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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215, 폴란드 크라쿠프 3-2: 유대인 학살의 현장, 오슈비엥침(Oświęcim, 독일어 아우슈비츠) 2 (20190617)

경계넘기 2023. 2. 1. 06:16

 

 

유대인 학살의 현장, 오슈비엥침(Oświęcim, 독일어 아우슈비츠) 2

 

 

독일 제국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제2수용소.

 

정식 명칭은 오슈비엥침 브제진카(Oświęcim Brzezinka) 수용소, 독일어로는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Auschwitz Birkenau) 수용소로 불린다. 2수용소는 황량하다. 넓은 수용소 부지에 수용소 건물들만 열을 지어 덩그러니 남아 있고, 제대로 된 전시관이나 전시물은 없다. 하지만 이곳이 바로 영화 쉰들러리스트의 촬영지였고, 실제적으로도 가장 규모가 컸던 곳이다. 처음부터 대량 학살을 목적으로 만들었다. 목욕탕으로 꾸민 대규모 가스실 그리고 시체보관실과 화장장 등을 갖춘 집단 처형소였다.

 

 

 

2수용소 입구가 바로 영화에서 봤던 그 기차역이다.

 

기차역은 지옥의 문이었을 게다. 기차역을 통과하면 역에서 이어진 철로 옆으로 넓은 플랫폼이 나온다. 유대인을 꽉꽉 채운 화물열차가 이곳에 들어서면 이 플랫폼에 사람들을 내리게 하고 곧 분류 작업에 들어갔을 테다. 노동이 가능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즉 가스실에 들어갈 사람들과 작업에 투입될 사람들을 구분하는, 생과사의 갈림길이 일어나는 곳이다

 

화창하게 맑은 날임에도 이곳 플랫폼에 서서 역사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섬뜩한 기운이 목덜미를 스쳐 지나간다. 그 당시 이곳에 내가 있었다면 어떤 심정이었을까?

 

 

 

분류 작업이 끝난 사람들은 이 철조망 문을 지나 수용소에 들어간다. 

죽음의 문.

 

 

 

몇 개의 막사에 들어가 본다.

 

1수용소의 몇 배나 넓은 부지에 수용소 막사들이 도열하듯 들어서 있다. 폴란드 군대의 막사였던 제1수용소와는 달리 급하게 만든 제2수용소의 건물들은 규모는 훨씬 크지만 무척이나 허접했다. 황량하게 넓은 방에 많은 침대들이 있다. 건물 하나에도 엄청난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었을 게다. 따로 전시실이나 전시관으로 조성된 곳은 없어 보인다.

 

 

 

가스실은 잔해더미만 남았다.

 

이곳의 가스실이야 말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것이었을 터지만 거의 파괴되었던 모양이다. 잔해더미 외에는 제대로 된 모습을 볼 수 없다. 독일군이 가스실을 목욕탕처럼 만든 이유는 순순히 옷을 벗게 만들기 위함이란다. 죄수복을 재활용하기 위해서는 옷을 벗겨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았단다. 죽으러 가는데 누가 순순히 옷을 벗겠는가! 그래서 생각한 것이 샤워실이란다. 샤워하러 간다고 하면 옷을 순순히 벗기 때문이다. 그래도 의심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을 대비해 옷장까지 마련해두고, 여기에 더해 자기 옷을 둔 곳을 잊지 말라는 말도 곁들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 시간이었다.

 

오슈비엥침을 둘러보고 나온 나의 생각이나 느낌을 묻는다면 뭐 하나 제대로 느끼거나 생각해보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 정답으로 보인다.

 

여행 중에 만난 한 친구에게 난 성수기에 여행 다니는 것을 싫어한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그랬더니 그 친구 말이 성수기에 가야 제대로 다 볼 수가 있다고 했다. 비수기에 가면 공사다 수리다 해서 제대로 다 볼 수가 없다고 했다. 예전에 자기가 한 겨울에 유럽 여행을 했는데 개보수 한다고 개방하지 않은 곳이 많았단다. 그때 그 친구에게 말은 안했지만 난 이렇게 답하고 싶었다. 다 볼 수는 있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보고 느낄 수 없다고.

 

오슈비엥침(아우슈비츠)는 사람 없는 비수기에 혼자 와야 한다.

 

산처럼 쌓인 신발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면서 그 신발을 신었던 사람들을 떠올려보고, 잘린 머리카락 더미에서 강제로 그 머리카락이 잘리면서 울었을 사람들도 생각해보고, 그들이 새로운 삶을 시작할 곳이라 생각하고 가져온 냄비나 그릇 속에서 그들이 가졌던 희망이 순간 공포와 절망으로 바뀌었을 순간도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수용소를 둘러싸고 있는, 생과 사를 나누는 이 두터운 철조망이 주는 공포와 분노 그리고 좌절과 절망 역시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야 이 역사의 현장에 온 이유가 되지 않을까 싶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