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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210, 오스트리아 빈 2-1: 구시가지 산책 1, 합스부르크 왕가의 왕궁들 (20190612)

경계넘기 2022. 4. 26. 14:48

 

 

(Wien) 구시가지 산책 1,

합스부르크 왕가(House of Habsburg)의 왕궁들

 

 

오늘 본격적으로 빈(Wien)을 둘러본다.

 

어제는 빈 국립 오페라 극장(Wiener Staatsoper)’에서 오페라 돈 파스콸레(Don Pasquale)’를 보면서 음악의 도시 빈에 빠졌다면 오늘은 빈의 역사와 미술에 빠져 보지 않을까 싶다. 건축은 덤이고.

 

빈은 유구한 역사와 풍부한 문화를 가진 도시다.

 

아침부터 부지런을 떤다. 확실히 빈은 볼거리가 무지하게 많은 도시다. 하루 안에 돌기는 불가능하다. 어제는 저녁 내내 빈의 루트를 고민했다. 어디를 가야하는 가가 아니라 어디를 빼야 하나였다. 빠진 곳들은 다음을 기약해야 한다. 23일이라고 하지만 온전한 날은 오늘 하루. 내일은 아침부터 이동이라 의미가 없다.

 

 

합스부르크 왕가
House of Habsburg

 

 

빈 하면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다.

 

합스부르크 왕가(House of Habsburg)! 빈은 오랫동안 유럽 최대의 왕실 가문인 합스부르크 가문의 본거지였다. 스위스의 한 지방에서 출현한 합스부르크 가문은 이후 빈으로 이동해 오스트리아 왕실을 600년 가까이 지배하면서 유럽 최대의 가문으로 성장했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1438년부터 1740년까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를 배출했던 가문이다. 한때 신성 로마 제국을 비롯해 오스트리아, 독일, 에스파냐, 포르투갈의 황제나 왕을 배출하면서 유럽의 반 이상을 지배하는 대제국을 건설하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 합스부르크 왕가의 대제국 건설에는 폭력이 거의 수반되지 않았다.

 

아주 평화로운 방법이었으니 바로 정략결혼이다. 결혼을 통해 왕위를 계승하는 방식으로 대제국을 건설했다. 왕가는 결혼을 통해 거의 모든 유럽의 왕실들과 연결되었다고 하니 혼인을 통한 문어발식 확장인 셈이다. 한국의 정계와 재계에서도 정략결혼이 판치는 데에는 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있다. 피를 흘리지 않아서 평화적인 방법이라는 표현을 쓰긴 했지만 부모의 정략적 도구로 이용당한 왕자들과 특히 공주들의 인생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빈에는 600여 년 동안 제국을 건설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빈의 역사와 문화를 이룬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을 꼽으라면 역시 왕궁이 아닐까 싶다. 구시가지를 감싸 도는 순환 도로, 링슈트라세(Ringstraße) 안의 호프부르크 왕궁(Hofburg Palace)과 링슈트라세 밖의 쇤브룬 왕궁(Schönbrunn Palace) 그리고 벨베데레 왕궁(Belvedere Palace)이 그것이다. 그 중 오늘 둘러볼 곳은 호프부르크 왕궁과 쇤브룬 왕궁이다. 아쉽지만 벨베데레 왕궁은 다음 기회로.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 왕궁,
쇤브룬 왕궁(Schönbrunn Palace)

 

 

아침부터 바지런을 떤 이유는 쇤브룬 왕궁 때문이기도 하다.

 

쇤브룬 왕궁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세 왕궁들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왕궁이다. 숙소 직원 아주머니도 빈의 여러 볼거리를 말해 주시면서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하나로 쇤브룬 왕궁을 꼽았다. “You, never miss it!”을 외치면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곳으로 빈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오는 곳이니 되도록 일찍 가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고 해주셨다.

 

숙소 앞에서 트램을 타고 쇤브룬 왕궁으로 간다.

도착 시각은 오전 9. 문을 들어서니 넓은 광장 정면으로 쇤브룬 왕궁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다.

 

외부 감상은 천천히 한다. 서둘러 티켓을 사러 간다. 티켓 부스에는 이미 사람들로 붐빈다. 다행히 단체 관광들이 많아서 개별 여행자의 티켓 부스 줄은 길지 않다. 여러 종류의 티켓을 파는데 그랜드 티켓(Grand Ticket)의 가성비가 가장 좋다고 한다. 오디오 가이드 포함해서 가격은 20유로. 오스트리아에 오니 입장료도 대폭 오른다. 그나마 감사하게도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있다.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면서 보는 것과 아닌 것은 확실히 차이가 난다. 이해도 이해지만 흥미도 다르다.

