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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일주 여행/폴란드(Poland)

D+216, 폴란드 크라쿠프 4: 소금광산 비엘리치카(Wieliczka) (20190618)

경계넘기 2023. 5. 31. 18:58

 

소금광산 비엘리치카(Wieliczka)

 

 

친한 대학동기가 유럽 배낭여행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다는 곳이 소금광산 비엘리치카(Wieliczka)였다고 했다. 덕분에 나 역시 아우슈비츠(Auschwitz)와 함께 기대를 많이 하고 왔던 곳이다.

 

더욱이 이곳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제1호다.

 

선사시대부터 소금을 채굴하기 시작한 곳이라지만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13세기부터라고. 이곳에는 소금을 캐던 광부들이 조각한, 정교하고 아름다운 소금 조각들이 많이 있다고 한다. 기대가 되는 곳이 아닐 수 없다. 소금으로 만든 조각상은 어떤 모습일까?

 

 

 

오늘은 저녁 늦게 버스를 타고 우크라이나 리비우(Lviv)로 넘어가는 날이기도 하다.

 

체크아웃을 하고 짐은 숙소에 맡기고 어제와 마찬가지로 일찍 길을 나선다. 이곳도 사람이 많이 오는 곳이라 하니 일찍 가야 그나마 제대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숙소 앞에서 304번 시내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가니 소금광산이 나온다. 아침 9시전이라 개별여행자 매표소에는 사람이 많지 않다. 하지만 단체 관광객들은 이미 꽤 있다. 어제 아우슈비츠와 같이 단체로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많다. 한국이나 이곳이나 학생들이 부지런하긴 하다.

 

이곳은 투어만 가능하다.

 

서둘러 매표소로 가서 표를 산다. 그런데 이곳은 무조건 가이드 투어만 가능하단다. 입장료는 89 줄러티(PLN), 여기에 사진 촬영을 위해서는 10 줄러티를 더 내야한다. 우리 돈으로 거의 3만원 돈이다. 비싸다. 바로 9시에 출발하는 투어가 있다. 역시나 영어가이드.

 

 

 

본격적으로 소금 광산으로 들어간다.

 

소금 광산 갱도를 걷는다. 무척이나 좁고 어두웠을 이 좁은 갱도가 지금은 전등의 도움을 받아 환하다. 소금 조각상을 만나기 전 갱도 곳곳에는 그 옛날부터 이곳에서 소금을 캤던 광부들의 작업 모습들을 보여준다. 말이 작업할 수 있을 정도의 넓은 공간도 있다. 여기까지는 소금 광산을 설명하는 전시 공간 같다. 그 사이사이 숨겨진 소금 조각상의 모습이 잠깐씩 보인다.

 

 

 

한참을 내려간다.

 

 

 

광산을 한참 내려가니 본격적인 소금광산 터널이 나온다. 

 

좁은 터널을 지나니 곧 거대한 소금 광장으로 들어선다. 엄청 넓고 크다. 높이도 어림잡아 대충 3~4층 높이다. 그 광장을 둘러싸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소금 예술품들이 마치 병풍을 둘러치듯 펼쳐진다.

 

 

 

광장 안에 소금 성당이 있다.

 

아니 광장 자체가 하나의 성당이다. 광장 정면 쪽에 신부가 설교를 하는 교단이 있다. 교단의 집기들도 모두 소금 암석으로 만들었다. 벽면도 마치 돌을 쌓아 만든 것처럼 꾸며 놨다.

 

 

 

성당 즉 광장을 둘러싸고 펼쳐진 소금 암석의 성상들이 지상의 성당보다 더 화려한 듯하다.

 

저들이 모두 소금 암석이라니 놀랍다. 도저히 광부들이 조각한 작품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조각가들이 광부로 숨어 들어왔던 것일까? 내려오는 길에 잠깐잠깐 보였던 작품들은 아마추어의 서툰 모습이 보였었는데 이곳은 그렇지 않다.

 

벽면에 새겨진 조각 작품들의 정교함은 더욱 놀랍다. 성경의 이야기를 조각 그림으로 풀어놓은 것들이다. 작품 하나하나가 내 발을 잡아끌지만 각각의 투어단에게 허가된 시간이 많지 않아 아쉬울 뿐이다.

 

 

 

그때 불현듯 소금 암석, 즉 암염(巖鹽)은 대리석보다 더 부드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금 광산과 그 안의 암염 조각은 독특하지만 소금 광산 자체가 여타 광산과 특별히 다르다거나 암염 조각들이 여타 돌조각들보다 뛰어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무른 소금 암석이라 조각하기가 돌에 비해 더 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에 감돈다.

 

이 작품들이 대체로 광부라는 비전문가의 작품들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면 생각이 다소 달라지는 하지만 내 친구가 이곳을 추천해주면서 입에 달았던 어메이징(amazing)하지는 않다. 기대가 커서 그럴 수도 있다. 오랜 여행으로 인해서 생긴 일종의 무뎌짐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많은 것을 보고 다니다 보니 웬만한 것으로는 이제 놀라거나 감명을 받지 않는다.

 

 

 

무뎌짐.

지금 내가 유럽에 갖는 느낌이다.

 

유럽과 문화가 많이 비슷한, 즉 유럽문화권이라 할 수 있는 코카서스의 아제르바이잔에 들어온 것이 2월 중순. 그때부터 터키 한 달을 빼면 유럽을 석 달 반 넘게 다니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유럽의 올드타운이나 성당, 성들은 무감각한 것을 넘어서 때론 지겨워진다. 유럽을 여행하고 있지만 빨리 유럽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오랜 여행이 주는 병폐다.

 

 

 

소금광산.

 

분명 훌륭한데 자꾸 이전에 봤던 것들과 비교를 하는 내 모습을 느낀다. 그런데 이것도 가이드투어가 주는 병폐이기도 하다. 무언가를 제대로 보고 느낄 수 있는 시간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소금광산 투어도 1시간 반에 끝났고, 나오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딱 2시간 걸렸다. , 뒤로 투어단이 이어지기 때문에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 못한다. 자유롭게 오래 머무를 수 있는 곳은 투어가 끝나는 지점에 있는 식당과 기념품 파는 곳뿐이다. 망할.

 

 

 

관람이 일찍 끝나는 바람에 저녁 1110분에 타는 버스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버렸다. 어떻게 이 시간을 보내나...

 

 

by 경계넘기.