년 유로마이단 사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작전을 감행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는 리비우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와 친서방 성향이 강한 서부의 중심 도시였기 때문이다.

 

반면에 우크라이나 동부는 분리주의와 친러시아 성향이 강한 지역으로 리비우와 대각선 대척점에 있는 곳이 바로 돈바스 지역이다.

 

 

리비우

 

 

역사적 배경이 다른 서부와 동부

 

 

 

우크라이나의 동서 지역은 전혀 다른 역사적 배경을 갖는다.

 

리비우를 중심으로 하는 서부는 오랜 시간 폴란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받아서 서구 유럽의 문화적 영향을 많이 받은 지역이다. 특히 리비우가 있는 서부의 갈리치아(Galicja) 지역이 러시아의 지배로 들어간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구소련 때였다. 구소련 시기에는 경제적으로 소외되어 산업 발전이 정체되었고 경제는 주로 농업에 의존했다.

 

반면에 동부 지역, 특히 돈바스를 포함하는 동남부 지역은 오랜 시간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아서 러시아 문화가 보편적인 곳이다. 아울러 동남부 지역은 석탄과 철강이 많이 매장되어 있어서 구소련 시기부터 풍부한 지하자원을 배경으로 산업이 발전한 지역이다.

 

 

우크라이나 동서 분열 (출처: 머니투데이)
우크라이나 동서 분열 (출처: wikipedia)

 

 

인구 구성이 다른 서부와 동부: 러시아인 디아스포라

 

 

 

동부로 갈수록 러시아인의 비중이 높다.

 

2001년 기준 우크라이나 전체 인구에서 우크라이나인은 77.8%을 차지하는 반면 러시아인은 17.3%에 불구하다. 문제는 러시아와 가까운 동부로 갈수록 러시아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히 높아진다는 사실이다. 러시아가 강제 병합한 크림 반도는 러시아인의 비율이 50%가 넘으며, 내전의 중심인 도네츠크 주()와 루간스크 주의 돈바스 지역도 러시아인 비율이 40%에 육박한다.

 

 

러시아인 인구 비중 (출처: wikipedia)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의 비중으로 따지면 더욱 높아진다.

 

동남부 지역은 대체로 러시아어 사용자의 비중이 높은데 2001년 통계에 의하면 크림 반도는 77%, 돈바스의 도네츠크 주와 루간스크 주도 각각 74.9%, 68.8%의 인구가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사용한다. 여기에 더해 러시아를 주로 사용하는 사람들의 비중을 보면 동남부 지역 중에서도 동부는 92.7%, 남부는 84.5%에 이른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동부는 친러시아 성향이 강할 수밖에 없으며 그 중에서도 돈바스 지역에서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내전이 일어난 배경이 여기에 있다.

 

 

러시아어 모국어 사용자 (출처: wikipedia)
러시아어 사용자 (출처: wikipedia)
러시아어 공용어 주장 (출처: wikipedia)

 

반면에 서부로 갈수록 우크라이나인의 비중이 높아진다.

 

서부로 갈수록 우크라이나인의 비중이 높아져 리비우가 있는, 가장 서쪽의 갈리치아 지방에서는 90% 이상의 압도적인 비중을 보인다. 러시아어 사용 인구로 봐도 리비우를 중심으로 하는 서부 지역은 겨우 5% 정도에 불구하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서부에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와 친서방 성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2004년 오렌지 혁명과 2014년 유로마이단 사태를 통해 친러 성향의 정권을 축출하고 친서방 정권을 들어서게 만든 세력의 중심이 이곳인 이유다.

 

 

우크라이나인 분포 (출처: wikipedia)

 

 

우크라이나 동서 분열과 러시아 군사 개입

 

 

 

우크라이나 동서 분열이야 말로 러시아 군사 개입의 진정한 배경이다.

 

우크라이나에 앞서 러시아는 2008년 조지아를 무력 침공해서 조지아의 나토 가입 의지를 무력화시켰다. 조지아 역시 정치적 분열이 있었다. 조지아 영토였던 친러시아 성향의 남오세티야가 분리독립을 선언하자 이에 조지아군이 남오세티야를 공격했다. 이에 러시아가 남오세티아 내의 러시아인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조지아를 침공했던 것이다.

 

 

조지아의 분열 (wikipedia)
러시아-조지아 전쟁 (출처: wikipedia)

 

조지아 이후 다음 대상은 당연히 우크라이나였다.

 

남오세티야의 분리독립 선언이 조지아 침공의 빌미를 제공했다면 우크라이나 침공에는 유러마이단 사태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2013년 말에서 2014년 초에 일어난 유로마이단 사태로 우크라이나에서 친러시아 정권이 축출되고 정치적 불안이 야기되자 러시아는 조지아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크림 반도의 러시아인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크림을 침공해 병합해버렸다.

 

 

유로마이단 사태 (출처: wikipedia)

 

러시아의 크림 병합은 다시 돈바스 지역에서 분리주의 반군이 내전을 일으키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하였고, 이는 다시 돈바스 반군에 대한 러시아의 군사 지원으로 이어져 지금까지 우크라이나 위기의 배경이 되고 있다.

 

 

2014 크림과 돈바스 (출처: wikipedia)

 

우크라이나 내부의 동서 분열이 없었다면 아무리 러시아라고 하더라도 나토 가입이라는 한 국가의 주권 문제를 가지고 쉽게 다른 나라의 영토를 침공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건 현재 2021-2022 우크라이나 위기도 마찬가지다.

 

 

우크라이나 국경으로 이동하는 러시아군 (출처: abcnews)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예상 공격 루트 (출처: wikipedia)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