 

 

 

오디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왕궁 안을 둘러본다.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니 확실히 더 많은 것을 알고 이해할 수 있어서 좋다. 흥미 있는 곳은 오디오 가이드를 반복해서 들으면서 찬찬히 구경하기도 한다. 하지만 밀려드는 단체 관광객들의 인파 속에서 그러고 있기도 쉽지 않다.

 

쇤브룬 왕궁은 파리의 베르사유 왕궁과 함께 유럽에서 가장 화려한 왕궁으로 통한다.

 

쇤브룬 왕궁은 18세기 중엽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ia) 여제(女帝) 때 그녀의 여름 왕궁으로 지어졌다. 이름 쇤브룬은 아름다운 샘을 의미한다. 이전부터 그곳에 별궁이 있긴 했지만 현재의 왕궁 모습은 테레지아에 의해서였다. 50만평의 대지에 로코코 양식으로 지어진 쉰브룬 왕궁에는 1,441개의 방이 있다고 하는데 현재 극히 일부분만 공개되고 있다.

 

 

 

왕궁 안에서 합스부르크 왕가의 역사를 읽는다.

 

그들의 번영과 몰락이 궁전 여기저기에 묻어 있다. 정략결혼의 희생자인 자신의 딸들을 안타까워하는 여제의 마음까지도 스며있다. 유럽의 판세를 좌지우지했던 왕가인지라 그들의 역사는 오스트리아의 역사이자 곧 유럽의 역사이기도 하다. 하지만 제국이 힘을 잃어가던 18세기 중엽에 지어진 쇤브룬 궁전에는 그 화려함에도 불구하고 번영보다는 쇠락의 모습이 더 짙게 묻어난다.

 

합스부르크 왕가 최초의 여제이자 마지막 황제,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ia).

 

왕궁 여기저기에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최초의 여제이자 마지막 황제였던 그녀의 생애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녀는 아버지 카를 6(Charles VI)가 아들을 끝내 낳지 못하면서 왕위를 물려받았다. 카를 6세의 사후에는 프랑스, 스페인, 작센과 폴란드, 프로이센 등이 그녀의 계승을 인정할 수 없다며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이 발발하기도 했다.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는 16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녀의 자녀들 역시 대부분 정략결혼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대표적인 사람이 그녀의 막내딸로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와 결혼했던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 d'Autriche). 오스트리아와 앙숙이었던 프랑스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14살의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다가 프랑스 대혁명으로 37살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여제의 자녀들은 정략결혼을 피해가지 못했지만 정작 본인은 자유연애를 통해서 결혼했다.

 

아버지 카를 6세가 그녀의 자유연애를 허락했단다. 그녀는 당시 빈에 유학 온 프란츠 슈테판(Franz Stephan)과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한다. 남편이 먼저 죽자 자신이 죽을 때까지 15년 간 상복을 벗지 않았다고 오디오 가이드는 말한다. 3년 상도 아니고 15년 상이라니 그녀가 얼마나 남편을 사랑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1차 세계대전을 촉발한 프란츠 요제프(Franz Joseph)’ 황제의 흔적도 곳곳에 있다.

 

분열하던 합스부르크 제국을 지키기 위해 제국 내 가장 큰 민족이었던 헝가리와 연합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Austro-Hungarian Empire)이라는 이중제국(Dual Monarchy)을 만들기도 했고, 말년에는 보스니아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 황태자의 암살을 계기로 유럽을 1차 세계대전으로 끌어들이기도 했다. 그는 쇤브룬 왕국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죽었다고 한다. 왕궁 안의 그의 집무실과 침실에서는 무척이나 깔끔하고 부지런했던 그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쇤브룬 왕궁은 1,441개의 방을 가지고 있지만 이중 극히 일부만 공개하기 때문에 내부 관람은 1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왕궁 내부는 무척이나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아쉽게도 촬영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어서 왕궁 내부 사진이 한 장도 없다. 그 점이 무척이나 아쉽다. 더러 핸드폰으로 몰래 찍는 사람들도 있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

 

 

 

왕궁의 정원은 무척 넓다.

너무 넓어서 다리가 아플 정도.

정원도 무척이나 깔끔하고 예쁘다.

 

 

 

쇤브룬 궁전의 정원은 대표적인 프랑스식 정원이다. 

 

유럽에는 두 가지 정원 양식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프랑스식으로 인위적으로 다듬은 정원을 말하고, 다른 하나는 영국식으로 자연스런 모습을 강조하는 양식이다. 쇤브룬 궁전은 프랑스식 정원이다. 커다란 정원은 좌우 대칭을 칼같이 맞추고 있고, 나무들도 여러 가지 문양으로 각을 세워 다듬어져 있다.

