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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212, 체코 프라하 2-1: 프라하 성(Parah Castle)에서 흑맥주 한 잔하며 (20190614)

경계넘기 2022. 7. 17. 12:29

 

 

프라하 성(Parah Castle)에서 흑맥주 한 잔 하며

 

 

새벽에 잠을 설쳤다.

 

빈대에 물린 것 같다. 이놈에게 물리면 물린 자리가 주사 맞은 곳처럼 통통 붓고 가렵다. 완전히 가라앉는 데까지는 일주일 정도 걸린다. 그것도 절대 긁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에서다. 유럽에 들어와서는 물린 자리가 가라앉을 만하면 다시 물리곤 한다. 역시 유럽은 빈대 천지. 피해 가기가 어렵다.

 

오늘은 프라하 성(Parah Castle)을 구경한다.

 

느지막이 나와서 마트에서 맥주 2캔을 사서 가방에 담는다. 경치 좋은 곳에서 마실 요량이다. 요즘은 추울 때에는 커피를, 더울 때에는 맥주를 가방에 담아 다닌다. 돈도 절약하고 감흥도 높이고 일석이조다. 여행 다니면서 나의 루틴이 되었다.

 

맥주도 보온병에 담으면 냉기가 보존되니 좋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가지고 다니다 보면 흔들리기 때문에 보통의 보온병 뚜껑은 내부에서 생기는 가스를 버티지 못하고 새고 만다. 뚜껑이 아주 튼튼하지 않으면 가방을 온통 버릴 수 있다.

 

구시가지를 관통해서 카를교를 찾아갔으나 오늘도 여지없이 헤맨다.

 

구시가지 광장에서 카를교 찾아가다가 길을 잃는다. 구시가지 길이 너무 복잡하다. 어제 저녁에는 구시가지 광장에서 카를교에 갈 때도, 카를교에서 다시 구시가지 광장으로 올 때도 모두 다 길을 헤맸다. 그나마 올드타운이 작아서 다행이지. 광장에서 카를교까지는 걸어서 10, 15분 거리인데도 이렇게 헤맨다. 제법 길을 잘 찾는 편인데도 말이다. 다른 도시들의 구시가지를 표현할 때 미로 같다는 표현을 자주 쓰는데 여기는 정말 미로다.

 

 

 

길을 헤매다 카를교에서 조금 벗어난 블타파 강(Vltava River)가로 나온다.

 

이쪽에서 블타파강과 그 위에 걸쳐있는 카를교 그리고 오늘의 목적지 프라하 성이 한눈에 들어온다. 제법 운치가 있다. 이런 경치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강가 벤치에서 카를교와 프라하 성을 바라보며 가져온 맥주를 마신다. 이러려고 가지고 다닌다. 음악도 들으면서. 어제의 충격이 가시지 않았지만 그래도 역시 프라하는 낭만적이다.

 

 

 

다시 길을 재촉한다.

 

멍을 더 때리고 싶지만 빈대 덕분에 잠을 설쳐서 늦게 길을 나섰다. 한낮의 태양이 강렬하게 비췬다. 구름이 거의 없는 맑은 하늘. 돌로 둘러싸인 유럽의 도시는 여름 햇살이 더 뜨겁게 느껴진다. 눈 돌리기도 쉽지 않다. 햇살이 돌에 반사되어 사방에서 눈을 때린다. 유럽의 여름에는 그래서 선글라스가 필수다.

 

 

 

카를교를 건너 말라 스트라나(Malá Strana)로 들어간다.

 

말라 스트라나는 카를교 서편 프라하 성이 있는 구시가지를 말한다. 도시가 막 생성되던 8세기 초에는 시장이 주로 서던 곳이었단다. 13세기에 들어 건물들이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했다고. 카를교 동편의 구시가지에 비하면 신시가지다. 프라하 성이 언덕 위에 있기 때문에 말라 스트라나의 길은 대체로 경사가 있다. 급하지는 않다. 완만한 경사 길의 말라 스트라나 구시가지도 나름의 운치와 멋이 있다.

 

 

 

프라하 성 티켓은 구입하지 않는다.

 

입장료가 아깝다기보다는 이제는 안에 들어가 둘러보는 것도 귀찮고 힘들다. 내 성격에는 성이든 교회든 안보다 외관이 더 멋있고 예쁜 것 같다. 입장료 없이도 성에는 들어갈 수 있다. 입장료는 궁궐 건물이나 성당 안으로 들어가는 요금이다.

 

성에 들어갈 때 짐 검사가 철저하다.

 

현재 성 안에 체코 대통령궁이 있기 때문이리라. 우리로 치면 청와대가 성 안에 있다는 것이니 짐 검사가 철저한 것이 이해가 된다 싶었다가....... 이내 생각이 바뀐다. 생각해보니 오스트리아 빈(Wien)의 호프부르크 왕궁(Hofburg Palace)에도, 크로아티아 자그레브(Zagreb)의 성 마르코 광장(St. Mark's Square)에도 대통령궁이 있었다. 그럼에도 왕궁이나 광장에 들어갈 때 검문 따위는 없었다. 경비나 경계도 얼마나 은밀히 하는지 일부러 찾지 않으면 어디가 대통령궁인지조차 인지하기가 어려웠다. 대통령 궁이나 집무실 근처에서는 당연히 검문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권위주의의 잔재일지도 모른다. 국가마다 특수한 안보적 상황이 다를 수도 있고.

