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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211, 체코 프라하 1-5: 석양이 지는 프라하 카를교(20190613)

경계넘기 2022. 5. 10. 15:51

카를교와 프라하성

 

 

석양이 지는 프라하(Praha) 카를교(Charles Bridge)

 

 

구시가지 광장(Old Town Square)을 지나 카를교(Charles Bridge)를 향한다.

 

그런데 엉뚱한 곳으로 나왔다. 강변은 맞는데 카를교가 아닌 강 북단의 다른 다리다. 나름 맞게 찾아간다고 생각했는데 미로 같은 구시가지 길을 걷다 보니 방향 감각을 잃었나 보다. 그래도 멀리서 카를교의 전체적인 모습을 관망할 수 있어 나쁘지는 않다.

 

 

 

멀리서 보는 카를교는 늘씬한 돌다리다.

 

프라하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블타파강(Vltava River) 위로 구시가지와 프라하 궁(Praha Castle)을 연결하는 다리다. 서쪽의 구시가지와 동쪽의 프라하 궁,, 즉 동서 프라하를 연결한다. 블타파강은 한강 정도는 아니지만 제법 규모가 있다. 카를교의 길이가 516m나 된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작지만 유람선도 다닌다.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이자 보헤미아 왕국의 국왕인 카를 4(Karl IV)에 의해 지어졌다. 1357년에 착공해서 1402년에야 완공되었으니 건설에만 45년이 걸렸다. 다리의 건설은 135779일 오전 531분에 카를 4세가 첫 돌을 놓으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가 1378년에 죽었으니 첫 돌을 놓은 지 20년을 지나서도 생전에 다리를 밟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다리 하나에 거의 반세기가 걸렸다니 놀랍다.

 

 

카를교 북단에서 찍은 사진, 구시가지 방향

 

프라하를 중부 유럽의 중심지로 만든 다리다.

 

1402년 완공되고 1841년까지 카를교가 프라하와 그 주변 지역에서 블타바 강을 넘는 유일한 다리였다고 하니 그 중요성은 상상하기 쉽지 않다. 지도를 잠시 보면 금방 알겠지만 블타파강은 중부 유럽의 체코를 남북으로 가르는 강이다. 이는 카를교가 동서 프라하를 연결할 뿐만 아니라 중부 유럽에서 동유럽과 서유럽을 연결하는 다리이기도 했음을 의미한다. 카를교로 인해서 프라하가 동서 교역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카를교 남단에서 찍은 사진, 프라하성 방향

 

프라하의 꽃 카를교

 

다리를 건너 프라하성이 있는 반대편에서 카를교로 간다. 강변을 따라 걸으니 카를교가 나온다. 현재는 차가 다니지 않는 보행자 전용 다리다. 카를교는 구시가지 광장, 프라하성과 함께 프라하를 대표하는 3대 꽃이 아닐까 싶다. 그만큼 다리 위에는 사람들의 인파가 어마어마하다.

 

 

 

카를교는 다리 자체가 하나의 야외 미술관 같다.

 

멀리서 볼 때는 왜소해 보인다 싶었는데 막상 다리를 마주하니 웅장하다. 확실히 같은 다리라도 석조 건축물이 주는 위압감이 있다. 건너편 다리에서 봤을 때 왜소해 보인 것이 아니라 잘 빠져서 늘씬해 보였던 게다. 길이 516m에 폭 10m의 다리는 차가 다니지 않아 상대적으로 더 넓게 보인다. 오랜 세월 햇빛과 사람의 무게를 받아서였을까 다리는 짙은 흑갈색이다. 그래서 더 웅장하고 육중해보일 뿐만 아니라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다리 양쪽 끝에는 세 개의 높은 탑이 있다.

 

구시가지 쪽에 하나 프라하궁 쪽에 둘. 탑 아래의 아치형 문을 통해서만 다리에 들어갈 수 있다. 다리에 왜 이리 높고 웅장한 탑을 지었나 했더니 이곳에서 통행세를 받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다리를 방어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다리를 지키는 일종의 요새(fortress)였던 셈이다. 그만큼 이 다리가 지정학적으로도 중요했다는 반증이다. 듣기에는 현재 구시가지 쪽의 교탑은 사람들이 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입장료가 있겠지. 사람도 많아서 겁나 기다릴 테고.