 

 

 

언덕 위 글로리에테(Gloriette)가 있다.

 

정원을 벗어나면 낮은 언덕의 숲이 나오고 그 언덕 정상에는 쇤브룬 왕궁과 빈 시가지가 굽어보이는 일종의 기념비 건물인 글로리에테가 있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왕궁의 풍경이 좋다. 

 

 

 

그곳의 돌난간에 한참을 앉아 멍을 때린다. 

 

쇤브룬 왕궁과 그 뒤로 펼쳐지는 빈 시가지를 내려다보면 합스부르크 왕가와 그 시절의 유럽을 그려 본다. 하지만 복잡하다. 유럽은 지금이나 그때나 복잡하다. 쇤브룬 왕궁의 정원처럼 잘 정리되면 좋을 터인데.

 

 

 

 

합스부르크 왕가의 정궁(正宮)이자 겨울 궁전,
호프부르크 왕궁(Hofburg Palace)

 

 

쇤브룬 왕궁을 나와서 링슈트라세(Ringstraße) 안의 구시가지로 들어온다.

 

미술사 박물관과 자연사 박물관을 지나쳐 링슈트라세를 건너면 바로 궁전이 나온다. 호프부르크 왕궁(Hofburg Palace)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정궁(正宮)이자 겨울 왕궁이다. 13세기에 지어진 왕궁은 이후 수세기에 걸쳐 여러 가지 양식으로 증축되다가 16세기 초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고 한다. 1946년부터는 오스트리아 대통령의 집무실로 사용되고 있다고 하니 비록 합스부르크 왕가는 아니지만 여전히 오스트리아의 정궁 역할을 하고 있다.

 

 

 

먼저 반원 모양의 신왕궁이 눈에 들어온다.

 

호프부르크 궁전은 신왕궁과 구왕궁으로 구분된다. 신왕궁은 1913년 완공된 왕궁으로 네오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다. 황금 독수리가 장식된 외관이 무척이나 웅장하고 인상적인 왕궁이다. 하지만 합스부르크 왕가가 제1차 세계대전의 패전으로 1918년 막을 내렸으니 왕궁으로 제대로 사용되지 못했다. 왕궁 앞 광장에는 말을 타고 있는 한 기사의 동상이 있다. 오스만 제국과 싸워 승리를 거둔 오이겐 왕자(Prince Eugene)의 동상이라고 한다.

 

현재 신왕궁은 민속학 박물관, 고대 악기 박물관, 무기 박물관, 에페소스 박물관 등의 다양한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시간이 없어서 박물관 구경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

 

 

 

건물에 난 터널 같은 문을 지나치면 구왕궁이 나온다.

 

구왕궁 건물은 작은 광장을 사방으로 둘러싸고 있다. 작은 광장의 가운데에는 신성 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이자 오스트리아 제국의 첫 황제였던 프란츠 1(Francis I)의 동상이 있다. 현재 오스트리아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되는 곳이 구왕궁이다. 이외에도 시시 박물관, 실버 컬렉션, 황제의 숙소, 왕실 보물관 등으로 사용되고 있단다. 아쉽지만 이곳도 외관만 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광장의 반대편 문으로 나오면 구시가지로 나온다.

 

둥근 미하엘 광장(Michaelerplatz)이 나온다. 미하엘 광장은 구왕궁의 바로 앞에 있다. 광장에서 구왕궁을 보니 이제야 왕궁답다.

 

 

 

구왕궁을 등지고 오른편 길로 살짝 내려간다.

궁전의 부속 건물로 지금은 오스트리아 국립도서관으로 사용되는 건물이 나온다.

 

 

 

국립도서관 맞은편에 16세기 중반에 건설된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 슈탈부르크(Stallburg)가 있다.

 

1558-1565년 사이에 건축된 궁전의 부속 건물로 1659년에서 1776년까지 레오폴트 빌헬름 대공(Archduke Leopold Wilhelm)이 수집했던 예술품을 보관했던 미술관으로 사용되었다. 이곳에 소장했던 작품들을 빈 미술사 박물관으로 옮긴 이후 지금까지 궁전 승마학교(Spanish Riding School)의 마구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빈 미술사 박물관이 자랑하는 진귀한 예술품들을 전시하던 미술관에서 마구간이라 이걸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해야 하나 뭐라고 해야 하나. 건물 입장에서 보면 팔자가 참 기구하다.

 

 

 

호프부르크 왕궁은 쇤브룬 왕궁에 비해 확실히 실용적으로 보인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