 

대통령궁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프라하 성은 예로부터 국왕이 거주하던 왕궁이었다. 그러다 1918년부터는 체코 대통령의 대통령궁으로 사용되고 있다. 프라하 성의 주인이 국왕에서 대통령으로 직함만 바뀌었을 뿐 왕궁이 왕궁으로서의 역할을 지금까지 하고 있는 셈이다. 9세기 말부터 성이 건설되기 시작했으니 천년이 훌쩍 넘는 세월이다. 오스트리아 빈의 호프부르크 왕궁도 현재 대통령궁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호프부르크는 13세기에 지어졌다.

 

 

 

근데 왕궁(palace)과 성(castle)의 차이가 뭘까?

 

같은 왕의 거주지, 즉 왕궁인데 어느 것은 성(castle)이라 하고, 어느 것은 왕궁(palace)이라 부른다. 예를 들어 모두 국왕의 거주지이지만 프라하 성은 성, 빈의 호프부르크 왕궁과 쇤브룬 왕궁(Schönbrunn Palace)은 왕궁이라 한다.

 

어떤 기준으로 다르게 부르는 것일까?

 

정답은 요새화(fortification). 왕궁이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성이나 요새 등으로 방어되어있다면 성(castle), 그렇지 않으면 궁(palace)으로 부른다.

 

같은 왕궁이지만 프라하 성은 요새화 되어있기에 성이라 부르고, 빈의 왕궁들은 요새화되어 있지 않기에 왕궁이라 부른다. 동양도 마찬가지다. 중국 베이징에 있는 왕궁은 자금성(紫禁城)이라 부른다. 한국인들은 흔히들 한양도성 같은 성이라 착각하는데 그저 명청 시대의 왕궁이다. 하지만 두텁고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기에 성으로 부른다. 반면에 한국의 왕궁들은 그저 낮은 담벼락뿐으로 전혀 요새화되어 있지 않다. 그러기에 경복궁(景福宮, Gyeongbokgung Palace), 덕수궁(德壽宮, Deoksugung Palace) 등 궁으로 부른다.

 

참고로 프라하 성은 가장 큰 고대의 성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단다.

 

위키피디아(Wikipedia)의 영문판의 문장을 그대로 옮기면 “Prague Castle is the largest ancient castle in the world”이라고 되어 있다. 언뜻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면 중국의 만리장성만 해도 프라하 성보다 훨씬 더 오래전에 만들어진, 프라하 성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성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프라하 성이 가장 큰 고대의 성이라 하는 것일까?

 

답은 위에 설명한 이유 때문이다. 우리가 영어의 ‘castle’을 한양도성, 수원성 등과 같은 성()으로도 해석하기 때문이다. 엄밀히 ‘castle’은 ‘요새화된(fortified)’ 왕이나 귀족 등의 거주지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군사적인 의미의 성()은 작은 규모일 때에는 ‘fortress’, 그리고 한양도성이나 수원성처럼 도시를 둘러싸고 방어하는 큰 규모의 성은 wallscity walls로 부른다.

 

여기서 다시 오역이 나온다.

 

한국에서 흔히들 ‘walls’를 그냥 성벽이라고 해석하기 때문이다. ‘castle’이 성이니 ‘walls’은 직역을 해서 그냥 성벽이라 번역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 성(Walls of Dubrovnik)이나 몬테네그로의 코토르 성(Kotor Walls) 등은 두브로부니크 성벽, 코토르 성벽으로 해석해 놓는다. 덕분에 많은 분들이 이런 곳들을 성벽만 덩그러니 남은 곳이거니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우리의 수원성처럼 온전히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위풍당당한 도성(都城)이다.

 

 

성벽 위에서

 

성 안으로 들어가면 궁전 건물보다는 성당 건물이 더 화려하다.

 

특히 성 비트 대성당(Katedrála Sv. Víta)은 외관도 화려하고 웅장하지만 안에 들어가면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가 특징이다. 미술관을 둘러보는 기분이랄까?

 

 

 

 

왕궁 건물은 이게 궁궐인가 싶을 정도로 단순한 모양이다. 입장료를 사지 않아서 내부는 어떤 모습인지 알지 못한다. 덥고 다리도 아프고 해서 자세히 볼 엄두도 안 난다. 그냥 입구에서 거의 직선으로 쭉 한걸음에 구경하면서 나온다. 하도 대충 봐서 뭐가 뭔지도 잘 모르겠다.

 

 

 

성에서 나가자마자 왼편으로 노천에서 맥주를 파는 곳이 있다.

 

그곳에서 보는 프라하의 전망이 좋다. 생맥주 하나를 시켜서 마시면서 프라하를 굽어본다. 블타파 강을 가운데에 두고 빨간 지붕의 건물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프라하 성에 들어오기 직전에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전망을 가진 스타벅스 매장이 있다. 당연히 들어가 봤는데 손님이 너무 많았다. 앉을 곳도 없고, 주문하는 줄도 길어서 그냥 나왔다. 스타벅스 매장 고객의 3분의 1은 한국 여행객 같았다. 그런데 이곳이 스타벅스보다 사람은 훨씬 적지만 전망은 비슷한 것 같다.

 

프라하 성보다는 이곳에서 보는 프라하의 시가지 풍경이 훨씬 더 좋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