 

1357년에 교탑도 같이 건설되었다고 하는데 완공 시기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나 보다. 어디에도 기록이 없다. 구시가지 쪽의 교탑은 대표적인 고딕 양식의 건축물 중의 하나라고. 1841년까지 카를교가 블타파강의 유일한 다리였기에 군사적 중요성 역시 높았을 수밖에 없어서 프라하가 전쟁에 휩싸일 때마다 교탑도 피해를 많이 입어서 여러 번 재건을 거쳤다고 한다.

 

 

구시가지 쪽 교탑
프라하성 쪽 교탑

 

 

다리 양편으로는 30개의 조각상이 있다.

 

야외 조각 갤러리 같다. 모두들 가톨릭 성인들의 동상. 원래는 조각상이 없다가 18세기에 들어 다리에 조각상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대부분 바로크 양식의 조각상들이란다.

 

 

 

다리를 걷다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곳을 만난다.

 

무언가 하고 봤더니 난간 위의 작은 동상을 만지려는 것이다. 이 다리에서 순교한 얀 네포무츠키(Jan Nepomucký) 성인의 작은 동상이다. 이곳이 순교한 장소란다. 얼마나 만졌는지 그곳만 번쩍거린다. 다리의 다른 곳에 정식 얀 네포무츠키의 동상이 있다. 그곳도 동상을 만지고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낭만과 예술의 다리

 

이곳에서 바라보는 프라하의 구시가지와 프라하성의 모습이 일품이다. 다리에 도달했을 무렵이 해가 조금씩 힘을 잃어가는 시각. 맥주와 함께 다리 한 가운데 난간에 기대 맥주를 프라하의 모습을 즐긴다. 해가 지면서 시시각각 달라지는 프라하의 모습이 흥미롭다. 서편으로 완연히 기운 햇살에 반사되는 구시가지의 모습과 프라하성 뒤로 내려앉는 일몰의 모습은 충분히 낭만적이다.

 

 

 

다리 위 곳곳에서 펼쳐지는 거리음악도 일품이다.

 

일몰의 풍경 속에서 곳곳에서 펼쳐지는 거리음악을 들으며 걷다 보면 없던 사랑과 애정도 생길 듯싶다. 아무래도 연인들의 다리다. 프라하의 꽃이라면 구시가지 광장, 프라하성 그리고 카를교를 들 수 있겠는데 그 중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코 카를교일 것 같다. 풍광도 풍광이지만 다리 곳곳에서 펼쳐지는 거리음악의 향연이 작은 음악제를 연상케 한다.

 

 

 

카를교를 즐길 가장 좋은 시간대는 일몰과 직후의 야경인 듯하다.

 

카를교가 가장 낭만적이고 사랑스럽게 보이는 시간이다. 다른 관광객들도 이 시간대에 이곳으로 몰려든다. 여기저기 한국말들이 들리기 시작하는데 마치 내가 명동거리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그런데 순간 욕이 나올 뻔했다. 망할!

 

이번 생에 나에게 낭만적 인연은 없나 보다. 한국인들이 너무나 많아서 아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진짜로 아는 사람을 만난다. 그런데 대학 선배, 그것도 남자 선배다. 출장차 왔다고 하는데 일행과 저녁을 먹고 바람 쐬러 나왔단다.

 

이런 낭만적인 도시의 사랑스런 카를교 위에서 대학 선배나 만나다니! 이번 생은 영 글러 먹은 것 같다. 다른 곳이라면 엄청 반가웠을 터인데 프라하 그것도 일몰의 카를교라는 낭만적인 시간과 장소 앞에서는 당혹스러워진다. 한참 후에야 내가 선배가 묵는 호텔조차도 묻지 않았다는 사실이 기억난다. 외국에서 우연히 만나 어색하게 살짝 인사만 하고 지나치는 후배의 모습에 선배도 당황하지 않았을까 싶지만 생각할수록 여행의 의지가 사라진다. 사라예보에서 800달러를 도난당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보다 더 당황스럽고 열받는다..

 

다 좋았는데 마지막 순간이 돌아가는 발걸음을 정말 무겁게 만든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